왜 우니? Dear 그림책
소복이 지음 / 사계절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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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함축적이다. 밖에서 보면 좁지만 들어가보면 무한정 넓은 방과 같다. 나는 소복이 님의 만화를 '시 같은 만화' 라고 표현해보고 싶다. <소년의 마음>이라는 만화에서도 그 안의 출렁이는 서사와 인물들의 마음을 느꼈는데, 이 책은 더하다. 등장인물이 매우 많아서인 이유도 있다. (두 장마다 다른 인물이 나온다) 이 책은 그림책으로 분류되어 있다. 만화책과 그림책의 중간, 만화책 같은 그림책이라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시 같다고 느낀 건 반복되는 말이 주는 운율 때문이기도 하다. "왜 울어?" (또는 왜 울어요?) 라는 질문과 그에 대한 답으로 각장이 이루어져 있다. 등장인물은 남녀노소 매우 다양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울 일이 있으니까. 이 책을 읽고 수업이나 독서모임에서 시를 쓰고 나누는 것도 좋은 활동이 될 것 같다. 특히 수업에서 아이들의 전형적인 표현을 탈피하고, 자신의 내면을 깊이있게 들여다보게 한 후 글을 쓰게 하는 효과도 있을 것 같다.

각 장을 넘겨 인물과 상황을 파악해가면서 나는 감탄했다. 작가님은 이 그림책을 완성하는데 얼마나 걸렸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의 마음을 생각해 보았을까. 한조각도 놓치거나 흘리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썼을까.

첫 번째 우는 아이는 "엄마가 있는 줄 알았는데 없어서 울어." 라고 한다. 자다 깼는데 엄마가 없는 서러움. 나도 어릴 때 엄마를 무척 밝혔다. 보통 둘째가 씩씩한데 나는 언니나 동생보다 유독 엄마 치마꼬리를 잡고 맴돌았다. 첫장부터 공감하는 아이들이 많을 것이다. 바로 다음 장이 웃음코드인 것이 신의 한수라고 생각한다. "엄마가 없는 줄 알았는데 있어서 울어." 아빠와 작당한 아주 작은 일탈의 현장을 들킨.ㅎㅎㅎ 아이들이 '재밌겠다'고 책을 넘기게 되는 아주 영리한 구성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만 나오는 게 아니다. 삼촌은 실연을 당했고, 형은 직면한 인생에 답이 없어 고민한다. 아빠는 이리저리 떠밀리는 인생에 자신감을 상실했고, 아저씨는 마음에 없는 말을 쏟아놓고 후회한다. 제일 슬펐던 장면 두 개를 꼽는다면 이렇다.
"딱 한 번만 보드라운 털을 쓰다듬고 싶어서 울어."
작은 무덤 앞에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우는 여자아이. '딱 한 번만' 이라는 말이 이렇게 가슴아픈 말이라니.
화자인 아이의 할머니도 엄마가 계셨다.
"우리 엄마가 점점 작아져서 사라져 버릴까봐 울어."
써놓고나니 둘다 죽음의 슬픔이구나. 헤어짐의 슬픔이라고도 하겠다. 이걸 누가 쉽게 말할 수 있을까.

재미있는 포인트 두번째는, 사람들이 슬퍼서 우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외로워서 울기도 하고, 안심이 돼서 울기도 하고, 심지어 기뻐서 울기도 하지. 서운해서 울기도 하고, 고마워서 울기도, 위로받아 울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아기는 우는게 사실은 말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와 같이 '운다'는 행위 안에도 매우 다양한 종류의 감정이 있다는 것을 살펴보게 되면 감정에 대한 아이들의 이해의 폭이 커질 수 있을 것 같다.

이게 끝이 아니다. 마지막이 압권이다. 사람들은 위로를 받으며 한손으로는 옆사람의 눈물을 닦아주고 있다. 눈물닦기 릴레이, 위로의 연대라고 표현할 장면이다.

사람들은 그렇다. 중이 제 머리만 못깎는 것이 아니다. 다 알면서도 셀프 위로는 어렵다. 때론 눈물을 쏟아낼 상대도, 눈물을 닦아줄 상대도, 위로의 말을 건네줄 상대도 필요하다. 서로서로 그걸 해줘야 한다. '사회'란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여기에 대한 답변이 쉽지 않지만, 그걸 다시 알려준 이 책이 참 고맙다. 재밌고 귀여우면서도 아름다운 책이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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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 개, 올빼미 머리 그리고 나 큰곰자리 고학년 2
M. T. 앤더슨 지음, 준이 우 그림, 송섬별 옮김 / 책읽는곰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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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동화이면서 동시에 현실을 보여주는 동화다. 판타지는 기시감이 거의 없는 닟설고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다. 그래서 진입하는데 시간이 조금은 걸리겠다. 하지만 일단 그 세계에 주인공들과 함께 들어서고 나면, 주인공들의 모험에 동행하며 그 감정을 함께 느낄 수 있겠다. 시간이 걸리겠다...고 말한 건 사실은 내 사정이고, 아이들은 바로 빠져들지도 모르겠다. 어른 독자(나)는 갈수록 무뎌지고 있고, 아이들은 그렇지 않을테니까.^^;;;

제목에 세 주인공이 나온다. 마지막의 '나'는 클레이라는 이름의 평범한 남학생 인간이다. '요정 개'는 '산아래 왕국'의 어린 사냥개고 이름은 엘피노어다. '올빼미 머리'는 사람과 같은 모습에 머리는 올빼미인 나라의 아이다 이름은 에이모스. 이렇게 다른 세 세계의 존재들이 만나 관계를 맺고 모험을 하는 이야기다.

모험도 모험이지만 내 마음을 요동시킨 건 그 관계였다. 우리 세계도 아닌 전혀 다른 세계의 존재들과의 우정. 자신이 받을 고초나, 어쩌면 모든 걸 잃을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친구를 지키려는 그 마음. 어쩌면 참으로 쓸모없고 어리석은 그 마음. 같은 세상에 살면서도 아주 약간 다른 그것을 가지고 거리 두고 흘겨보며 경계하는 게 우리들의 모습인데.

우주는(세계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이 책의 설정처럼 겹겹이 겹쳐 있지 않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오래 전에 나온 '시간의 주름'이라는 판타지 동화가 있는데 이 작가도 그 표현을 사용한다.
"우리 세계 사람과 너희 세계 사람은 서로 다른 시간의 주름 속에서 살고 있어." (97쪽)
그 세계간의 커튼이 살짝 열린 것은 지구의 전염병 때문에 아이들이 꽁꽁 갇혀 지내던 시간. 학교는 원격수업으로 우리가 익히 겪어봤던 코로나 때와 같은 상황이다. 친구들과의 대면은 사라지고 24시간 붙어있어야 하는 형제간은 서로를 지겨워한다. 클레이가 답답함을 참지못해 나왔던 집 근처의 숲에서 개를 만나며 세계간의 만남이 시작된다. 이 세상이 꽁꽁 닫혀있던 그 시간에 클레이는 살짝 열렸던 틈 사이로 다른 세계의 아이들과 만났던 것이다.

"죽음이 진짜인 것처럼, 내가 괜찮다는 것도 진짜야. 너희 둘이 무사하길 바라는 마음도 진짜고." (141쪽)
"클레이 형제, 정말 그 개한테 이런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어?"
"너도 엘피노어를 봤잖아.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해? (224쪽)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 놀이를 잊는 때가 오는 법이란다. 이제 가려무나." (250 쪽)

우리는 모두 어린시절 환상 속에서 겪었던 모험을 잊어버리며 어른이 되는 것일까. 클레이가 기억을 되새기며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이야기가 끝난다. 잊지는 않을 것 같다. 에이모스와는 헤어졌지만 엘피노어가 곁에 남아있기 때문에. 새로움으로 잘 짜여진 판타지였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을 말한다면 작가가 창조한 '다른 세계'에 대한 그리움이나 아련함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 그게 꼭 있어야 되는 것도 아닌데 나는 왠지 그런 걸 바라고 있나보다.

인물들의 캐릭터를 잘 살려 표현하고 친근하고 매력적인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도 인기있을 작품 같다. 혹시 내년 쯤엔 나온다는 소식을 듣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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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쟁이와 모나리자 사계절 1318 문고 15
E. L. 코닉스버그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사계절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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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독서의 추억과 함께 어린이문학에 대한 애정이 되살아오르던 20여년 전, 거기에 기름을 부은 책 중 하나가 이 작가님의 <클로디아의 비밀>이었다. 이후 이 작가님의 책을 읽은 적 없다가 얼마전 우연히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대출해왔다. 이 책도 나온지 꽤 오래 됐는데 그동안 몰랐었다.

어린이들이 읽긴 어렵고, 청소년소설로 나와있다. 굳이 청소년 아니라 그냥 소설로 소개되어도 괜찮겠다. 난 예술가의 일생과 시대 배경이 담긴 이런 책을 읽어본 적이 별로 없다. 아주 흥미로웠다.

유명 화가들에 대해서는 대표작품 제목만 몇개 알 뿐이다. 모든 의미는 서사에 담기는 법, 이런 책을 읽고 보면 평면이 입체가 되듯 작품이 다시 보인다. 문제는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작가의 상상인가인데, 이쪽에 무지해서 그 경계를 전혀 모르고 읽었다. 읽고 나서 몇가지 검색해보니 일단 등장인물들은 거의 실존했던 인물들이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그의 제자(조수) 살라이. 루도비코 공작과 애첩들, 부인 베아트리체와 그의 언니, 어머니 등... 그리고 그 유명한 그림 모나리자의 주인공.

그 인물들의 캐릭터에 숨을 불어넣은 것은 작가의 상상력일 터이다. 그 상상력이 적중했는지는 지나간 과거라 지금 확인할 수 없는 일. 감안하면서 읽으면 흥미로운 독서가 되고 작품 감상에도 도움이 된다. 다빈치와 작품에 얽힌 서사는 상상의 여지가 많아서인지 여러 작가들이 다루었나보다. 검색하다가 꽤 긴 다른 소설을 발견하기도 했다.

일단 작가는 조수인 살라이를 제목에서부터 '거짓말쟁이'로 칭했다. 어릴 때부터 입만 산 좀도둑 캐릭터다. 이런 아이를 다빈치는 왜 평생 옆에 두었을까? 그가 갖고있지 않은 어떤 면을 가치롭게 본 걸까? 둘 사이에 대한 얘기도 상상력이 뻗쳐서 아주 다양한 것 같던데, 이 책에선 이렇게 뭔가 서로 합이 맞는 존재로 표현했다. 너무 달라 서로의 빈 곳을 채워주는.

공작부인 베아트리체가 살라이와 아주 잘 맞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공작이 원래 부인 삼고 싶어했던 언니 이사벨라나, 연인 체칠리아의 미모에 비하면 훨씬 보잘것없는 외모를 가졌지만 총명한 머리와 솔직한 매력, 훌륭한 통찰력과 추진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녀의 매력을 다빈치와 살라이는 단번에 간파했고 마음도 잘 통했다. 하지만 의외로(?) 공작의 총애를 받는 부인이 되면서부터의 행보는 많은 한계를 드러냈다. 시대의 한계라고도 생각한다. 현대사회도 많은 모순과 문제점이 있긴 하지만, 귀족을 위해 예술가가 복무하는 것 같던 시대의 작품활동에는 많은 아쉬움이 있지 않았을까. 그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겠지만.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작품들이 많이 탄생했지만 말이다. 베아트리체가 살라이에게 이렇게 말하는 장면은 작가의 관점이 많이 담긴 장면인 것 같다.

"살라이, 나는 레오나르도 선생이 작품 속에 격렬한 것, 무책임한 것들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네가 도와 주었으면 좋겠어."

제목에 모나리자가 들어있지만 좀처럼 나올 생각을 하지 않다가 마지막에 살짝 나오며 끝난다. 작품을 다시 살펴보게 되는 작가의 상상력이다. 이 외의 작품, 예를 들면 공작의 연인 체칠리아의 초상화(흰 담비를 안은 여인) 등도 흥미로운 눈으로 다시 보게 된다. 이 여인은 수백년 후 먼 나라의 사람인 내가 자기 얼굴을 뜯어보리라는 걸 짐작이나 했을까. 위대한 화가의 모델이 되었다는 건 참 대단한 일이구나. 모나리자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없듯이.

이 모나리자의 탄생 배경, 그 안에 들어있는 예술가와 조수의 (사실은 작가의) 가치관이 흥미로운 방식으로 들어있는 책이다. 나로서는 평소에 잘 접하지 않던 내용의 독서였고, 꽤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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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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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2024 알라딘 올해의 책으로 뽑혔다고 한다. 투표에 참여하진 않았지만 만약 했다면 나도 그 책에 표를 주었을 것 같다. 사실 다른 책들 중 읽은게 별로 없어서 공정한 한 표라 장담할 순 없지만, 어쨌든 많은 독자들이 추천한 데는 이유가 있겠지. 나는 그 이유를 '보편적 주제'라고 생각해본다. 하나 더 말한다면 절제된 표현?

그보다 먼저 나온 이 책을 나는 이제야 읽게 되었는데, 마찬가지로 절제된 표현이 전혀 다른 내용의 두 책을 뭔가 비슷한 느낌으로 연결해 준다. 이 책은 심지어 98쪽. 채 100쪽도 되지 않는 분량이다. 굉장히 슬프고 힘든 사건이 나오는 줄 알고 읽었다가 중간에 엥? 하고 좀 갸웃. 마지막엔 역시,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이 책이 뭔가 처참한 상황과 감정을 담았으리라 짐작했던 건 영화 이미지 때문이었던 것 같다. 맡겨진 소녀는 원래 불행했고 더 큰 불행을 겪으리라는 막연한 짐작을 했었다. 영화보다 책을 먼저 보려고 아직 보지 않았는데 읽었으니 이제 봐야겠다. 영화는 제목이 살짝 다르다. <말없는 소녀> 그 제목의 이유도 알겠다. 원제도 그렇고, 번역 제목도 두 개 모두 괜찮은 것 같다.

짧은 분량처럼 이 책에서 다룬 시간도 길지 않다. 화자인 소녀가 동생의 출산을 앞두고 먼 친척집에 맡겨졌다가 출산 후 다시 집에 돌아가기까지 짧은 여름날의 일들을 담았다. 사건들이라기엔 평범한 일상이다. 친척집에 맡겨진다는 설정도 이야기에선 흔한 일이다. 특별하지 않은 일을 담은 길지도 않은 이야기가 왜 이렇게 많은 독자를 모으고, 영화로까지 제작되었을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말없음'의 아름다움이라 표현하고 싶다. 이 소녀의 성격이기도 하고 맡아준 부부가 소녀를 칭찬한 점이기도 하고 영화의 제목이 된 낱말이기도 하다. 동시에 이 작품의 성격이기도 하다. 서사의 특징이 말없음이라니 그게 말이 되는가? 왠지... 된다. '꼭 할 말만 하는' 이라고 바꿔 표현해도 되겠다. 버릴 문장이 없다는 것, 함축되어 있다는 것, 여운이 길다는 것, 그래서 짧지만 짧지 않다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라 하겠다.

소녀는 바쁘고 가난한 부모와 많은 형제들 사이에서 살뜰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자라다가 맡겨진 집에서 비로소 가정과 양육자의 따스함을 느낀다. 그것을 격정적이지 않게, 누가 알아챌까 조심하듯이 조용조용 표현하고 있다. 거기서 느껴지는 간절함, 혹은 체념, 고마움과 애정 등의 감정이 간결한 문장으로 독자의 마음 속에 들어와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사실 친부모는 무심하고 거칠어서 그렇지 막장은 아니고, 맡아준 부부 또한 세상 없는 선행을 베푼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크지 않다 할 수 있는 차이가 아이의 몸과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파장은 매우 컸다.

이 책은 말없음을 미덕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나는 그 미덕을 매우 지지하지만 모든 경우에서 그렇진 않다는 걸 인정한다. 예를 들면 빨간머리 앤은 특유의 수다스러움으로 주변에 빛과 온기를 주었지. 또 말이 많은 작품이 꼭 가치가 없으리란 법도 없지. 그래도 어쨌건 이 간결한 작품이 품고 있는 감정의 무게에 나는 감탄한다.

"어느 새 나는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을 하고 있다. 생각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나는 선 자세에서 곧장 출발하여 진입로를 달려 내려간다. 심장이 가슴 속이 아니라 내 손에 쥐여져있는 것 같다. 나는 내 마음을 전하는 전령이 된 것처럼 그것을 들고 신속하게 달리고 있다. 여러가지 일들이 마음 속을 스친다......."

아저씨는 그를 향해 돌진하는 소녀를 안아올렸고 아줌마는 옆에서 울음을 삼킨다. 아저씨의 시선 반대 방향, 그러니까 소녀의 시선 방향에 아빠가 걸어오고 있다. 그때 "아빠" 라는 따옴표가 두 번 나온다. 설명하지 않는 그 중의적 의미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양육이 고단하고 어려운 일이라는 점은 공통적이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마음가짐에 따라서 괴로움도 될 수 있고 행복도 될 수 있다는,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교사로서 학생들의 양육자를 바라보며 이에 대한 안타까움을 많이 가진다. 갈수록 더. 나도 겨우 지나온 그 길이니 남 말할 주제가 못되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주로 드는 생각은 이런 것이다.
- 자기 자식이랑 같이 있는 게 그렇게도 싫을까?
- 자식한테 왜 저런 걸 먹일까? 따뜻한 밥 좀 해주면 안되나?
- 자기 직성 풀기 위해 자식을 키우나? 자식의 가치가 거기에 달렸나?

물론 아줌마 아저씨는 풍족한 편이었고 자녀도 없었고(여기엔 아픈 사연이...)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있었다. 반면 소녀의 친부모는 가난하고 바빴다. 하지만 이 차이가 모든걸 결정하진 않는다. 자녀가 많다고 꼭 찬밥이 되는 것도 아니고 하나라고 관심을 충분히 받는 것도 아니다. 아이가 느끼는 따뜻함과 충족감은 아주 섬세한 것들이었다. 보려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고 들으려 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다. 내가 안타까워하는 점은 바로 이런 점이다. 우리 사회 기준 이 친부모가 특별히 나쁜 사람들도 아니다. 더한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최초의 따뜻함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은 그것을 어디에서 채울까.

<조립식 가족>이라는 드라마를 보다가 중간에 재미없어져서 관두긴 했는데, 거기서 세 아이를 품어 친남매처럼 기른 아빠(최원영 분)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는 모든 공간에 스며들어 그곳을 채웠다. 그는 허름한 칼국수집을 운영하는 별볼일 없는 사람일지 몰라도,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인물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양육의 외주화가 두드러지는 이 시대에 말이다. 집에 돌아오기 며칠 전 우물에 젖어 감기 걸렸던 아이가 절대 그 이야기를 부모에게 하지 않고 입다물려는 모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난의 화살을 남에게 돌리려는 아빠의 모습을 보고 연상되는 게 많았다. 내 눈에만 그게 두드러진 것이려나.

이제 며칠 내로 영화를 봐야겠다. 세상이 참 힘들고 아픈 때다. 말없음의 미덕을 말하면서 말이 너무 길었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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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정원의 기적 서유재 어린이문학선 두리번 20
이병승 지음, 최산호 그림 / 서유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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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재난 미래를 다룬 '차일드폴'을 쓰신 이병승 작가님이 같은 배경의 다른 이야기를 쓰셨다. 기후위기가 가져온 미래의 모습은 상상하기도 싫을 만큼 끔찍하게 표현되었지만, 그중에서도 희망을 그린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이 책에서 나의 눈길을 끈 점은 '인간의 본성'이었다. 비겁하고 악하고. 이기적이고. 나 또한 남 말할 처지가 아니기 때문에 '본성'이라 표현해 보았다. 선의를 베풀 가치도 없어보이는 존재. 그러니 이대로 망하는 게 당연한 귀결 아닐까. 하지만 작가는 이 모든 걸 표현해 놓고도 다시 꽃을 피우려는 시도를 한다. 그게 위로이며 희망이기도 하다. 아직 늦지 않았기만을 간절히 바라지만.....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은 모든 영역에 이르지만 이 책에서 부각된 것은 식량위기다. 망가진 자연은 작물을 제대로 재배하지 못하고, 바다의 산물도 더이상 먹을 수 없다. 식량 난민이 몰려들고, 자신들 먹을 것도 부족한 이들은 난민들을 혐오하고 증오한다. 사회 시스템은 무너지기 일보직전으로 겨우 지탱하고 있다.

화자인 민달이네도 형편은 마찬가지였다. 견디지 못한 엄마는 외할아버지네로 가기로 결심한다. 갈곳이 있으니 다행이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은게, 부녀 사이는 최악이고 할아버지는 몹시 괴팍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소비 자체를 혐오한다는 할아버지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민달이와 엄마는 간단하게 가방을 꾸려 할아버지가 계신 마을로 떠난다.

듣던대로 할아버지는 딸을 반기지 않았고 개 사료를 한푸대 던져주었을 뿐이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인류의 미래를 짊어진 중요한 주인공이었다. 재난을 미리 대비한 연구의 성과를 가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제목의 '비밀 정원'이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것을 나누려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선의로 했던 연구와 작업이었는데 늘 오해와 무시, 비웃음을 당했다. 딸(민달이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서로를 원망하던 가족은 남이나 다름없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할아버지는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버렸다. 정원의 문도 마찬가지.

그 문이 열리기까지 민달이와 할아버지, 그리고 주변의 일들이 이 책의 내용이라 하겠다. 상황과 사건들의 현실성과 개연성은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것 같은데, 정말 리얼했던 건 위에서도 말했듯이 인간들의 본성이었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하는 본성, 파이를 나누기보다 배제할 시람들을 찾아 내쫓는 본성,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다른 본성, 언제 그랬냐는 듯 말바꾸는 본성,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본성, 같잖은 권력이라도 쥐고 뭐나 된 듯 행세하려는 본성, 믿었다간 뒤통수 때리는 본성.....

이 모든 것을 보여주고서도 이 작품은 희망을 향해 나아가려 한다.
"원래 세상엔 착한 사람보다 못된 사람이 훨씬 더 많아. 그리고 우리는 그런 거 안 가리고 자기의 재능을 쓴 사람들 덕분에 살아가고 있는 거야."
저 위에 쓴 본성이 나의 것이면서도 마치 아닌듯이 나는 일부 사람들을 욕하고 혐오한다. 나눠줄 걸 갖고 있지 않지만 만약 갖고 있다면 할아버지처럼 하고 있을 것 같다. "누구 좋으라고?" 화를 내면서.

올겨울, 세상이 너무 어둡고 춥다. 결국 죽이는 것도 살리는 것도 다 사람일 터. 착한 사람들 쪽에 조금이라도 기울고 싶지만 그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부디 우리가 모두를 위한 선택을 하면서 살 수 있길. 결국 이기적 결론이지만 그게 나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니까.

이 겨울의 어둠 끝에도 빛이 보이길 소망하며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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