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고양이 이야기 하늘을 나는 책 8
이토 미쿠 지음, 소시키 다이스케 그림, 고향옥 옮김 / 그레이트BOOKS(그레이트북스)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참 평범한 제목의 책이다. 내용도 그렇게 특별하진 않다. 하지만 고양이를 키우는 분이라면 자기 얘기처럼 읽을 책이다. 개를 키우는 분도 똑같을 것 같다.

화자인 가즈마는 4학년, 고양이 고토라는 열여섯 살이다. 가즈마가 태어났을 때, 이미 여섯 살 고양이가 있었던 것이지. 부모님 신혼 때, 아빠가 길에 버려진 아기고양이를 데려와서 그때부터 쭉 키웠다. 정말 가족일 수밖에 없겠다. 문제는 가즈마는 아직 어린이인데, 고토라는 사람 나이로 치면 80대 노인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고토라가 늙고 아프기 시작할 때부터 이 책은 시작한다. 과거 이야기는 지나가는 말로 살짝 들려줄 뿐이다. 고토라가 아프자 가장 고생하는 사람은 엄마다. 아빠의 직장이 멀어져서 주말에만 오시기 때문에, 집에서 일하는 엄마가 일하면서 고토라도 돌봐야 한다. 수시로 병원도 데려가고. 가즈마도 열심히 돕기는 하지만.

사람이나 동물이나 수명을 다할 때까지 살다가 어느날 편안하게 잠든다면 좋으련만, 길고 짧고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병고를 겪다가 떠나간다는 것이 참 두렵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고토라도 그랬다. 사료를 통 못 먹기 시작했고, 먹지 않으니 기운이 없고 말라갔다. 움직임도 어려워졌다. 못 올라가는 데가 없던 고양이가 어느날 40cm 소파에도 올라가지 못해서 버둥거려야 했던 날, 가족들도 고양이도 모두 충격을 받았다.

현실적인 어려움으로는 경제적인 문제가 있다. 이 이야기는 그런 부분도 미화 없이 드러냈다. 병원에 갈 때마다 드는 검사비와 진료비는 다들 알다시피 사람 병원비보다도 비싸다. 엄마는 그래도 할 수 있는 데까지 해주려고 애쓴다. 나중에는 수액 꽂는 법을 배워서 집에서 직접 수액을 놔주기도 했다. 하지만 고토라는 상당한 노령이고, 죽음이란 누구도 막을 수는 없는 것, 엄마는 부질없는 연명보다 고통없이 갈 수 있는 방향으로 의사에게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어린 가즈마는 그럴 때 서운해하고 분노하기도 한다.
“고토라는 열여섯 살이니까 병이 낫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는 말이에요? 죽어도 어쩔 수 없는 거냐고요? 말도 안 돼. 그런 게 어딨어!” (48쪽)

상태는 점점 심해지고 고토라는 이제 걸을 수도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다. 먼 곳에 근무하는 아빠까지 기차를 타고 집에 오면서 이렇게 말한다.
“글쎄,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이미 기차에 탔지 뭐야. 내일 아침 첫 차로 가려고.”
한 마리의 동물에 이렇게 온 가족의 일상이 매달리는 일, 나 어렸을 때 같았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때는 집안에 절대 동물을 들이지 않았고, 하루종일 개집에 묶어 놓는 걸 당연한 줄로 알았고, 어느정도 크면 누군가에게 팔았다. 그 말로를 어른들은 말해주지 않았고... 하지만 짐작한 아이들(나)은 목놓아 울곤 했지.... 뭐 심지어는 키우던 개를 동네에서 같이 잡아서 먹기도 했잖아? <나의 해방일지> 드라마에서 미정이는 염소를 키우는 일에 대해서 구씨한테 이렇게 말했었지.
“이름 부르던 걸 어떻게 잡아먹냐?”
“그래서 이름 안 지어 줘. 그리고 이웃집이랑 서로 바꿔서 잡아먹어.”
옳고 그른 건 없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동물과 사람은 교감이 가능하고, 그래서 깊이 사랑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랑해버리면 이후엔 어쩔 수 없다. 아플 때 같이 아파하는 수밖에.

고토라의 마지막을 세 가족이 모두 함께해서 다행이다. 먼저 아빠의 눈물이 터진 건, 그 어린 고양이를 못본 체 못하고 데려왔던 사람이 아빠였기 때문이 아닐까. “괜찮아, 괜찮아.”를 되뇌던 엄마는 고토라의 숨이 끝내 멈추자 비로소 눈물을 쏟았다.

그렇게 슬프게, 어쩌면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고토라는 떠났다. 이 책은 맑고 따스한 날의 풍경 그림으로 한 장을 채운 후 에필로그처럼 다음주의 가족 일상을 보여준다. 아빠가 어항과 송사리를 사왔다. 으으... 내가 엄마라면 화냈을 것 같아. 하지만 가족은 또 가만가만 송사리의 헤엄치는 모습을 지켜본다. 나는 우리 강아지 떠나고 나면 절대 아무것도 키우지 않을 생각이지만, 그 슬픔까지 사랑할 큰 사랑이 있다면 또 함께할 수 있겠지.

집사님들이 울지 않고 읽기는 어려울 책 같지만, 그래도 권해보고 싶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스트 웨일 - 2023년 상반기 올해의 청소년 교양도서 추천도서
해나 골드 지음, 레비 핀폴드 그림, 박다솜 옮김 / 창비교육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라스트 베어>를 읽고 이 작가의 남은 작품을 마저 읽어야겠다 생각했다. 이 책이 바로 그 작품이다. 두 책의 결이 비슷하다. 엄청난 대자연이 배경이라는 점, 인간보다 훨씬 큰 동물의 절망적 위기와 그걸 안타까워하는 인간 아이의 소통이 주 내용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다른 점도 많다. 전작은 북극곰, 이번 책에는 회색고래가 나온다. 곰과의 이야기는 여자아이, 고래는 남자아이가 주인공이고 북극권의 섬, 캘리포니아 부근의 오션 베이로 배경도 아주 다르다. 이렇게 배경과 소재와 사건이 다르지만 주제는 맞닿아 한 길로 흐른다.

리오는 영국에서 엄마와 살다 혼자 미국의 외할머니 댁으로 오게 되었다. 엄마의 형편 때문인데, 엄마는 탁월한 바이올린 연주자였지만 아들의 양육은 커녕 본인을 돌볼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 정신 건강에 크나큰 문제가 생겼다. 결국 입원치료를 하기로 하고 리오를 멀리 보낸다.

리오를 보며 안타까운 점은 엄마에 대한 책임감이 과하다는 것이었다. 너무 없어도 탈이지만 이렇게 과한 것도 바람직하진 않다. 둘뿐인 사이였어서 애착이 강한 건 어쩔 수 없긴 하다. 그래도 아이가 어른을 이렇게 걱정하게는 안했으면... 이 책의 주제와는 관련없는 주변 상황인데도 나는 안타깝더라고.ㅠ

거대한 태평양이 펼쳐지는 할머니 댁 동네에서 리오는 바다와 함께 마리나라는 좋은 친구, 그리고 마리나의 아버지이자 든든한 선장인 비치를 만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과거 엄마의 기쁨이었던 회색고래 화이트빅을 만난다. 화이트빅과 교감한 순간, 인간과 고래라는 종의 구별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 묘사가 매우 탁월해서 한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내가 설득이 되었다.

고래의 이동 경로를 따라 활동하는 웨일 워칭도 흥미롭고 새로운 소재였다. 생명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훌륭한 마음과 실천을 겸비한 사람들도 참 많구나. 문제는 그런 사람들과 비교도 되지않을 비율로 파괴자들이 훨씬 많다는 것이지만.... 나도 후자에 속하겠지.ㅠ

그 웨일 워칭의 데이터들이 모여 고래들의 개체 수를 추적하고 위험도 파악할 수 있는 것인데, 불길한 소식이 들려왔다. 꽤 많은 시간이 지나도 경로에서 화이트빅의 목격이 기록되지 않고 있었다. 화이트빅의 존재에 엄마 회복의 희망을 걸고 있던 리오는 견딜 수가 없었다. 리오는 마리나를 설득하여 바다로 나가고자 한다.

그 비밀 모의는 실패했지만 비치와 할머니는 화를 내기보다 동행해 주신다. 큰 어른들의 위대함에 존경을 보낸다. 나라면 절대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 같아서... 솔직히 리오의 캐릭터가 내겐 약간 비호감인 면이 있었다. 엄마에 대한 사랑이 다른 사람을 향한 무례나 분노로 표출되는 것, 실행에 대한 고집으로 타인까지 위험을 감수하게 하는 것 등... 물론 리오처럼 해야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거지. 나처럼 하면 모든 일은 시작도 되지 않을 거라는 거 인정한다. 하, 진짜 갈수록 꼰대가 되어가는 게 이런 데서도 느껴지네.;;;;

리오의 특별한 능력, 듣는 귀가 드디어 찾아냈다. 온갖 도구들에 묶여 죽어가고 있던 화이트빅을. 주변 상황도 위험했지만 이 의로운 이들은 끝내 해낸다. 마지막에 마침 도착한 해양구조대의 도움도 컸다. 다시 맞이한 고래와 인간의 교감....
"화이트빅이 리오를 다시 밀었다. 리오는 두 팔을 뻗어 화이트빅을 끌어안았다. 부드러운 얼굴에 뺨을 대고 눈높이를 맞추었다.
..... 이윽고 화이트빅은 천천히 자리를 벗어나더니, 마지막으로 리오를 물끄러미 보고 헤엄쳐 갔다." (275쪽)
모든 격동이 끝난 리오는 이제 차분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게 된다. 엄마를 위해서도, 바다를 위해서도. 리오는 분명 의미있는 일들을 하며 살아갈 것이다.

가끔 여행지에서 자연의 광활함을 보게될 때, 저 자연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작은가 생각하지만 그 연약한 존재들이 떼지어 눈앞의 편안함만 추구한 결과, 거대한 대자연도 속속들이 망가졌다. 이책은 그런 우리들에게 당장 무엇이라도 할 것을, 찾아보면 할 일이 많다는 것을 감동적으로 설득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는 건 싫어! 봄볕어린이문학 36
류호선 지음, 박정섭 그림 / 봄볕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랜만에 마음 편히 얇은 책 한 권 읽고 싶어서 도서관을 훑다가 이 책을 대출했다. 류호선 작가님 책을 좋아해서 리뷰도 몇 편 썼다고 생각했는데 알라딘 서재에 없다.... 그건 쓴지 10년도 넘었다는 뜻.... 세월이 그렇게 빠르구나. 작가님이 참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계시다는 뜻이기도 하고.

작가소개에는 안 나와 있지만 교사시라고 알고 있다.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아직도 현직이신 듯. 이 책을 보며 그 생각이 난 건, 아이들 캐릭터가 너무 생생해서다. 교사라면 모를 수가 없는 그 캐릭터. 특히 저학년에 많은 그 캐릭터. 뭐만 하면
“아싸, 내가 이겼다.”
“나 일등!!”
이러는 아이.

그 아이 이름은 유안이고 화자인 토리는 유안이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소심한 아이다. 느리고 어리버리한 게 나랑 비슷해서 바로 감정이입이 되네.ㅎㅎ 유안이만 스트레스 받는 게 아니다. 나도 우리반에 이런 아이가 있으면 솔직히 바로 고쳐버리고 싶다. (사람은 쉽게 고쳐지지 않음) 줄을 서면 꼭 제일 앞에 서려고 다투고, 어디 다녀오면 마지막에 마구 밀치고 우당탕 들이닥쳐서 “내가 1등이다!” 하고 소리지르는 아이. 꼭 있거든. 저학년 하다가 고학년으로 오면 이런 아이가 없어서 편하다는 느낌이 드는데, 어쩌다 고학년에도 있을 때가 있어요. 그럼 엄청 놀라는 시늉을 하면서 “으응? 개똥이 왜그래? 그거 1학년 때 졸업한 행동 아니야?” 하면 주변 눈치를 보면서 자제한다. 하지만 저학년은 그게 잘 안 된다. 대다수가 그렇기 때문에 또래압력이 작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발달단계에 따른 행동인 것 같지만 그래도 이런 행동이 만연하는 건 막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 책의 화자 토리처럼 그 안에서 힘들어하는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행동이 아무 의미 없으며 전체를 위해서는 좋지 않다고 설득해 주어야 한다. 근데 자기중심적 특징이 있는 아이들에게 설득이 쉬워? 이 책을 읽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얇은 책이지만 장마다 제목이 있는데, 첫 장의 제목이 [학교는 승부의 세계] 이다. 똑똑하고 영향력이 큰 유안이가 무슨 일마다 “1등!” “내가 이겼다!”를 외쳐대자 다른 아이들도 너도나도 들썩거리게 되었다. 그 틈바구니에서 속도전에 자신 없는 토리는 위축된다. 그놈의 속도전 진짜... 조급한 부모의 영향, 나아가서는 나라 분위기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니가 진 거야.” “니가 꼴찌야!” 이런 말을 듣는다면 당연히 조급해지지 않을까. 교사도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아이들을 몰아가거나 부추기지 않도록 절대 조심해야겠다.

그러던 중 토리의 꿈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나왔다. 할머니는 빨간 사탕과 파란 사탕을 보여주며 설명하려 하시는데, 토리는 끝까지 듣지도 않고 빨간 사탕을 입에 넣어버렸다. 그건 ‘무조건 이기는 사탕’이었다. 다음날부터 토리는 뭐든 무조건 이기게 된다. 좋았을까?

토리는 할머니가 꿈에 다시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린다. 빨간 사탕이 좋지만은 않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설명을 듣지 않았던 파란 사탕의 효능이 궁금해졌다. 당연히 독자들도 그렇겠지? 아이들에게 읽어줄 때 적당한 곳에서 끊고 파란 사탕의 이름 맞추기를 해보면 재밌을 것 같다. 이유도 아이들이 말하게 하면 교사가 설교하지 않고도 중요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올 것 같다.

책의 내용 중 할머니께서 윷놀이할 때 하신 말씀을 적어두고 싶다. 할머니는 이모나 아빠처럼 토리에게 일부러 져 주시지 않았었다.
“토리야! 잘 봐라. 이기면 말이다. 배우는 게 아주 조금이거든!”
“지금처럼 크게 지면 말이다, 더 많이 배우는 법이야. 우리 손주는 오늘 크게 지고, 많이 배웠네, 많이 배웠어!” (64쪽)

마지막 장의 제목은 [명승부] 이다. 얼마나 멋질까? 동화는 그래. 애들한테만 통하는 주제가 아니라고. 잘 이기고, 잘 지고. 이겨도 나빠지지 않고. 져도 그것으로 배우고. 그러면 세상에 이런 난리가 나겠어? 여러분 동화를 좀 읽읍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해력이 쑥쑥! 진짜 초등국어 공부법 - 교사 학부모 모두를 위한 문해력 수업 지침서
박지희 지음 / 상상정원 / 202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박지희 선생님 연수도 들은 적이 있어 선생님의 국어수업을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선생님은 경력도 많으시지만 경력이 많다고 모두 이렇게 자신의 수업이 확립되고 체계적으로 정리되진 않는다. 이학년 저학년 널뛰듯 옮겨다니고 해마다 바뀌는 업무에 적응하느라 혼을 빼고 하다보면 자신의 수업을 성찰하고 체계를 세울 새도 없이 다음 일에 휩쓸리게 된다. 핑계긴 하지만... 이렇게 훌륭하게 해내신 분도 계시니까. 이런 분이 선배님으로 계셔서, 그리고 후배들에게 아낌없이 전수해 주셔서 늘 감사하고 자랑스럽다. 그리고 이건 책과는 관련 없는 말이지만, 이렇게 실수업에 역량이 뛰어나신 분이 공모 교장 제안을 수락하고 그 일 또한 존경스럽게 해내신 후에 다시 평교사로 돌아오신 모든 과정에도 경의를 표한다. 작금의 나라꼴을 보더라도 훌륭한 리더는 정말 드물다. 천연기념물, 아니 멸종위기동물 정도 되는 것 같다. 실무 능력과 판단력은 커녕 제정신 똑바로 박힌 인간도 드물어.... (물론 학교는 나라꼴보다는 나음) 그런 상황에서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 가서 역할을 다하시고 미련없이 제자리로 돌아오신 선생님의 모습이 너무 멋있다. 이 책을 읽으며 교실에서 1학년 아이들에 둘러싸여 지내시는 선생님의 모습이 자주 연상되었다. 그게 선생님의 가장 본연의 모습이라고 이 책이 말해주는 것 같다.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문해력'을 표방하고 있다. 요즘 부쩍 문해력, 문해력 하는데 문해력이 무엇인가? 국어실력인가? 그것도 아주 틀리진 않지만 모든 교과 전반에 필요한 역량이라는 말이 더 정확하겠다. 말하자면 배움과 학습의 도구라는 것이다.
"문해력은 읽고, 이해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이를 통한 자기만의 사고의 틀을 만드는 전 과정이 문해력입니다." (18쪽)

이렇게 중요한 문해력, 어떻게 기를까? 선생님의 지론은 '가르쳐야 배운다'는 것이다. 철렁하는 말이다. 물론 교육과정 자체가 문해력을 가르치도록 짜여져 있으니 개별 교사가 각각 '문해력을 가르치고 말테다' 하고 불끈 해야만 지도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체계와 현 단계를 정확히 파악하고 좀더 효과적인 활동을 구성하려 노력할 필요는 있다.

저자는 그 단계를 이렇게 설명한다.
1)뿌리 문해력 : 태아부터 학령기 전까지. 양육자의 이야기나 읽어주는 책을 들으며 정서가 안정되고 문해력의 뿌리가 내림
2)초기 문해력 : 초등 저학년. 문자학습 시기. 문해력의 골든타임.
3)기본 문해력 : 초등 중학년. 사실적 이해와 독해력이 자라는 시기
4)기능 문해력 : 초등 고학년. 추론적 읽기, 비판적 읽기 단계

각 단계를 잘 다져야 다음 단계 능력을 키울 수 있으며 이 발달은 아이가 경험하는 기회의 양과 질의 차이에 좌우된다. 이것을 제공하는 것이 어른의 몫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내 생각에 기회, 환경 이것의 차이는 학교에서도 어느정도 날 수 있겠지만 치명적 차이는 가정에서 나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을 '교사 학부모 모두를 위한' 으로 부제를 붙이고 쓰신 것 같다. 양육자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많이 제시해 주셨다. 사실 나는 '보호자들에게 어떤 기대도, 요구도 하지 말자, 내 할일만 최선을 다해 하자' 라는 태도로 살고 있어서 이 내용들이 몹시 새삼스러웠다. 아이들에게 가정활동을 제시해주고 보호자와 함께 하라고 하거나 확인을 받게 하려면 귀에 환청이 들리는 것 같기 때문이다.
"아 성가셔 죽겠네. 학교에서 끝내지 쫌."
"누군 좋은지 몰라서 안해? 퇴근하면 피곤하고 시간없는 걸 어쩌라고. 누구 약올려?"
왜 내 귀엔 이런 소리가 들릴까....ㅠ 저자가 교장으로 계실 때와 지금 담임하는 반에서 '가정에서 책읽어주기 프로젝트'를 진행하셨는데 놀랄만한 변화를 보셨다고 한다. 객관적으로. 아 고민된다. 올해는 학부모총회때 학부모 추천도서를 넣으려고 한다. 이 책을 첫번째로 넣겠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십시오.

경험과 환경 제공이라는 가정에서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긴 하나 그렇다고 학교에서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학습정서(저학년) - 인지능력 - (중학년) - 사고력(고학년)의 발달과정을 염두에 두고 각 단계에 맞는 활동을 촘촘히 계획해서 해야 한다.

나의 수업에 빈 구멍을 찾아가면서 읽을 때,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것은 '어휘력'이었다. 어휘력이 중요한 줄은 알지만 이를 위한 구체적인 훈련이 부족했다. 저자는 어휘불리기 공책 등 여러가지 방법을 사용하셨는데 나도 이부분 고민 좀 해봐야겠다. 저자가 개발하신 교재도 있던데 그것도 좀 살펴봐야겠다.

이상과 같이 문해력 전반에 대한 내용이 1부(문해력, 가르쳐야 배웁니다) (1~4장)이고 2부는 갈래별 지도방법이다.(문해력, 갈래별 초등국어 공부로 키웁니다) (5~10장) 여기서부터는 장별로 메모하며 읽었다.

[5장 문해력 기초를 다지는 한글공부]
1학년에서 가장 중요한 과업은 한글공부다. 이때 문자 세상에 대한 좋은 첫인상, 즉 기대와 설렘을 갖게 하며 지도해야 한다. 앞당겨 강요는 역효과를 내니 부모님들은 이걸 주의해야 한다. 방송에서 아직 학령기도 먼 아이를 쥐잡듯 잡는 장면을 보았는데, 그렇게 미리 조바심 내다가 첫인상을 망쳐버리면 시작부터 망할 수가 있다. 이때는 애를 잡지 말고 부모 본인이 애써야 한다. 읽어주고, 들려주고, 보여주고.
"문자들의 결합으로 의미가 생기고 서사가 생기는 이야기의 세계를 맛보게 했을 때 아이들은 문자 세상에 기꺼이 발을 들여놓을 것입니다." (113쪽)
"한글교육의 핵심은 다양한 읽기자료나 읽기방식을 도입하고, 배움의 단계를 촘촘하게 나눠 숱한 반복과 학습을 할 수 있게 교육과정을 짜는 데 있습니다." (114쪽)
이건 교사들이 숙고해야 할 내용들이다.

또한 저자는 "유창하게 읽을 수 있도록 소리 내어 읽게 해야 합니다" (119쪽)라며 음독의 중요성을 말씀하시는데, 이건 학교와 가정 양쪽에서 많이 활동시켜야 할 것 같다. 최근 몇년간 중학년을 지도하면서 갈수록 '함께 소리맞춰 읽기'가 잘 되지 않아 당황하고 고민하던 중 깨달은 점이 있다. 학생들 개별 읽기 유창성이 매우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각자가 유창하지 않으니 같이 시작해도 같이 끝나지지 않아 함께읽기의 의미가 없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분량을 한문장 정도로만 줄이고 교사와 번갈아 읽는 방법을 주로 사용했는데, 유창성도 제때 길러주지 않으면 학년이 올라가도 저절로 늘지 않는구나 확실히 느끼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집에서 일정 분량을 날마다 소리내어 읽은 경험을 가진 아이가 극소수였다. 난 올해 이건 확실히 강조해야겠다. 안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지만 할 사람은 할 수 있도록.

[6장 마음을 가꿔 주는 그림책 수업]
그림책은 진입장벽이 낮고 접근성이 좋은데다 훌륭한 예술 장르이자 교육 자료이기도 해서 매니아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예전부터 해 오시던 분들 또한 꾸준히 실천하고 계시다. 저자가 우선 강조하는 건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읽어주기'이다. 특히 저학년에선 하루의 루틴에 넣어 날마다 읽어주기를 권하고 있다. 그리고 읽어준 책을 가정에서 부모님에게 소개하고 부모님 글씨로 알림장에 제목을 적어오는 방법을 소개하셨는데, 여러가지 면에서 좋아보인다. 그렇게 하면서 집에서의 읽어주기로 유도하면 자연스러울 것 같다.
읽어주기에서 더 나아가 그림책을 수업에 들여올 수 있다. 그림책 한 권으로,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수업주제에 다양한 활동으로 활용할 수 있으니 교사의 아이디어가 관건이라고 할 만하다. 여러가지 활용 사례를 알려주셨다. 이 부분만 떼어 책을 따로 쓰셔도 좋을 정도다. 그림책 수업 관련은 무수히 많은 책들이 나와 있지만 말이다.

[7장 마음의 결을 다듬는 동화 수업]
더욱 짧은 숏폼에 익숙해져 집중력을 잃어가는 집중력 상실의 시대에 동화읽기는 집중력을 키우면서도 삶을 풍부하게 합니다. (163쪽)
위의 말씀처럼 집중력의 문제가 갈수록 심해지는 시대에 동화수업은 고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바로 그 집중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동화수업은 필요하며, 타인의 삶과 세상에 대한 이해를 넓혀 공감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

동화수업은 결국 혼자 문학작품을 읽을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것인데, 읽어주기를 빨리 중단해 버리면 혼자 읽어내기 어려운 아이들은 자기효능감이 떨어지고 책을 기피하게 된다. 그래서 읽어주기, 조금 더 나아가서 함께읽기(온작품읽기)는 중,고학년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필요하다. 교사의 안내(필요시 해석)이 곁들여진 온작품읽기는 개인 독해력 부족을 커버해주어 함께 읽기에 성공하게 하고, 스스로 독자가 될 수 있도록 이끄는 다리 역할을 해준다.

촘촘하게 짜여진 교육과정에 온작품읽기를 넣으려면 시수가 부족하므로 재구성이 필요하며, 이때 학년의 성취기준에 맞추어 활동 구성을 하면 교과서로만 수업하는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한 활동을 하면서도 성취기준은 그것대로 달성할 수 있다. 이 책에 그 예시가 잘 나와있다. 또한 성취기준에 따른 다양한 전략들도 소개되어 있어 활동 구상에 참고가 되겠다. 예시로 드신 책을 선정해도 좋고, 다른 책을 선정한다 하더라도 전략은 충분히 참고가 가능하다.

[8장 공감과 소통 능력을 기르는 시 수업]
제목에 저자의 목표가 나와있다. '공감과 소통'
"우리가 늘 만나는 상황이 시적 상황일 수도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218쪽) 이 대목이 나와 같아서 반가웠다. 난 아주 잘하고 있진 못하지만.... 교실에 수십권의 시집을 비치해두고 자주 제공하는 것, 나도 하고 있어서 뿌듯^^;; 하지만 시집만 있다고 끝은 아니므로 저자의 구체적인 방법들은 많은 참고가 된다. 개인적으로 <시로 감정사전 만들기> <시와 동화책 그림책 연결하기> 챕터에서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이 생겼다. 동시캠프까지 여신 것을 보니 저자의 스케일은 역시... 때로는 행사도 필요하니 유용한 정보가 되겠다.

시를 쓰는 데 있어서 아이들에게 시적 상황의 포착이 중요함을 알고는 있는데... 나는 그걸 구체화하진 못한 것 같다. 바깥활동이나 운동회 등 생생한 경험이 있을 때 바로 시를 쓰는 방법을 주로 사용했는데 그렇게 해도 맹탕인 '무맛' 시들이 갈수록 더 나오더란 말이지... 저자는 아이들의 '감정'과 연결지어 시적 상황들을 모으게 하고 그중에서 글감을 정해 쓰게 하셨는데 이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나아가서는 아이들이 수시로, 스스로 시적상황을 포착하고 시를 쓸 수 있다면 모두가 시인인 학급이 만들어질 것 같다. 그렇게 되기 위한 쓰기의 전략이 많이 들어있었다. 이부분만 봐도 이 책이 월척임을 알 수 있다. 안읽고 뭣들하세요. 강추.

[9장 정보를 재생산하는 설명글 수업]
여기서부터는 비문학 텍스트라고 할 수 있는데, 선생님의 수업을 보니 장르에 대한 단절적인 구분보다도 자연스럽게 넘나들며 수업하셨다는 느낌이 든다. 아뭏든 비문학(정보) 자료도 살아가며 많이 접할, 나아가서 생산해야 할 자료들이므로 수업에 공을 들여야 할 필요가 있다. 비문학이라고 해서 재미없다고 하기엔 요즘 흥미로운 정보책들이 워낙 많으므로 적절히 활용하면 좋겠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독서취향도 정보책들을 선호하는 취향이 제법 있다.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어보이지만 절대 적지 않은 설명글. 이 책에 그 방법이 충실하게 나와있다.

[10장 서로의 생각과 가치관이 만나는 주장글 수업]
마지막장은 주장글이다. 초보적 글은 저학년도 가능하겠지만 어느정도 내용을 갖추려면 중학년 이상은 되어야 할 난이도 있는 장르라 할 수 있다. 관점 파악 훈련부터 시작하신 저자의 지도가 매우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주장도 뭘 알아야 할 수 있으니 배경지식을 넓히기 위한 독서를 한 점. 이건 앞장의 설명글과도 연계가 되면서 평소 나도 중요하게 여기고 하던 수업이라 반갑기도 했다. 또한 배경지식이 굳이 필요하지 않은, 생활 속 요청을 담은 주장글쓰기도 의미있었다. 설명글과 함께 주장글도 짜임이 중요한 장르라 짜임을 익히기 위한 활동들도 잘 안내되어 있다. 활용하신 책 제목들도 유용하다.

이렇게 총 10장의 내용을 다 읽었다. 이걸 하루에 받은 연수라고 생각하면 분량이 엄청나다. (음 뿌듯한 하루) 원격연수 눈으로만 보는 것보다 읽으면서 메모하는 이런 방식이 내게는 훨씬 맞는 것 같다. 다른 선생님들께도 추천한다. 단 정독을 해야 됨. 1장은 학부모님들, 2장은 교사의 마음을 두드릴 내용들이 가득 들어있다. (교사는 1,2장 모두 유용) 지식과 경험, 노하우의 보고를 이렇게 엮어서 내어주신 것에 감사하며 긴 메모를 마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학교 안 가는 날 - 한글 캐릭터북 북멘토 그림책 27
이정은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2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평게시판에서 제목만 보고 신청할 책을 고르면서 '캐릭터북'이라고 써있는 이 책을 가장 먼저 제꼈다. 그러다가 '가만! 한글 캐릭터북? 이게 어떤 책이지?' 하고 찾아 보았다. 우와 이거 대박이잖아? 놓쳤으면 아쉬울 뻔했네! 완전 탐스런 그림책이었다.

오늘 책이 도착했다. 어린 자녀가 있는 가정에 선물해도 좋겠고, 학급문고로도 좋을 책이다. 교사들이 보면 여러가지 수업 아이디어가 떠오를 책이기도 하다. 아이와(또는 아이들과) 놀이하듯 웃으며 넘기기에 좋겠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왁자지껄하게 읽을 책!

작가님은 이 책과 시리즈로 함께 나온 책, 두 권이 첫 책인 것 같은데 앞으로 쭉 나올 것 같은 느낌이다. '모든 사물에 눈, 코, 입을 달고 싶어하는 캐릭터 그림책 작가입니다' 라는 소개가 특이하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하셨다고 하는데, 이러한 캐릭터 디자인 작업이 이어질 모양이다. 어린이들의 디자인 활동에도 영감을 줄 수 있겠다.

한글의 자랑거리가 많지만 대표적인 것들은 다 아는 얘기니 생략하고, 이렇게 디자인으로 접근하기에도 좋은 문자라고 생각한다. 4학년 국어교과서에 '자랑스러운 한글' 이라는 단원이 있었고 마지막 차시 활동이 '한글로 물건에 디자인하기'였다. 우리반은 티셔츠 디자인을 했었는데, 특색있는 작품도 꽤 있었지만 그냥 자모음 몇개 넣은 밋밋한 작품들도 있었다. 이 책이 있었더라면 영감이 아주 대폭발했을 거 같은데....ㅎㅎㅎ 아쉬워라.

저학년이 한글을 배울 때도 좋을 것 같다. 일단 글자에 재미와 친근감을 가지기에 좋다. 그리고 저학년 아이들의 창의성과 표현력은 때로 감탄스럽다. 우와 어쩜 이렇게 그렸냐, 나는 못그리겠다 싶을 때가 많다. 한글을 배워가며 이런 그림 활동을 쭉 연계하고 작품들을 신경써서 전시해주면 서로의 작품들을 통해서도 배우며 재미있어 할 것 같다. 자기 얘기를 하고 싶어 안달하는 모습도 떠오르고.

디자인에 촛점을 맞춘 책이지만 나름 서사는 있다. 오늘은 학교 '안' 가는 날이어서 신나게 놀아보려 한다. 숲으로 달려 풀, 나무, 벌레, 새도 만나고 땀 뻘뻘 흘리며 놀다 이런! 똥이 마려워! (이거 저학년에서 빠지면 안되는 포인트ㅋ) 이러저러하다 결국은 집에 돌아가 엄마를 만나고 평안한 밤을 맞는 이야기... 쉬운 서사라서 바로 파악 가능하지만 글자에 집중하며 읽다가 천천히 파악해도 상관없을 것 같다.

글자디자인. 참 매력적이네. 글자에서 느낌이 스멀스멀 모락모락 때론 콸콸 쏟아져. 작가님은 물론 전공자이고 이쪽에 주력하고 계시니까 탁월하겠지만, 때로 아이들의 창의성에서도 보물을 캘 때가 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바쁜 일상에서 선물처럼 주어지는 보너스. 올해 한번 기대해 볼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