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말 걸기 - 교사, 책으로 청소년과 상담하는 방법을 익히다
고정원 지음 / (주)학교도서관저널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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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치료를 표방한 책은 아니지만 진정한 독서치료가 뭔지 알게 해주는 책이다.

 

이 작가가 존경스러운 점은, 만나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소위 말하는 문제아들이라는 것이다. 내가 제발 우리 반이 아니길 바라는, 그 아이들을 만나러 그녀는 출근을 한다. 때로 등교를 거부하는 아이와 함께 출근하러 그 아이의 집을 찾아가기도 한다.

 

20년을 교사생활을 했어도 난 매일 아침 출근길에 긴장한다. 게다가 난 긴장감을 즐기는 타입도 아니다. 난 늘 평탄한 일상을 꿈꾼다.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긴장의 일상이 견디기 힘들다. 거기다 폭탄 같은 아이가 우리 반에 있다면, 이 아이가 언제 교실을 뒤엎을지 모른다면, 난 고통의 나날을 보낼 것이다. 솔직히 난 그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다.

 

그런데 작가는 그 폭탄들과 일상을 보낸다. 웃으며 먼저 다가간다. 그리고, 책을 권해 준다! 이게 가능하다는 생각을 해 볼 수가 없었다. “아 됐거든요!”(나한테 지금, 책을 읽으라는 거야?) “저 책 같은 거 안읽어요.”(어이없다, 누가 선생 아니랄까봐) 이런 반응만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아이들이 반응하는 책이 어딘가엔 존재했고, 그것이 아이들을 치유하거나, 최소한 입을(마음을) 열게는 했다는 사실, 이 책을 읽고 알게 되었다.

 

작가는 대학을 졸업하고 공부방 아이들과 함께 지내다 책으로 아이들과의 만남을 더 잘 이어가고 싶어서 독서지도학과 문헌정보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그래서 적재적소에 필요한 책을 잘 파악하고 있고 아이들과의 만남에 그 책들을 잘 활용한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두 번째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발끝에도 못 미치고 관련 전공을 한 적도 없긴 하지만 나도 나름대로 학교도서관을 훑으면서 사는 편인데 아픈 아이들, 주변을 힘들게 하는 아이들에게 책으로 접근하려는 시도를 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두 번째라면 첫 번째는 뭐라고 해야 할까? ‘다가가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소통 능력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을까? 상처받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다가가는 것, 아니 상처를 주어도 이해하고 의연한 것. 그리하여 그 아이가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어 주는 것.

 

아이들은 꼰대한테 마음을 열지 않는다. 반면 만만하기만 하고 권위가 없으면 인정사정 보지 않고 깔아뭉갠다. 마음은 여나? 그렇지도 않다. 누가 상처받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학생이냐? 교사냐? 뭐 둘 다일수도 있고, 어쨌든 치유는 되지 않는다.

저자와 같은 상담을 하려면 아이들에게 어른이어야 한다. 믿을 만한 어른. 문헌정보보다도 작가가 가진 능력은 어쩌면 그것일지도 모른다.

 

저자가 아이들과 함께 읽은 책들 중 내가 읽어 본 책들도 많았다. , 이 책을 가지고 이런 이야기들을 했네? 라는 생각을 하며 책의 내용을 다시 되살려 보는 일이 참 재미있었다. 저자는 굳이 명작이나 고전만을 고집하지 않고 청소년소설이나 그림책, 심지어 만화책을 가지고도 아이들과 만났다. 책을 진정으로싫어하는 아이는 없었다.

 

제목 이야기를 제일 나중에 하게 되었는데, 제목을 참 잘 지었다.

책으로 말 걸기.

내가 아이들 책을 읽는 것은 그냥 재미있어서이고 그것으로 그쳐도 누가 뭐랄 사람은 없지만

이왕 읽는 김에 이런 고민도 해 봐야겠다.

어떻게 말을 걸까? 이 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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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쉽게 통으로 읽는 한국사 1 - 선사 시대부터 통일 신라 알기 쉽게 통으로 읽는 한국사 1
이진경 기획.글, 임익종 그림, 여호규 감수, 오영선 기획 / 시공주니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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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5학년 정도의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한국사 시리즈 한 세트를 읽히고 싶은 건 부모나 교사의 공통된 마음이다. 10여년 전 <한국사편지>시리즈가 나온 이후 입말체로 쓴 어린이 대상의 한국사 시리즈는 매년 꾸준히 나와서 이제 고르기에도 벅찰 지경이 되었다. 다들 새로운 구성과 알찬 내용을 자랑한다. 사실 대부분 야심차게 기획하고 제작한 거라 장점들을 다 가지고 있다. 어떤 학부모가 "선생님, 우리 아이한테 어떤 한국사 시리즈를 읽힐까요? 좀 골라주세요." 하고 묻는다면 난 이런 무책임한 답변을 하고 싶다. "아무거나 애가 읽겠다는 걸로 읽히세요. 책들이 다 좋아요~ 안 읽어서 문제지요~"

 

5학년 담임을 많이 했던 나는 처음엔 한국사 편지를 읽히기 시작했었는데 그 책이 어린이 한국사 시리즈의 선구적 책임에도 불구하고 보통 수준의 독서력을 가진 아이들이 읽기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어른들이 아이들의 독서수준을 너무 높게 잡고 있다. 이 정도 수준의 책을 중학생들에게까지 넓힌다면 무난할 것이다) 그래서 만화로 된 <살아있는  어린이 한국사 교과서>도 읽혀봤는데 역시 만화라는 한계와 아쉬움이 어느 정도는 있었다. 서술이 쉬운 <행복한 한국사 교과서>는 시작했다가 10권이라는 권수에 눌려버렸다. 다음으로 <키워드 한국사>책이 꽤 맘에 들어 시작했다가 후속편이 안나오는 바람에 낭패를 봤다.(얼마 전에 7권이 모두 완간되었다. 6년이나 걸렸다. 진짜 목빠지는 줄 알았다)

 

이렇게 내가 시도해 본 책들만 해도 다들 내세울 만한 장점들을 가지고 있어서, 문제는 아이들이 손에 잡느냐 인 것 같다. 아이들의 취향과 독서수준이 다 달라서, 자신에게 맞는 것을 잘 고르는 게 중요할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이 책은 아주 손쉽게 잡을 책은 못된다. 하룻밤에 한국사 정복하기~ 이런 차원의 책이 절대 아니다. 일단 권수는 5권으로 시리즈물 치고 많은 건 아닌데 권당 분량이 300쪽 정도여서 분량에 압박을 많이 받는 녀석들은 고개를 저을 것 같다. 그러나 분량이라는 난관을 뛰어넘기로 결심한 친구들이라면 이 책이 그렇게 험난하지만은 않다. 일단 구성이 다채로우면서도 어지럽지 않고 깔끔하다. 사진과 그림자료들도 크고 풍성하다. 

 

분량이 많다는 건 그만큼 남이 안해주는 설명을 해준다는 뜻 아닐까? 역사에 조예가 깊지 않아 평가내리기는 어렵지만 각 분야에 꽤 이름이 높은 전문가들로 기획과 집필이 이루어져 내용의 신뢰성이 확보된 것 같다. 그동안 한국사 서술에서 오류로 지적되어 온 것들도 기존의 서술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새롭게 서술되어 있다. 한국사 편지의 저자 박은봉 님이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 책에서 지적한 고조선의 건국연대를 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삼국유사나 동국통감에 따르면 고조선은 기원전 2333년에 아사달을 수도로 세워졌다고 해. 하지만 실제로 고조선이 2333년에 세워진 것은 아니야. 그 무렵 한반도와 주변 지역은 신석기 시대였거든. 고조선이 실제 세워진 것은 청동기 문화가 발달한 기원전 10세기 이후라고 볼 수 있어. 그런데 왜 고조선이 2333년에 세워진 것으로 기록되었을까? 그건 삼국유사가 쓰인 고려나 동국통감이 쓰인 조선 초기 사람들의 역사의식과 관련이 있어. 고려 때 몽골과 맞서 항쟁하면서 사람들의 민족의식이 강해졌고, 우리 역사가 중국 역사처럼 길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역사의식이 생겼기 때문이야."

이 대목을 읽고 난 좀 생각이 복잡했다. 역사의식이란 게 무엇인가? 우리 역사만 훌륭하다고 미화하는 게 역사의식인가? 전에 읽었던 신동원 교수의 <한국 과학사 이야기>에서 잊을 수 없는 구절이 있다. "오늘날 잣대로 옛 것을 바라보면 문제가 생겨. 역사적 사실을 정확히 밝히고 그래서 비약이 없도록 조심해야 돼. 지나친 애정은 판단을 흐리게 하고 분별력이 없어지면 다른 사람들이 그 주장을 신뢰하지 않게 되지. 과장하게 되면 안 하니만 못한 결과를 낳아. 경계하고 경계할 일이야." 

우리 것을 과장하고 미화하는 것이 역사의식은 아닐 것이다. 무조건 오래되고 최고인 것만이 우리 역사의 자랑은 아니다. 분별력을 가지고 정확한 연구를 하는 것이 결국 우리 역사를 바르게 세우고 지키는 일일 것이다.

 

이와 같이 논란이 된 역사서술을 바로잡아 썼을 뿐 아니라 기존 어린이 역사서에서 간단히 다루고 넘어간 고대국가(부여, 옥저, 동예, 삼한)들에 대한 서술도 자세해서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많았다.

각 장별로 짧은 만화와 보충노트가 들어있는데, 만화는 쉬어가는 페이지 같아서 한숨 돌리며 재미있게 읽기 좋았고, 보충노트에는 깨알같은 정보가 들어있어 좋았다. 마지막 발해 편을 읽으면서 해결이 안되는 궁금증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보충노트에 나와 있었다. 발해가 우리나라 역사인 이유.

이와 같이 완급조절을 해가며 읽을 수 있고 꼭 필요한 정보가 본문 뿐 아니라 요소요소에 잘 들어가 있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라 하겠다.

 

책을 권해줄 때는 무조건 보다는 맞춤형으로 권해주는 게 옳은 법, 나는 이 책을 독서력이 높고 읽기에 끈기가 있는 아이들에게 권해주고 싶다. 다른 역사책을 한 번 읽어 본 아이들이라면 더 좋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 대한 내 마음 속의 최종 평가는 아직 나오지 않은 5권(현대사 부분)을 읽고나서 내리겠다. 아마도 흡족할 것이라 예상은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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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얼굴을 찾아서 햇살어린이 22
루이스 새커 지음, 김영선 옮김 / 현북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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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일어나는 아이들 사이의 다양한 관계와 양상을 루이스 새커만큼 정확하게 꿰뚫고 묘사하는 작가를 보지 못한 것 같다. 

빨간머리 마빈 시리즈 중의 한 편인 <왜 나한테만 그래?>를 3학년 아이들과 읽었는데, 왕따가 일어나는 상황과 동조자 또는 방관자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주인공은 건강하게 극복을 했고, 그 명쾌한 해결이 현실에선 쉽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 해도 저학년 아이들과 이 문제를 생각해 보기에는 아주 좋은 이야기였다.

이 책은 350쪽이나 되는 분량이 말해주듯 저학년이 보기엔 무리가 있다. 5,6학년 또는 중학생이 보면 좋을 것 같다.

아이들에 따라 독서수준이 천차만별인데 이 정도의 책을 읽다보면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아이들에게 읽히려면 걱정스럽다. 5,6학년 중에 이 수준을 뛰어넘는 아이도 없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은 어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초라한 독서수준을 갖고 있다. 그건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다. 어른들의 기대가 너무 높은게 문제지. 


제목으로 잡은 '잃어버린 얼굴'의 의미와 상징성에 감탄한다. 나는 '내 얼굴'을 가지고 살고 있는 걸까? 

베이필드 할머니를 마녀로 생각하는 동네 아이들은 그녀가 남편의 얼굴을 벗겨내서 거실 벽에 걸어놨으며 그 남편은 얼굴 없이 숨어 살다가 죽었다는 괴담을 주고 받는다.

할머니의 저주와 관련된 긴장감이 높아질 때, 독자들은 살짝, '뭐야... 그럼 데이비드도 얼굴이 어떻게 되는 건가?'라고 걱정할 수도 있는데

끝까지 읽어보면 명확해진다. 작가가 사용한 '얼굴'의 의미가.

사실은 끝까지 가지 않아도 중간쯤에서 아이들의 대화 중에 그 의미를 풀어 놓았다. 데이비드와 래리의 대화다.

"넌 방금 네 얼굴을 잃어버렸어."

"무슨 소리야?"

"모가 늘 자신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잖아. 그거하고 같은 거야. 자신을 지키지 못하면, 일본 사람들은 얼굴을 잃었다고 말해. 방금 걔들이 우리 쪽으로 걸어 왔을 때, 우리도 걔들만큼이나 이 길을 걸을 권리가 있었어. 근데 넌 비켜셨잖아. 그러니까 얼굴을 잃은 거지."

얼굴을 잃어버렸다는 건, 나 자신을 지키지 못했다는 거다. 결국 나의 정체성을 포기했다는 거고.


역자는 이 책이 '또래압력'이라는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주인공 데이비드는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찌질이처럼 보이기 싫어서" 로저 일당의 악행에 가담을 했다. 그 아이들에게 환영받지도 못하면서 늘 그 주변을 맴돈다.

어른들의 눈보다 또래의 눈이 더 무서운 사춘기 무렵의 아이들은 이렇게 어처구니 없어 보이는 이유로 막나간다. 또래의 눈이 더 무섭기 때문에 어른을 곤경에 빠뜨리는 것으로 주변의 환호를 받을 수 있다면 서슴지 않고 그 일을 한다. 그들이 타인에게 요구하는 '인권 존중'은 받기만 하면 되는 것일 뿐 내가 남한테 할 필요는 없다는 듯이 행동을 한다. 주변인들은 화가 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아이를 비난하게 되고 아이는 거기에 상처받아 더 엇나간다. 악순환이다.


요즘은 학교폭력을 다룰 때 가해자보다도 방관자에 더 집중해서 접근하자는 이야기들을 한다. 또래 아이들이 방관자에서 벗어나 따가운 눈"총"을 쏘아주면 가해자들의 거침없는 악행에 제동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 힘은 어른들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이 또한 '또래압력'에 해당될 것이다.

그러니 또래압력은 부정적 압력도 있지만 긍정적 압력도 있다. 로저 일당을 쫒아다니던 데이비드가 부정적 또래압력에 놓여 있었다면 각자의 개성에 충실한 모와 래리와 삼총사가 되었을 때, 그들의 조언은 긍적적 또래압력으로 작용했다. 마침내 데이비드는 "너의 도플갱어가 네 영혼에 역류할 거야!" 라는 저주를 풀러 할머니를 찾아간다.


'3인의 법칙'이라는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교실을 뒤덮은 부정적인 또래압력에 대항하려면, 일단 3인이 있으면 가능하다는 거다. 3인의 힘은 지하철 승강장에 있는 모든 사람을 움직여 열차를 밀고 사람을 구해내는 일을 해냈다. 피해자를 고립시키는 것과 몇 명이라도 옆에서 지원해 주는 것과는 극명한 차이가 난다. 홀로 두면 구해 낼 수 없는 깊은 골짜기로 빠지지만 조력자의 힘은 상황을 반전시킨다. 문제는 이 법칙에 확신을 가지고 용기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데이비드가 저주를 풀러 갔을 때, 사실은 저주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을 때, 그 대목이 내겐 가장 인상깊었다. 그동안 데이비드를 괴롭혔던 건 자신의 섬세한 양심과 죄책감이었던 것이다. 양심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스스로에게 벌을 내린다. "우리가 사는 이 냉정한 세계에서는 그게 저주일 수도 있지"라고 할머니는 말씀하신다. 하지만 독자들은 안다. 그건 극히 일부분만 그렇다는 걸. 혹은 전혀 사실이 아닐지도.


나와 이땅의 아이들이 내 얼굴을 잘 챙겨서 살 수 있길 바란다. 혹 남의 얼굴을 뒤집어 쓰고 있는 아이가 보이면 "얘, 그거 니 얼굴 아니야." 라고 말해줄 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내게 있으면 좋겠다. 사실 그 반응이 난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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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처럼 문이 열리고 - 뉴베리상 수상 작가 케이트 디카밀로의 행복한 크리스마스 선물 날마다 그림책 (물고기 그림책) 22
케이트 디카밀로 글, 배그램 이바툴린 그림, 서석영 옮김 / 책속물고기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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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평이한 내용이다. 케이트 디카밀로와 같은 대가가 아니라도 쓸 수 있을 듯한 그냥 무난하고 평범해 보이는 이야기.

누군가는 "별거 아니네. 그냥 이웃을 돕자는 얘기야." 해버릴 수 있을 듯한 이야기.


근데 뭐지? 마법처럼 문이 열리고, 소녀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막혔던 대사가 큰 소리로 터졌을 때 울컥해지는 이 감정은?

소녀가 터뜨린 대사에서 벅차오르는 이 느낌은?


교회를 다닌 지 오래되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성탄절이 예전처럼 설레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들 지도하는 일과 식사준비하는 일 등이 부담되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는 숙제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니 어린 시절, 그리고 젊었던 시절 성탄절을 준비하며 느꼈던 설렘이 그대로 다시 느껴진다. (미국과 우리나라의 성탄절 전야 풍경이 비슷하다.)


성탄절 공연에서 프란시스는 천사 역할을 하기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일주일 전 창밖으로 내다보는 풍경에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거리의 악사 할아버지와 원숭이다.

원숭이는 양철컵을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동전을 얻고, 악사는 음악을 들려준다. 프란시스는 그 음악이 꿈속에서처럼 슬프고 아득하다고 느낀다.

프란시스는 궁금하다. '할아버지와 원숭이는 밤이 되면 어디로 가는 걸까?'

엄마에게 묻지만 엄마는 관심이 없다. 프란시스의 무대옷에만 신경을 쓴다.

밤 열 두시에 프란시스는 거실로 나와 손전등을 들고 거리를 내다본다. 그 시간에도 악사와 원숭이는 거리에 있었다!

다음 날 아침에 그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하면 안되냐고 엄마에게 물었다가 핀잔만 듣는다.


드디어 프란시스의 연극이 있는 저녁이다. 엄마와 교회로 가는 길에, 프란시스는 악사에게 달려가 원숭이의 컵에 동전을 넣고 연극을 보러 오라고 초대한다.

"거리의 악사는 프란시스에게 웃어 주었지요. 그런데 두 눈이 슬퍼 보였어요."

프란시스는 그 눈을 가슴에 담았던 것 같다....... 연극은 시작되었으나 집중하기가 어렵다.


여기서 그림작가에 대한 평 하나.... 연극을 준비하고 있는 아이들 - 목동 역할을 하는 아이들과 천사 역할을 하는 아이들 모두... (아 참, 얼굴은 안보이지만 낙타 역할을 하는 아이들도) 모두들 어찌나 천사같이 예쁜지.... 설렘으로 공연을 준비하던 그 옛날이 떠올라 가슴이 뭉클하다. 긴장한 프란시스의 표정, 환하게 외칠 때의 표정, 마지막 장에 차와 간식을 나누는 모든 이들의 흡족한 표정 등....  채도가 낮은 유화 느낌의 그림에 온갖 표정과 느낌이 살아있다. 


프란시스의 차례가 되었다. 가까스로 입을 열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는다. 모두가 초조해하며 숨죽이고 기다리는 그 순간,

마법처럼 문이 열리고,  원숭이를 안은 할아버지가 들어선다. 안심한 프란시스의 입에서 드디어 대사가 나온다. 천사의 메시지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커다란 기쁨의 소식을 가져왔노라!"

한 마디 덧붙이기까지.

"커다란 기쁨의 소식을."


30년이 넘는 교회 생활 동안 아마 이 구절을 20번은 넘게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그림책에 박혀 있는 이 구절에서 비로소 내 마음이 격동할 줄이야.....

한국 교회는 오늘도 기쁨의 소식을 외치고 있으나 그 울림은 강단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만 겨우 퍼져나갈 뿐이다. 예배당 문턱을 절대 넘지 못한다.

그래서 쿼바디스라는 영화는 수백억을 지어 만든(수천억인가? 잘 모른다) 어떤 큰 교회를 비판하며 영화를 시작한다.(이 영화를 꼭 볼 생각이었는데 보진 못했다. 주워 들은 내용이다.)

복음이 더이상 복음이 아니고 시궁창에 처박혀 비웃음과 질타를 받고 있는 요즘, 작은 천사 아이의 입에서 나온 한 구절에서 난 '복음'을 들었다.

예수님이 오셨다. 그가 오신 이유는 '너희들끼리 잘 먹고 잘 살아라'도 아니고 '너희들끼리 사소한 일이 뭔 대단한 일인양 내 이름을 걸고 핏대 올려 싸워라'는 더더욱 아닐 터.

할아버지가 들어오신 것, 그리고 성탄의 기쁨을 모두가 함께 나누는 것. 이 자리에 예수님이 함께 계신 것. 그것이 복음일 것이다.   

 

펼친 화면에 그려진 마지막 장면엔 모두가 평화스럽게 웃고 있다. 할아버지도 엄마도 아직도 연극 분장을 다 벗지 못한 아이들도, 서빙을 하느라 분주한 집사님(?)들도. 원숭이까지도.

어떤 이유에서든 할어버지가 소녀의 초대를 거절했다면, 또는 현관 앞에서 차단 당했다면 이 장면에 웃음은 있되 평화는 빠졌을 것이다. 사람들은 뭐가 빠졌는지 전혀 인식하지 못했을 테지만.

이기적인 복음을 만들어 그것으로 자기 앞가림을 하는 자들 때문에 예수님은 오늘도 수난 당하시고 이 소박한 기쁨의 자리에도 예수님의 자리가 없는 것 같다. 정말 슬픈 일이다.


그리고 이 모든 말은 나를 향하여 하는 말이다. 얼마 전 햑교에서 벌점을 받은 아들에게 내가 이런 말을 했었다.

"너는 기독교를 개독교로 만든 자들과 니가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마라. 니가 속한 집단의 사소한 규율도 지키지 못하면서 교회 다닌다고 말하기 창피하지도 않냐?" 

사실 이건 나에게 돌려야 할 말이다. 그래서 어디 가서 교회다닌다는 말을 잘 못한다. 그냥 조용히 찌그러져 있는게 도와주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면서. 

편안함에, 게으름에, 욕심에, 집착에 그 무엇이든 어딘가에 매몰되어 있으면 예수님이 주신 복음을 받아들이기 무척 어렵다. 나는 저 중 여러가지에 해당한다. 언제쯤 나는 그것을 깰 수 있을까. 언제쯤 이 소녀의 마음으로 살 수 있을까. 이 그림책은 심각한 도전을 나에게 던진다. 주제에 욕심을 좀 내자면 나 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에 던지는 도전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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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스 버딕과 열네 가지 미스터리 - 14명의 경이로운 작가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레모니 스니켓 외 지음, 크리스 반 알스버그 그림, 정회성 옮김 / 웅진주니어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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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야기 만들기 수업을 좋아한다. 국어 수업에서 이 활동이 나오면 난 최대한 시수를 늘려 충분하게 수업을 한다. 그건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수업이라는 명분보다도 내가 좋아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쓰기를 즐기지 않는 아이들도 이 수업에는 흥미롭게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아이들도 좋아하고 나도 좋아하니 수업도 잘 되고, 일석 삼조쯤 되었던 셈이다.


내가 처음 시도했던 방법은 문장을 하나 던져 주고 모둠의 아이들이 릴레이로 이야기를 완성하는 방법이었다. 예를 들면 "숲 속에 다람쥐와 곰이 살았어요." 라든가 "어느 날 우리 반에 새 친구가 전학을 왔어요." "아침에 눈을 뜨니 사방이 조용했어요." 등등.... 중간에 삼천포로 빠지게 만들거나, 갑자기 김을 빼놓거나, 예전에 말 많았던 어떤 드라마처럼 모든 주인공을 죽게 만들거나 등등의 부작용이 있기도 했지만 대체로 아이들은 나를 웃게 만들고 때로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게 만드는 이야기들을 만들어 냈다.


두번째 방법은 스토리큐브라는 교구를 이용해 이야기를 만드는 방법이었다. 이건 특히 열광하는 몇몇 아이들이 있었다. 늘 뒷목 잡게 만들던 아이가 갑자기 반듯해져서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했더니 하교시간에 알림장을 내민다. 학교생활 잘했다고 써달란다. 그러면 엄마가 스토리큐브를 사준다고 했다고.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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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각 면에 다양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 9개의 주사위가 한 세트다. 주사위를 던져 나오는 그림으로 이야기를 이어 나가는 게임이다. 여기에서 난 그림을 단서로 이야기를 만드는 수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마지막 세 번재 방법은 그림카드를 활용한 수업이었다. 그림이 환상적이고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면 더욱 좋다. 그런 그림카드가 어디 있을까 찾다가 보드게임에서 찾아냈다. <딕싯>이라는 게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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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딕싯이라는 보드게임인데 여기에 84개의 그림카드가 들어 있다. 그림은 환상적이면서도 무한히 열려있고 다의적이다. 이걸 알게 되어 무척 기뻤다. 당장 구입해서 집에서는 보드게임을, 학교에 가져가서는 국어수업을 했다. 맘에 드는 카드를 한 장씩 고르고 그 그림을 문장으로 표현하게 한다. 그리고 그 문장을 시작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만든다. 2학년 아이들과 이 수업을 했는데 너무나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많이 나와서 그동안 이놈들 땜에 속썩었던 걸 한 방에 용서해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물론 등장인물 다 죽이기 등의 엽기적 결말을 좀 차단한 고심의 결과이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니 아이들과 함께 했던 그 수업들이 떠오른다. 책이 만들어진 과정이 비슷한 맥락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해리스 버딕이라는 작가는 14점의 그림을 가지고 편집자를 찾아갔고, 그림에 딸린 이야기의 원고를 다음날 가지고 오기로 하고는 30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각 그림에는 수수께끼와도 같은 한 문장이 딸려 있을 뿐이다. 해리스 버딕이 가져오려고 했던 이야기는 대체 어떤 이야기였을까? 궁금증을 참을 수 없게 만든다.(이 궁금증은 바로 알스버그가 만들어 놓은 장치가 아니겠는가? 책장을 몇 장 넘기면서도 이게 대체 뭔 소린가 눈치 채지 못하는 곰탱이가 바로 나이니 확신할 수는 없지만^^) 실제로 그 그림책은 미국 초중생들의 글쓰기 수업에 널리 활용된다고 한다. 교사들이 생각하는 아이디어는 국경을 넘어서도 비슷하구나 생각했다. 그림카드 수업까지 해봤으니 나도 그림책을 활용한 수업을 한번 고민해 봐야겠다.


그 14점의 그림들을 단서로 하여 쓰여진 이 책은 작가 구성부터 놀랍다. 사실 난 외국 소설의 작가는 잘 몰라서 14명을 다 아는 건 아닌데... 스티븐 킹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 『쇼생크 탈출의 원작자이고, 웨이싸이드 아이들을 쓴 루이스 새커는 올해 우리반 아이들과 재미있게 읽은 『빨간 머리 마빈 시리즈』의 작가고, 엇, 린다 수 박은 『사금파리 한 조각의 그 린다 수 박? 거기에 케이트 디카밀로까지! 


그 뿐 아니라 작품을 읽으며 몰랐던 작가에 대한 궁금증까지 생겨났다. 표지그림으로 쓰인 <또 다른 장소, 또 다른 그림>을 이야기로 쓴 작가 코리 닥터로우는 SF 전문 작가라고 한다. 그래서인가. 그 상상력이란.... 비상한 사람의 상상력은 나같은 범인이 따라가기에 버거울 정도다. 이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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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이어졌는지 모를 철로 위로 네 명의 아이들이 탄 수동차가 보인다. 수동차에는 돛이 달려 있고 한 아이는 항해복을 입고 있다.

아이는 평소에 이런 의문을 갖고 있다. "공간에서는 거의 모든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데, 어째서 시간은 한 방향과 한 가지 속도로만 움직이는 거지? 더 빨리, 더 느리게 갈 수는 없나? 그리고 뒤로 갈 수는 없어?"

"만약 시간이 모든 방향, 모든 속도로 움직일 수 있다면 은하계 저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공간이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것은 인간이 아직 증명하지 못한 미지의 문제다. 작가는 상상력을 통해 가능한 장면을 우리 앞에 형상화 해놓는다. 그 모든 것이 주어진 그림과 문장, 제목을 반영하고 있다. 입을 헤벌리고 읽었다. 와우~ 놀랍다.


린다 수 박의 <하프>도 맘에 들었다. 그림이 흑백인데도 숲의 느낌이 얼마나 싱그럽고 고요하며 환상적인지. 한 쪽의 바위 위에 놓여 있는 하프. 저 건너 멀찌감치서 그것을 바라보는 한 소년. 제시된 문장은 이것이다. "진짜였어. 소년은 생각했다. 진짜 있었어."

'진짜' 뭐가 있었을까? 그건 숲의 음악이었다. 그 음악은 마법과 주문, 마법에 걸린 자매의 우애와 노력으로 만들어졌다. 그게 소년을 울게 했고 위로했다. 

작가는 현대 사람들이 마법을 믿지 않기 때문에 마법사들이 암암리에 조용히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적절한 시기, 우연, 운좋은 발견 등을 통해서....

나도 가끔 그렇게 생각하며 살고 싶다. 모든 기대가 사라지고 '마땅히 해야 할 일'만 내 앞에 놓여져 있을 때 특히 그렇다. 그럴 때 난 가 본 적도 없는 그 숲을 그린다.


<오직 사막뿐>을 쓴 M.T.앤더슨도 잘 모르는 작가인데 이 이야기를 읽다가 영화트루먼 쇼의 결말 부분을 볼 때와 비슷한 충격을 받았다안에서 빛이 흘러나오는 호박의 그림이 가장 인상적인데 이야기 또한 가장 강력하게 인상적이다.

 

케이트 디카밀로는 여기서도 특유의 아련한 슬픔을 자아낸다그의 작품 <3층의 침실>은 다른 작품들에 비해 그렇게 강한 이미지를 주진 않았지만 아픈 소녀의 손을 잡아주고 소녀의 동생을 안전한 곳에 데려다 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든다.

 

마지막 편인 <메이플 거리의 집>이 스티븐 킹의 작품이었는데 왜 그의 작품이 영화로 많이 제작되는지 알 것 같았다짧은 작품 속에서도 시한폭탄의 초침이 재깍거리는 듯한 소리가 독자의 심장을 울린다.

 

어떻게 보면독자의 몫으로 남겨두었으면 좋았을 상상력의 여지를 작가들이 채워버렸다는 아쉬움을 가질 수도 있을 것 같다하지만 상상력의 여지는 무한하니까... 상상력의 씨앗은 또 어디서든 뿌려질 것이다.


내가 상상력을 추구하는 건, 아니 인간이 상상력에 큰 가치를 두는 것은 그것이 세상을 살맛나게 하기 때문이 아닐까? 상상력이 과학문명을 발전시킨 면도 있고 간혹은 악의적인 상상력이란 것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상상력은 이 세상에 의미를 불어넣고 수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며 아름다움으로 세상을 보게 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들 안의 상상력을 발견할 때 기특하고 기쁘다.

그런데, 내 안에는 얼마나 되는 상상력이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쪼그라진 형체만 발견하게 될까 두려워 펼쳐 보지 않은 지가 너무 오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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