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에너지, 원자력 - 에너지 너랑 나랑 더불어학교 13
김성호 지음, 전진경 그림 / 길벗스쿨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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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에너지, 원자력/김성호/길벗스쿨>

탈핵을 말하면 순진한 사람이거나 무식한 진보인 걸로 취급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내가 순진한 건 잘 모르겠고 그리 진보도 아니지만 무식한 건 맞기 때문에 탈핵에 관심은 있었지만 남한테 말하기는 좀 꺼려졌었다.

이 책 한권을(더구나 어린이용 책을) 읽었다고 어찌 무식을 벗어났으랴만 난 일단 탈핵을 지향해야 한다는 생각만은 분명해졌다. 이 책은 고학년 정도의 아이들이 과히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도록 참 잘 쓴 책이다. 그리고 쉬운 단계에서부터 이해하고 싶은 나같은 어른들에게도 딱 좋은 책이다.

원자력발전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주로 이런 논점에서 반대측을 비웃는다. 올여름 더웠지? 너 에어컨 틀어놓고 살았지? 그거 다 원전에서 나온거야~ 싫으면 더워도 참든가~ 못하겠으면 입 다물어~

사실 이건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나라는 전체 에너지 중 원자력 비율이 상당히 높은 나라다. 30%라고 책에도 나와 있다. 그런데 이건 유동적인 듯하다. 올해(2016 4월) 통계를 보니 21%로 나오는데 몇 기가 점검 중이어서 그렇다고 한다. 그러니 실제로는 30%보다 낮아도 큰 문제는 없는 것 아닌가 싶다. 그정도 비율이면 포기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100%라도 인류의 생존이 달린 문제면 대책을 찾는게 맞지 않는가? 전기 없이 살 수 있어? 이미 틀렸지? 하는 태도는 옳지 않다고 본다.

석탄과 석유의 매장량이 이제 끝을 보인다는 얘기는 교과서에도 나온다. 그에 비해 우라늄의 매장량에 대해서는 인식이 없는 것 같다. 며칠 전 우리반은 찬반토론을 했는데 아이들은 과학기술 발전이 인류에 미친 영향을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으로 나누어 토론을 했다. 그때 반대측 토론자가 원자력발전의 피해와 위험성에 대해 지적을 했다. 그러자 찬성측에서 "모든 에너지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라늄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라늄을 포기하면 뭘로 전기를 만들 겁니까?"라며 반론을 펴는 것 아닌가? 아, 이런 오개념을 갖고 있구나.... 이 책에 보면 우라늄의 매장량도 최대한 잡아서 80년이라고 나온다. 매우 유한한 에너지원인 것이다. 그에 비해 감수해야 될 위험성은 국가존망을 거론할 지경이며 특히 방사성 폐기물 처분시설(고준위 방폐장) 문제는 아직 어느 나라도 안전하게 성공해보지 못한, 생각만 해도 골치거리인 거대숙제인 것이다.

이 책은 탈핵의 입장에 치우쳐 쓴 책은 아니다. 저자의 마음 속에는 지향이 있다고 짐작되지만, 표면적으로는 '두얼굴'이라는 제목에 맞게 객관적인 사실 중심으로 썼다고 본다. 이 책에는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는 내용도 나온다. 비용 대비 효율성도 아직은 많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효율 면에서 원자력 에너지도 숨겨진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수명을 다한 원전의 폐기와 뒷처리까지 따져보면 그렇다. 방사능 물질들이 인체에 주는 가공할 파괴력과 그 영향력의 엄청난 기간을 생각하면 30년을 운영하자고 원전을 계속 지을 일은 아니라는 판단이 선다. 효과는 잠깐이요 부작용은 거의 무한한 약 같은 존재가 아닐지.

이번 경주 지역 지진으로 원전의 위험성에 대한 공감대가 많이 확산되었다. 이번 기회에 노후 원전의 가동중단과 추가 건설 계획의 백지화만큼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서 나머지 운영과 처리에 대한 문제도 미루지 말고 고민해야 될 것이다. 그리고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꾸준한 투자로 비율을 높여가는데 힘써야 한다. 이것은 탈핵을 하든 하지 않든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어차피 원자력의 연료도 몇십년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국민들을 향해 모든 정보가 투명하게 열려있어야 한다.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국민의 삶의 터전을 유린하는 것은 4대강으로 족하며,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속는 것도 지겹고 안 속으려고 필사적으로 의심하는 것도 지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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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09 15: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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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하우스 문지아이들 143
유은실 지음, 서영아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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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나온 유은실 작가의 최신작이다. 유은실 작가는 참 능청스럽게 할 말을 한다. 곰 가족이 나오길래 곰의 생태와 관련있는 이야기인가 했더니, 인간 삶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곰은 그냥 작가의 장치였다. 곰의 탈을 쓴 인간의 이야기라고 해야할까.

주인공 곰 보람은 TV보는게 낙인 증조할머니, 빌딩청소부 일을 하며 가족을 먹여살리는 할머니, 피부병(사람으로 치면 아토피)으로 고생하는 남동생과 다 허물어져가는 좁은 집에서 산다. 아버지는 빚만 남기고 사라졌고 엄마도 떠났다.

애쓰며 살아가는 할머니와 보람에 비해 속없어보이는 증조할머니는 하는 일 없이 TV에 목을 매며 산다. 증조할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슈퍼곰이 간다>로, 연예인이 그의 자녀를 양육하는 모습이 나오는 프로그램이다.(우리는 여기서 딱 어떤 프로그램을 연상한다) 여기에 나오는 좋은 집, 맛있는 음식, 고급스러운 여가활동 등은 보람에게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확인하게 할 뿐이지만, 증조할머니는 그 아이들의 재롱에 좋다고 웃으며 더욱 TV에 빠져든다.

이 책의 중요한 일은 꼭 TV와 연결되어 일어난다. 옆집 사는 골짜기 아줌마가 <드림 하우스>라는 프로에 이들의 사연을 보내준 것이다. 같은 이름의 프로였던가? 이름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생각난다. 도저히 못살 것 같은 집에 제작진이 찾아가 사연을 소개하고 새 집을 만들어주는 프로그램. MC는 각 방의 문을 열면서 호들갑을 떨고 그 방의 주인공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다가 울거나 웃거나 하는.... 자존심 강한 보람은 자신들의 모습을 만천하에 보여주는게 내키지 않지만 살아갈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없기에 이 촬영에 참여하기로 한다.

독자인 나조차 '선정되지 않으면 어쩌지?' 걱정될 정도로 이들의 주거는 열악했다. 다행히 출연자로 선정이 되고 방송작가와 기타 제작진이 급한 일정으로 방송을 진행하는 동안, 우리는 방송에 나오는 모습이 100% 진실이기는 힘들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극적인 효과를 위해 연기도 필요하고 시청자의 눈물샘을 자극하기 위해 그들은 더욱 불쌍해 보여야 한다. "품위있는 곰이 되고 싶다"는 보람의 장래희망은 PD의 콧방귀에 간단하게 무시당한다. 이 과정에서 PD와 싸우던 작가 진주씨는 결국 시청률이 제대로 안나와 일을 그만둔다. 시청률이 안나오자 기대했던 후원도 들어오지 않았다. 진주씨는 이제 주거복지를 위한 시민단체를 만들고 싶다고 한다. 그얘기를 하며 보람에게 들어온 유일한 후원물 하나를 전해준다. 그건 보람이 품위있는 곰이 되기 위해 읽고 싶다했던 포우의 <발톱>이라는 책이었다. 무려 1500쪽이 넘는. 보람은 새 방, 하지만 난방비가 없어 추운 방에서 이불을 둘러쓰고 책을 읽기 시작한다. 그게 끝이다.

극적이지 않아 PD에게 무시당했던 "품위있고 싶다"는 보람의 소원은 사실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극한의 상황에서 품위있을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우리가 품위없다고 무시하는 사람들 중에 품위를 지킬래야 지킬 수 없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지 않는가. 적어도 모두가 품위를 지키며 살 수 있는 세상, <드림 하우스>같은 방송을 통해 한 두 가정에만 일시적으로 퍼주는 도움이 아니라, 열심히 일하는 이상 적어도 품위는 지키는 환경을 가질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문제의식에서 작가는 이 작품을 쓴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곰돌이 곰순이 이야기인 줄 알고 책을 잡았던 아이들은 이 무거운 주제의식에 좀 당황할 것도 같지만.... 내 오랜 경험에서 보면 아이들도 이해의 층위는 각자 다르지만 나름대로 다 받아들인다.^^ 난 유은실 작가의 말빨이 아직 생생히 살아있는 걸 느끼니 기분이 좋고, 또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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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그대를 자유롭게 하리라 - 행복한 집시 쨍쨍의 여행 이야기쇼
쨍쨍 글.사진 / 북로그컴퍼니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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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이 책을 볼 수밖에 없었다. 궁금해서. 꽤 오래 전부터 쨍쨍의 여행 이야기를 단편적으로 접했다. 그리고 쨍쨍과 나는 몇번 만나본 적도 있다. 페이스북 친구이기도 하다. 스리랑카 사진이 올라오는가 하면 며칠 후 네팔에서 인사가 오고, 그런가 싶으면 벌써 제주 쨍쨍랜드에서 이야기를 올리는! 나와는 너무나 다른 쨍쨍. 할 이야기가 넘칠 텐데 왜 책을 쓰지 않을까 전부터 궁금했는데 드디어 책이 나왔다.

쨍쨍을 알게 된건 온라인 교사 커뮤니티에서였다. 방학이면 스케일 대단한 여행 이야기로 게시판을 즐겁게 해주던 쨍쨍. 그녀는 연극놀이의 전도사이기도 했다. 연극놀이 연수를 통해, 커뮤니티의 오프모임을 통해 그녀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녀는 내가 소화하기엔 너무 개성있는(ㅎㅎ) 사람이었다. 지금은 퇴직하셨지만 그때는 현직교사셨는데 교사라기엔 놀라운 미니스커트에 화려한 색의 옷차림, 거침없는 말투와 자유연애주의, 흡연(지금은 금연하신지 꽤 됐다고 한다) 이런 것들이 날 좀 흠칫하게 했었다.(처음 고백하는 말이다 ㅎㅎ)

거의 10년 가까이 흐른 뒤에 에듀니티에서 열린 여행이야기 쇼에서 다시 쨍쨍을 만났다. 예전보다 이야기가 훨씬 더 편안하고 부드럽게 들렸다. 그녀도 나도 나이를 더 먹어서일까. 그녀보다는 내가 나이를 먹어서일거다. 나와 다른 이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고, 부러워는 하되 너무 심하게는 아닌... 여유가 조금은 생긴 때문인지도 모른다.

여행이야기 쇼를 들어서인지 책에 담긴 이야기들이 더욱 친근했다. 난 쨍쨍의 여행 스타일이 맘에 든다. 볼거리에 치중하지 않고 사람들의 일상에 가까이 다가가는 여행. 세계문화유산 이런 타이틀을 흥! 하고 무시할 수 있는 쨍쨍의 주관이 좋다. 보통은 볼거리 중심으로 여행계획을 짜고, 아는만큼 보인다며 열심히 공부를 하고, 찾아가서는 과연 그렇구나 확인하고, 인증샷 찍고 돌아오지 않는가. 근데 쨍쨍의 여행사진에는 이런게 거의 없다. 대신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웃음'이 담겨있다. 여행 가이드북으로는 활용을 권치 않겠다.^^ 쨍쨍 자체가 무작정! 발길 닿는대로! 떠나는 스타일이니까 말이다.

그렇게 떠난 쨍쨍의 여행에는 '자유'가 있다. 서둘 필요도 조급해할 필요도 없다. 사람을 만나고 마음을 연다. 내가 돕기도 하고 그들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감동적인 친구들이 된다. 쨍쨍은 가끔 외롭다고 책에도 썼다. 하지만 그녀는 가장 외롭지 않은 사람이다. 온 세상이 다 친구이니. 그녀의 열린 마음만큼 그녀는 외롭지 않은 것이다.

해외여행을 하게 된다면 그녀가 랭킹 1위로 꼽는 아일랜드에 꼭 가보고 싶다. 음... 그리고 터키랑 오스트리아도? 근데 난 집 떠나 이틀도 자기 싫어하는 사람이라서 적응기간이 좀 필요하다. 동료 두명과 겨울방학하면 섬진강 쪽으로 여행을 가자고 말해 두었다. 그리고 나면 제주도? 그 다음 쯤엔 모르지. 쨍쨍이 밟은 곳을 한 곳쯤 따라서 밟아볼 수 있을지도....

쨍쨍은 교사로서도 매우 훌륭한 사람이었다. 그녀가 의도했는지 안했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수업은 그 옛날에도 첨단을 달렸다. 하지만 모르긴 몰라도 꽉막힌 사람들에게 그녀는 별종 취급을 받았을 것 같다. 여자로서도, 교사로서도. 난 그녀같은 교사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게 나였으면 좋겠다만 타고난게 없으니 그건 안되고...ㅎㅎㅎ 자유로움, 마음열기. 거부당하거나 상처받을 위험성에 개의치 않을 이 미덕을 갖춘 사람들이 주변에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나도 조금은 더 경계를 풀고 사람의 아름다움에 더 기대를 가지며 살아봐야겠다. 쨍쨍의 이 책이 나에게 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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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주인공은 모두 길을 떠날까? - 옛이야기 속 집 떠난 소년들이 말하는 나 자신으로 살기 아우름 3
신동흔 지음 / 샘터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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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를 즐겨보던 내가 옛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김환희 님의 '옛이야기와 어린이책'을 읽고부터였다. 이 책에는 여러가지 흥미로운 내용이 있는데 나에게 가장 강렬히 다가온 것은 옛이야기의 심리적 가치에 관한 내용이다. 구전된 이야기들의 각편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화소들의 심층에는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옛사람들의 지혜가 들어있으며 놀라운 심리적 가치로 아이들의 내면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옛이야기를 재화할 때는 각각의 상징성들을 훼손하지 않도록 무척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이어서 읽은 책은 아주 재미있었다. <신데렐라 천년의 여행>이라는 책이었는데 세계 곳곳 전혀 무관하게 떨어진 지역에서도 화소가 유사한 이야기들이 전승되어 왔다는 것을 신데렐라를 예로 들어 알려주었다. 또한 그 화소들이 잔인하거나 어린 아이들에게 교육적이지 못한 것으로 보일지라도 아이들의 통과의례에 꼭 필요한 장치이니 그대로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들이 내겐 매우 인상적이었다.

세번째로 읽은 책이 이 책의 저자인 신동흔 교수의 <삶을 일깨우는 옛이야기의 힘>이었다. 위의 책들과 일맥상통하는 주장으로, 특히 우리 옛이야기에서 주인공들의 여정이 우리 심리에 주는 힘이 무척 크다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었다.

얼마전 인터넷서점을 어슬렁거리다 이분의 책이 또 나온 것을 알게 되었다. 나온지 2년이 되어가는데 이제야 발견한 것이다. 이분의 책은 구수한 육성으로 듣는 듯하다. 친근하고 쉽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왜 주인공들은 모두 길을 떠날까?>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는 많은 옛이야기들을 '길떠남'의 관점에서 조명했다. 저자의 시각이 매우 새로우면서도 이야기와 삶에 대한 통찰이 탁월해서 여러번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가믄장아기> 이야기에서 두 언니는 결국 지네와 버섯이 되는데 이를 저자는 이렇게 해석한다. "나이가 들도록 부모의 품에 머물러 거기 의존하며 살아가는 삶이란 온전한 사람의 삶이라 할 수 없다. 그건 차라리 지네나 버섯의 삶에 가깝다." (본문61쪽)
또한 형제들과 부모의 간을 빼먹은 <여우누이>를 보고 저자는 부모의 품이 완전한 독이 된 경우라고 해석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과보호 속에서, 어떤 잘못도 다 용인되는 안온한 품 속에서 원하는 바를 다 얻으며 자란 아이들이 바로 여우 딸이 되고 여우 아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괴물이 된 아이는 쉽사리 돌이켜지지 않는다. 바깥에 나가면 아무것도 못하니 누가 그를 받아주겠나. 결국 부모형제가 가진 걸 자꾸 빼먹으려 든다는 것이다. 학급에서 만났던 몇몇 아이들이 떠오르면서 걱정스러웠다. 지금은 잘 지내고 있으려나.
<악어 아들>은 잘못된 사랑의 비극을 말해준다. 잘못된 사랑이라니. 부모는 악어아들이 커져서 떠난 후에도 매일 불러다 먹이를 주었을 뿐인데... 그러나 자식을 떠나보냈으면 의존하지 않고 홀로 서게 해야 한다. 나아갈 때 나아가지 못하고 머물러 안주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를 알려주는 이야기다.

익히 아는 <효녀심청>이야기도 저자는 길떠남의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했다. 길떠남으로서 청 뿐 아니라 심봉사도 행복을 얻게 되었다. 무거운 책임감만으로 자리를 지켰으면 끝내 얻을 수 없었을 행복을.

바이칼 호수에서 흘러나오는 앙가라강의 전설을 보면 부모를 떠나는 앙가라는 무참한 비극을 맞는다.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야 한다"고 말한다. 자식은 때가 되면 놔주는 것이 답이다. 바꾸어 말하면, 자식은 때가 되면 부모 품을 떠나 자기 삶을 사는 것이 답이다. 성경에도 비슷한 말이 나온다.

이 책을 쭉 읽다보니 아주 괴상하고 엉뚱하며 대책없는 우리 아들이 실제로는 이야기 속의 트릭스터와 같은 존재였던가 라는 생각이 든다.ㅎㅎㅎ 중딩 때부터 우리 아들의 입에 붙어 있던 말 "내가 알아서 할게" 지가 알아서 깨지고, 지가 알아서 실패하고, 지가 알아서 실수하고? 일찌감치 엄마손을 거부한 아들은 지금도 민담의 주인공들처럼 때로는 해가 중천에 뜨도록 자빠져 자고, 때로는 벌떡 일어나 좌충우돌 하는데 그 와중에 이 엄마로선 상상도 못해본 길에 발을 들여놓기도 한다. 더 살아보면 알려나? 내 뜻은 아니었지만 내 품에서 일찍 튀어나간(길을 떠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는 것을?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길떠난 주인공들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거나 어딘가에 정착하게 된다. 떠남이 있으면 머무름도 있는 것이 인생사의 순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차피 돌아올 것을 굳이 힘들여 떠날 필요가 없었던 것 아닌가? 그렇지는 않다. 같은 곳으로 돌아왔어도 돌아온 그는 이미 떠날 때의 그가 아니다. 세상 많은 것을 품게 된 그는 이제 세상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존재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길떠남의 원리를 제시하는데 거기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 혼자 떠난다 혼자 떠나는 여행이야말로 참여행이다 혼자 떠나야만 자기 뜻대로 길을 나아가 자기가 뜻한 바를 자유롭게 행할 수 있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 망설이거나 몸을 사리지 말고 일단 부딪친다. 이런 캐릭터를 저자는 민담형 인간이라고 명하면서 반대의 캐릭터를 소설형 인간이라고 했다. 머리속으로는 만리장성도 쌓지만 생각만 많아 선뜻 움직이지는 못하는 - 바로 나같은 사람이다. 길을 떠나려면 이래서는 안된다.
- 창의적 발상으로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고 그것에 도전한다.

길떠남. 낯선 두려움을 주는 이 단어. 이 말은 비단 여행만을 일컫는 말은 아닐 터. 중년의 나에게도 길떠남의 기회는 아직 남아있는 것일까? 갈무리가 더 적절할 이 나이에도 나는 떠남을 생각해야 되는 것일까?

한편, 투박하고 거칠어보이는 옛이야기에 이렇게 깊은 인생의 진리들이 보석처럼 숨어있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큰 재미요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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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놀이 아이스토리빌 26
원유순 지음, 이예숙 그림 / 밝은미래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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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원유순 작가님의 강의를 들으며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귀족놀이책을 이제야 읽었다. 우리 사회는 보이지 않는 계급사회가 되었으며, 그 격차는 갈수록 심해지고 장벽은 더욱 높아진다는 이야기들을 한다. 그런데 그 현상을 동화에서 어떻게 다루었으며 아이들 사이에서는 어떤 문제로 이 현상이 나타날까 궁금했다.

 

주변의 재개발로 학생수가 확 줄어든 양지초등학교에 아이들이 줄줄이 전학오기 시작한다. 입주를 시작한 리버뷰팰리스라는 고급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의 태도는 완전 뜨내기들이다. 원래 입학하기로 되어 있었던 팰리스초등학교의 개교가 늦어지면서 임시로 몇 달 있게 된 학교이기 때문이다. 담임의 입장으로 생각해보니 너무나 싫은 상황이다. 내자식들이라 생각하고 가르치려니 어차피 금방 떠날 것이며 아이들 자체도 전혀 뭘 배우려는 자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 아이들을 키우는 집에 대하기 껄끄러운 어떤 친척(?) 정도가 맡기고 간 아이들 같은 느낌? 어쨌든 내 아이들처럼 대하기는 마땅치 않은 아이들....

 

이 아이들의 특징.

1. 바쁘다. 학교보다도 그 이후의 일정이 더 바쁘다. 그래서 쉬는 시간에도 항상 뭔가를 들여다본다. 레벨시험이나 능력시험이 줄줄이 있어 늘 쫓기는 모습으로 전전긍긍한다.

2. 엄청난 선행을 한다. 6학년 담임을 하는 아는 선생님이 얼마전 상담을 하셨는데 고1 수학 선행을 한다는 얘길 듣고 헐~ 하셨다고 한다. 이런 식이다. 그 외 초등에서 배우지 않는 과목들도 미리 배운다. 2외국어 등등.

3. 수업시간을 의미없게 여긴다. 다 배운 것이고 자신의 수준보다 낮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4. 자취활동 능력이 전혀 없다. 대표적인 예로 청소를 못한다. 공평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하신 선생님이 억지로 청소를 배정하시자 청소도우미 아줌마들이 일당을 받고 출동한다.(난 아직 이런 사례까지는 듣지 못했는데, 사실일까? 슬프다 못해 걱정스러운 현실...)

 

이 아이들의 생활은 걱정스러운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얼마 전 신경학(뇌과학)연수에서 들었던 우려되는 사례들이 여기에 다 모여 있었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뇌를 일찍부터 발달시켜 사회의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게 하려는 것이지만, 위에 열거한 행위들은 모두 뇌에 해롭다. 수면부족은 성장기의 뇌에 치명적인 것이고, 발달단계에 맞지 않은 선행 또한 뇌에 독약인 것이며, 학습동기를 떨어뜨리는 것이야말로 배움에 가장 큰 방해가 된다. 그리고 자기가 먹고 입는 것들을 스스로 하고 스스로 치우고 정리할 수 있는 자취능력을 키우는 것은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인간의 능력을 완성해 나가는 필수 단계 중 하나에 위치하는 것이다. 강남의 매우 유명한 학교에 근무하시는 선배님 한 분은 빨리 그 학교를 떠나고 싶어하신다. 교사의 가르침에 의미를 찾기 힘들 정도로 그 아이들은 이미 빽빽한 사교육의 시스템 안에 들어와 있다. 그런 아이들이 운동화 끈을 매지 못하며 자신들이 먹은 급식의 뒷정리를 못하고 가위질이 서툴러 어버이날 카드를 만들지 못하면서, 돈주고 사면 될 걸 이런 걸 왜 만드냐고 한다.

 

양지아파트 아이들은 이 팰리스 아이들의 행태가 꼴사납지만, 개중에는 이 아이들을 선망하고 따라하려는 아이들도 생겨난다. 특히 이 아이들이 입고 다니는 옷이나 갖고 다니는 물건의 명품 브랜드에 기가 죽는 아이들. 결국 반 전체가 그 유행을 따라가게 되는데 거기에는 짝퉁의 힘이 컸다는 씁쓸한 현실.

 

이야기의 후반부에는 오만하던 팰리스 아이들의 아픔도 살며시 보여준다. 특히 늘 엎드려있던 이빨이 축구에서 의외의 활약을 보여주고 나서 눈물을 훔쳐내는 모습이 찡하다. 다섯 살부터 차붐축구교실에 다녔는데 실력이 너무 뛰어나서그만두어야 했다는 사연. 왜냐하면? 축구 같은 건 그저 취미나 교양으로만 해야 하는 것이라서....

 

가장 교만하던 갈색머리의 아픔도 살짝 보이는 듯 하다가... 아이들은 예상보다 빠른 이별을 맞는다. 양지초 아이들과 같이 섞여서 공부시킬 수 없다는 팰리스 엄마들의 등쌀에 학교가 서둘러 개교를 한 것이다. 아이들은 떠나고, 양지아파트도 도색을 새로 했다. 그리고는 이름도 새로 지어 새겼다. “선샤인캐슬웃지못할 대목이다.

 

원유순 작가님은 기대대로 이 계급사회에서 아이들의 모습을 잘 표현해 내셨다. 높아진 계급의 벽 사이로도 아이들은 우정의 싹을 살며시 보여주기도 했는데, 결국 그것이 꽃피우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었다. 발달단계에 따라 적절한 쉼과 놀이 속에서 건강하게 자라는 아이들은 이제 많지 않고, 계급에 따라 그런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이 사회의 지도층이 될 확률이 매우 높으니 미래를 어떻게 보아야할지 솔직히 모르겠다. 귀족 아이들뿐만이 아니다. 짝퉁을 사서라도 그 아이들과 맞춰가려는 엄마들의 심리는 그 자녀들을 또 비슷한 시스템 안에 밀어넣는다.

 

난 이 사회의 행복의 정의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전적인 의미가 아니니 누구 한 사람이 바꾼다고 될 일은 아닐 것이다. 행복의 다양성이 있을 때 계급의 벽도 슬며시 허물어지게 될 것이다. 그런 관점으로 아이들을 보면 행복할 이유가 없는 아이들은 아무도 없는데, 오늘도 엄마들은 조바심을 내며 단원평가 시험지 며칠 늦게 나눠주면 아이들을 시켜 독촉을 해댄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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