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사리와 함께한 여름 푸른숲 작은 나무 18
전성희 지음, 백대승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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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아직도 남아있는 그때의 감정을 가만히 모아 보면 많은 부분 외로움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처럼 이웃 간에 단절되어 있는 시대도 아니었고 친구가 없었던 것도 아닌데 그 외로움의 정체는 무엇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가끔 떠오른다. 개량한옥집이 쭉 붙어있던 서울 변두리의 골목길, 언니가 학교에 가고 혼자 남은 나는 집안일에 바쁜 엄마 치맛자락을 붙잡고 맴돌다가 골목길에 나온다. 봄햇살이 따뜻하고 눈부시다. 골목길에 주저앉아 혼자 놀다가 누군가 말을 붙이면 그 아이와 친구가 된다. 그 아이를 내일 또 볼 수도 있지만 다음날부터 영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난 가끔 그 아이와, 우리가 함께 했던 놀이를 생각한다. 아마 그 아이는 친척집에 잠깐 다니러 왔던 아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시간이 더 지나면 기억에서 잊혀진다......

 

이 책, 불가사리와 함께 한 여름을 읽다가 그 어린 시절 눈부신 골목길의 외로움이 고스란히 떠올랐다. 희준이의 즐거움과 신남, 고민, 그리고 눈이 퉁퉁 붓도록 울던 슬픔까지도 다 느낄 수가 있다니. 내가 아직 어른이 덜 된 것일까? 독자의 잊었던 감수성을 건드리는 작가의 능력이 탁월한 것일까?

 

희준이에게는 불가사리라는 친구가 있다. 벌레만할 때부터 키웠는데 음식이 아닌 쇠를 먹는 것을 알고는 전설의 동물 불가사리로 이름을 지어 주었다. 불가사리는 점점 커져서 집에서 키울 수가 없게 되어 집을 나간다. 하지만 기다리는 희준이 앞에 가끔씩 찾아온다. 깊은 밤, 아무도 모르는 시간에 둘만의 즐겁고 신나고 행복한 시간을 갖는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바로 쇠를 먹는 불가사리의 식성이다. 몸집이 커질수록 많이 먹어야 하는데, 희준이가 구할 수 있는 양에는 한계가 있으니 말이다. 동네에 나가보면 우체통도 있고 쇠로 된 공공시설도 많지만 그런 짓을 하지는 않고 주인이 주는 먹이만 먹는 불가사리. 희준이의 어깨가 무겁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고민만 깊어가는데.... 급기야는 남의 물건에 손을 대기까지 하고 괴로움에 머리를 감싸쥔다.

 

마음만 괴롭고 줄 것은 하나도 없는 희준이 앞에 불가사리가 찾아왔다. 불가사리는 희준이를 태우고 가족여행이 취소되어 가지 못한 바다로 향했다. 희준이가 웃음을 되찾도록 실컷 놀아준 뒤, 불가사리는 오늘이 마지막이라며 이별을 고한다.

 

마지막이라니?”

앞으로도 난 널 계속 힘들게 만들 거야.”

아니야, 난 괜찮아.”

넌 괜찮지 않아.”

불가사리가 단호하게 말했어.

안 돼, 싫어!”

불가사리는 그저 부드럽게 웃기만 했어.

다시 만날 수 있는 거지?”

불가사리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어.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채 마지막 남은 힘으로 희준이에게 추억을 선사한 불가사리는 다시 집 앞에 희준이를 사뿐히 내려주고 정말로 마지막 인사를 고한다.

안녕. 넌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을 거야. 영원히.”

 

아이들에게도 이별은 찾아온다. 그것은 어른들의 이별보다 더 생생한 아픔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아픔을 간직하고 아이들은 큰다. 그리고 어른이 된다. 그 추억을 정확히 기억하든 어렴풋한 실루엣만 남아있든 간에, 따뜻한 이별의 아픔은 그의 마음에 좋은 밭을 일굴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난 아이들이 희준이의 아픔에 공감할 거라 생각한다. 이들의 이별 장면에서 함께 가슴아파할 거라고. 아닐까? 에이, 불가사리가 어떻게 나타나, 말도 안돼! 라고 할까? 그런 반응을 보게 된다면 나야말로 가슴이 아플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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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당 개 삼년이 두고두고 보고 싶은 그림책 39
정하섭 글, 김규택 그림 / 길벗어린이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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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아도, 아 서당개 삼년이가 풍월을 읊었구나, 라고 짐작을 할 수 있는 책이다. 그래도 궁금증이 이는 이유는 무얼까? 삼년이는 어떻게 생겼을까? 훈장님은 어떤 분일까? 학동들은 어떤 아이들일까? 삼년이가 풍월을 읊었을 때 반응은 어땠을까? 그리고 나서 어떻게 되었을까?.... 등 즐거운 상상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소재가 아닌가!^^


대충 알 것 같은 이야기지만 작가의 이야기 구성 능력은 독자의 상상력을 뛰어넘는다. 한 스님이 시큰둥하고 대충대충 가르치는 훈장님에게 삼년이를 맡기며 삼 년만 길러보면 복을 받을 것이라 했다. 복이라니? 벼슬자리를 가져올까? 돈보따리를 물어올까? 기대하는 훈장님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화가 난 훈장님은 개장수가 오면 팔아버려야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무렵, 삼년이는 말을 알아들고 시도 읊을 수 있었다. 날마다 밖에서 되풀이해서 듣다 보니 스스로 깨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밝혀지고, 삼월이는 진짜로 훈장님에게 복덩어리가 된다. '개도 가르칠 정도니 아이들은 오죽 잘 가르치겠냐'는 평판이 나면서 서당도 크게 다시 짓게 된 것이다. 훈장님은 그동안 대충 가르친 것을 후회하며 성심을 다해 가르치게 되었다. 


그래서 오래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고 끝나도 무리는 없었겠건만, 작가는 삼월이가 떠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그 뒤로 삼년이를 보았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대.... 헉! 삼월이는 정말 개는 개였을까?


이 이야기의 주제가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의 뜻 그대로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거야 읽는 사람 느끼기 나름이니까... 그런데 난 이 속담에 한 가지 이의를 제기한다. 오랫동안 접하고 듣는다고 그것이 내 것이 되지는 않는다. '마음'을 다해야 되는 것이다. 삼년이는 그랬던 거다. 공부방 안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밖에서 들었을 뿐이지만, 공부방 안에 있는 아이들보다 더 마음으로 들었던 거다.


무엇을 익히기 위해서는 지난한 세월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수박 겉핥기로 세월만 보내봤자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며 이런 잔소리를 하는 편은 아닌데, 기회가 된다면 한번쯤은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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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인 수술 보고서 시공 청소년 문학 56
송미경 지음 / 시공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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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익숙하지 않은 것을 참 힘들어하는 성격이라서... 이 책의 전반부는 읽기가 좀 힘들었다. 이것 제법 난해하네... 실험적인 건 나한테 너무 어려워... 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러한 실험정신을 가진 작가에 대한 예의와 존경으로 끝까지 읽어나갔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노력으로 작가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작가는 타고 나야 하겠구나...라는 감탄이 첫번째 이유이고, 두 번째는 이 사회에 무수히 존재하는 광인 이연희들에 대한 가슴아픔 때문이고, 세번째는 무심코 흘려보내 기억도 나지 않는 내 행위들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다.

 

열일곱 이연희는 더이상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광인 말기 판정을 받았다. 그 아이는 한 가지에 집착하고 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해서 주변인을 미치고 환장하게 만든다. 발톱이 깨졌을 때 연고를 바르다 안되니 매니큐어, 그것도 안되니 순간 접착제, 그것도 안되니 공업용 강력 접착제를 들이붓는 모습을 보고 나는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그것들이 흘러 손가락이 다 붙어버렸고 그 아이는 손가락을 떼어내려다 피를 철철 흘린다. 그런데 그 아이는 말한다.  이 고통이 오히려 마음의 평온을 가져왔다고. 그 아이는 그동안 얼마나 아팠던 것일까?

 

이 소설은 '보고서'라는 아주 이례적인 형식으로 쓰여졌다. 환자 이연희가 본인이 광인수술을 받은 과정을 자세히 기록하고 거기에 집도의 김광호가 각주를 단 형식이다. 이연희의 의식은 혼미하다 볼 수 있으니 객관성을 유지해 주는 것은 의사 김광호의 각주이다. 그런데.... 후반부로 갈수록 객관성을 가진 사람이 과연 누구인가? 라는 의문이 생긴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객관성은 역전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사소한 일에서부터 시작되었던 친구들의 놀림과 괴롭힘은 끝이 어딘지 몰랐고 이연희는 그 아이들의 개가 되어 실제로 개처럼 짖고 먹으며 지내야했다. 담임선생님은 그 광경을 보고도 묵인했고 연희에게는 잊으라는 말만을 반복했다. 여기에서 담임선생님에 대한 비난은 피해갈 수 없는 일이다. 왜 선생님은 놀리는 아이들을 불러 타이르지도,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그게 친구에게 상처를 주는 일인줄 정녕 모르는지 묻지도 않았을까? 왜 연희를 불러 학교생활에 어려움이 무엇인지 물어보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 나는 문득 불안해진다. 아이들은 때로 어른보다 악하다. 그 칼날은 순도 100%의 다이아몬드 같고 날카롭기 이를데 없다. 앞뒤 안가리고 찌른다. 그럴 줄 몰랐다는 변명을, 순수함 가득한 얼굴에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해댈 때는 귀싸대기 한 대 올려붙이고 싶으나 그럴 수도 없고 할 말도 잃는다. 때론 그런게 아이들이다.  

 

그러니 교사의 레이더는 기능이 좋아야 한다. 자칫 너무 바빠 레이더를 꺼 놓고 있거나 우리반 애들은 착하다며 방심하다 꺼진 줄도 모르고 있었다면 큰일이다. 늘 세심한 관찰, 적확한 대응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 세심한 관찰도 쉽진 않지만 적확한 대응은 더더욱 어렵다. 특히 여자아이들의 관계는, 함부로 손댔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예 교사의 레이더 밖으로 숨어버린다. 보는 앞에서는 멀쩡하다. 이게 정말 어려운 점이다. 이만큼까지 당돌한 아이는 없기를, 그저 나의 호소에 마음이 움직이는 착한 아이들이기만을 바라는 것이 나처럼 별볼 일 없는 교사들의 상황이라 하겠다. 

 

그래서 나는, 일일이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의 교실에서 힘들었던, 상처받았던 아이들이 있었다면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사죄하고 싶다. 니가 얼마나 아픈지를 잘 몰랐어. 어쩔 수 없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어. 너한테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어. 네가 헤쳐나갈 일이라고 생각했어. 모든 건 니가 할 탓이라고 생각했어. 너에게 극복할 힘이 있다고 생각했어. 때로는, 아이들은 그러면서 크는 거라고 생각했어. 혹시 그 그늘에서 신음했던 아이들이 있었다면, 미안하다... 내가 어떻게 해줬어야 했을까?

 

환자 이연희와 의사 김광호의 객관성이 어느 순간 모호해지듯이 이 책의 후반부에서는 "과연 누가 광인인가" 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강력하게 던진다. 연희더러 헛소리한다고 미친년이라고 욕하는 니들아, 너희들은 미친년이 아니니? 라고 묻는다. 친구를 개로 만들어 놓고 낄낄거리는 니들 말이야. 니들이 미친년이지 누가 미친년이냐고!! 라고 따진다. 여기에서 자유로울 자가 거의 없다. 우리는 스스로의 언행과 주변 사람들, 그리고 내가 무심코 했던 행위들까지 다 돌아봐야 한다. 과연 누가 광인인가?

 

광인 수술의 과정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이었는지는 내가 독해력이 부족하여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겠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이연희가 의식이 깨어 있는 상태에서 수술을 받았고, 그 수술 과정을 감각으로 모두 느꼈고, 뿐만 아니라 과거의 기억들을 모두 끄집어 내어 한번 처리(?)하는 과정을 거쳤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연희는 비로소 똑똑하게 자기의 할 말을 한다.

 

나는 교실에서 푸들처럼 네 발로 기어 다니거나 혀를 길게 빼거나 짖어 대긴 했지만

누군가를 괴롭힌 적은 없어요.
나는 비웃음거리가 된 적은 있지만 누군가를 비웃지 않았어요.
그리고 나는 그 모든 기억을 다 내 뇌 속에 정확히 저장하고 있지만
아무에게도 원수 갚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어요.
도대체 이 수술은 어떤 사람이 받아야 하는 거지요?
누가 광인이고 누가 정상인이라는 걸까요?
수술을 받아야 할 사람은 개 짖는 소리를 내다가 심지어 쥐를 물어오기까지 한 내 자신이 아니라
그런 나를 보며 즐거워한 우리 반 아이들이 아닌가요?

 

이제 이연희는 의사 김광호가 진단한 병명 '강박증'에서 벗어나 자유로움과 평안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이 책을 덮는 마음이 조금은 홀가분했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거나 완전히 평범해지는 것은 힘들겠지만 고통이 자신을 갉아먹도록 놔두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은 이런 아이들을 지켜주고 있지 못한 나 같은 어른들에개 채찍질과 함께 위안을 준다. 그리고 그 또래의 아이들에게는 용기를 줄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을 돌아볼 용기. 자신을 찾을 용기. 그리고 자신을 지킬 용기.
 
나는 많은 작가들을 좋아하고 존경한다. 이 작가의 <복수의 여신>을 읽었을 때 그 상큼함에 반했었고 작품이 나오는 족족 읽어보리라 다짐했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색다른 작품이 나온 것은 충격적이다. 참 대단하고 고마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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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공장을 지켜라! - 나로와 펄럭이의 모험 3 그림책이 참 좋아 18
김영진 글.그림 / 책읽는곰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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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와 펄럭이의 모험 3탄이다. 1탄을 읽고서 작가의 상상력과 그림 표현력에 감탄했었다. 그림책 작가들을 보면 존경스러운데 특히 글과 그림을 함께 작업하는 작가는 더 존경스럽다. 그림실력에 이야기 구성능력까지.... 본인이 만들어낸 그림책이 아이들에게 읽히고 사랑받고, 애써 집어넣은 메시지가 독자들에게 닿는 것을 느낄 때 얼마나 행복할까.

 

이번 편의 메시지도 상상의 힘이다. 상상은 괴물을 물리친다. 거기에 한 가지 추가된 게 있다면 그것은 '꿈'이다. 이루리아에는 '꿈공장'이 있다. 현실을 떠나 꿈을 빚는 곳이다. 꿈공장 할아버지는 여기서 만들어진 꿈을 현실세계로 보내준다.

 

여기에 문제가 생겼다. 어둠의 비행단은 꿈공장에 사람들을 가두고 악몽만을 만들고 있다. 펄럭이는 동네 모든 개들과 함께 어둠의 비행단에 잡혀 갔다. 이 위기를 해결할 사람은 나로 뿐! 그래서 오늘도 나로는 이루리아에 가게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결국은 상상의 힘이었다. 그 과정은 1,2편을 봐서인지 그다지 새롭지는 않았다. 내게는 솔직히 싱겁게 느껴질 정도였는데, 아이들은 어떨지 모르겠다. 1편은 우리반 아이들에게 아주 인기가 많았는데, 3편의 반응도 흥미롭게 지켜봐야겠다.

 

우린 현실세계에서 살지만 여기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 -꿈의 세계-가 없다면 현실세계는 팍팍하고 살기 힘든 곳이 된다. 이루리아라는 작가의 가상공간이 설득력을 얻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작가가 3편까지 그려내며 간절히 말하고자 하는 바-거기에 진심으로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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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치기로 시작한 세계 지도 여행 초등학생이 보는 지식정보그림책
이혜정 지음, 김우선 그림, 조지욱 감수 / 사계절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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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2학년을 가르쳤는데 통합교과서에서 세계 여러나라를 다루는 내용이 꽤 많이 나왔다. 우리나라도 잘 모르는 아이들인데 웬 세계야.... 라는 생각도 잠시 했었지만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어 지도하면 되겠지 라고 생각을 고쳐 먹었다. 그리고 같이 읽을 책들을 찾아 보았는데, 저학년 눈높이에 맞는 책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이 책이 작년에 나왔더라면 꽤 유용하게 활용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림이 많고 색이 예뻐서 아이들의 눈길을 끈다는 점이 첫번째 장점이다. 그리고 다양한 분야를 광범위하게 다루었다는 점도 낮은 학년 아이들에게 읽히기 좋은 점이다. 책 한 권에 대륙별 소개, 대양별 소개, 자연적 환경, 문화적 환경이 골고루 들어가 있다. 의식주별 특징도 간단하게 다루었고 명절과 축제, 종교, 운동경기에 대한 내용도 있다. 마지막으로 함께 지켜야 할 환경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책을 마무리한 것도 매우 사려깊은 구성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 앞에서 휘리릭 몇 쪽을 넘겨주었는데 아주 구미가 당기는 모양이다. 숨은 그림 찾기처럼, 놀이처럼 재미있게 읽을 것 같다. 설명 문장은 길지 않고 지도 안에 구석구석 들어가 있다. 어른인 나는 사실 이런 구성이 더 정신없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런 것을 참 좋아하고 구석구석 내용 파악도 어른보다 훨씬 잘한다.  


넓은 범위를 다루다보니 내용이 아주 심도있지는 않지만, 이 책을 놀이삼아 뒹군 아이들은 꽤나 많은 상식을 갖출 수 있겠다. 사실, 그렇게 쌓은 상식이 무서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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