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 하우스 문지아이들 143
유은실 지음, 서영아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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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나온 유은실 작가의 최신작이다. 유은실 작가는 참 능청스럽게 할 말을 한다. 곰 가족이 나오길래 곰의 생태와 관련있는 이야기인가 했더니, 인간 삶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곰은 그냥 작가의 장치였다. 곰의 탈을 쓴 인간의 이야기라고 해야할까.

주인공 곰 보람은 TV보는게 낙인 증조할머니, 빌딩청소부 일을 하며 가족을 먹여살리는 할머니, 피부병(사람으로 치면 아토피)으로 고생하는 남동생과 다 허물어져가는 좁은 집에서 산다. 아버지는 빚만 남기고 사라졌고 엄마도 떠났다.

애쓰며 살아가는 할머니와 보람에 비해 속없어보이는 증조할머니는 하는 일 없이 TV에 목을 매며 산다. 증조할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슈퍼곰이 간다>로, 연예인이 그의 자녀를 양육하는 모습이 나오는 프로그램이다.(우리는 여기서 딱 어떤 프로그램을 연상한다) 여기에 나오는 좋은 집, 맛있는 음식, 고급스러운 여가활동 등은 보람에게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확인하게 할 뿐이지만, 증조할머니는 그 아이들의 재롱에 좋다고 웃으며 더욱 TV에 빠져든다.

이 책의 중요한 일은 꼭 TV와 연결되어 일어난다. 옆집 사는 골짜기 아줌마가 <드림 하우스>라는 프로에 이들의 사연을 보내준 것이다. 같은 이름의 프로였던가? 이름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생각난다. 도저히 못살 것 같은 집에 제작진이 찾아가 사연을 소개하고 새 집을 만들어주는 프로그램. MC는 각 방의 문을 열면서 호들갑을 떨고 그 방의 주인공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다가 울거나 웃거나 하는.... 자존심 강한 보람은 자신들의 모습을 만천하에 보여주는게 내키지 않지만 살아갈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없기에 이 촬영에 참여하기로 한다.

독자인 나조차 '선정되지 않으면 어쩌지?' 걱정될 정도로 이들의 주거는 열악했다. 다행히 출연자로 선정이 되고 방송작가와 기타 제작진이 급한 일정으로 방송을 진행하는 동안, 우리는 방송에 나오는 모습이 100% 진실이기는 힘들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극적인 효과를 위해 연기도 필요하고 시청자의 눈물샘을 자극하기 위해 그들은 더욱 불쌍해 보여야 한다. "품위있는 곰이 되고 싶다"는 보람의 장래희망은 PD의 콧방귀에 간단하게 무시당한다. 이 과정에서 PD와 싸우던 작가 진주씨는 결국 시청률이 제대로 안나와 일을 그만둔다. 시청률이 안나오자 기대했던 후원도 들어오지 않았다. 진주씨는 이제 주거복지를 위한 시민단체를 만들고 싶다고 한다. 그얘기를 하며 보람에게 들어온 유일한 후원물 하나를 전해준다. 그건 보람이 품위있는 곰이 되기 위해 읽고 싶다했던 포우의 <발톱>이라는 책이었다. 무려 1500쪽이 넘는. 보람은 새 방, 하지만 난방비가 없어 추운 방에서 이불을 둘러쓰고 책을 읽기 시작한다. 그게 끝이다.

극적이지 않아 PD에게 무시당했던 "품위있고 싶다"는 보람의 소원은 사실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극한의 상황에서 품위있을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우리가 품위없다고 무시하는 사람들 중에 품위를 지킬래야 지킬 수 없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지 않는가. 적어도 모두가 품위를 지키며 살 수 있는 세상, <드림 하우스>같은 방송을 통해 한 두 가정에만 일시적으로 퍼주는 도움이 아니라, 열심히 일하는 이상 적어도 품위는 지키는 환경을 가질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문제의식에서 작가는 이 작품을 쓴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곰돌이 곰순이 이야기인 줄 알고 책을 잡았던 아이들은 이 무거운 주제의식에 좀 당황할 것도 같지만.... 내 오랜 경험에서 보면 아이들도 이해의 층위는 각자 다르지만 나름대로 다 받아들인다.^^ 난 유은실 작가의 말빨이 아직 생생히 살아있는 걸 느끼니 기분이 좋고, 또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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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그대를 자유롭게 하리라 - 행복한 집시 쨍쨍의 여행 이야기쇼
쨍쨍 글.사진 / 북로그컴퍼니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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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볼 수밖에 없었다. 궁금해서. 꽤 오래 전부터 쨍쨍의 여행 이야기를 단편적으로 접했다. 그리고 쨍쨍과 나는 몇번 만나본 적도 있다. 페이스북 친구이기도 하다. 스리랑카 사진이 올라오는가 하면 며칠 후 네팔에서 인사가 오고, 그런가 싶으면 벌써 제주 쨍쨍랜드에서 이야기를 올리는! 나와는 너무나 다른 쨍쨍. 할 이야기가 넘칠 텐데 왜 책을 쓰지 않을까 전부터 궁금했는데 드디어 책이 나왔다.

쨍쨍을 알게 된건 온라인 교사 커뮤니티에서였다. 방학이면 스케일 대단한 여행 이야기로 게시판을 즐겁게 해주던 쨍쨍. 그녀는 연극놀이의 전도사이기도 했다. 연극놀이 연수를 통해, 커뮤니티의 오프모임을 통해 그녀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녀는 내가 소화하기엔 너무 개성있는(ㅎㅎ) 사람이었다. 지금은 퇴직하셨지만 그때는 현직교사셨는데 교사라기엔 놀라운 미니스커트에 화려한 색의 옷차림, 거침없는 말투와 자유연애주의, 흡연(지금은 금연하신지 꽤 됐다고 한다) 이런 것들이 날 좀 흠칫하게 했었다.(처음 고백하는 말이다 ㅎㅎ)

거의 10년 가까이 흐른 뒤에 에듀니티에서 열린 여행이야기 쇼에서 다시 쨍쨍을 만났다. 예전보다 이야기가 훨씬 더 편안하고 부드럽게 들렸다. 그녀도 나도 나이를 더 먹어서일까. 그녀보다는 내가 나이를 먹어서일거다. 나와 다른 이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고, 부러워는 하되 너무 심하게는 아닌... 여유가 조금은 생긴 때문인지도 모른다.

여행이야기 쇼를 들어서인지 책에 담긴 이야기들이 더욱 친근했다. 난 쨍쨍의 여행 스타일이 맘에 든다. 볼거리에 치중하지 않고 사람들의 일상에 가까이 다가가는 여행. 세계문화유산 이런 타이틀을 흥! 하고 무시할 수 있는 쨍쨍의 주관이 좋다. 보통은 볼거리 중심으로 여행계획을 짜고, 아는만큼 보인다며 열심히 공부를 하고, 찾아가서는 과연 그렇구나 확인하고, 인증샷 찍고 돌아오지 않는가. 근데 쨍쨍의 여행사진에는 이런게 거의 없다. 대신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웃음'이 담겨있다. 여행 가이드북으로는 활용을 권치 않겠다.^^ 쨍쨍 자체가 무작정! 발길 닿는대로! 떠나는 스타일이니까 말이다.

그렇게 떠난 쨍쨍의 여행에는 '자유'가 있다. 서둘 필요도 조급해할 필요도 없다. 사람을 만나고 마음을 연다. 내가 돕기도 하고 그들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감동적인 친구들이 된다. 쨍쨍은 가끔 외롭다고 책에도 썼다. 하지만 그녀는 가장 외롭지 않은 사람이다. 온 세상이 다 친구이니. 그녀의 열린 마음만큼 그녀는 외롭지 않은 것이다.

해외여행을 하게 된다면 그녀가 랭킹 1위로 꼽는 아일랜드에 꼭 가보고 싶다. 음... 그리고 터키랑 오스트리아도? 근데 난 집 떠나 이틀도 자기 싫어하는 사람이라서 적응기간이 좀 필요하다. 동료 두명과 겨울방학하면 섬진강 쪽으로 여행을 가자고 말해 두었다. 그리고 나면 제주도? 그 다음 쯤엔 모르지. 쨍쨍이 밟은 곳을 한 곳쯤 따라서 밟아볼 수 있을지도....

쨍쨍은 교사로서도 매우 훌륭한 사람이었다. 그녀가 의도했는지 안했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수업은 그 옛날에도 첨단을 달렸다. 하지만 모르긴 몰라도 꽉막힌 사람들에게 그녀는 별종 취급을 받았을 것 같다. 여자로서도, 교사로서도. 난 그녀같은 교사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게 나였으면 좋겠다만 타고난게 없으니 그건 안되고...ㅎㅎㅎ 자유로움, 마음열기. 거부당하거나 상처받을 위험성에 개의치 않을 이 미덕을 갖춘 사람들이 주변에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나도 조금은 더 경계를 풀고 사람의 아름다움에 더 기대를 가지며 살아봐야겠다. 쨍쨍의 이 책이 나에게 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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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주인공은 모두 길을 떠날까? - 옛이야기 속 집 떠난 소년들이 말하는 나 자신으로 살기 아우름 3
신동흔 지음 / 샘터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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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를 즐겨보던 내가 옛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김환희 님의 '옛이야기와 어린이책'을 읽고부터였다. 이 책에는 여러가지 흥미로운 내용이 있는데 나에게 가장 강렬히 다가온 것은 옛이야기의 심리적 가치에 관한 내용이다. 구전된 이야기들의 각편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화소들의 심층에는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옛사람들의 지혜가 들어있으며 놀라운 심리적 가치로 아이들의 내면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옛이야기를 재화할 때는 각각의 상징성들을 훼손하지 않도록 무척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이어서 읽은 책은 아주 재미있었다. <신데렐라 천년의 여행>이라는 책이었는데 세계 곳곳 전혀 무관하게 떨어진 지역에서도 화소가 유사한 이야기들이 전승되어 왔다는 것을 신데렐라를 예로 들어 알려주었다. 또한 그 화소들이 잔인하거나 어린 아이들에게 교육적이지 못한 것으로 보일지라도 아이들의 통과의례에 꼭 필요한 장치이니 그대로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들이 내겐 매우 인상적이었다.

세번째로 읽은 책이 이 책의 저자인 신동흔 교수의 <삶을 일깨우는 옛이야기의 힘>이었다. 위의 책들과 일맥상통하는 주장으로, 특히 우리 옛이야기에서 주인공들의 여정이 우리 심리에 주는 힘이 무척 크다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었다.

얼마전 인터넷서점을 어슬렁거리다 이분의 책이 또 나온 것을 알게 되었다. 나온지 2년이 되어가는데 이제야 발견한 것이다. 이분의 책은 구수한 육성으로 듣는 듯하다. 친근하고 쉽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왜 주인공들은 모두 길을 떠날까?>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는 많은 옛이야기들을 '길떠남'의 관점에서 조명했다. 저자의 시각이 매우 새로우면서도 이야기와 삶에 대한 통찰이 탁월해서 여러번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가믄장아기> 이야기에서 두 언니는 결국 지네와 버섯이 되는데 이를 저자는 이렇게 해석한다. "나이가 들도록 부모의 품에 머물러 거기 의존하며 살아가는 삶이란 온전한 사람의 삶이라 할 수 없다. 그건 차라리 지네나 버섯의 삶에 가깝다." (본문61쪽)
또한 형제들과 부모의 간을 빼먹은 <여우누이>를 보고 저자는 부모의 품이 완전한 독이 된 경우라고 해석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과보호 속에서, 어떤 잘못도 다 용인되는 안온한 품 속에서 원하는 바를 다 얻으며 자란 아이들이 바로 여우 딸이 되고 여우 아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괴물이 된 아이는 쉽사리 돌이켜지지 않는다. 바깥에 나가면 아무것도 못하니 누가 그를 받아주겠나. 결국 부모형제가 가진 걸 자꾸 빼먹으려 든다는 것이다. 학급에서 만났던 몇몇 아이들이 떠오르면서 걱정스러웠다. 지금은 잘 지내고 있으려나.
<악어 아들>은 잘못된 사랑의 비극을 말해준다. 잘못된 사랑이라니. 부모는 악어아들이 커져서 떠난 후에도 매일 불러다 먹이를 주었을 뿐인데... 그러나 자식을 떠나보냈으면 의존하지 않고 홀로 서게 해야 한다. 나아갈 때 나아가지 못하고 머물러 안주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를 알려주는 이야기다.

익히 아는 <효녀심청>이야기도 저자는 길떠남의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했다. 길떠남으로서 청 뿐 아니라 심봉사도 행복을 얻게 되었다. 무거운 책임감만으로 자리를 지켰으면 끝내 얻을 수 없었을 행복을.

바이칼 호수에서 흘러나오는 앙가라강의 전설을 보면 부모를 떠나는 앙가라는 무참한 비극을 맞는다.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야 한다"고 말한다. 자식은 때가 되면 놔주는 것이 답이다. 바꾸어 말하면, 자식은 때가 되면 부모 품을 떠나 자기 삶을 사는 것이 답이다. 성경에도 비슷한 말이 나온다.

이 책을 쭉 읽다보니 아주 괴상하고 엉뚱하며 대책없는 우리 아들이 실제로는 이야기 속의 트릭스터와 같은 존재였던가 라는 생각이 든다.ㅎㅎㅎ 중딩 때부터 우리 아들의 입에 붙어 있던 말 "내가 알아서 할게" 지가 알아서 깨지고, 지가 알아서 실패하고, 지가 알아서 실수하고? 일찌감치 엄마손을 거부한 아들은 지금도 민담의 주인공들처럼 때로는 해가 중천에 뜨도록 자빠져 자고, 때로는 벌떡 일어나 좌충우돌 하는데 그 와중에 이 엄마로선 상상도 못해본 길에 발을 들여놓기도 한다. 더 살아보면 알려나? 내 뜻은 아니었지만 내 품에서 일찍 튀어나간(길을 떠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는 것을?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길떠난 주인공들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거나 어딘가에 정착하게 된다. 떠남이 있으면 머무름도 있는 것이 인생사의 순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차피 돌아올 것을 굳이 힘들여 떠날 필요가 없었던 것 아닌가? 그렇지는 않다. 같은 곳으로 돌아왔어도 돌아온 그는 이미 떠날 때의 그가 아니다. 세상 많은 것을 품게 된 그는 이제 세상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존재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길떠남의 원리를 제시하는데 거기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 혼자 떠난다 혼자 떠나는 여행이야말로 참여행이다 혼자 떠나야만 자기 뜻대로 길을 나아가 자기가 뜻한 바를 자유롭게 행할 수 있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 망설이거나 몸을 사리지 말고 일단 부딪친다. 이런 캐릭터를 저자는 민담형 인간이라고 명하면서 반대의 캐릭터를 소설형 인간이라고 했다. 머리속으로는 만리장성도 쌓지만 생각만 많아 선뜻 움직이지는 못하는 - 바로 나같은 사람이다. 길을 떠나려면 이래서는 안된다.
- 창의적 발상으로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고 그것에 도전한다.

길떠남. 낯선 두려움을 주는 이 단어. 이 말은 비단 여행만을 일컫는 말은 아닐 터. 중년의 나에게도 길떠남의 기회는 아직 남아있는 것일까? 갈무리가 더 적절할 이 나이에도 나는 떠남을 생각해야 되는 것일까?

한편, 투박하고 거칠어보이는 옛이야기에 이렇게 깊은 인생의 진리들이 보석처럼 숨어있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큰 재미요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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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놀이 아이스토리빌 26
원유순 지음, 이예숙 그림 / 밝은미래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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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원유순 작가님의 강의를 들으며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귀족놀이책을 이제야 읽었다. 우리 사회는 보이지 않는 계급사회가 되었으며, 그 격차는 갈수록 심해지고 장벽은 더욱 높아진다는 이야기들을 한다. 그런데 그 현상을 동화에서 어떻게 다루었으며 아이들 사이에서는 어떤 문제로 이 현상이 나타날까 궁금했다.

 

주변의 재개발로 학생수가 확 줄어든 양지초등학교에 아이들이 줄줄이 전학오기 시작한다. 입주를 시작한 리버뷰팰리스라는 고급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의 태도는 완전 뜨내기들이다. 원래 입학하기로 되어 있었던 팰리스초등학교의 개교가 늦어지면서 임시로 몇 달 있게 된 학교이기 때문이다. 담임의 입장으로 생각해보니 너무나 싫은 상황이다. 내자식들이라 생각하고 가르치려니 어차피 금방 떠날 것이며 아이들 자체도 전혀 뭘 배우려는 자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 아이들을 키우는 집에 대하기 껄끄러운 어떤 친척(?) 정도가 맡기고 간 아이들 같은 느낌? 어쨌든 내 아이들처럼 대하기는 마땅치 않은 아이들....

 

이 아이들의 특징.

1. 바쁘다. 학교보다도 그 이후의 일정이 더 바쁘다. 그래서 쉬는 시간에도 항상 뭔가를 들여다본다. 레벨시험이나 능력시험이 줄줄이 있어 늘 쫓기는 모습으로 전전긍긍한다.

2. 엄청난 선행을 한다. 6학년 담임을 하는 아는 선생님이 얼마전 상담을 하셨는데 고1 수학 선행을 한다는 얘길 듣고 헐~ 하셨다고 한다. 이런 식이다. 그 외 초등에서 배우지 않는 과목들도 미리 배운다. 2외국어 등등.

3. 수업시간을 의미없게 여긴다. 다 배운 것이고 자신의 수준보다 낮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4. 자취활동 능력이 전혀 없다. 대표적인 예로 청소를 못한다. 공평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하신 선생님이 억지로 청소를 배정하시자 청소도우미 아줌마들이 일당을 받고 출동한다.(난 아직 이런 사례까지는 듣지 못했는데, 사실일까? 슬프다 못해 걱정스러운 현실...)

 

이 아이들의 생활은 걱정스러운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얼마 전 신경학(뇌과학)연수에서 들었던 우려되는 사례들이 여기에 다 모여 있었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뇌를 일찍부터 발달시켜 사회의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게 하려는 것이지만, 위에 열거한 행위들은 모두 뇌에 해롭다. 수면부족은 성장기의 뇌에 치명적인 것이고, 발달단계에 맞지 않은 선행 또한 뇌에 독약인 것이며, 학습동기를 떨어뜨리는 것이야말로 배움에 가장 큰 방해가 된다. 그리고 자기가 먹고 입는 것들을 스스로 하고 스스로 치우고 정리할 수 있는 자취능력을 키우는 것은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인간의 능력을 완성해 나가는 필수 단계 중 하나에 위치하는 것이다. 강남의 매우 유명한 학교에 근무하시는 선배님 한 분은 빨리 그 학교를 떠나고 싶어하신다. 교사의 가르침에 의미를 찾기 힘들 정도로 그 아이들은 이미 빽빽한 사교육의 시스템 안에 들어와 있다. 그런 아이들이 운동화 끈을 매지 못하며 자신들이 먹은 급식의 뒷정리를 못하고 가위질이 서툴러 어버이날 카드를 만들지 못하면서, 돈주고 사면 될 걸 이런 걸 왜 만드냐고 한다.

 

양지아파트 아이들은 이 팰리스 아이들의 행태가 꼴사납지만, 개중에는 이 아이들을 선망하고 따라하려는 아이들도 생겨난다. 특히 이 아이들이 입고 다니는 옷이나 갖고 다니는 물건의 명품 브랜드에 기가 죽는 아이들. 결국 반 전체가 그 유행을 따라가게 되는데 거기에는 짝퉁의 힘이 컸다는 씁쓸한 현실.

 

이야기의 후반부에는 오만하던 팰리스 아이들의 아픔도 살며시 보여준다. 특히 늘 엎드려있던 이빨이 축구에서 의외의 활약을 보여주고 나서 눈물을 훔쳐내는 모습이 찡하다. 다섯 살부터 차붐축구교실에 다녔는데 실력이 너무 뛰어나서그만두어야 했다는 사연. 왜냐하면? 축구 같은 건 그저 취미나 교양으로만 해야 하는 것이라서....

 

가장 교만하던 갈색머리의 아픔도 살짝 보이는 듯 하다가... 아이들은 예상보다 빠른 이별을 맞는다. 양지초 아이들과 같이 섞여서 공부시킬 수 없다는 팰리스 엄마들의 등쌀에 학교가 서둘러 개교를 한 것이다. 아이들은 떠나고, 양지아파트도 도색을 새로 했다. 그리고는 이름도 새로 지어 새겼다. “선샤인캐슬웃지못할 대목이다.

 

원유순 작가님은 기대대로 이 계급사회에서 아이들의 모습을 잘 표현해 내셨다. 높아진 계급의 벽 사이로도 아이들은 우정의 싹을 살며시 보여주기도 했는데, 결국 그것이 꽃피우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었다. 발달단계에 따라 적절한 쉼과 놀이 속에서 건강하게 자라는 아이들은 이제 많지 않고, 계급에 따라 그런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이 사회의 지도층이 될 확률이 매우 높으니 미래를 어떻게 보아야할지 솔직히 모르겠다. 귀족 아이들뿐만이 아니다. 짝퉁을 사서라도 그 아이들과 맞춰가려는 엄마들의 심리는 그 자녀들을 또 비슷한 시스템 안에 밀어넣는다.

 

난 이 사회의 행복의 정의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전적인 의미가 아니니 누구 한 사람이 바꾼다고 될 일은 아닐 것이다. 행복의 다양성이 있을 때 계급의 벽도 슬며시 허물어지게 될 것이다. 그런 관점으로 아이들을 보면 행복할 이유가 없는 아이들은 아무도 없는데, 오늘도 엄마들은 조바심을 내며 단원평가 시험지 며칠 늦게 나눠주면 아이들을 시켜 독촉을 해댄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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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삶에서 나를 만나다 - 잃어버린 나를 다시 찾고 서로 위로하는 수업 성찰
김태현 지음 / 에듀니티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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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첫 책, <교사, 수업에서 나를 만나다>를 참 좋게 읽었다. 근데 이런....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도 내 맘에 지침이 되던 딱 한마디는 남아있다. 좋은 수업의 최우선조건은 '관계'라는 말이다. 관계가 어그러진 학급에서 좋은 수업은 거의 가능하지 않다.

그 책에서 내가 느낀 저자의 이미지는 마치 스타강사 같은 것이었다. 거의 연예인급의. 그러니 내가 배울 것은 있어도 함께 느끼고 공감할 것이 있으리라 생각하진 않았다. 그런데 이번 책을 읽고는 상당히 놀랐다. 마치 나의 고백 같은 자기고백이 거기에 있었다. 흔한 말로 "내가 쓴 글인 줄 알았어요."와 같은.(나는 이만한 문장력이 없으니 그건 사실 말이 안되긴 하지만 ㅋ)

수업코칭의 대가인 저자도 침체기가 있고, 애들에 대한 분노로 진정하기 힘들 때가 있으며, 내 수업에 대한 불만족이 끊임없이 찾아오고, 애쓰다가 한순간은 이래서 뭐하나 싶은 회의가 찾아오는구나. 아이들과 관계맺기의 필요성을 알면서도 막상 깊은 관계의 기회 앞에서는 거부감과 두려움이 들기도 하는구나.

그러나 별볼일 없는 나와 같은 종류의 감정을 겪는 저자에게 따라가기 어려운 능력이 있으니 그것은 성찰이다. 그리고 국어교사로서 갖고 계신 다양한 문학적 소양과 예술적 감수성을 통해 성찰해보는 교사로서의 우리 모습은 특히나 눈물겨웠고 눈물겨운만큼 위로가 되었다.

1,2장에서는 이와같이 "괜찮아요.... 누구나 그래요. 조금은 흔들려도, 쉬어도 좋아요"라는 위로가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3장으로 넘어가며 이 책의 목적이 단순한 위로에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3장에서는 교사의 신념을 다루고 있다. 수업의 기교보더 더 필요한 것은 각 수업에 맞는 주제의식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주제의식이라니, 예측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여기부터 저자가 주는 메시지는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난 책에서 다루어준 수업의 기술보다 한 차원 높은 것이었다. 수업의 기술은 따라할 수 있고 흉내도 낼 수 있다. 하지만 주제의식은 다르다. 내 삶을 통해 내 스스로 형성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4장에서는 창조성을 다루고 있다. 난 가끔 아이디어가 좋다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창조성에 자신이 없다. 그리고 수업에 있어서 창조성은 대부분 수업에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동기유발이나 새롭고 참신한 활동을 찾아내는데 관여한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저자의 시각은 다르다.
"수업을 재구성해야 하는 근원적인 이유는 학생들에게 참된 배움을 주고자 하는 것도 있지만, 창조자로 태어난 우리가 수업내용에서 나만의 창조적 감성을 발휘하지 않으면 스스로 갑갑함을 느낀다. 내가 만든 것이 아닌, 남의 것으로 수업을 하기 때문에 늘 수업에서 나의 이야기가 아닌 남의 이야기를 하는 기분이 들고, 이것은 수업을 하는 내적 에너지가 떨어지는 것으로 연결된다. 손수 이해하고 창조한 내용이 아니면 우리는 스스로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대목이다. 최근 10년 안에 나는 두 번의 교과전담을 했는데, 담임을 하면서 그 시절이 그리워질 때가 많다. 한 과목을 전담하다보니 깊이있는 교재연구가 가능하고, 참고서적도 많이 찾아보게 되고, 서툰 자료라도 내가 직접 만들어서 쓰다보니 위에서 말한 '내적 에너지'가 넘쳤다. 수업이 끝나면 녹초가 될지언정 수업중에는 의욕과 기쁨이 있었다. 이 기쁨을 담임을 하면서도 맛보고 싶은데 그것을 온전히 누리기에는 정신 빼앗기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그만큼 내가 부족해서겠지만....ㅠ

이를 위하여 저자는 예술과의 만남을 강조한다. 예술작품을 깊이 만나면 내 감성이 움직이고 내 수업의 빛깔이 달라진다고 한다. 의도하지 않아도 수업에서 예술작품 특유의 감성이 생긴다는 것이다. 아~ 난 진정으로 그러고 싶다. 사치고 유희인가 싶어 미뤄뒀던 예술감상활동을 마음껏 하고 싶다. 좀 비싼 콘서트나 뮤지컬도 보고, 악기연습에 빠져도 보고, 수업과 관련없는 미술책도 보고... 영화를 보면서도 나는 우길테다. 나는 지금 수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이러한 감각을 잘 유지하고 언제나 고르게 발휘해야 전문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글을 쓰라고 교사들에게 조언한다. 내 삶의 의미있는 단상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잘 붙잡아두라는 것이다. 이것은 참 유용한 조언이다. 나는 글쓰기에 별 거부감이 없지만 그에 비해 글을 쓰며 살아오진 않았다. 내가 쓴 글이란 읽은 책에 대한 리뷰가 고작인데 그나마도 많이 자주 쓰진 않는다. 최근 페북에 일기도 뭣도 아닌 글을 올리면서 남들도 보는 데다 이게 뭐하는 짓일까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당분간은 유지해야겠다. 더 좋은 공간이 생길때까지는.

마지막 5장의 키워드는 '공동체'이다. 위의 모든 것들을 나눌 수 있는 공동체는 개인이 가진 것들을 극대화할 뿐만이 아니라 그 가치를 더해준다. 나는 교직에서 공유와 소통의 중요성을 매우 크게 본다. 이중 공유에 대해서는 부끄럽지 않다. 줄 것이 변변치 못해서 그렇지 난 내게 있는 아이디어와 자료를 아낌없이 나눠준다. 나같은 사람과 동학년을 처음 해봤다는 선생님도 계셨다. 그런데 소통은 매우 제한적으로 한다. 사람을 많이 가린다.... 그래서 공동체의 위력을 체험한 경험이 많지 않다. 이 부분은 나의 숙제로 남겨둔다. (물론 나혼자 애쓴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지만.)

지금 근무하는 학교에서는 정식으로는 아니라도 수업친구라 할 만한 선배님이 두 분 계시다. 두분께 이 책을 마구 들이댔더니 두분다 첫장에서부터 공감하셨다. 언니들과 이 책을 천천히 다시 읽을거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서로 어루만지고, 그리고 수업을 얘기할거다. 우리의 삶에 잔잔한 기쁨이 아이들에게도 잔물결처럼 퍼져가기를......♡

(초판이라 그런지 의외로 오타가 많네요. 꽤 있었는데 그냥 지나가 버려서... 지금 보이는 것 적어봅니다.
61쪽 낫게-> 낮게
95쪽 몰했다-> 못했다
317쪽 2015년-> 내용상 2005년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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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20 18: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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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21 12: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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