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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놀이 ㅣ 아이스토리빌 26
원유순 지음, 이예숙 그림 / 밝은미래 / 2016년 6월
평점 :
지난여름 원유순 작가님의 강의를 들으며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귀족놀이』 책을 이제야 읽었다. 우리 사회는 보이지 않는 계급사회가 되었으며, 그 격차는 갈수록 심해지고 장벽은 더욱 높아진다는 이야기들을 한다. 그런데 그 현상을 동화에서 어떻게 다루었으며 아이들 사이에서는 어떤 문제로 이 현상이 나타날까 궁금했다.
주변의 재개발로 학생수가 확 줄어든 양지초등학교에 아이들이 줄줄이 전학오기 시작한다. 입주를 시작한 ‘리버뷰팰리스’라는 고급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의 태도는 완전 뜨내기들이다. 원래 입학하기로 되어 있었던 ‘팰리스초등학교’의 개교가 늦어지면서 임시로 몇 달 있게 된 학교이기 때문이다. 담임의 입장으로 생각해보니 너무나 싫은 상황이다. 내자식들이라 생각하고 가르치려니 어차피 금방 떠날 것이며 아이들 자체도 전혀 뭘 배우려는 자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 아이들을 키우는 집에 대하기 껄끄러운 어떤 친척(?) 정도가 맡기고 간 아이들 같은 느낌? 어쨌든 내 아이들처럼 대하기는 마땅치 않은 아이들....
이 아이들의 특징.
1. 바쁘다. 학교보다도 그 이후의 일정이 더 바쁘다. 그래서 쉬는 시간에도 항상 뭔가를 들여다본다. 레벨시험이나 능력시험이 줄줄이 있어 늘 쫓기는 모습으로 전전긍긍한다.
2. 엄청난 선행을 한다. 6학년 담임을 하는 아는 선생님이 얼마전 상담을 하셨는데 고1 수학 선행을 한다는 얘길 듣고 헐~ 하셨다고 한다. 이런 식이다. 그 외 초등에서 배우지 않는 과목들도 미리 배운다. 제2외국어 등등.
3. 수업시간을 의미없게 여긴다. 다 배운 것이고 자신의 수준보다 낮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4. 자취활동 능력이 전혀 없다. 대표적인 예로 청소를 못한다. 공평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하신 선생님이 억지로 청소를 배정하시자 청소도우미 아줌마들이 일당을 받고 출동한다.(난 아직 이런 사례까지는 듣지 못했는데, 사실일까? 슬프다 못해 걱정스러운 현실...)
이 아이들의 생활은 걱정스러운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얼마 전 신경학(뇌과학)연수에서 들었던 우려되는 사례들이 여기에 다 모여 있었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뇌를 일찍부터 발달시켜 사회의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게 하려는 것이지만, 위에 열거한 행위들은 모두 뇌에 해롭다. 수면부족은 성장기의 뇌에 치명적인 것이고, 발달단계에 맞지 않은 선행 또한 뇌에 독약인 것이며, 학습동기를 떨어뜨리는 것이야말로 배움에 가장 큰 방해가 된다. 그리고 자기가 먹고 입는 것들을 스스로 하고 스스로 치우고 정리할 수 있는 자취능력을 키우는 것은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인간의 능력을 완성해 나가는 필수 단계 중 하나에 위치하는 것이다. 강남의 매우 유명한 학교에 근무하시는 선배님 한 분은 빨리 그 학교를 떠나고 싶어하신다. 교사의 가르침에 의미를 찾기 힘들 정도로 그 아이들은 이미 빽빽한 사교육의 시스템 안에 들어와 있다. 그런 아이들이 운동화 끈을 매지 못하며 자신들이 먹은 급식의 뒷정리를 못하고 가위질이 서툴러 어버이날 카드를 만들지 못하면서, 돈주고 사면 될 걸 이런 걸 왜 만드냐고 한다.
양지아파트 아이들은 이 팰리스 아이들의 행태가 꼴사납지만, 개중에는 이 아이들을 선망하고 따라하려는 아이들도 생겨난다. 특히 이 아이들이 입고 다니는 옷이나 갖고 다니는 물건의 명품 브랜드에 기가 죽는 아이들. 결국 반 전체가 그 유행을 따라가게 되는데 거기에는 짝퉁의 힘이 컸다는 씁쓸한 현실.
이야기의 후반부에는 오만하던 팰리스 아이들의 아픔도 살며시 보여준다. 특히 늘 엎드려있던 ‘이빨’이 축구에서 의외의 활약을 보여주고 나서 눈물을 훔쳐내는 모습이 찡하다. 다섯 살부터 차붐축구교실에 다녔는데 ‘실력이 너무 뛰어나서’ 그만두어야 했다는 사연. 왜냐하면? 축구 같은 건 그저 ‘취미나 교양’으로만 해야 하는 것이라서....ㅠ
가장 교만하던 갈색머리의 아픔도 살짝 보이는 듯 하다가... 아이들은 예상보다 빠른 이별을 맞는다. 양지초 아이들과 같이 섞여서 공부시킬 수 없다는 팰리스 엄마들의 등쌀에 학교가 서둘러 개교를 한 것이다. 아이들은 떠나고, 양지아파트도 도색을 새로 했다. 그리고는 이름도 새로 지어 새겼다. “선샤인캐슬” 웃지못할 대목이다.
원유순 작가님은 기대대로 이 계급사회에서 아이들의 모습을 잘 표현해 내셨다. 높아진 계급의 벽 사이로도 아이들은 우정의 싹을 살며시 보여주기도 했는데, 결국 그것이 꽃피우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었다. 발달단계에 따라 적절한 쉼과 놀이 속에서 건강하게 자라는 아이들은 이제 많지 않고, 계급에 따라 그런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이 사회의 지도층이 될 확률이 매우 높으니 미래를 어떻게 보아야할지 솔직히 모르겠다. 귀족 아이들뿐만이 아니다. 짝퉁을 사서라도 그 아이들과 맞춰가려는 엄마들의 심리는 그 자녀들을 또 비슷한 시스템 안에 밀어넣는다.
난 이 사회의 “행복”의 정의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전적인 의미가 아니니 누구 한 사람이 바꾼다고 될 일은 아닐 것이다. 행복의 다양성이 있을 때 계급의 벽도 슬며시 허물어지게 될 것이다. 그런 관점으로 아이들을 보면 행복할 이유가 없는 아이들은 아무도 없는데, 오늘도 엄마들은 조바심을 내며 단원평가 시험지 며칠 늦게 나눠주면 아이들을 시켜 독촉을 해댄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