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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1학년 열두 달 이야기 - 교사와 학부모를 위한 교실 생태계 안내
한희정 지음 / 이후 / 2019년 12월
평점 :
내 경력이 몇년이나 되었더라.... 이젠 까먹는다. 25년 넘었다. 30년은 안됐고.... 이정도면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겠지? 미안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내 경험은 한정되어 있다. 그 무엇보다도, 이날 이때껏 1학년을 안해봤다는 거! 5,6년 전까지만 해도 이게 커다란 핸디캡은 아니었다. 내가 굳이 지원하지 않아도 1학년 지원자들이 부족하진 않았다. 그보다 더 옛날엔 1학년을 주로 하시는 샘들도 많으셨다.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지금 우리 학교에선 1학년이 기피학년이다. 6학년에는 희망자가 있어도 1학년엔 없다. 몸도 마음도 축나는게 1학년이어서다. 절대 2년 연속 못한다고 정평이 나 있는게 1학년이기도 하다. 그러니 나는 좌불안석일 수밖에.... 피하자니 양심불량이고, 하자니 이 나이에 경험이 전무하다는 걸 누가 믿어주겠어? 걱정이다, 걱정.
그러던 차에 이 책이 나왔다. 내가 알고 있는 초등교사 중 가장 똑똑하고 추진력 있으며 상황파악 깊고 넓고 정확한 한희정 선생님이 쓰신 책이다. 이분의 깊이 있는 공부는 대학생들도 충분히 지도할 만한데 현장에선 1학년 전문가로 통한다. 어린 연령일수록 배움이 깊은 교사가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증명해 주듯이. 그의 지도는 일상적인 것에서부터 아주 세세하고 숨쉬듯 자연스러워 교육보다도 생활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그 밑바탕에 깊은 배움과 이론적 배경이 깔려 있다는 것이 들여다보이니 나도 까막눈은 아니라 하겠다.^^;;;
이 책은 교사와 학부모 모두를 대상으로 한 책이다. 1장은 교사, 2장은 학부모 대상의 내용인데, 서로의 내용을 살펴보는 게 피차 더 도움이 된다. 3장은 어린이 발달이라는 관점에서 교과학습 내용을 살펴보는 장이다. 비고츠키를 깊이 연구하고 교육과정에 통달한 저자의 내공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특히 저자의 교실 속 학습 활동들을 소개하고 있어 1학년이 막막한 교사들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3장의 이야기를 먼저 해보겠다.
국어에서 가장 감탄했던 내용은 아이들의 말과 글을 수업 텍스트로 되돌리는 과정이었다.
"입문기 문자교육에서 '삶을 가꾼다'는 명제는 교과서에 가두어 두었던 말공부와 글공부를 해방시켜 아이들의 삶과 경험, 배운 것을 표현하기 위해 말과 글을 부려 쓰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런 공부에는 교과서도 따로 없고 학습지도 따로 없습니다. 아이들의 생활에서 경험한 것을 나누는 과정이 교과서고, 그 교과서에 나온 말과 글을 익힐 수 있도록 역동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학습지가 됩니다." (212쪽)
이 말에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나도 고학년 수업에서 아이들의 글을 소식지 형태의 얇은 문집으로 만들어 그걸 수업시간 텍스트로 활용한 적은 있었다. 물론 글의 완성도는 교과서에 비할 바가 못되지만 몰입의 깊이는 훨씬 더하다. 그런데 1학년의 말과 글로도 그런 수업이 된다고? 저자는 '주말 이야기 나누기'를 그렇게 활용했다. 화자(발표자) - 청자(나머지 친구들) - 조언자 및 기록자(교사)의 구도로 진행하니 이게 가능하구나. 교사가 정선하여 즉석에서 타이핑한 문장들을 아이들의 희망대로 출력하여 여러가지 활동의 자료로 활용한다. 마지막에는 묶어서 책으로 만든다. 이 과정에 아이들에게는 표현과 공유, 숙달, 교사에게는 진단활동 등이 모두 포함된다. 학문적 바탕이 제대로 깔려있고 깊은 고려가 들어간 수업에선 이렇게 동시다발적 효과가 나타난다. 교사의 공부는 그래서 필요하구나.
그 외에 낱말불리기 공책, 수업활동 후 돌아가며 소감 말하고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교사가 문장으로 기록하기, 급수표에 의한 받아쓰기가 아닌 학급 이야기 받아쓰기 등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있다. 모두 하나의 활동에 두 가지 이상의 의도와 효과가 있다. 심지어 기록과 평가까지 동시에 진행된다. 저자처럼 대외적으로 바쁜 교사가 학급살이를 어떻게 그렇게 알차게 꾸려갈까 늘 궁금했었는데, 중요한 비결이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수업준비 따로, 수업 따로, 기록 따로, 평가 따로 하다보면 하루종일 동동대도 시간이 부족하고 마음에 여유가 없어 너그러워지기도 힘들다. 저자의 이런 노하우를 나도 많이 만들고 싶다.
수학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아이들의 발달에 대한 이해가 지도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깨닫는다. 그 이해가 있으면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지도할 수가 있다. 일상의 경험에서 시작해 구체와 추상으로 유연하게 넘어가는 길은 수업을 '예술'로 비유했던 책의 내용을 떠오르게 한다.
국어, 수학에 이어 통합교과에서도 성취기준과 교과내용을 정리한 표가 나오는데 솔직히 지도서를 숙독하지도 않고 수업내용만 확인하고 수업을 준비하는 경우가 많았어서 이렇게 정리된 표는 참 유용해 보인다. 특히 경험을 바탕으로 서술해놓은 단원별 유의점들은 매우 유용한 길잡이가 되어주겠다. 대주제별로 소개된 몇몇 활동들에도 의미가 충실했다. 나눔장터(알뜰장터)는 나도 거의 매년 하는 활동인데 기부로 이어가지는 못했다. (소심하고, 먼지만큼이라도 치사한 소리 듣는 걸 못 참아서 그렇다...ㅠ) 여기에서 좋은 팁 하나를 얻었다.
거꾸로 올라가서, 2장에는 학부모가 궁금해하는, 알아두면 이해에 도움이 되는, 알고 있어야 오해하지 않을, 몰랐을땐 겁났지만 알고 보면 별게 아닌.... 등등의 알짜 정보들이 가득하다. 학부모의 이해를 돕는 것은 저자 뿐 아니라 모든 교사들이 해야 할 일인 바, 어떤 게 필요한 정보인지, 어떻게 설명하고 이해시킬지 참고하려면 교사들도 꼭 읽어두는 게 좋겠다.
1장은 '교사를 위한 월령가'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월별 교실살이에 대한 내용이다. 월별로 꼭 처리해야 할 일이나 시기에 따른 수업 내용 등이 나와 도움이 많이 된다. 그러나 이것들보다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아이들을 대하는 저자의 태도와 마음가짐이다. 아직 모든 면에 낯설고 미숙한 아이들을 충분히 감안하여 대비하는 마음, 성장을 지켜보며 놀랍고 흐뭇한 마음, 정들어 헤어지기 싫은 마음까지. 1년의 사랑의 기록이라고 하겠다. 저자가 아무리 지적으로 월등한 교사라 해도 이런 면이 없었다면 쭉정이에 불과했을 것이다. 나보다 백배 우수한 교사인 저자도 교실 속 혼돈에서 때로는 아찔한 순간도 만나고 아차 싶은 순간도 있고 이게 맞나 고민하기도 한다. 모든 영역을 커버해야 하는 초등교사는 신이 아니므로 모든 면에서 완벽할 수 없고 천리안이 아니므로 모든 상황을 다 꿰뚫고 있을수도 없다. 다만 자신의 배움과 경험의 토대에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학부모-교사, 학생-교사 간에 서로에 대한 신뢰와 호의가 일단 전제되었으면 한다. 이게 너무 지나친 욕심일까.ㅠㅠ
아까 3장에서도 기록에 대해 잠깐 언급했는데 1장을 읽으면서도 내가 적용 포인트로 붙잡은 낱말은 '기록'이다. 나는 쓰는데 거부감이 없는 편인데도 매년 마음먹어도 이 '기록'이 쉽지 않다. 저자는 그것을 그때그때 바로바로 현장에서 하는 노하우를 터득하신 것 같다. 기록에 의한 학교생활 통지와 그에 따른 학부모의 회신에는 신뢰가 가득했다. 이 기록은 또 상담으로 이어진다. 가슴이 뛰었던 구절을 그대로 옮겨본다.
"아주 작은 진보지만 그 작은 진보를 서로 확인할 수 있는 것. 그래서 나는 이런 진보의 기록들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합니다. 그 다음은 기록을 통해 기억을 갱신하고 오늘을 갱신하는 것입니다." (93쪽)
또 아이들의 학습결과물 하나도 허투루 버리지 않고 잘 갈무리하며 가정에 확인시켜 주는 것도 여러 면에서 중요하다. 책으로 엮어주는 방식을 선호하시는 것 같다. 아이들의 학습 결과물을 소중히 여겨주고 공유하며 소통의 자료로 삼는 것은 나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것인데 저자처럼 체계적이지는 못했다. 큰 그림을 그리고 실행을 해봐야겠다. 그리고 1년이 다 지난 후 가정에 보내주는 방식보다는 중간중간 확인할 수 있도록 해주면 다음 활동에 탄력을 받을 수 있겠다. 저자는 부모님의 소감을 회신서로 받으시던데 이건 아이의 성장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연대하는 두 주체의 소통인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난 이걸 잘 시도하지 못한다. "아우 성가시게 뭐 어쩌라고~" 이런 말이 환청으로 들려서리....;;;;; 이 부분 고민이 좀 더 필요하겠다. 어쨌든 일관적인 계획에 의한 아이의 결과물은 아이의 '역사'다. 이 소중함을 알고 있지만 다시 한 번 상기한다.
"발달은 곧 역사입니다." (110쪽)
사실 난 올해도 1학년을 희망할 생각은 없기 때문에(희망대로 되는 건 아니라서 어찌될진 모르지만), 평소 한희정쌤의 글을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었다면 굳이 이 책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읽으면서 몇번이나 읽기를 얼마나 다행인가라고 생각했다. 1학년 교사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는 필독서이고, 다른 학년 교사들에게도 여러가지 시사점들이 있다. 한희정쌤을 보면서 지적인 힘을 공공을 위해 사용했을 때의 선한 영향력을 본다. 그는 어떤 의미에서 시치프스의 돌 같은 공교육을 떠받치고 희망을 이야기하려 애쓴다. 그 희망에 작은 돌 하나라도 괴고 싶은 맘 간절하나 체력도 지력도 부족함이 한이로다....;;;; 한쌤은 계속 배움과 실천을 글로 쓰셔야 한다. 나는 계속 충실한 독자가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