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풀니스 -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
한스 로슬링.올라 로슬링.안나 로슬링 뢴룬드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이 좋다길래 독서모임에서 읽을까 하고 여쭈었더니 다들 찬성하셔서 읽어봤다. 독서력이 좋으신 분들께는 심심풀이 책이 될지 몰라도 나한테는 꽤 걸리는 책일거 같아 개학 전에 읽으려고 서둘러 구입했다. 예상대로 속도가 쭉쭉 나는 책은 아니었다.(내게는) 하지만 매우 흥미로운 건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당연히 그런줄만 알고 있던 것들을 대부분 부정하고 새로운 시각에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호 그렇구나 끄덕끄덕' 하면서 동시에 한쪽 마음은 '그런데 이건 맞는 해석이야?' 라는 의심이 계속 드는 것은... 저자가 말한 본능 중에서 부정 본능인가?ㅠ 그래도 일단 오호 끄덕끄덕 쪽에 집중하자 마음먹고 읽어나갔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하려고 이 책을 썼다. 팩트풀니스(사실충실성)라는 저자의 신조어가 그것을 말해준다. 그것을 가로막는 인간의 극적인 본능 10가지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1. 간극 본능
인간에게는 이분법적 사고를 추구하는 강력하고도 극적인 본능이 있는 것 같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래서 세상을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로 나누고 그 사이에 엄청난 간극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가 보여주는 통계에 따르면 양 극단 사이에 중간층이 존재하며 우리의 고정관념보다 그 층은 실제로 훨씬 두텁다는 것이다.
세상을 두 집단으로 나누는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자는 4단계 구분법을 사용했다. 저자가 설정한 소득수준 4단계에 따르면 나는 4단계(가장 높은 층)에 해당되었다. 일일소득 32달러 이상을 4단계로 분류했는데 32달러면 4만원 정도일텐데 내 직종의 최고 호봉에 거의 다다른 나는 이보다 훨씬 많이 번다. 우리나라 최저임금도 8시간 일한다고 쳤을 때 1.5배가 넘는다. 그렇다면 극심한 사각지대에 처한 빈곤층 말고는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이 4단계라는 뜻 아닌가? 저자도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4단계 삶을 살 게 거의 분명하다."고 밝히고 있으며 "독자가 사는 나라에서 가난이라고 하면 '극도의 빈곤'이 아니라 '상대적 빈곤'을 뜻한다." 라고 말한다. 저자의 4단계 구분법에 따르면 1:3:2:1 정도로 중간층인 2,3단계가 많은 것이 확실하다. 그런데 이 구분과 기준값이 합당한가? 약간은 갸웃한다.

저자는 인류의 삶의 질이 하락보다는 향상되었으며 격차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극단적이지 않음을 말하는데 여기에 온마음으로 동의되지 않는 것은 역시 상대적 박탈감을 염두에 둔 탓이겠지? 지인이 어떤 책을 읽고 "옛날에 안 태어나고 지금 태어나서 너무 다행이다' 라고 말하던 게 생각났다. 지금의 세상이 지옥이라고 한다면 예전의 세상은 그보다 더한 지옥이었던 거지.... 인류는 진보해가고 있다. 그건 사실이다. 4단계 소득수준이 대다수인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가용을 소유하는 것, 원하는 가전제품을 대부분 사용하는 것, 끼니를 걱정하지 않고 때로는 외식에 비싼 돈을 지불하는 것 등이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 못한 형편을 끔찍하게 여길 뿐.... 그런데 과거를 조금만 기억해보면 어릴때 아버지 월급날이나 되어야 엄마는 고기를 사다가 맛있는 반찬을 해주었고, 끔찍하게 덥던 어느 해 여름 나는 만삭이었는데 에어컨을 살 엄두도 내지 못했었다. 지금은 그 모든 것을 당연하게 누리고 있지만.... 그러니 우리가 체감하는 빈곤이란 저자의 말처럼 상대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대적인 것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몸부림치다보니 우리의 삶이 피곤하고 만족이 없고 불행감에 젖어 사는 것이 아니겠나. 안써도 되는 사교육비에 생활비를 쏟아붓고 비정상적인 집값을 지불하면서도 대도시에만 모여 살고... 하지만 어떻게 과거보단 낫다는 이유로 현재에 감사하며 사는 우리가 될 수 있을까. 그래서 좀더 여유있게 주변을 둘러보며 살고, 다양한 직업과 삶의 방식에 자족하며 살 수 있을까. 그것을 모르겠다. 이것이 문제로다.

2. 부정 본능
우리는 세상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 안의 부정본능(좋은 것보다 나쁜 것에 주목하는 본능) 때문이다. 그 원인은 과거에 대한 호의적인 기억(과거는 아름다워~), 자극적이거나 선별적인 보도들(하긴 괜찮은 건 뉴스거리가 되지 않으니까), 이런 세상을 좋다고 말하면 감수성 없는 사람인거 같아서? 등이 있겠다. 솔직히 세번째가 젤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저자는 강하게 말한다. "나는 순진한 소리나 떠벌리는 낙천주의자가 아니다. 나는 아주 진지한 가능성 옹호론자'다." 라고. 즉 세상에 있는 문제를 외면하자고 말하는게 아니라는 것, 발전을 인정하는 것과 더 큰 발전을 위해 싸우는 것은 상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3. 직선 본능
도표의 선이 직선으로 계속 뻗어나갈 것으로 직관하는 본능이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현상은 도표상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S자 곡선, 미끄럼틀 곡선, 낙타혹 곡선 등등... 그러므로 세상은 현재까지의 추세대로만 반드시 직진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이 장은 이해하긴 쉬웠다. 그리고 수학시간에 그래프를 가르칠 때 "이 그래프의 다음 값을 예상해보세요.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같은 문제들이 기억났는데 매우 조심스럽게 설명해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든다. 저자의 이 주장은 저자의 전체 주장을 함정에 빠뜨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세상은 어쨌든간 통계적으로 좋아지고 발전해 왔다고 주장하는 것인데, 지금 이 시점 혹은 아주 가까운 미래가 그래프 상 급락이 시작되는 정점이라면 어쩔 것인가? 아이고, 난 아무래도 저자가 말하는 부정본능과 공포본능에 휩싸인 사람인건가. 일단 다음 장으로 넘어감.

4. 공포 본능
공포는 생존을 위한 본능이지만 위험을 과대평가해서 세상을 오해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자극적인 언론이나 선동가들은 침소봉대를 전략으로 삼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흔히 음모론, 괴담이라 부르는 것도 같은 맥락인 것 같다. 나도 살면서 괴담이나 침소봉대에 부화뇌동하고 흥분한 적이 없지 않았기에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저자가 괜찮다고 하는 것들이 진짜로 괜찮은건가에 대해선 의심이.... 예를들면 방사능에 대한 내용 같은 것... 저자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통계를 보는 방식이고, 때로는 그 안에 잡히지는 않으면서 도사리고 있는 어떤 실체가 있을 때도 있지 않을까.

5. 크기 본능
우리는 제시된 어떤 수치를 보면서 흥분하기 쉽다. 하지만 비교 없이 한 수치만 보면 비율을 왜곡하고 중요성을 오판하기 쉽다. 대중을 호도하기 위한 수치를 던지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걸 판별하는 눈을 가져야겠다.

6. 일반화 본능
사람들은 범주를 정하고 그 안의 특징이 동일할 거라는 일반화를 하곤 한다. 저자도 젊은 의사 시절 엉터리 일반화를 믿고 널리 퍼뜨린 부끄러운 과거를 고백했다. 특별한(예외적) 사례를 전체인 것처럼 인식하는 것, '다수'라는 말 속에도 다양한 층위가 있음을 간과하는 것 등을 조심해야겠다.

7. 운명 본능
터고난 특성이 사람, 국가, 종교, 문화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생각을 말한다. 그래서 그 집단이 현재 어떠한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고 앞으로도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읽고 보니 나도 이런 경향이 꽤 있는 것 같다. 이것이 곧 우월감이나 편견을 가져오는 것 아닐까. 아주 더딘 변화도 무시해선 안된다는 것, 어떤 지식은 유통기한이 빠르니 항상 업데이트 해야 된다는 것을 이 장에서 배웠다.

8. 단일 관점 본능
이 장에서 가장 많이 나를 돌아보았다. 주의를 사로잡는 한 가지 관점에 혹해서 그 관점으로만 세상을 보려는 경향이 내게도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에게도 매우 많아 보인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시간이 많이 절약된다. 어떤 문제를 밑바닥부터 배우지 않고도 의견과 답을 낼 수 있고, 따라서 다른 문제에 신경 쓸 여유도 생긴다. 하지만 세계를 이해하는 데는 올바른 방법이 못 된다. 특정 생각에 늘 찬성하거나 늘 반대한다면 그 관점에 맞지 않는 정보를 볼 수 없다. 현실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이런 식의 접근법은 대개 좋지 않다." (267쪽)
이 점을 인식한다면 불필요하면서도 사나운 논쟁을 상당히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소극적이고 귀찮아서 논쟁 같은 건 웬만해선 하지 않지만, 세상을 보는 눈이 단선적이라는 점은 깊이 인정한다. 망치와 못의 비유가 매우 적절하다. "내가 좋아하는 생각이 망치라면 드라이버나 스패너 또는 줄자를 가진 동료를 찾아보라." (288쪽)

9. 비난 본능
이 내용은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향을 아주 잘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뭣 때문인지 우리는 울분에 차 있고 '팰 놈'을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으며 일단 찾으면 작신작신 밟아서 만신창이로 만들어 놓는다. 힘들게 진실을 밝혀내도 아님말고 하면 끝이다. 양심적으로 역할을 수행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사회 기반을 구성하며, 그 사회 기반에 많은 덕을 보고 살아가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감사를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세계를 정말로 바꾸고 싶다면 누군가의 면상을 갈기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부터 이해해야 한다." (315쪽)
악당이나 영웅보다 원인과 시스템에 집중하자는 저자의 의견에 크게 동의한다.

10. 다급함 본능
지금 당장 결정하라며 몰아치는 일 중에 실제로 다급한 것은 많지 않다. 오히려 차근히 따져보지 않아 우를 범하는 경우가 더 많다. 현실적인 것은 극적이지 않은 것이 더 많다. 말하자면 우리는 더 침착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부화뇌동하지 말고.

혹여나 이 책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개혁이나 혁신 의지를 꺾는다거나 좋은게 좋은거지 뭐~ 하는 안일한 생각을 갖게 하면 어쩌지? 라는 생각이 약간은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진실을 보는 정확한 눈이다. 그것을 토대로 하지 않은 외침이나 주장이 힘을 가질 리 없다. 저자는 말한다.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은 삶을 항해하는데 더욱 유용하다. 그리고 사실에 근거해 세계를 바라볼 때 마음이 더 편안하다는 것이다." (365쪽)
마음 편하기 위해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하나? 그게 중요한거야? 라는 생각이 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는데.... 중요한 것 같기도 하다. 조급하고 비관적이고 절망적인 관점에서는 시야가 좁아지니까.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노력도 반드시 해야하지만 좀더 많은 사람이 좀더 적절하게 더 넓은 안목으로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을 잘 읽었다고 생각한다. 참말로 사람은 평생 배워도 부족하구나. 내 분야에 전문성을 쌓고 겸손하며 신중할 것. 이 긴 리뷰에서 내게 적용할 요약은 딱 이 한 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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