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불허전 학급경영 - 허쌤의 첫 만남 프로젝트
허승환 지음, 허예은 그림 / 꿀잼교육연구소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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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학년이 교실청소, 이사 등으로 각자 빡센 금요일을 보냈다. 동학년 톡에 올라오는 말씀들. "주말엔 푹 쉽시다."
난 주말에도 안 쉴거라고 생각했다. 생각할 것도 해야할 일도 너무 많아서다. 어제 페북에서 애니어그램 유형 특성을 간단히 올린 분이 계셨는데 거기 1유형의 특징으로 이런게 있었다.
"주로 분노와 조바심의 문제가 많다."

나이들며 분노는 조금 덜해지는 것 같은데 반비례로 조바심은 상승한다. 새로운 환경, 그것도 지금까지보다 어려워진 환경 앞에서 내 조바심은 지금 극에 달해 있다. 그러나.... 조바심을 이기는 게 게으름인지, 주말에 안쉬겠다는 결심은 물건너가고 하루종일 조용히 집에서 지냈다. 쉬면서 이 책을 천천히 읽었다. 내 경력이 오래되었고 저자의 다른 책들을 전에 읽었기 때문에 처음 보는 내용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하고 있는 것, 나와는 맞지 않아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 새롭게 해볼 것 들을 분류하며 읽는 작업이 아주 새로웠다. 빠진 구멍을 채우는 느낌도 있어서 아주 알찬 기분으로 책을 읽었다. 특히 경력교사와 신규교사의 문답과 대화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가려운 부분을 꼭 집어 박박 긁어준다는 장점이 있었다. 더이상 친절할 수는 없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300쪽의 책에 첫 일주일의 내용을 시간별로 상세히 담았다.

마음에 여유가 있다면 전체를 개괄하며 리뷰를 쓸 텐데 지금 내 코가 석자라 나의 빈틈을 채울 내용으로 메모한 것들을 중심으로 내가 이해하고 적용한 방식으로 간략히 적어본다. 이 책을 읽기 전에 <학급혁명 10일의 기록> 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정말 그대로 다 하고 싶을 정도로 감동적이었지만 내게는 약간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두 책을 적절히 섞어 3월을 운영하는 것이 나의 목표다. 여기에는 이 책에서 차용할 내용 중심으로 적어보겠다. (내가 지금 정신이 없어 뒤죽박죽일 수도 있음^^;;)

1. 첫날
안전하고 차분한 교실을 만드는 것은 앞으로 꽃피울 학급운영의 전제이자 밑바탕이다. 이를 잊지 않은 상태에서 최대한 환영의 분위기로 이끈다.
1) 소나기 공책을 선물한다. 난 이걸 독서기록으로 쓸 생각이다. 10여년 간 하던 학급 연중 돌려읽기 프로그램과 독후,토론활동은 올해는 포기한다. 대신 적은 양의 책을 함께 읽고 교사가 읽어주는 방법 내에서 최대한의 효과를 꾀해볼 생각이다. 그 외 아침독서, 도서실 독서 시간에 읽은 책의 간단 기록을 여기에 남길까 한다.
2) 교사와 학생 자기소개를 한다. 교사 소개를 할 때는 평화 교실에 대한 교사의 의지를 천명한다. 교사의 의지 표명이 학생활동보다 앞순위다. 아무리 제멋대로인 아이들이라도 교사의 의지 표명은 받아들이는 걸 경험했다. 교사소개에 이걸 잘 녹여야 하는데. 만들어둔 ppt가 있지만 다시 손봐야겠다. 올해도 키워드-퀴즈 소개로 하려고 한다. 학생 자기소개는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 책상 위에 삼각대 같은거 붙이는거 싫어해서리... 그래도 많은 분들이 하시는 방법인데 올해는 해볼까....? 이런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다 교사에게는 생각거리다.
3) 개미술래게임 재밌을 것 같다.^^ 뒷날에 나오는 게임들 중 손님모시기 정도는 첫날에 함께 해도 좋을 것 같다.

2. 둘째날
학급의 구조 조직은 3일 안에 끝내야 한다. 여기서 조직이란 하루의 일과(루틴)를 말한다. 종치면 수업할 수 있게, 교과실로 순조롭게 이동할 수 있게 연습해야 한다.
1) 글쓰기 공책 시작한다. 허쌤은 매일 두줄쓰기와 10줄 주제글쓰기를 하시는데 나는 주제글쓰기만 하려고 한다. 주2회씩 했었는데 적당할까?
2) 우리반의 목표 세우기 : PDC의 가이드라인 정하기와 비슷한 것이다. 난 이걸 버츄카드를 가지고 해봤었는데.... 올해는 인원이 많아 카드가 부족... 방법은 좀더 고민하기로.

3. 셋째날
1) 의미있는 역할 정하기 : 아이들이 남아서 당번활동 같은 걸 하지 않으려면 1인1역이 필요한데 이걸 만족스럽게 짜서 운영하기 힘들다. 내가 제일 많이 써본 방법은 요일 당번제이다. 월봉이, 화봉이로 명명하며, 매일 하는 1인1역 보다는 반응이 좋았다.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의미있는 역할' 정하기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문제는 꼭 필요하지만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는 역할인데, 이 책에서는 그럴 때는 모두가 돌아가며 하기로 해법을 제시했다. 아이들에게 의견을 물어봐야겠다. 결국은 의미있는 역할+요일제로 가지 않을까 예상한다. 의미있는 역할에서 필요한 일들이 다 채워진다면 폭풍칭찬을 해주면 되고.^^
2) 학급 규칙 정하기 : 그동안 가이드라인 정하기까지만 하고 학급규칙을 따로 만들진 않았었는데, 덕목과 규칙은 똑같은 것은 아니니 필요할 것 같다. 허쌤은 모둠토의로 정한 것들을 모아 정리하고 투표하여 최종적으로 정하는 방식을 쓰셨다. 규칙은 정하면 불변이라 못박기보다는 정기적으로 삭제, 추가가 가능하게 열어두는 게 좋겠다. 일상적으로 습관이 되어 잘 지켜지는 것은 빼고, 새롭게 부각된 문제에 대한 규칙은 넣고 이런 식으로.
3) 배움지도 그리기 : 초임 때부터 중요시되던 마인드맵을 아직까지도 아이들에게 지속적으로 지도한 적이 없었다. 나 자신이 별로 활용하지 않아서 큰 덕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올해는 단원 개관이라도 마인드맵으로 시켜볼까? 그리고 차시별 알게 된 내용을 붙임종이에 써서 붙이는 방법이 좋아보인다. 고려해보겠다.
4) 놀이 중 협력 저글링 놀이 재밌을 거 같다. 근데 내가 안해봐서... 돌발상황에 잘 대처할 수 있을래나.^^;;;

4. 넷째날
1) 첫 체육 위기탈출 넘버원 안전지도가 인상적이다. 학교내 사고가 많다고, 뛰거나 장난치지 말라고 하는 건 다 너희들의 안전 때문이라고 수없이 말했지만 입만 아플 뿐이었다. 학습지까지 제시해 주셨으니 해봐야겠다.
2) 올베우스 4대 규칙 중 1 "우리는 다른 친구를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를 지도할 때 먼저 괴롭힘의 의미를 장난과 비교하여 인식시키는 것은 중요하다. "장난이었다"는 핑계가 많기 때문이다. 이때 행감바(이 책에선 어기바)를 함께 지도하고 이때 감정툰 카드를 사용하면 효과적.
3) 학교폭력지수 단계표가 있는데 난 이건 일단 안써보겠다. 학교폭력이란 말을 최대한 안쓰고 싶어서다. 해결할 수 있는 갈등도 학폭으로 몰고가는 세태에 위기를 느낀다. '친구 갈등를 막아주는 세 마디'는 아주 적확해서 기억해 놔야겠다. "너 쟤랑 놀면 절교야, 걔랑 나랑 누가 니 친구야 선택해, 쟤 좀 재수없지 않아?"
<파워북>이라는 책을 읽고 힘의 불균형에 대해서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고 싶었는데, 이 책에 유튜브 영상이 소개되어 있다. 페이스북에서 한때 엄청 봤던 영상이다. 회복탄력성이라는 말도 함께 지도 가능하겠다.

5. 다섯째 날
1) 올베우스 평화규칙 2 "우리는 괴롭힘 당하는 친구흘 도울 것이다." 이때 방관자가 아닌 방어자의 위치로 돌아서는 일이 중요함을 지도한다.
2) 학급평화회의 : 작년 2학년과는 자주 했는데 6학년은 시간이 날지 모르겠다. 허쌤은 한주의 마지막 시간에 도덕과를 배치하여 진행하셨다. 좋아바를 돌아가며 말하기로 진행한다. 칭찬과 감사 나누기를 할 때 가장 듣고싶은 칭찬, 격려의 말을 붙임종이에 써서 왼쪽 사람에게 주면 그걸 보고 오른쪽 사람에게 그대로 말해주는 방식이 좋았다. 나는 말로 했었는데 그게 좀 민망할 수도 있으니 붙임종이 방식이 더 좋겠다. 훈훈한 분위기가 될 것 같다.

6. 여섯째 날
배움 덕목 만들기 : 가이드라인이나 규칙 만들기에서 다 커버해버리고 싶은데 안될라나? 허쌤은 배움덕목 정하기를 따로 하셨다.

7. 일곱째 날
가치사전 문장퍼즐게임 : 덕목(가치)에 대한 사전 쓰기는 많이 해봤는데 문장퍼즐게임하기는 안해봤다. 고학년 수준에 맞을 것 같고 재미있겠다.

나의 목표는 '배움과 성장이 있는 평화로운 교실' 이다. 상처와 두려움이 없는 교실, 문제가 있으면 함께 해결하는 교실을 만들고 싶다. 많은 역경이 있겠지.... 나오는 한숨을 참으며 책을 읽고 준비한다.

올해는 저자인 허쌤과 동학년이다. 직접 만날 수 있는 거리에 근무하는 것도 아니건만 마음 한쪽이 든든하다. 허쌤의 기록과 실천을 늘 가까이 두고 따라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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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에 숨어 있는 민주주의 씨앗- 신라 화백 회의부터 촛불 집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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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북 : 누가, 왜, 어떻게 힘을 가졌을까? - 2020 아침독서신문 선정도서, 2020 4월 학교도서관저널 추천도서, 2020 한국학교사서협회 추천도서, 2020 고래가숨쉬는도서관 신학기 추천도서 천개의 지식 10
클레어 손더스 외 지음, 조엘 아벨리노 외 그림, 노지양 옮김, 록산 게이 외 추천 / 천개의바람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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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우리 말로는 힘. 한자어로 '~력'으로 끝나는 다양한 말들을 살펴보면 힘의 본질을 어느정도 파악할 것 같다. 권력, 능력, 경제력, 정치력, 영향력, 통제력, 경쟁력, 지배력.... 이 책은 '누가, 왜, 어떻게 힘을 가졌을까?' 라는 부제처럼 사회적, 역사적으로 '힘'을 조명해보는 책이다. 록산 게이의 추천사에 있는 문장을 옮겨본다."저는 평범한 사람들이 힘의 본질을 더 잘 이해할수록 힘을 가진 사람들이 더 큰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통해 함께 배워봐요. 힘을 갖는다는 건 어떤 것이고 그 힘으로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어떤 변화를 만들 수 있을지 이야기해 봅시다."

나도 힘에 대해 관심이 있다. 넓은 범위까진 아니고 교실이라는 좁은 사회 안에서 벌어지는 힘의 속성과 역동에 주목한다. 그러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 교실 평화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힘을 추구하는 본능이 있는 것 같다. 이것을 권력이라 하겠다. 아이들 사이에서도 가진 자원이 다르고, 인기와 영향력도 다르다. 그러면서 힘은 고루 분산되기 보다는 편중된다. 많이 가진 아이에게 권력이 주어지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여러가지 양상이 전개된다.
1. 어떤 아이는 본인에게 그런 권력이 있다는 것을 의식조차 못한다. 혹은 알아도 굳이 내세우지 않는다. 그 권력은 행사되지 않고 그냥 사라진다.
2. 어떤 아이는 그 힘을 좋은 곳에 쓴다. 자신도 정의롭게 행동하고 자신을 따르는 아이들도 그럴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돕는다. '선한 영향력'이라 부를 수 있겠다.
3. 어떤 아이는 주어진 알량한 권력을 행사하지 못해 안달한다. 남들을 강제하여 자신의 파워를 확인하고 싶어하고 그 안에서 자존감을 채운다.
4. 어떤 아이는 대단히 편중된 권력을 갖고 있으며 그것을 휘두른다. 수직적인 권력관계(서열)가 형성되어 관계엔 두려움이 내재되어 있다. 관계적인 폭력이 싹트고 수동적으로 따르는 아이들과 괴롭힘에 신음하는 아이들이 생겨난다.

1,2가 대다수인 학급이라면 걱정할 게 없다. 수업만 잘 준비하면 아이들은 잘 배우며 성장한다. 문제는 3,4인데 이런 경우가 굉장히 많다는게 힘든 점이다. 인간이 권력을 쫓는 본능을 갖고 있어서인지.... 힘을 고르게 갖는 것, 가진 힘을 선하게 행사하는 것, 잘못된 힘이 행사되고 있을 때 이를 바로잡는 것 등을 아이들에게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민주시민교육이자 인권교육일 것이다.

이 책이 나온 것은 그래서 배우 반가운 일이다. 위의 교실상황과 관련해 '운동장 권력'이라는 꼭지가 있었다.(16~17쪽) 이 꼭지를 읽으면서 이인호 작가의 <팔씨름>이라는 단편집이 떠올랐다. 그 작품을 온작품읽기로 읽고 교실 속 권력행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며 이 책도 함께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서 이 책은 세상을 바꿔왔던 여러가지 힘들을 소개한다. 절대권력이 아닌 진정한 지도력을 발휘했던 지도자들, 세계대전의 비참함을 겪고 설립한 국제조직(UN), 누구나 한표의 권리를 갖게 된 선거, 새로운 세상을 앞당겼던 다양한 형태의 혁명... 등

다음 장에선 여러가지 불평등과 부당함, 차별에 관련된 꼭지들이 나온다. 이는 힘의 잘못된 적용의 원인이 되는 것들로, 소수자들에게 힘을 보태 주어야 할 사례들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세계관, 인종주의, 남녀문제, 무지갯빛 권리, 장애... 등에 대한 꼭지들로 되어있다. 이 장의 마지막 꼭지는 '보이지 않는 힘' 인데 이것은 불문율, 다시 말하면 사회규범을 뜻한다. 사회규범은 인간의 도리를 지키게도 하지만 변화하는 사회를 따라잡지 못하고 차별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이 꼭지에서 여러가지 상황들이 떠올랐다.

마지막 장에선 '나의 힘'을 다룬다. 자신의 힘을 키우는 방법이라고 할까. 자존감을 키우는 것, 배우고 생각하는 것, 자신의 생각을 퍼뜨리는 것 등을 제시하고 있다. 납득이 가는 것들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원리인 '힘'을 이렇게 다각도에서 어린이 눈높이로 다룬 책이 또 있을까. 펼친화면 두 쪽에 한 꼭지의 내용을 배치하고 꼭지마다 깨끗하고 선명한 바탕색의 변화가 돋보인다. 눈길을 끌 뿐 아니라 흥미를 잃지 않고 넘기기에 좋은 구성이다. 그림도 글을 보조할 정도로 적당하게 들어있다. 무엇보다 '힘'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이 사회의 전반을 비춰본다는 점이 놀랍고 신선하다.

힘은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나누어 고루 가지며, 가진 힘을 선하게 사용하고, 어떤 힘을 어떻게 견제하여 부당한 힘의 행사를 막을 것인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통찰을 이 책은 제공한다. 자신이 속한 작은 공동체에서부터 국가, 세계라는 공동체까지. 학년 수준에 맞추어 범위를 확대하며 생각해 보면 좋을 것이다. 자신이 가진 힘의 크기를 가늠하고 그것을 귀하게 사용하고 참된 힘을 기르는 일이 학생들의 과업임을 깊이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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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놀이 82 - 일상의 그림책이 놀이로 연결되는
성은숙 외 지음 / 교육과실천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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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그림책과 관련된 책이 어찌나 많이 쏟아져 나오는지, 비슷한 제목의 책들도 많아 헷갈릴 정도다. 학교도서실 교사용 도서로 착실히 구입해두곤 했는데 요즘은 너무 많아 포기했다. 서가도 좁은데 한쪽 분야 책만 너무 많아도 안될거 같아서... 그정도로 그림책에 대한 관심은 어느순간 폭발적으로 확대된 것 같다. 그만큼 그림책이 아이들의 발달과 성장에 긍정적인 도움을 주고, 예술로서의 가치도 있으며, 수업활용이 다양하게 용이하고, 나아가 어른들에게도 큰 의미와 위로를 주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처음에 이 분야에 대해서 읽은 책은 2007년에 나온 <그림책과 예술교육>이라는 책이었다. 유아교육 교수님이 쓰신 책이었는데 그 책을 읽으며 '읽어주는 것' 이상의 활용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사례들은 유치원 사례들이었지만 참고가 많이 됐다. 그 중의 한 사례를 변형해서 공개수업으로 구성해본 적도 있다. 하지만 깊이있는 공부가 부족해서 더 나아가진 못하고 쏟아지는 그림책수업 책들도 읽어보지 못하고 있던 중에 이 책을 골라들게 됐다. 딸과 친구들이 유아교육 쪽을 공부하고 있어서 소개해 주고 싶은 맘도 있고, 처음에 읽었던 <그림책과 예술교육>의 영향일 수도 있다.(이제 그 책 내용은 다 잊어버림ㅎ)

유아교육에서의 수업은 대부분 놀이활동으로 진행될테니, 책의 제목도 '그림책 놀이'고 영역별로 다양한 놀이활동들이 소개된다. 상상놀이, 인성놀이, 자연놀이, 문제해결놀이. 모두다 입맛 당기고 궁금하다. 차례에 그림책 제목들이 함께 나오는데 아는 책은 아는 책대로, 모르는 책은 모르는 책대로 관심이 간다.

1. 상상놀이
어른보다 아이들이 잘하는 것, 첫번째가 상상 아닐까. 아이들은 즉각 상상에 빠져들 수가 있다. [곰 사냥을 떠나자] 책을 읽고 즉석에서 소품들을 준비해 마임놀이를 한다. 이 활동에서 내가 다시 떠올린 건 소품의 효과다. 제대로 된 소품이 아니라 '그렇다고 치는' 소품 말이다. 연극놀이 연수에서 보자기 하나 가지고 별거별거 다했던 기억이 나는데, 여기서도 큰 비닐봉지, 한지 같은 것으로 즉석에서 장소 전환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나머지는 아이들이 한다. 상상의 힘으로.^^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에선 빙 둘러 긴 줄을 함께 잡고 큰 만두피를 빚는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선 스카프 한 장씩을 들고 괴물 나라로 여행을 떠난다. 마스킹테이프 하나면 바닥에 큰 텔레비전을 그려 그 안에서 마술놀이를 할 수도 있고, 몇 가지 색깔 천과 블록으로 동물들의 마을을 구성할 수도 있다. 이걸 보면서 장난감 하나 없었던 나의 어린시절이 떠올랐다. 거의 모든 놀이는 상상놀이였지. 요즘 아이들에게 필요한 놀이도 이런 놀이가 아닐까. 비싼 걸 사주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는.

2. 인성놀이
이 장에서 처음 나온 [친구는 좋아!] 책의 활동은 주로 첫만남의 활동들인데 초등에서도 많이 하는 놀이들이라 반가웠다. 자기소개놀이, 반가워놀이(자리바꾸기 놀이), 이름맞추기 놀이 등.... 다가올 3월을 위해 이 그림책을 읽어봐야겠다. 그 외에도 도움, 가족, 생명존중, 남의 입장 이해 등의 키워드로 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과 관련 책들이 소개되어 있다. [우리 동네 한 바퀴] 책으로 하는 동네 수업도 관심있게 봤다. 같은 주제 수업이 초등에도 나오기 때문이다. 살고 싶은 동네 만들기 활동도. 나는 주로 상자 등의 재활용품을 사용해서 만들었는데 이 책의 유아들은 유닛블록 등을 이용해 만들거나 마커로 바닥에 그리기도 한다.(그게 깨끗이 지워지나?) 이게 훨씬 더 재미나 보인다.ㅎㅎ 차이가 있다면 일시성이란 점. 곧 해체해야 하니 아쉬움이 크겠다. 하지만 사는게 다 그런건데. 쌓고 허물고.^^

3. 자연놀이
학교보다는 확실히 유치원에서 자연놀이를 많이 하시는 것 같다. 학교도 가능한 한 많이 하는 것이 아이들 정서에 좋을 거라 생각하지만 나는 이쪽에 좀 취약한 편이다. 꽃으로 하는 활동, 그림자 활동, 비오는 날 활동, 나뭇가지로 하는 활동, 마지막으로 줄로 하는 활동이 소개되어 있다. 내 동생이 공동육아 아빠들과 밧줄놀이를 기획해서 하곤 했는데 여기에도 비슷한 활동이 나온다. (요즘은 아이들이 긁히기만 해도 골치아픈 세상이라 이런 건 엄두가 잘 안 남ㅠ) 그 외에도 줄로 표현하는 놀이, 털실로 손뜨개 활동까지 나온다.

4. 문제해결놀이
이 주제로 두 장이 배정되어 있다. '생각과 행동을 조절하는'과 '소통하고 관계를 맺는'이다. 유아들이 부딪히는 문제도 초등 아이들과, 어쩌면 어른들과도 큰 차이가 없는지도 모른다. 이 장에 익숙한 책들이 많이 나왔다. [도서관에 간 사자] 부터 시작해서 긍정적 타임아웃을 다룬 [제라드의 우주 쉼터]도 나오고 [소피가 화나면 정말정말 화나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말] 등등. 이를 통해 규칙, 감정조절, 행동조절, 바른 언어 생활 등을 배운다.

이렇게 하여 총 82종의 알찬 놀이가 소개된다. 적당히 큰 판형에 너무 빡빡하지 않고 부담없는 지면 구성이 편안하다. 사진자료와 설명도 시원시원하고 간결한 느낌이면서도 과정과 상황을 잘 파악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일단 일독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다시 찾아 읽으면 도움이 많이 되겠다. 읽으면서 유치원 선생님들의 수업강도와 준비작업에 새삼 감탄을.... 이런 과정을 거쳐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오는구나 하는 것도 알게 되었고, 학교에서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도 생각해보게 된다. 모든 걸 떠나서 몰랐던 그림책 몇 권, 새로운 아이디어 몇 개를 챙긴 것만으로도 책을 읽은 보람은 넘친다.

유초중을 막론하고 머리를 맞대고 연구하고 적용하고 사례를 모으고 정리하는 교사들의 열정은 눈부시다. 교육현장이 갈수록 힘들지만 이런 선생님들의 책이 세상에 나와 조금씩이라도 더 비옥해질 거야, 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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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카와 겁을 먹고 자라는 돼지 우리학교 그림책 읽는 시간
루이제 미르디타 지음, 윤혜정 옮김 / 우리학교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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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제...는 많이 들어본 이름이지만 미르디타...는 처음 들어본다. 독일의 작가라고 한다. 그런데 1994년생...? 와우, 20대의 젊은 작가네. 앞날이 창창한 젊은 나이에 이런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니 부럽다. 그림책에 대해 전문적으로 알진 못하지만 이 책은 참 잘 만든 것 같다. 그림도 아주 인상적이고 메시지와 상징도 좋다.

절반정도까지는 단색의 그림인 줄 알았다. (완전 흑백은 아니고 약간의 갈색조. 그래도 무채색의 느낌이 든다.) 절반 이후부터는 조금씩 색이 들어오다가 마지막장은 완전 칼라다. 앞면지와 뒷면지도 이런 식으로 대비된다. 이건 주인공의 심리를 반영한다.

가장 큰 상징은 돼지다. 제목을 봐도 알 수 있다. <아니카와 겁을 먹고 자라는 돼지> 근데 난 제목이 거의 답을 말해주는 게 살짝 아쉽다. 독일어를 몰라서 확실치는 않지만 원제는 그냥 '아니카와 불안 돼지' 정도인 것 같은데. 그것도 좀 어색하고.... 고심해서 고른 제목일테니 가장 적당할테지만 그래도 제목은 간결해야 더 매력적이었을 것 같다. '아니카와 어떤 돼지' 정도? 이건 너무 밍밍하고, 아이고 모르겠다!^^;;;;

어두운 밤 아니카의 침대에 처음 나타난 돼지.
"처음 나타났을 때, 돼지는 아주 작았어요."
그러나 돼지는 점점 커지고, 어디서나 아니카를 지켜보며 참견하고 무시하고 비웃는다. 아니카는 발표할 때 말을 더듬고, 심지어 가장 자신있던 노래도 망쳐버린다. 돼지의 몸집은 이제 거대해져서 존재감이 대단하다. 그림책 한 쪽에 다 들어찰 정도. 아니카를 악질적으로 놀리는 두 녀석과 함께 쫓아오는 돼지는 무시무시하다.

도망치던 아니카는 풀밭에서 한 아이를 만났다. 아이가 건네주는 달팽이를 손에 올려보며 둘은 바로 친구가 되었다. 혼자가 아니란 건 이런 것이다. "괜찮다" 라는 느낌.
그때 악당녀석들이 또 나타났다. 친구는 녀석들을 용감하게 쫓아버린다. 이 장면부터 그림은 칼라가 선명해진다.

그러나 다음날 함께 등교한 두 아이는 달팽이들이 들어있던 유리병이 악당녀석들 손에 들어가 있는 것을 발견한다. 잔인한 짓에 아니카는 분노한다. 녀석들에게 진심으로 화를 낸다. 당당하게!

돼지는 어느새 처음처럼 작아져 있다.
"돼지는 점점 작아지고 있어요.
그렇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있어요.
그러니까 돼지를 제대로 다루는 방법을 알아야 해요."
돼지를 제대로 다루는 방법이란 어떤 것일까?^^

내 안의 돼지의 존재에 난 공감한다. 아이들도 대부분 그러리라 생각한다. 겁을 먹으면 먹을수록, 그걸 영양분 삼아 무럭무럭 자라는 돼지.... 있는 능력도 발휘하지 못하게 막고, 나의 도전을 비웃고, 열등감과 무력감에 빠뜨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는 돼지. 이 돼지의 존재를 인식하고 조절할 수 있다면, 장벽에 막히지 않고 아니카처럼 나아갈 수 있을 텐데. 겁이 앞서서 있는 능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좌절하는 아이들에게 이 책은 인생책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숨지 말자. 당당히 말하자.

또 한 가지 중요한 것. 그런 마음을 낼 수 있도록 안정된 마음을 준 건 친구라는 존재였다. 옆에 있는 존재. 단 한 명이었어도 없는 것과 있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커져버린 돼지에 짓눌린 이가 있다면 옆에 있어주는 것. 꼭 필요한 일이다.

손에 잡히지 않는 마음의 어떤 작용을 '돼지'로 형상화한 것은 아이들을 위해서 참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다룰 수 있는' 어떤 것으로 이미지가 인식되기 때문이다.
"돼지에게 먹이를 주지 마."
"돼지의 비웃음에 굴복하지 말아요."
겁쟁이들이 많은 교실이라면 이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겠다. 돼지에 맞서는 일에 서로서로 격려해 준다면, 여기저기서 즐거운 자기 고백들이 쏟아져 나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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