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카와 겁을 먹고 자라는 돼지 우리학교 그림책 읽는 시간
루이제 미르디타 지음, 윤혜정 옮김 / 우리학교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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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제...는 많이 들어본 이름이지만 미르디타...는 처음 들어본다. 독일의 작가라고 한다. 그런데 1994년생...? 와우, 20대의 젊은 작가네. 앞날이 창창한 젊은 나이에 이런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니 부럽다. 그림책에 대해 전문적으로 알진 못하지만 이 책은 참 잘 만든 것 같다. 그림도 아주 인상적이고 메시지와 상징도 좋다.

절반정도까지는 단색의 그림인 줄 알았다. (완전 흑백은 아니고 약간의 갈색조. 그래도 무채색의 느낌이 든다.) 절반 이후부터는 조금씩 색이 들어오다가 마지막장은 완전 칼라다. 앞면지와 뒷면지도 이런 식으로 대비된다. 이건 주인공의 심리를 반영한다.

가장 큰 상징은 돼지다. 제목을 봐도 알 수 있다. <아니카와 겁을 먹고 자라는 돼지> 근데 난 제목이 거의 답을 말해주는 게 살짝 아쉽다. 독일어를 몰라서 확실치는 않지만 원제는 그냥 '아니카와 불안 돼지' 정도인 것 같은데. 그것도 좀 어색하고.... 고심해서 고른 제목일테니 가장 적당할테지만 그래도 제목은 간결해야 더 매력적이었을 것 같다. '아니카와 어떤 돼지' 정도? 이건 너무 밍밍하고, 아이고 모르겠다!^^;;;;

어두운 밤 아니카의 침대에 처음 나타난 돼지.
"처음 나타났을 때, 돼지는 아주 작았어요."
그러나 돼지는 점점 커지고, 어디서나 아니카를 지켜보며 참견하고 무시하고 비웃는다. 아니카는 발표할 때 말을 더듬고, 심지어 가장 자신있던 노래도 망쳐버린다. 돼지의 몸집은 이제 거대해져서 존재감이 대단하다. 그림책 한 쪽에 다 들어찰 정도. 아니카를 악질적으로 놀리는 두 녀석과 함께 쫓아오는 돼지는 무시무시하다.

도망치던 아니카는 풀밭에서 한 아이를 만났다. 아이가 건네주는 달팽이를 손에 올려보며 둘은 바로 친구가 되었다. 혼자가 아니란 건 이런 것이다. "괜찮다" 라는 느낌.
그때 악당녀석들이 또 나타났다. 친구는 녀석들을 용감하게 쫓아버린다. 이 장면부터 그림은 칼라가 선명해진다.

그러나 다음날 함께 등교한 두 아이는 달팽이들이 들어있던 유리병이 악당녀석들 손에 들어가 있는 것을 발견한다. 잔인한 짓에 아니카는 분노한다. 녀석들에게 진심으로 화를 낸다. 당당하게!

돼지는 어느새 처음처럼 작아져 있다.
"돼지는 점점 작아지고 있어요.
그렇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있어요.
그러니까 돼지를 제대로 다루는 방법을 알아야 해요."
돼지를 제대로 다루는 방법이란 어떤 것일까?^^

내 안의 돼지의 존재에 난 공감한다. 아이들도 대부분 그러리라 생각한다. 겁을 먹으면 먹을수록, 그걸 영양분 삼아 무럭무럭 자라는 돼지.... 있는 능력도 발휘하지 못하게 막고, 나의 도전을 비웃고, 열등감과 무력감에 빠뜨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는 돼지. 이 돼지의 존재를 인식하고 조절할 수 있다면, 장벽에 막히지 않고 아니카처럼 나아갈 수 있을 텐데. 겁이 앞서서 있는 능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좌절하는 아이들에게 이 책은 인생책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숨지 말자. 당당히 말하자.

또 한 가지 중요한 것. 그런 마음을 낼 수 있도록 안정된 마음을 준 건 친구라는 존재였다. 옆에 있는 존재. 단 한 명이었어도 없는 것과 있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커져버린 돼지에 짓눌린 이가 있다면 옆에 있어주는 것. 꼭 필요한 일이다.

손에 잡히지 않는 마음의 어떤 작용을 '돼지'로 형상화한 것은 아이들을 위해서 참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다룰 수 있는' 어떤 것으로 이미지가 인식되기 때문이다.
"돼지에게 먹이를 주지 마."
"돼지의 비웃음에 굴복하지 말아요."
겁쟁이들이 많은 교실이라면 이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겠다. 돼지에 맞서는 일에 서로서로 격려해 준다면, 여기저기서 즐거운 자기 고백들이 쏟아져 나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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