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얼굴을 찾고 있어 바일라 18
김혜진 지음 / 서유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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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한 편에 얼마나 많은 작가의 생각과 경험과 시간이 들어가 있는지 이 책을 보고서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러고보면 소설을 쓰는 것만큼 가성비가 떨어지는 일도 없다. 그 시간에 무슨 알바를 하더라도 그보다는 많이 벌 것이다. 베스트셀러 쯤 된다면 예외겠지만....

박물관을 좋아하는 고1 여학생 이해솔. 이 아이가 화자다. 박물관이라니, 흔한 취향은 아닌데, 얘는 단순 취향만은 아니고 혼자 있을 수 있는 도피처로 활용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곳이 국립중앙박물관이어서 배경으로 자주 나온다. 작가 또한 그곳에 자주 가셨구나 하는 걸 읽다보면 느끼게 된다. 나는 기억이 오래되어 희미해서 좀 아쉬웠다.

왜 붙어있는지 모르겠는 양극단의 두 아이. 서루아와 지태희. 루아는 때로 생각이란 게 있는지 의심될 정도로 무턱대고 덤비며, 요란스럽고 시끄러운 스타일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대책없는 스타일. 하지만 왠지 루아는 그렇게 밉진 않더라. 작가님의 애정이 들어간 탓이겠지.

빈틈없는 우등생 지태희. '마지막 신라인 윤경렬'이라는 분이 태희의 돌아가신 외가 친척 할아버지라고 한다. 실존했던 인물의 소설 속 등장!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그분이 바로 작가님의 친척이라고 한다. 소설의 최초 씨앗이 여기서 나왔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윤경렬이라는 분은 원래 함경도 태생이지만 일본에 갔다가 경주에 정착했다. 일본에서 토우 인형 제작을 배워왔는데, 그것으로는 우리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없다는 조언을 듣고 깨달은 후, 경주에서 신라문화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전파하는데 평생을 바치셨다고 한다. 태희는 할아버지가 찾던 그 '얼굴'을 찾으려 하고, 루아는 그 옆에 덤벙거리며 동행한다. 그러다 박물관에서 이해솔과 뜻밖의 만남을 하게된 것이다.

실존인물 윤경렬 님의 생애도 작품 속에서 비중이 높지만 아무래도 중요한 서사는 세 아이의 내면이다. 고학년 동화나 청소년 소설을 아주 많이는 아니지만 꽤 읽어본 편이라 갈등과 상처, 방황과 고민들도 이젠 거기서 거기로 보일 때도 있다. 겪는 개개인에겐 우주만한 크기의 고민이겠지만 무뎌진 주변인에겐 "그것도 한때야. 다 지나간다." 뭐 이런 느낌?

이 책의 아이들의 문제도 다른 책들에 비해 그렇게 강렬하다고 볼 순 없었다. 그렇다. 때가 되면 지나갈 문제일 수도 있고 아이들이 나름 잘 버티고 애쓰고 있는 문제이기도 했다. 이 책에서 벌어진 아이들의 일탈은 큰 사고는 아니어서 하루의 해프닝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고 학교에서의 처리도 원만했다. 하지만 이런 다행스러운 하루의 일탈 속에서 살짝 보여준 아이들의 진심, 혼자만 품고 있었던 아픔들을 느낄 때 이모심정(?)으로 아이들을 응원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잘 품고 있어서 그렇지 그 아픔들은 작은 게 아니었는데, 그걸 그정도에서 마무리하고 다시 일상을 챙기는 아이들이 너무 대견했다. 실제로 이와 비슷한 아이들도 있겠지.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자신을 파괴하는 아이들도 있고. 이 책은 교훈을 주려는 책이 절대 아니지만 또래 아이들이 읽고 자신들의 표현방식을 돌아봤으면 하는 마음도 생겼다. 부디 불의 크기를 조절하기를. 놓쳐버리면 모든걸 다 사르게 된다.

세 아이의 일탈은 무단결석과 경주행이었다. 목적지가 경주인 이유는 짐작할 것이다. 제목도 그걸 말해준다. <우리는 얼굴을 찾고 있어> 이게 한 가지 의미가 아니었다는 게 마지막에 좀 반전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느낀 건 어른들도 깨닫기 힘든 것들이었다. 사실 문제는 부모들한테 있는 건데, 그때문에 상처받고 아파하는 아이들이 안타깝다. 이제는 부모 인생의 그늘에서 좀 벗어나면 안되나? 시대가 달라졌다고 해도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 이 아이들은 지금 진통을 겪으며 그걸 해내고 있는 중일수도.

"그곳에 뿌리가 있는 것도, 가족의 역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상자 속의 아기는 왕이 되고 외지인은 역사가 되었다. 나 역시 그럴 수 있을까. 세상의 벽은 내가 두려워했던 것보다 높지 않을지 모른다. 또 어떤 우연이 나를 우연한 각도의 시야로, 풍경으로 데리고 갈 수도 있다." (183쪽)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우린 아직 헤매고 있다. 많이 헤맬 테니까 많은 답을 찾게 될 것이다. 동그라미나 빗금이 쳐지지 않을, 질문보다 길어질 답들을." (188쪽)

"얼굴을 본다는 건 결국 마주보는 것이었다.
나는 사실 내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나 보다.
이 마음을 받아들이는 데까지 오래 걸렸다."
(지태희의 반성문, 아니 여행소감문 중에서)

폭발하고 떼쓰는 아이들보다 삼키고 참는 아이들이 더 마음이 가고 안쓰럽다. 그 아이들에게 이 책이 선물이 되고 친구가 되면 좋겠다. 그 아이들의 부모님들도 읽어보시면 좋은데. 청소년소설을 읽는 부모님이 많이 계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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