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빨간 공 우리학교 그림책 읽는 시간
마쓰오카 코우 지음, 황진희 옮김 / 우리학교 / 2022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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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피 금지!
이 예쁜 책의 내용을 이 딱딱하고 재미없는 네 글자로 표현하는 나는 얼마나 딱한가.ㅎㅎ

난 회피하려는 욕구가 강한 편이다. 이 책의 송송이는 내 모습과 비슷하다. 하지만 산다는건 계속 내몰리는 일이기에 많이 회피하면서 살지도 못했다. 그래서 내가 쓰는 전략은 '일 벌이지 않기'. 작은 범위 안에서 꼼지락거리며 사는 거다. 너무 미루면 마음의 고통이 더 커질 걸 아니까 마감일 오기 전에 약간 미리 하는 것과 꾸준히 조금씩 하는 것도 내 전략이다. 하지만 그걸로도 안되는 순간들이 있기 마련이지.

표지에 파란 꽃이 가득한 배경 위에서 주인공 송송이가 빨간 공을 발견하고 손을(앞발을^^) 뻗고 있다. 귀엽고 생생한 표정, 색연필로 그린 그림의 따스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특징이다.

속표지엔 송송이와 친구들이 커다란 나무에 붙은 광고를 보고 있다. "금요일에 가창 시험이 있습니다." 이어서 넘긴 첫장에서 송송이와 친구들의 대비되는 표정이란. 웃으며 얘기나누는 친구들. 혼자 떨어져 풀이 죽은 송송이. 송송이에게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부른다는 건.... 너무나 부담되고 두려운 일이었던 거다. 나도 그 심정이 이해된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다 송송이가 발견한 것이 표지에 나온 저 빨간 공이다. 송송이는 빨간 공과 관련된 옛이야기를 떠올렸다. 옛날, 시간을 건너뛰게 하는 마법의 빨간 공을 받은 아기소가 있었다. 마법사 할머니는 꼭 필요한 때만 사용해야 한다고 당부했지만 아기소는 뭔가 귀찮고 하기 싫은 일이 생길 때마다 빨간 공을 사용했다. 결국 눈깜짝할 사이에 늙어버렸다.

송송이는 이 공이 바로 마법의 그 공이라고 확신했다. 가창시험 때 사용하려고 잘 챙겨왔다. 공을 손에 넣게되자 건너뛰고 싶은 순간들이 많아졌지만 그때마다 이야기 속의 아기소를 생각하며 '이정도는 참아야 해.' 하고 견뎠다.

드디어 그 순간이 다가왔다. 송송이의 마음 속은 아직도 갈등중이다. 빨간 공을 쓸까 말까.... 처음 같았으면 당연히 썼겠지만 지금은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번 주에는 힘든 일이 많았지만
공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잘 이겨냈어.
막상 해 보니까 생각만큼 힘들지 않았어.'
게다가 힘내라고 옆에서 응원하는 친구들까지. 마침내 송송이는 빨간 공을 내려놓고 앞으로 나가 눈을 질끈 감고 노래를 불렀다. 눈을 떠보니 친구들이 모두 박수를 치고 있었다. 화면이 온통 노란색으로 바뀌고 나비가 날아다닌다. 뿌듯함과 만족감에 빠진 송송이.

다음장은 표지와 같은 파란 꽃밭이다. 빨간 공은 여기에 있고 저만치에 걸어가는 송송이의 뒷모습이 보인다. 뒷모습만 봐도 행복해 보인다. 빨간 공이 진짜 마법 공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제 송송이에게 마법은 필요없다는 것. 송송이는 어떤 일이 닥쳐도 회피하지 않을 테니까.

내 생각엔 가창시험에서 꼭 성공하는 결말이 아니어도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삑사리가 났어. 하지만 끝까지 불렀어. 친구들은 비웃지 않고 박수를 보내줬어. 어쨌든 끝까지 부르고 나니 속이 시원했어. 이런 결말이어도 좋았을 것 같다. 우리의 모든 시도가 다 성공하진 않기 때문이다.

빨간 공을 들판에 두고 떠나는 송송이의 뒷모습을 가장 명장면으로 꼽겠다. 뒷표지에 반복해서 나오기도 한다. 빨간 공은 '회피'의 상징이다. 송송이는 그걸 내려놓았다. 견뎌서 이겨내는 편이 훨씬 행복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 경험이 사람을 단단하게 하고 더 큰 사람으로 만든다. 회피자들은 알 수 없는 큰 세계를 품는다.

회피의 유혹을 받는 나와 아이들에게 이 책은 떠올려줄 것이다. 빨간 공을 내려놓고 비로소 행복해진 송송이의 모습을. 다 읽고나서 송송이의 표정만 따라서 한번 더 넘겨보아도 재미있다. 처음 만난 이 작가는 표정이 살아있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그림, 강요하지 않지만 훅 다가오는 메시지로 기억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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