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는 여우 우리학교 그림책 읽는 시간
카이야 판눌라 지음, 네타 레흐토라 그림, 이지영 옮김 / 우리학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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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작가인 것 같은데? 라며 살펴보았더니 작가의 첫 책이라 한다. 글작가도 그림작가도 모두 핀란드 사람이다. 어떻게 국내 출판사와 연결되었을까 살짝 궁금하기도 하다. 당연히 작품은 참 좋다. 글도 그림도.

<그림 그리고 싶은 여우> <혼자 있고 싶은 여우> <장미와 오소리와 여우> 이렇게 세 편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세 편의 주인공은 모두 같은 여우다. 세 편에서 보이는 모습이 각각 다르지만, 나 또한 여러 모습을 가지고 있기에 의아하지 않다. 각각 다른 이야기는 어찌보면 방향성을 갖고 있다. 여우가 여러 일과 감정을 겪으며 성장한다는 것이다.

<그림 그리고 싶은 여우>에서 여우는 의욕적으로 그림을 시작한다. 그림도구를 잔뜩 사들고 왔다. 하지만 그릴 대상을 찾는게 쉽지 않았다. 모든게 너무 순간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여우는 '초록 스카프 여우'를 만나 친구가 된다. 초록 스카프 여우의 조언을 듣고보니 그리는 일은 참 즐거운 일이었다. 마음과 함께 여우의 그림도 달라진다.

두번째 이야기 <혼자 있고 싶은 여우>를 처음 펼쳤을 때 다른 여우가 나온 줄 알았다. 여우는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아 혼자 집에 파묻혔다. 가만 보니 아까 그 여우 맞다. 왜 갑자기 우울해졌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여우 자신도 "이유를 모르겠어." 라고 한다. 하지만 그럴 때가 누구에게나 있지. 어쩌면 "모르겠다"고 한 여우 자신은 그 이유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느날 여우는 차가운 바깥으로 발을 내딛는다. 처음엔 아무와도 마주치고 싶지 않아 인적이 드문 곳을 골라 다닌다. 그러다 집에 돌아오는 길, 눈위에 찍힌 발자국을 보고 드는 생각에 깜짝 놀라는 여우. 집이 가까워졌다. 집에 불이 켜져 있다! 초록 스카프 여우가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찻물을 끓이고 있었다. 한 존재가 주는 밝음과 온기. 둘은 금방 대화에 빠져든다.

이건 아닌데, 이러다 큰일나겠어 싶을 땐 무조건 밖으로 나와야 된다.
"자신의 거칠게 내쉬는 숨소리와 쿵쿵 힘차게 뛰는 심장 소리만 들렸어요."
이 느낌이 나를 구원한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건 그렇게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환한 불빛과 온기가 반갑다! 하지만 춥고 어두웠던 시간들도 의미가 없는 건 아니었다.

<장미와 오소리와 여우>에서 여우는 장미화단을 열심히 가꾼다. 그런데 장미들은 화단 밖으로 자꾸만 뻗친다. 줄기들을 뜯어내며 여우는 투덜댄다.
장미가 활짝 핀 여름날, 여우는 너무나 슬픈 일을 당했다. 이웃집 아기 오소리가 큰 병에 걸려 죽고 만 것이다. 여우는 화단의 모든 장미로 꽃다발을 만들어 아기 오소리를 조문했다. 그리고 슬픔에 빠져 더이상 화단을 돌보지 못했다.

그러나 장미는 여기저기에서 뻗쳐 자라났다. 앞면지와 뒷면지에 가득한 장미 그림이 이제 이해되었다. 가을에 여우는 꼭꼭 숨겨왔던 그림들을 모두 꺼내 전시회를 열었다. 중요한 순간에 꼭 친구가 있다. 초록스카프 여우가 벽에 못을 박고 그림을 거는 모습이 나온다. 친구가 없었다면 여우는 용기를 내지 못했겠지?

그림엔 그들이 사랑하는 것들이 담겼다. 이미 지나가버려 더이상 볼 수 없는 것들도 있다. 그것들을 담아 간직해둔 여우의 작업은 소중한 일이었던 거겠지? 슬픔은 남았지만 더이상 슬프기만 하진 않다. 인생이 그렇듯이.

사람들도 이렇게 어른이 된다. '그림'을 남기기도 하지만 나처럼 지나간 일은 추억 속에만 남기기도 하고. 어디에 남기느냐는 중요한 것 같지 않다. 겪어내기. 그리고 겪는 이들을 이해하기. 각자의 방법으로 그들을 위로하기. 이것이 가능하다면 어른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른은 나이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하여 이 그림책을 보며 중년의 나도 부끄러워 하는 것이지. 이 책을 '어른도 보는 그림책'으로 추천해도 괜찮겠다. 물론 어린이들에게도 충분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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