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바람
잉그리드 고돈 그림, 톤 텔레헨 글, 정철우 옮김 / 삐삐북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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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장마다 한명씩의 얼굴이 책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책인데 이중에 호감이 가는 얼굴은 하나도 없다. 그림작가의 스타일인지 몰라도 두 눈이 바깥쪽으로 치우쳐있고(미간이 비정상적으로 넓고) 하나같이 무표정하여 무섭거나 침울해 보인다. 남녀노소가 다 있지만 표정이 비슷하니 다 그사람이 그사람 같다. 주변에 있다면 굳이 말을 걸거나 친해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것 같은 얼굴. 왜냐면 상대방도 나에게 말을 걸 것 같지 않거든.

하지만 양심적으로 거울을 볼까? 내 얼굴을 여기에 박아도 큰 차이는 없을 것 같다. 나도 대체로 무표정인데, 멍할 때나 약간 우울할 때의 얼굴을 사실적으로 넣는다면 마찬가지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똑같아보이는 표정의 이사람들이 제각각의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나의 바람'이라는 주제로.

이 책은 일반적인 순서와는 달리 그림이 먼저 있고 그 그림에 글을 입힌 책이다. 톤 텔레헨이라는 작가는 <너도 화가 났어?> <그게 바로 화난 거야!>라는 책에서 접했는데 이분의 작품세계가 (다르게 말하면 정신세계가) 내게는 좀 어려웠다. 미술로 치면 약간 추상화를 보는 기분이라고 할까? 알것도 같지만 확신은 할수 없는, 때로는 잘 짐작이 가지 않는 생각들로 가득하다. 정신과의사로 많은 이들의 내면을 관찰한 경험이 작품에 투영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등장 인물들의 바람은 다양하다.
"내가 죽으면 사람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나를 생각하는지 확인하고 싶어요."
"내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나는 그 일을 하지 않겠습니다. 이 말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나는 행복이 물건이었으면 좋겠어요.:
"내가 음악이면 좋겠어요."
"나는 무언가 갑자기 취소됐으면 좋겠어요."
"나는 뭔가와 싸우고 싶어요."
"나는 다시 되돌아갈 길이 있어서, 다른 사람이 모두 쉬지 않고 갈 때 나는 멈췄으면 좋겠어요."
.......

각장에서 첫문장을 몇개 골라서 써봤다. 이 책은 그림책이지만 90쪽이 넘고 글밥도 꽤 된다.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이라고 분류가 되어있다. 어른들에게도 쉽지는 않으리라 본다. 이런 책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봐야된다. 그런 다음에 독서모임을 통해 자신에게 다가온 부분을 나눈다면 아주 많은 의미를 캘 수 있을것 같다. 각자의 <나의 바람>을 적어 발표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다시 보니 인물들마다 눈빛이 다르고 그 눈빛으로 뭔가 말하려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사람 속이란 얼마나 깊으며 얼마나 복잡한 것일까?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그 하나하나의 세계를 소중히 여겨야겠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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