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일드 폴 서유재 어린이문학선 두리번 10
이병승 지음, 박건웅 그림 / 서유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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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에 나왔던 초판은 읽어보지 못했다. 초판이 아주 많이 팔린 것 같진 않은데 개정판을 발간했다는 건 책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아끼는 이들이 있다는 것과 여전히 시의적절하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읽어보니 내 생각에도 그냥 묻히긴 아까운 작품 같다.

개정판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아무래도 표지다. 내용과 걸맞는 색상과 이미지가 아주 인상적이다. 표지는 빨강 파랑의 원색을 사용했고 본문의 삽화들은 모두 판화 느낌의 흑백이다. 원색은 원색대로, 흑백은 흑백대로 강렬하다. 작품에 잘 맞는 느낌을 가진 그림작가와 만나는 것도 행운일 것이다.

작가명을 확인하기 전에는 외국의 작품인가 했다. '만리장성'이라는 중국집과 청와대 등의 배경, 우리말 이름 등만 빼면 외국 작품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소재의 특별함 때문에 이국적인 느낌이 드는 거겠지? 그 특별한 소재란 제목에서 나타난다. 차일드 폴. 폴은 Politics(정치). '각국의 대통령은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는 법을 말한다.

나중에 반전이 있긴 하지만 이 법의 탄생 배경은 일단 이렇다. 4년전 대재앙이 있었다. 기후위기가 현실로 닥친 환경재앙이었다. 각국의 정치지도자들은 대책회의에서 그들의 욕심 때문에 재앙이 닥친 것을 인정하고, 어린이만이 인류의 희망이라 생각해 이런 법을 만들었다. 그래서 이 책은 평범한 12살 현웅이가 대통령이 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황당하고 순진한 설정이다. 하지만 그 배경이 되는 가까운 미래가 이제 시시각각 다가오는 비극인 것 같아 가볍게 읽을 수가 없다. 4년전의 대재앙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현웅이도 이때 엄마를 잃었다. 수많은 사람이 폭설에 갇혀 구조되지 못했고 겨울이 지나 시신들은 무더기로 드러났고 전염병이 창궐했다. 사회 안전망도 작동할 수 없는 아비규환. 둑이 무너지면 순식간에 다가올 일이 아닐까. 대재앙이 지나간 후에도 지구는 미세먼지와 유독성 비 등으로 인해 안전한 곳이 없고 위기는 곳곳에서 수시로 일어난다. 이런 세상에서 12살 현웅이는 대통령이 되었다.

짐작할 수 있겠지만, 어린이를 대통령으로 세웠다고 어린이들의 뜻대로 나라가 운영되는 건 아니었다. 현웅이의 옆에는 그림자처럼 경호팀장과 비서실장이 따라다녔다. 이들은 좋은 사람들이었고 현웅이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지만 이들의 뜻대로 정치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여론?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결국 껍질을 벗기고 벗기고 또 벗겨보면 그 속에는 보이지 않는 손이 뱀처럼 또아리를 틀고 있다. 이 책에서도 맨 마지막에 나오는 이트, 빅 마우스라는 존재가 그것이다. 거대한 탐욕, 그걸 들여다보면 어이없도록 단순한 한글자. 돈이다. 돈이 생명이고 권력이다. 지금에 와서는 돈이 건강이고 돈이 안전이며 돈이 깨끗한 환경이기도 하다. 자기 발밑만 안전하면 되기 때문에 지구를 마구 파괴해도 아랑곳 않는 그 어리석은 탐욕.

어린 대통령들은 순수하고 단순하기에, 여기에 모종의 제동을 걸 수 있었다. 어찌보면 사고를 친 것이지. 그 과정이 긴박하게 펼쳐지는 것이 이 책의 내용이다. 그 안에는 가슴아픈 희생도 있고, 용기있는 결단도 있다. 결국에는 희망이 보이는 감격스러운 해피엔딩도 있다. 전혀 현실적이지 않지만 꿈꾸어보고 싶은 엔딩.

이 책을 읽으며 내내 권정생 선생님의 '랑랑별 때때롱'을 떠올렸다. 퍼즐조각처럼 딱 맞는 느낌이 든다. 짝꿍책으로 함께 읽히고 싶다. 랑랑별이 500년이나 들여 겨우 되돌아간 그 불편한 세상으로, 우리도 돌아갈 결단을 해야 할텐데 그게 과연 가능할까. 가능하지 않다면 이 책의 발단에 나온 대재앙은 멀지않아 현실이 될 텐데 말이다.

요즘 정치판의 면면을 보면 답이 없는데, 이 위기감은 누구와 말하고 누구와 해결을 모색해야 할까. 작가가 던진 이 위기의식에 과연 누가 대답을 할까. 그 구심점이 되어줄 존재는 누구인가. 우리에겐 어린이 대통령도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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