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몰래카메라였습니다 높새바람 50
강정연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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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방진 도도군> 이후로 강정연 작가님의 작품을 좋아하는데, 작품을 빨리 쓰는 편은 아니신둣 어느정도 기다려야 새 작품이 나온다. 이 책이 나온 걸 보고 점찍어 두었다가 드디어 구입해서 읽어봤다. 생각보다 책이 얇았고, 게다가 단편이었다. (난 왜 제목을 보고 장편이라 상상했을까)

다섯 편의 단편은 각각의 길이는 짧았지만 그 안의 감정은 깊고 강렬했다. 다양한 경험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책이었다. 고학년 학급에서 함께 읽어도 좋고 초등교사나 초등학부모들의 독서모임에서 읽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피아노]는 딸의 이야기지만 실은 엄마의 이야기였다. 좁은 빌라에서 혼자 민지를 키우는 엄마. 벌어서 먹고 사느라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는 엄마. 그 엄마가 민지에게 '피아노'를 꼭 시키고 싶어한다. 친척이 준다는 피아노를 덥썩 받아 좁은 집에 들여놓은 엄마. 부모는 자신의 못이룬 한을 자식을 통해서 이루고 싶어하는 본능이 있다. 난 그걸 좋게보지 않지만, 이 엄마의 꿈은 너무 곱고 소박하면서도 간절하여 응원하고 싶다. 아홉살 엄마의 종이 피아노 이야기.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을때 손등위로 떨어지던 그 눈물.....

엄마, 다시 배우면 돼요. 민지 말고 엄마가.
되돌아보면 딸이 초6일 때 나는 겨우 서른아홉이었다. 그때는 뭐라도 배울 수 있는 나이였다. (어르신들은 지금의 나를 보고 그렇다고 하겠지) 민지 엄마가 바쁜 일과 중에 틈을 내어 피아노 학원을 다니고, 그 충만함으로 피곤을 잊으며 눈을 빛내는 장면을 그려본다. 그 상상에 마음이 환해진다.

[누렁이, 자살하다]는 제목에서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불편한 이야기가 힘들다. 이 이야기는 불편보다는 슬펐다. 떠돌이개 누렁이를 옥상에서 거둬 키운 은지. 캐나다 엄마에게로 떠날 날이 예정되어 있어 한시적임을 알면서도 당장 거두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한 상황이었기에 함께 했던 날들. 끝이 예정되어 있는 행복은 얼마나 가슴 저린지. 자신을 사랑해준 한 사람에 대한 개의 마음은 얼마나 애달픈지.

은지는 화자 선웅이에게 누렁이를 부탁하고 떠났다. 하지만 안다. 아이들에겐 그럴 힘이 없다는 걸. 은지 아빠는 옥상을 치웠고 누렁인 다시 떠돌이개가 되었고, 어느날 선웅이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는다.
"누렁이가 추락했다."
바로 그 옥상에서다. 개는 울 줄 안다. 은지의 흔적을 찾으며 옥상을 헤매던 누렁이는 어떻게 울었을까. 나는 그러다가 누렁이가 실족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선웅이의 확신도 이해는 한다. 정말이지 너무 슬펐다.ㅠㅠ

[까탈마녀에게 무슨 일이]는 안쓰럽기도 하지만 흐뭇하고 대견한 남매의 이야기다. 엄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그 자리를 채우려 애쓰는 누나. 그런 누나에게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2차 성징과 사춘기. 서로를 의지하며 건강하게 자랄 남매를 응원하게 되는 이야기.

[김밥천국에 천사가 나타났다]는 별볼일없는 현우의 여름방학이 특별함으로 바뀌는, 그 마지막날 하루의 이야기다. 각자 홀로인 두 아이가 만나면서, 무색의 날들에 색이 입혀진다. 현우는 부모님이 해고노동자라서, 지윤이는 백반증을 가진데다 엄마의 입원으로 이모인 김밥천국 아줌마에게 맡겨져서 홀로다. 둘의 만남이 이루어진 곳이 바로 김밥천국. 한 아이는 기타를 쳤고 한 아이는 자전거를 태워줬지. 마음이 깨어나는 소리가 들리는 이야기. 음, 기타라니, 자전거라니. 좋겠다.^^

표제작인 [이상, 몰래카메라였습니다]의 메세지가 가장 강하다고 느꼈다. 어린 시절에는 크느라고 여러가지 실수를 하는데, 그중에 관계적인, 감정적인 실수도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다. 어느 수위 이상의, 반복적인 실수는 더이상 '실수'라 이름붙일 수 없다. 이런 경우 '손절'은 피할 길이 없다. 내가 재윤이라면 두번 생각할 것도 없이 손절했을 것이다. 이 책에서 누리는 두번째 실수하고 재윤이의 단호한 반응에 당황하며 후회한다. 화해와 사과의 제스처를 하며 이야기는 화해의 가능성 직전에서 끝나는데, 내가 재윤이라면 용서해주지 않겠다. 사람 마음을 가지고 노는 일, 가장 나쁜 짓이기 때문이다. 잘잘못을 떠나 정이 떨어져서 더이상 친하게 지내기 어려울 것 같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게임이라고 했던가. 관계에서 우위를 점한 사람이 부리는 관계의 권력은 비열하다. 아이들이 이 권력 밑에서 절절매는 꼴을 보면 속에서 불이 난다. 이 멍청아. 니가 쟤보다 훨씬 낫거든. 좋은 친구도 알고보면 많아. 끊을 건 끊어! 이런 말을... 차마 아이들한테는 할 수 없어 답답하다. 한번은 용서해주고 두번째는 매몰찼던 재윤이의 태도가 맘에 든다. 화자인 누리는... 이런 아이 맘에 안든다. 하지만 이 아이도 진심으로 반성한다면 기회를 주긴 해야겠지. 변화 가능성이 큰 아이들을 너무 단정하는 건 옳은 일이 아니기에, 나도 늘 조심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꽉꽉 찬 단편들이 들어있는 이 책을 잘 읽었다. 고학년 아이들과 읽을 만한 책이 정말 많다. 내가 이 감정과 관심을 몇살까지 유지할지는 자신이 없다만, 그만두는 날까지 아이들과 책을 통해 진심으로 소통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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