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학교 키큰하늘 4
박현숙 지음, 민은정 그림 / 잇츠북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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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숙 작가님의 책에 리뷰를 쓸 때마다 하게되는 말, 엄청난 다작이시라는 점이다. 국수 뽑는 기계도 아니고 어떻게 그리 줄줄줄 나올 수가 있단 말인가? 그래서 내게는 책 고르는 우선순위에서 좀 밀리는데, 그래도 읽어보면 후다닥 쓰신 느낌은 없어서 그 점이 또 신기하곤 했다. 이 책도 그러했다.

이 책엔 일단 다문화가 전면에 나와 있다. 신우 엄마는 프랑스 유학 중에 만난 사람과 결혼해 프랑스에 정착했고 신우도 프랑스에서 자랐다. 동양인이라 겪는 설움이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지냈다. 그러다 한국 학교에 다닐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겼다. 외할아버지의 임종은 커녕 장례식에도 참석 못했던 아픈 기억이 있는 엄마는 편찮으신 외할머니의 곁을 꼭 지키려 입국한다. 그러나 신우는 가는 학교마다 적응을 못한다. 다문화의 벽은 프랑스보다 한국이 훨씬 높았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엄마가 선택한 학교는 '다문화'학교라고 했다. 워낙 다양한 국적의 아이들이 다니니 차별받을 걱정이 없다는. 실제로 학급엔 러시아, 필리핀, 미국, 베트남 친구들이 있었고 바로 어제 전학 왔다는 황정훈이란 한국 아이도 있었다. (이 아이는 엎드려 잠만 잔다) 그러나 건물도 으스스하고 이상한 느낌이 감도는데, 그건 이 학교가 요즘 '세계 귀신 축제'를 준비하고 있어서 그런 걸까?

(이런 얘기를 다 해버리면 완벽한 스포가 되어버리는 거지만, 그게 싫으시면 여기까지만 읽으시길.) 처음엔 표지도 그렇고 제목에서도 왠지 괴기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개인적으론 그런 분위기를 아주 싫어하기 때문에 책에 선뜻 호감이 가지 않던 중.... 중반 이후에서야 내가 느낌을 잘못 잡았다는 걸 깨달았다. 이 이야기는 아주 훈훈하고 희망적이며 보람이 가득한 이야기였다.

아이들은 이 학교의 전통이자 가장 큰 행사인 '세계 귀신 축제'를 준비하며 협력하게 되는데, 그 사이에 괴기스럽거나 초월적인 느낌의 장면이 없진 않지만 그게 주는 아니다. 아이들은 이 큰 행사의 준비와 실행의 모든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고, 특히 학년별로 맡은 '귀신의 방'을 준비하며 머리를 맞대는 동안 완전히 하나가 되었다. 특히 상처가 많은 신우와 황정훈이 아닌듯 서로를 배려하며 상대의 마음을 확인해가는 과정에선 미소가 지어진다.

상처는 사람의 행동을 치우치게 한다. 차별에 격분하는 신우의 행동이 그랬고, 황정훈의 상처도 짐작이 가능하다.
"처음에는 좋다고 칭찬하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그럴 줄 알았다는 원망 듣는다고."
"만약 너한테 무슨 일이 생겼으면 나는 또 원망 들을 짓을 한 게 되는 거야."
"내가 말한게 잘 안되면 나중에 나 원망할거지?"
대체 어떤 원망을 들었기에 황정훈은 '원망 듣느니 아무 것도 안하겠다'가 되어 하루종일 엎어져 자는 아이가 되었을까? 그런 이야기까진 나와 있지 않다. 하지만 문제행동 이면에는 그 아이의 상처가 있다는 점을 잊지는 말아야겠다. 더구나 황정훈처럼 본바탕이 선한 아이는 기회만 적시에 주어지면 자신의 상처를 이렇게 뚫고 나온다. 신우도 마찬가지였다. 그 기회란 바로 '자존감'의 기회다. 아이들이 주도하는 축제는 바로 그 기회를 아이들에게 제공했다.

작가는 한 대안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한 경험을 '작가의 말'에서 밝혔다. 말하자면 이 책의 주요 소재들이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짚이는 검색어로 검색을 해보았더니 실제 학교의 이름까지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대단한 규모의 축제를 했었구나. 훌륭하다.

차시 단위의 분절적 수업에 묶여야 하는 학교에서 이런 뭉텅이 시간을 아이들에게 전적으로 맡기기는 참 어렵다. (맡긴다고 뭐가 꼭 나오진 않음) 실제로는 직접 지도하는 것 이상의 코칭과 조력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어쨌든 아이들이 스스로, 협력하여 뭔가 해내는 과정은 그 과제의 완성 자체 뿐 아니라 거기에 따르는 많은 부수적 효과들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됐다. 나는 아이들이 못미더워 늘 반조리 제품의 형태로 제공해왔던 것은 아닌가 고민이 되기도 한다.

신우네 학년이 '가장 무서운 귀신의 방'으로 뽑혀 상금을 받고 상금을 어디레 쓸지 의논하는 장면으로 끝이 나니 이 책의 마지막은 아주 맑게 갠 환한 색이다. 이 아이들이 준비한 행사를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귀신축제는 내 취향이 아니지만 말이다.^^;;; 자존감을 회복한 아이들은 이제 쭉쭉 뻗어나갈 수 있겠지. 상처로 움츠린 모든 이들이 자존감을 회복할 계기를 갖게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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