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는 가게 라임 어린이 문학 29
김선정 지음, 유경화 그림 / 라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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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식탐이 심하진 않다고 생각하는데, 이야기에 먹는 내용이 들어가면 읽는 맛이 더해지는 건 사실이다. <안읽어 씨 가족과 책 요리점> 같은 책들이 그래서 더 재밌었다. 이 책은 더더욱 그랬다. 맛깔스런 그림과 그 색감은 맛의 상상력을 더욱 자극한다. 그림이 낯익다 생각했더니, 바로 그 <안읽어씨>를 그린 작가님이네! 글도 그림도 모두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책이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며 군침을 삼키는 건 내가 초딩입맛이어서 그렇다. 라면과 치킨, 과자 등등.... 이 이야기는 뭘 말하고 싶은 걸까? 불량식품만 좋아하다 낭패보고 절제하는 어린이가 되는 이야기? 에이 재미없다. 불량식품 좀 먹는다고 안죽어~ 먹고 싶은 건 좀 먹으면서 살아~라는 이야기? 뭐 그런 이야기를 동화로.... 먹는 얘기라 재밌게 읽고는 있는데 결말이 걱정스러웠다.ㅋ 이야기는 대체 오데로 가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말은 이쪽도 저쪽도 아닌 안전지대에 고이 착륙했지요. 착륙까지는 잠시 어지러운 과정을 거쳤으나 그또한 재미. 맛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아이들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를 것이고, 몹시 공감하기도 할 것이다. 어른들은.... 엄마의 고집과 시행착오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건 사랑의 다른 모습이기도 했으니.

환이는 이시대에 흔한 아토피 어린이고, 지금은 좀 나아진 상태다. 그래도 엄마는 음식을 엄격하게 제한한다. 대표적인 게 라면이다. 바쁜 엄마 대신 환이를 돌봐주시던 외할머니가 몰래 끓여주면 난리가 났었다.
"엄마! 환이 먹을 거 아무거나 주지 말라니까요? 텔레비전도 좀 틀어놓지 말고요! 환이는 텔레비전 틀어주고 라면 먹이고, 그렇게 안 키울 거예요."
이 말 속에 숨은 엄마의 아픔은 이 책에서 아주 극적인 장면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엄마의 강박은 금지음식에 대한 갈망을 더욱 증폭시킨다. '세상에 없는 가게'는 그렇게 생겨난 것이겠지.

나도 이 엄마의 '금지음식'들을 좋아한다. 아버님을 모시고 살지 않는다면 나도 '세상에 없는 가게'의 모든 라면을 날마다 돌아가며 먹고 살지도 모른다.ㅎㅎ "기름에 튀긴 밀가루는 몸에서 아주 나쁜 일을 해." 헉, 그거야말로 내가 좋아하는 건데....^^;;; 이렇게 대충 사는 나와는 달리 이 엄마는 유기농 친환경 식재료를 신경 써서 골라 건강한 식단으로 환이를 키우려 애쓴다. 건강한 놀이를 위해 토요일마다 숲놀이 프로그램에 보내고 주중엔 미술놀이, 영어동화책 읽기 등 좋다는 학원들을 골라 보낸다. 내가 봐도 참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아이는.....
"엄마, 엄마가 되는 게 이렇게 힘든 건지 몰랐어요."
보름달을 보며 돌아가신 외할머니한테 혼잣말을 하는 엄마의 모습이 참 쓸쓸해 보인다.

양쪽 극단의 부모들을 많이 보게 된다. 기본생활관리조차 안될 정도로 방치하는 부모와 과할 정도로 관리하는 부모, 아이 밥 챙겨주는 것조차 귀찮아하는 부모와 아이의 섭식에 올인하는 부모 사이의 적정선은 어디인지, 사실 굉장히 어려운 문제긴 하다. 작가도 사람이고 부모일 터, 정답을 어찌 알겠는가? 하지만 양 극단 사이 어딘가를 찾으려는 작가의 애씀이 느껴졌다. 그건 충분히 공감할 만한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아이들보다 어른들에게 시사점이 더 많다고 하겠다. 아이들에게는.... 뭐 굳이 시사점 같은게 필요할까? 재미있게 읽기에는 충분하니 그것으로 되지 않을까? 그리고 느껴지는 것을 느끼면 된다. "오늘 저녁에 엄마한테 치킨을 시켜달래야겠다." 요런 건 아니면 좋겠지만.....^^;;;;

'세상에 없는 가게'는 누구에게 어떤 모습으로든 나타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마지막으로 든다. 어쩌면 나에게도 스쳐갔을 수도 있다. 물론 라면가게는 아니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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