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 김선주 세상 이야기
김선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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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토예프스키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류에 대한 사랑을 말하는 사람일수록 구체적인 인간을 사랑하지 못한다. 개개인의 인간을 독립된 인간으로서 사랑하기 어렵다." 먼 이웃, 그러니까 피와 살이 느껴지지 않고 생김새나 성격이 구체적으로 잡히지 않는 추상적인 존재로서의 누군가를 사랑하기는 어렵지 않다. 결점도 많고 고마워하지도 않으면서 자존심만 센 바로 곁의 인간을 도우면서 반응이 신통치 않으면 기분이 상하는 것이 보통 사람의 마음이다. -26쪽

개별 가정에서 자식이 부모를 보고 배우는 것처럼 사회 전체적으로 우리는 이 시대의 풍조나 정신을 보고 배우고 듣고 자랄 수밖에 없다. -29쪽

생텍쥐베리의 기도문을 다시 읽는다.

....주님이시여 제가 저 자신을 알려면 당신이 제 안에 고통의 닻을 내려주시는 것으로 족합니다. 당신이 줄을 잡아당기시면 저는 눈을 뜹니다....

고통을 통해 인간은 무엇인가를 깨닫는다. -51쪽

엊그제 우리 사회 지도층이라 불리는 인사들과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한 집단의 조직적 행동이 화제에 올랐는데, 참석자 중 한 사람이 "빨갱이 같은 놈들"이라고 서슴없이 내뱉었다. ...그렇게 말한 사람이 특별히 나븐 사람이거나 빨갱이에 개인적 원한을 품고 있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무심하게 습관적으로 말했을 것이다. 우리는 적대적인 세력은 무조건 빨갱이라고 몰아붙이면 간단하게 무찌를 수 있었던 시대를 살아왔다. -123쪽

경제적 독립이 없으면 정신적 독립도 없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이다. 정신적 독립을 하지 못한 사람이 학문의 길에서 어떻게 정진할 수 있겠으며, 경제적 도움을 주는 누군가의 간섭으로부터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138쪽

집안과 학벌을 따져 남 보기에 번드르르한 결혼을 하기보다 뜻이 맞고, 그러니까 가치관을 갖고 이 모든 일을 유쾌하게 같이 해나갈 만한 평생 친구를 구한다고 생각하면 현실적인 선택의 폭은 훨씬 넓어진다. -151쪽

한 인간의 변천사는 한 시대의 변천사다. -191쪽

남녀 사이 사랑만이 사랑이 아니다. 직업과 학문, 예술에 걸었던 열정도 사랑이다. 나라와 겨례, 혹은 어던 이상을 위해 뭉쳤던 뜨거운 순간들도 사랑이다. 사회적 이슈에 몸과 마음이 아플 정도로 헌신했던 터질 것 같은 순간들도 사랑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런 순간들을 뒤로하고 헤어져야 할 때가 온다. 사랑의 순간이 뜨거웠을수록 이별의 고통은 크다. 왜 사람들은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사랑의 순간들까지도 훼손하는 것일까?

우리는 처음 사랑을 시작할 때 서먹서먹하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상대방에게 주춤추춤 다가간다. 그 아름다웠던 순간들, 인생에서 많지 않았던 그 뜨거운 사랑의 순간들을 잿빛으로 만들지 않으면서 우리는 이별을 맞아야 하고 고통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모든 사랑했던 순간들에 대한 예의고 또한 이별의 예의다. -193쪽

판사의 자질은 판결을 통해 검증되어야 한다. 그리고 국민이 선거를 통해 뽑지 않는 법관에 대한 검증은 판계에 대한 국민의 철저한 감시를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사법 감시는 법관의 권위를 실추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좀더 고민을 하면서 객관적이고 정의로운 법해석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215쪽

시인이란 가장 먼저 울기 시작해 가장 마지막까지 우는 사람이라고 했다. 지성인, 언론인 등 말과 글을 다루는 게 직업인 사람도 마찬가지다. -221쪽

대학에 떨어지면 또 어떤가. 1년의 등록금을 미리 가불해 1년 동안 세계를 배낭여행하는 것이다. 찌들었던 청소년기를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고 돌아와 그때 천천히 장래를 생각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남학생들의 병역 문제는 반드시 개선할 필요가 있다. 대학생이나 유학생에게만 병역 연기를 해주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다. 고졸 남학생도 몇 년 정도 연기될 수 있어야 한다. -225쪽

"고양이야....여기 생선 있다....담 넘어와라"-315쪽

인간칠십 고래희라 팔심을 산다해도 잠든날과 병든날과 걱정근심 다제하면 단사십도 못사나니-3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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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0-09-09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참 좋죠...^^

LAYLA 2010-09-11 00:01   좋아요 0 | URL
바른생각과 세월의 연륜이 고루 느껴져서 참 좋았어요 :)

라로 2010-09-09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별엔 더욱 예의가 필요해요!!!
이 책 또 담으면 안되는구만,,ㅠㅠ

LAYLA 2010-09-11 00:01   좋아요 0 | URL
책이 참 이뻐요 종이질도 좋구요 하하하 ^^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 시칠리아에서 온 편지
김영하 글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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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위에 뭐가 있어?"
글쎄, 산 위에는 뭐가 있었을까? 포도밭, 절벽, 바위들과 금잔화, 레몬이 열리는 나무와 농부들, 트랙터 같은 것들. 나는 그런 것들을 주절주절 이야기햇고 카메라에 담아온 이미지들을 보여주었다. 아내는 별다른 감흥이 없는 눈치였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떤 풍경은 그대로 한 인간의 가슴으로 들어와 맹장이나 발가락처럼 몸의 일부가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가볍게 전해줄 수 없는 그 무엇이 되어 버린다. 그런 풍경을 다시 보게 될 때, 우리 몸의 일부가 갑자기 격렬히 반응한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풍경의 장엄함도 우리 몸 어딘가에, 그 자체의 생명을 가진 채 깃든다고 믿는다.-108쪽

그 후로 오랫동안 아내와 나는 힘든 일을 당하여 낙심할 때마다, 혹은 당황하여 우리 중 누군가가 허둥댈 때마다 그 멋쟁이 사자으이 느긋한 대사를 서로에게 들려주었다. 이탈리아어 원어로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은 간결하고 산뜻한 표현이 된다.
"Senora, prego. E caldo."
우리는 마법의 주문처럼 이 말을 외우고 그럴 때마다 거짓말처럼 다시 인생에 대한 느긋한 태도를 되찾을 수 있었다.-279쪽

"가이드북 보니까 이탈리아에 이런 속담이 있다. 사랑은 무엇이나 가능하게 한다. 돈은 모든 것을 이긴다. 시간은 모든 것을 먹어치운다. 그리고 죽음이 모든 것을 끝장낸다."
"갑자기 뜬금없이 웬 속담?"
아내가 짐짓 딴지를 걸어왔다.
"그러니까 여행을 해야 된다는 거야."
"결론이 왜 그래?"
"결론이 어때서?"
우리 말고는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잡담이 거센 바닷바람에 흩어지는 사이, 시칠리아 섬은 우리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시칠리아여, 안녕!-2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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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의 스펙을 타고 가라
이동진 외 지음 / 사회평론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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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자기가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아니거든요. 결국 자기 꿈과 욕망이라는 것도 미리 결정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그리고 자기의 꿈과 욕망이라는 것의 범위를 넓혀가야 자기가 뭘 원하는지 조금 더 알 확률이 높다는 거죠. 그런데 지금처럼 자기의 꿈을 좁게 설정하고 그것에 맞춰 열심히 살기만 하면,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다른 과에서 개설한 교양과목을 듣다가 그쪽에서 자신의 꿈을 알게 될 수도 있고, 하다못해 그게 등산이나 낚시든, 컴퓨터 게임이든 뭐든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다양한 경험들을 겪다 보면 '아 정말 재미있다','이것을 할 때 희열을 느낀다','이것을 진짜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 그게 꿈이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걸 안 해봤으면 모르는거죠. 그리고 인문학은 그런 것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하구요. -이동진-24쪽

철학자들은 오직 세상을 다양하게 해석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문제이다.
-Marx-53쪽

...그런데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는것 같아요. 그걸 참아야 연출로 올라갈 수 있는 거고, 그때그때 할 일하면서 즐기면 되는 거죠. 자존감 따질 필요는 없어요. 확실히 자기 자존감이 있으면 이거 한다고 내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자기 자신을 못 믿고 자존감도 확실히 서 있지 않으면 거꾸로 그런 일 때문에 자존감이 떨어지고, 한없이 비루해지는 것 같고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185쪽

그런 것도 있겠죠. 인문대에서는 삶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는 거잖아요. 무엇을 할 것인지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생각. 지금의 목표가 무엇이고 이런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 거겠죠. 하지만 단점이 하나 있는데 잘못하면 한없이 늘어진다는 겁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중요한지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술 마시고 공부 안하고 그런 경우도 있잖아요. 그래서 어떨 땐 지긋지긋할 때도 있죠. 우리 남편이 그랬거든요. 갂므은 신경질이 날 때도 있죠. 내가 저 사람을 믿고 어떻게 살지 하는 생각도 현실적으로 들구요. 하지만 그런게 있긴 있는데 그래도 그게 좋은 거죠. 어느 정도 선만 지켜준다면. 인문대생들은 아무튼 그런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요즘은 덜하겠지만 그때는 대책 없이 늘어지는 경향이 좀 있었죠. 그래도 선배들 보니까 다 잘 살더라구요. '저 선배가 저렇게 변할 줄이야' 할 때가 많아요. 어린이들이 동심을 가져야 하는것 처럼 대학생들은 사회에 나오면 달라질지언정 대학에 있을 때는 그러한 순수한 마음이 있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인문대가 좋습니다.-189쪽

일이라는 것이 생활에 있어 생계의 원천인 것은 맞습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생계를 안정화시키는 것 역시 일이라는 지점에서 중요한 기준의 하나이고 특히 지금과 같이 불안정한 세상에서 안정을 1순위로 삼는 것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생계는 목표가 아니라 결과적으로 주어지고 해결되는 것이에요. 일은 기본적으로 사람에게 있어 자존심의 원천입니다. 또한 일은 인간으로서의 자부심을 형성시키는 근원이기도 하죠.그렇기 때문에 일은 각자의 자부심을 충족할 수 있는, 자존심을 세울 수 있는, 자기 정체성을 세울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게 일인 거죠.
한편 직장이라는 것도 월급을 받는 곳만은 아니죠. 일이라는 것은 학교에서 배운 것만 가지고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차근차근 배워 나가고 그렇게 배워 나가는 것을 통해 평생 프로로서, 사회의 일원으로서 살아가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본다면 직장은 또 하나의 학교이자 인생의 학교인 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직장을 선택할 때는 뭔가를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합니다. 선택에 있어 1순위 기준이 돈을 많이 주는 곳이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뜻이죠. -211쪽

뭔가를 배워 나갈 수 있는 곳이라면 그 배움을 가지고 평생을 먹고살 수 있지만, 돈만 있다면 사실 돈 떨어지면 끝이죠. 그리고 돈만 쫓는다면 인생이 허무해지기도 하겠지만 잘 쫓아지지도 않아요. 마찬가지로 안정을 쫓는다고 해도 안정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쫓으면 쫓을수록 멀어지죠. 하지만 일에서 자부심을 취하고, 직장에서 배움을 취하면 안정은 결과적으로 주어지거든요. 배움이 있는 직장을 잡으세요, 그리고 그 일을 통해서 자부심을 세울 수 있는 일을 선택하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212쪽

앞서 긴 시간이 소요된다고 했지만 이는 결국 시간이 걸리더라도 도달할 수 있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른바 초감각, 즉 육감이 만들어지는 데 이 정도 시간이 드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달마가 면벽9년을 해서 깨달음을 얻고 우스갯소리지만 보통 도사들이 오대산에서 10년, 지리산에서 20년, 계룡산에서 30년, 합쳐서 한 갑자쯤 도를 닦았다고 하는 것을 보면 4~5년의 노고는 해볼 만한 도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 가는 길이 막연하고 두렵지만 결국 누군가가 다가갈 길입니다. 그 길이 두려울수록 그 이익과 성취감은 크다는 것을 꼭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285쪽

물론 한 해 계획은 고사하고 반 년, 한 달 계획을 계속 꾸준히 하는 것도 너무나 어려운 일로 여겨질지 모릅니다. 그래서 한두 달에 집중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을 찾고 그 기간에 이루지 못하면 자신의 적성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한두 달에 이룰 수 있는 것이면 다른 사람도 한두 달에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비록 집중력의 차이는 존재할지 모르지만 그래 봤자 그 정도는 조금 더 시간을 투자하면 채울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몇 년 동안 꾸준히 무엇을 한다는 게 마치 젊음을 낭비하는 것처럼 여겨질지 모르지만 투자하는 시간이 긴 것일수록 빨리 시작하는 게 유리하고 그것은 여러분들의 평생을 지킬 수 있는 유일무이한 자산이자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285쪽

목표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다 보면 당연히 발생할 수밖에 없는 시행착오야말로 통찰의 힘을 키웁니다. 그것이 바로 창의력이 만들어지는 지점이라고 믿습니다.-288쪽

대학 전공은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해. 나도 지금까지 내 고등학교 은사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있지. 인생을 60년으로 보면, 앞 30년은 열심히 공부하고 그 다음 30년은 사회를 위해 봉사를 해야 하는데, 내가 사회를 위해 봉사하게 될 30년 기간 중에 어떤 것이 필요하게 될지를 누가 알겠나. 그러니까 대학교 다니면서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한다."-306쪽

자꾸 상황의 논리에 자기를 맞추다 보면 결국 자기 자신은 사라져버리고 상황만 남게 되는 거죠. 상황이 바뀌면 또 자기 자신은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런 거니까. 하지만 결국 상황이란 것은 바뀌기 마련이거든요.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 흔들리지 않는 것,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스스로 잘 아는 것. 이게 중요한거죠.-314쪽

경험이 문제라면, 저도 평범하게 중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에 왔기 때문에, 드라마틱한 경험이랄 게 없잖아요? 그래서 책을 많이 다양하게 읽는 것은 부족한 직접경험을 보완한다는 측면에서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경험을 통해서 쓸 수 있는 글이 있고, 상상력이나 감수성으로 쓸 수 있는 글이 있는 것 같아요.
스무 살은 경험이 부족하지만 한창 감수성이 예민하기 때문에 그맘 때 쓸 수 있는 글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이를 먹어감에따라 경험이 축적되어서 쓸 수 있는 글도 있구요. 그러니까 그때그때마다 자지가 쓸 수 있는 글을 써보는 게 중요합니다. 경험이란 건 세월이 흐르면, 세월의 무게가 쌓이면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때 가서 그 경험을 바탕으로, 좋은 글을 쓰면 되잖아요? 지금은 또 지금 쓸 수 있는 글이란 게 있을 테니까. -321쪽

장편하고 단편은 다른 양식이라고 생각해요. 장편이 건축적인 양식, 설계도를 가지고 쌓아 올리는 양식이라면, 단편은 시적인 양식이죠. 그래서 장편에서 중요한 것은 플롯, 장편의 부피를 지탱할 수 있는 주제, 이런 것들이 중요하고 단편의 경우, 한순간을 통해서, 일부분을 통해서 삶의 핵심을 보여줄 수 있는 날카로움, 통찰, 이런 게 많이 필요한 것 같아요.

...
단편이든 장편이든 대개는 기본적인 줄거리를 잡고 시작합니다. 캐릭터도 생각해둬야죠. 특히 단편 같은 경우는 응집된 힘 같은 게 필요하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져요. 자꾸 불필요한 것들이 들어오게 되고. 그래서 자기가 하려는 이야기가 뭔지를, 그걸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면 그 한 문장을 늘 생각하고 있어야 돼요. 모든 문장을 쓸 때 그 한 문장을 더올리면서 쓰면 구심력이 생겨 꽉 짜인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죠. 그래서 저같은 경우는 키워드나 아니면 그 글을 창작하게 만든 최초의 씨앗 같은 것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서 책상맡에 붙여놓고 쓰죠. -324쪽

늘 지나간 세월은 돌이켜보면 아쉬움이 남잖아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지금 어떻게 살더라도 돌아보면 결국 후회나 아쉬움이 남을 텐데, 그렇더라도 그 후회나 아쉬움을 줄일 수는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아가도 말씀드렸듯이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찾는 것,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할 때 기쁜가, 이것을 찾는 것이죠. 사실 이건 평생의 화두거든요. 그런데 한 살이라도 젊고 감수성이 예민하고 뭔가 많은 것들을 준비할 수 있을 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자꾸 다른 사람의 의견을 따라가게 되고,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들을 따라 하게 되는 거죠. 그래야지 안심이 되니까. 혼자만 떨어져 있는 것 같으면 불안하잖아요. 하지만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안다면 설령 자기가 가려는 방향이 다른 사람들과, 다수의 방향과 다르더라도 불안하지는 않겠죠. 자신감은 결국 자기를 아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 같아요.-325쪽

주변을 보면 좋아하는 일을 찾아 일찌감치 제 갈 길을 결정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먹을 것 아끼고 입을 것 아껴서 뮤지컬 보러 다니던 사람, 주식에 미쳐 수천만 원 까먹은 사람, 드럼에 빠져 멀쩡히 다니던 학교 때려치운 사람. 잘되고 못되고를 떠나 적어도 출발점에 서는 데에는 주저함이 없었던 사람들이었죠.-330쪽

인문학은 전복적인 상상력과 논리의 엄정함을 모두 요구하는 학문입니다. 학부 때 저를 가르치셨던 은사님은 수업시간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테제는 급진적이어도 좋다. 단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합리적이어야 한다." 제 느낌대로 풀어본다면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사고하되, 그 두 발은 현실에 굳게 근거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씀인 듯 싶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태도야말로 급변하는 현실에 대처하기 위해 꼭 필요한 자세가 아닌가 싶습니다.-3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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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견문록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세계음식기행 지식여행자 6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9년 7월
품절


이로써 '여행자의 아침식사'라는 이름의, 맛없기로 유명한 통조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퉁명스런 작명법까지도 소련답다. 보통명사가 그대로 상품 이름이 되다니. 내가 자주 다니는 가게는 무슨무슨 정육점, 아무개 술집, 성을 딴 생선집, 시곗방이라면 무슨 당, 이런 식으로 각각 고유한 이름이 있다. 하지만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주의 시절 소련에서는 가게마다 이름은 없고 간판에 그저 '고기''술''생선''시계'라고 보통명사만 멋없게 덩그러니 씌어 있을 뿐이었다. 아무튼 '붉은광장'과 마주한 장엄하고 화려한 건물에 있는 백화점조차 이름이 GUM(국립백화점의 이니셜)이다. 상품 이름도 마찬가지. 괜스레 구매의욕을 부추기지 않도록 퉁명스럽기 짝이 없다. '여행자의 아 침식사'라는 통조림 이름 역시 생산을 신성시하고, 상업 특히 판매 촉진 노력을 죄악시하는 금욕적인 사회주의적 미의식을 반영한다. -32쪽

축제일의 음식 대부분이 그런 것처럼, 알코올은 영양소가 되는 동시에 사회적인 의미도 있었다. 속담에 따르면 '마시고 춤추는 것은 남을 위해, 먹고 자는 것은 자신을 위해', '빵이 없으면 일을 못하고 보드카가 없으면 춤을 못 춘다.'"-45쪽

1756년부터 이어진 7년 전쟁에서 프러시아와 칼을 겨룬 스웨덴은 감자를 가지고 돌아온 것 외에는 별다른 전과를 거두지 못한 탓에 이 전쟁을 '감자 전쟁'이라 부를 정도다.-69쪽

"가장 알기 쉬운 건 함께 밥을 먹어보는 거야. 우선 음식을 가리지는 않나 봐야 해. 과도한 편식은 그 사람의 성장과정을 말해주고, 성격이며 건강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 말씀."
열심히 들어주니 그녀는 신이 나서 계속했다.
"게다가 밥 먹는 습관, 먹는 속도, 음식을 입에 넣기까지의 일련의 행동, 씹는 법들을 티 안나게 그러면서도 꼼꼼히 봐야 해. 결혼하면 매일같이 식사할 텐데, 이런 것들이 신경에 거슬리면 오래 못 가잖아."
그러고 보니, 러시아 주요 인사들의 통역으로 동행할 때 나도 모르게 관찰해온 것이 있다. 그 결과 먹는 법과 삶의 방식, 성격에 일정한 규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러시아인 대다수는 일본 음식을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일상적으로 어패류를 거의 먹지 않는 내륙에서 온 사람들에게는 생선회며 초밥이며 오징어 같은 것을 먹는 데 상당히 용기가 필요한 도전이다. 음식은 자기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니, 처음 보는 음식을 먹을 때는 무의식적으로 본성이 나온다. 그 사람의 호기심과 경계심 사이의 균형감각이 드러나고 마는 것이다. 미지의 것에 얼마나 마음을 열고 있는지를 볼 수 있는 리트머스지 -191쪽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겠다.

리카초프 정치국원은 페레스트로이카가 시작될 무렵 소련 공산당 정치국에서는 고르바초프의 오른팔이라 불리고, 개혁추친파에게는 보수파 두목이라고 비난받은 인물이다. 그는 회나 초밥은커녕 프랑스 요리에 종종 나오는 굴이나 말조개도 못 먹었고, 익힌 생선조차 꺼렸다. 물론 뒤킴도 노. 그렇다면 샤브샤브나 스키야키는 어떻겠냐며 주최 측이 권해봤지만 일본 요리는 못 먹는다고 막무가내였다. 그래서 일본에 머무르는 동안 그는 무난한 프랑스 요리를 먹었다.

페레스트로이카를 추진하면서도 좌우 세력의 균형 잡기에 노심초사한 고르바초프 전 대통쳥도 초밥이며 회에는 거부반응을 보였다. 살짝 맛보는 일조차 없었다. 하지만 튀기거나 익힌 생선, 샤브샤브나 스키야키는 대단히 즐겼다.
개혁 면에서라면 극좌파를 넘어 아예 소련을 붕괴시키는 불도저 역할을 한 옐친은 어떠냐 하면, 나온 음식은 무엇이든 흥미를 보이며 맛있게 먹어치웠다. 회며 초밥이며 된장국이며 낫토에 참새구이는 물론, 재미로 점점 희한한 음식을 내오던 주최 측이 어이없어할 정도로 그는 어떤 음식이건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먹었다.-191쪽

이들 세 사람의 경우는 낯선 음식을 받아들이는 정도와 정치에 대한 혁신성의 정도가 우스울 정도로 정비례했다.-1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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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페 일기 - 행복이란 분명 이런 것 다카페 일기 1
모리 유지 지음, 권남희 옮김 / 북스코프(아카넷)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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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살고 싶었어요. 일상에 사랑이 스며든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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