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여행, 나쁜 여행, 이상한 여행 - 론리플래닛 여행 에세이
돈 조지 지음, 이병렬 옮김 / 컬처그라퍼 / 2010년 9월
절판


하지만 좀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전에 만났던 여자친구들의 가족들은 직업이 뭔가? 어디 출신인가? 취미는 뭔가? 하며 질문을 던지곤 했다. 이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에 사실 아무도 신경 쓰지는 않는다 해도, 적어도 알아보려는 척은 했다. 하지만 아냐의 가족은 아무도 나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았다. 내가 직업을 가졌는지, 어디에 사는지, 대학을 나왔는지, 형제가 있는지, 부모가 있는지, 전염병이 있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다. 처음엔 아냐가 식구들에게 따로 알려 주지 않았을까 생각했지만 그녀는 집에 온 이후 나에 대해 전혀 말한 적이 없다고 했다.
"우리 집 식구들은 원래 그런 것에 신경을 안 쓸 뿐이야" 나중에 아냐가 말해줬다.
"뭐라고? 당신 식구들은 다른 사람의삶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본인들의 삶도" 그녀는 어깨를 으쓱했다.-161쪽

다시 레스토랑으로 돌아와, 나는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들을 살펴보고 점심 값을 지불하려고 플래티넘 카드를 내려놓은 베커 여사를 보면서 부러움과 분노의 감정에 휩싸였다. 도대체 어떻게 신경을 안 쓸 수가 있지? 궁금했다. 하지만 완벽한 미모와 지독한 자신감으로 무장한 이 절대 만만치 않은 여자들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그런 무관심 덕분에 삶을 무덤덤하게 살아올 수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자기성찰을 하며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았다. 자기 내면의 감정상태도 살피지 않는 그들이 어째서 내 심사를 살피는 데 시간을 낭비하겠는가? 이 가족은 속도를 늦추는 버이 없었다. 공세 중인 군인처럼 살았다. 일어나면 최대한 많이 먹고 전진했다. 책을 읽거나 세계정세에 대해 공금해 하거나 왜 여기 에 있는지 질문할 시간 따윈 없었다. 그들의 완벽한 육체와 눈부신 소유물 앞에서 그런 문제들은 호사가들의 특이한 관심거리에 불과해 보였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진격해나가는 이들이 부러워지기 싲가했다. 무의미한 사색과 자기 성찰로 자괴감만 얻을 따름인 내 삶의 방식보다 그들의 방식이 훨씬 유쾌하게 보였다. -1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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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7 21: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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