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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젊은 예술가들의 천국 - 베를린의 미술과 미술 환경에 관한 에세이
조이한 글.사진 / 현암사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베를린이 젊은 예술가들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고 한다. 그간 예술가들의 성지로 여겨지던 파리. 뉴욕의 살인적인 물가를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싸게는 200-300유로만 있으면 지붕아래 등을 뉘일 수 있는 곳, 앙상한 철근의 콘크리트 건물이 헐벗은 몸으로 역사를 보여주는 곳, 동네 호호 할머니까지 붉은깃발에 설레던 처녀시절의 스토리를 간직한 곳. 분명 루이비통을 사려고 관광객이 줄을 늘어서는 도시나 다들 전투적 눈빛으로 스타벅스 테이크아웃컵을 움켜지고 출근하는 도시보다 여러모로 예술가들에게 더 어울리는 곳이다.
저자는 베를린에서 십 년 넘게 유학한 사람이지만 오랜만에 다시 베를린을 찾아 반은 현지인의 눈으로, 반은 여행자의 눈으로 차분히 베를린 사람들과 베를린의 예술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의 끔찍한 패션센스, 머스트 해브 아이템 자전거, 그리고 그 자전거를 번쩍 들어올리는 강한 여자들, 교수와 맞담배를 피며 수업받는 학생들, 태양 앞에 스스럼없이 옷을 벗어던지는 자유로움. 유럽을 이야기하는 많은 책들은 동경이 뚝뚝 떨어져 자뭇 부담스러운 경우가 많은데 성숙한 저자의 글은 담백하고 허세가 없어서 좋다. worth visiting한 곳만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본 사람만이 아는-길을 잃었다가 우연히 발견하였거나 무심코 지나쳤다가 마음에 남아 다시 들러본- 소소한 장소들에 대한 소개도 마음에 든다.
여행자들은 베를린의 미술관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모른다. 오직 루브르와 오르세만을 기대할 뿐이다. 예외가 아니였던 나 역시 베를린의 작품들을 쉼 없이 보고 또 보고, 그러고서도 못 본것을 더 많이 남겨둔 채 그 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때의 아쉬움으로 책에서나마 더 많은 미술관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는데 저자는 양보다 질을 택하여 소수의 미술관과 독일 미술에 대한 깊이있는 해설을 풀어놓는다.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지만 이 책의 분위기와 목적에 더 어울리는 선택이었단 생각이 든다.
베를린은 분명 낭만적인 도시는 아니다. 음식이 맛있는 것도 아니고 남자들이 달콤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함이 매력적인 도시이다. 역사, 건물, 대로, 동상, 하다못해 사람들까지 크다. 그 조용한 거대함 그리고 그 뒤의 합리성의 매력을 찬찬히 짚어주는 책이다. 유럽여행루트를 짤 때 베를린을 넣어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고민된다면 먼저 꼭 읽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