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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10월
평점 :
정말 오랫동안 묵히고 미뤄두었던 이 책을 큰 숙제를 한다는 느낌으로 읽었다. 읽는 동안 한숨이 나올 정도로 부끄러운 부분들도 많았고(손발이 오그라드는 부분이라는 의미) 별볼일 없는 남주가 섹스의 신처럼 크고 단단한 자지로 등장하는 거의 모든 여자들과 자거나 성적인 행위를 한다는 내용(그것도 여자들이 먼저 원해서)측면에서는 내가 이 책을 기피했던 이유가 무척 합리적이었단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이 책이 출간되던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생각한다면 왜 그리 인기를, 특히나 한국에서 열광적인 인기를 얻었나 이해가 되기도 하였다.
한국 초판이 89년도에 출판되었는데 일본문화를 폐쇄해서 텔레비전으로 일본 방송을 볼 수도 없고 인터넷도 없었으니, 주 6일 출근하며 먹고 사는 것에도 허덕이던 한국 사람들에게 무라카미 하루키가 제시하는 '청춘'의 모습 (대학을 다니고 기숙사에 살고 위스키를 마시며 여자들과 어울리고 원하면 훌쩍 기차여행도 떠나는) 그리고 연애라는 소재를 통해 '상실'이라는 개념을 다룬다는 것 자체가 신선하고 충격적이었을거 같다. 민주화 운동으로 문학과 예술의 소재와 범위가 지극히 좁아져버린 상황에서 한국문학이 소외와 외로움을 다룬 작품이래야 '서울 1961년 겨울' 뭐 그런게 아니었을까? 그 상황에 하루키가 세련된, 잘 사는 나라의 인텔리 대학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상실이란 것이 무엇인지, 너도 힘들지? 해주니 문화적으로 척박하던 한국 독자들의 눈에 얼마나 멋져 보였을까. 마치 서울 처음 상경한 시골 소년이 받는 충격같은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특히나 성에 대해 가볍게 묘사하는 부분, 비정상적으로 개방적인 여성 인물들은 쓰여질 당시에도 하루키의 판타지로 쓰여졌을 인물들이고 지금 시대의 눈으로 보면 쓰레기 같은 내용들도 많지만 (죽은 아버지의 영정 앞에서 아버지의 정자로 만들어진 몸이니 다 보세요, 하며 발가벗는 여자 등장인물에 대해 쓰레기 같은 내용이라고 말할수 밖에 없다) 어쨌든 그 당시엔 쿨함으로 와 일본은 저렇구나 하고 버무리하며 남성 독자들의 판타지를 1000%정도 충족시켜 주었으리라 생각한다...일본에 가본 사람도 잘 없던 시절이니까. 일본은 엄청 부자나라고, 일본엔 이런것도 있다더라, 저런것도 있다더라, 이런 소문만이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시절이니까. 그리고 요즘 시대엔 중2도 쓰지 않을것 같은 감상적인 문장들. 비맞은 원숭이처럼 외롭고 숲의 나무가 다 쓰러지는 그런 문장들은 지금이야 우습지만 그 당시엔 그 시대의 독자들을 뒤흔들었으니 충분히 대단한 업적이라 할 만하다 싶다. 다만 나는 당시 그 문장을 한국어로 번역하였던 유유정 선생님의 평이 궁금하기는 하다. 60대 후반의 나이에 그런 문장들을 번역할 때, 그 시절 한국의 정서와 사회적 배경에서 그런 문장들이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짐작이나 하셨었는지.
그래서 결론적으로 이 책은, 시대의 감수성이 달라진 지금에는 감성적으로 와닿는 접점이 많이 사라졌고 하루키 특유의 여성 캐릭터는 비난받을 부분이 많으며 별 볼일 없는 남주가 자꾸 여자들하고 자는 내용은 스토리의 개연성을 떨어뜨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이 뛰어난 소설로 평가받는 건 한 권으로서 담아내고자 하는 작가의 주제의식이 명확했다는 점 그리고 문장과 구성의 측면에서 완성도가 높았다는 점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작가가 일생동안 같은 주제를 새로운 소설로 변주하며 커리어를 쌓았기에 결과적으로 그의 장대한 커리어 시작점에 위치하는 이 책이 스테디셀러로 긴 생명력을 가지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바꾸어 말하자면 평생 소설가로 열일하는 행위 자체가 상실의 시대에 대한 영업이 된 셈이랄까. 생각해보면 무라카미 하루키가 한국을 휩쓸던 시절 그 말고도 잘나가고 세련된 작가들은 많았고 청춘을 그린 작가들도 많았다. 작품 하나하나를 따져보자면 하루키보다 더 잘 쓴 작가들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작가들이 중년을 지나며 활동을 줄이고 서서히 잊혀진 작가가 되다 보니 그 작품들 역시 이제는 잊혀진 작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니 어찌 말하자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저력은 작품 하나하나로 말할 수 있는게 아니라 평생 단절없이 소설을 써내는 그의 장인정신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의 작품이라 팔리는 것이다.
그럼 무라카미 하루키는 고전이 될까요? 란 질문에는 글쎄. 지금은 작가가 계속 새책을 펴내고 영업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 10년 20년 후의 세대가 과연 이 책을 읽을까? K팝이 J팝보다 잘 나가고 일본의 여고생들이 한국식 화장을 따라하는 시대에? 하지만 그런 회의적인 시각과 함께 이 책이 지난 시절 얼마나 대단한 작품이었나 하는 객관적인 인정 또한 필요하다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며, 한국에서 선생님이라고 떠받드는 소설가들이 사실 하루키의 쿨한 대학생을 따라한 열화버전 상실의 시대를 썼었구나 깨달았을 때 정말 우스웠으니까. 그래, 하루키는 명성만큼 대단하지 않을 수 있지. 하지만 하루키만한 작가도 없었던게 지금까지의 현실이었다는 인정.
어쩌면 평생동안 읽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책이기에 완독한 지금의 감상은 후련하다는 것. 정말 속이 시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