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쩜 그렇게 철이 없냐. 오빠는 그렇게 말한다. 옛날에는 그 말을 들으면 의기소침해졌지만,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 사카에 왈, 소설에서는 철이 없는 어른을 나이먹은 소년, 소녀의 마음을 지닌 묘령 등의 언어로 바꿔 표현한단다. 오호라! 하고 좋아하려는데, 그가 키들키들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삼류 소설에서 그렇다는 거지.
"삼류 소설이 뭐가 나빠서. 난 걸작의 미진한 부분을 메우는 게 삼류 소설이라고 생각하는데. 사람의 일생을 그리려면 양쪽 다 필요해." - P26
어른이 되고 보니 운명과 우연이 종이 한 장 차이인 것 같다. 그리고 운명에 몸을 맡기기보다 우연에 몸을 맡기는 것이 보다 우아한 태도라는 생각도 든다. - P33
남들이 생각하는 듬직함과 내가 원하는 듬직함은 결정적으로 다르다. 나는 체격이 크고 경제력이 있다고 안심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편리함에 지나지 않는다. - P35
경험은 사람에게 배움을 선사하지만, 사람을 강하게 하지는 않는다. 강한 척하는 기술을 터득하게 할 뿐. - P67
-자포자기한 사람처럼 그런 소리 하지 마.
-염치없기는!! 자포자기는 젊은이들의 특권이야. 우리 나이에 그런 용어는 없다고!
언제부터인지 나는 자포자기가 내게는 영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버리지 않는 근성을 터득했다는 뜻일까. 아니면 자신을 버릴 장소가 아무 데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뜻일까. 나와 사카에는 아무것도 버리지 않는다. 버리기는커녕 과거에 버렸던 자신을 회수하려 할 정도로 욕심이 많다. - P110
시신을 무섭지 않다고 느낄 때, 사람은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음을 자각한다는 것을 알았다. -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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