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그날이 되었다. 스위스를 찾은 한국인이라면 반드시 해야 한다는 알프스 정상 투어. 스위스에 가 본 적도 없고 갈 계획도 없는 한국인 조차도 스위스의 융프라우 정상에서는 신라면을 엄청나게 비싸게 팔며, 그런데 그 비싼 신라면이 인생에 한 번은 먹어봐야 할 꿀맛이라는 과장 섞인 이야기를 어디에선가 한 번 쯤은 들어본 적이 있다. 너무 오래전에 듣고 여러 번에 걸쳐 들어 도대체 언제 처음으로 알게 된 정보인지도 가물가물한 그 후기는 여행지에 대한 후기라기보다는 전래동화나 구전설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융프라우 정상으로 가는 곤돌라와 기차 티켓은 동생이 한국에서 예약했는데 바우처를 보니 아예 예약하는 티켓에서부터 정상에서 먹을 신라면 값이 포함되어 있었다. 출발하기 전날 미리 표를 수령하러 터미널을 찾았더니 미니컵의 신라면 이미지가 인쇄된 예약 바우처를 보고 스위스인 직원이 표를 내어주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날이 흐렸다. 빗방울도 좀 떨어졌다. 다시 이곳을 찾기가 쉽지는 않을테니 실망할 법도 했지만 엄마는 흐린 날도 나름의 운치가 있다며 개의치 않았다. 나 역시 장마를 일년 내내 기다리는 사람인지라 물안개가 낀 알프스 마을의 풍경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것도 나름의 사치 아니겠는가? 남들이 화창한 날씨에 만년설이 낀 뽀족한 정상의 풍경을 선명히 보기 위해 찾을 때 우리는 흐리고 구름에 잠긴 융프라우를 즐긴다는 것. 애초에 산의 정상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가치관도 한몫했을 것이다. 나는 산이 있으니 오른다는 식의 마인드를 일절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고 이런 관광도 부모님이 원하니 하는 거지 혼자하는 여행이었다면 밑에서 바라보는 걸로 백분 만족하고 일부러 산의 정상에 올라갈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인간은 인간의 삶을 잘 살고 산은 산의 삶을 잘 살도록 서로 터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한다.
융프라우 정상을 올라가는 루트는 출발하는 동네에 따라 몇 가지 경로가 있는 듯 했는데 우리는 그린덴발트란 동네에서 사방이 투명한 고속 곤돌라를 타고 산 중턱까지 올라간 다음 산 정상까지는 급한 경사를 오르는 기차를 타고 올라가는 경로를 택했다. 비수기인데다가 이 곳을 많이 찾았을 동양인 여행자들은 급감한 상태이고(중국이 코로나로 인해 봉쇄 정책을 펴기 때문에 중국인이 거의 없음) 날씨가지 우중충하니 곤돌라를 타는 플랫폼은 거의 텅 비어 있었다. 무한히 회전하며 들어오고 떠나는 곤돌라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평생 이런 관광객을 봐 왔을 터미널 직원들이 우리를 바라보는 영혼 없는 얼굴이 인상적이었다. 아무리 풍경이 좋고 복지가 좋아도 인생의 지루함, 무료함, 지긋지긋함 그런 것들은 어느 정도는 세계공통이겠지. 사실 나는 이미 스위스에선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자체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안 그래도 지긋지긋한 인생 이 작은 곳에서 도망갈 곳도 없이 맛없는 음식을 먹으며 살 수는 없었다. 역시 나는 오징어게임을 만드는 나라 출신이며 이미 삼십년 넘게 그 곳에 길들여진 인간이었던 것이다. 어릴 적에 여행 다닐 땐 몸도 마음도 정신도 부드러워서 세상의 어느 곳에든 뜻만 있다면 자리 잡고 그 곳의 모양에 맞게 본을 뜨듯 내 모습을 맞춰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곤돌라에 올라타고 나서 보니 비오는 날 융프라우의 특전이 여기에 있었다. 날씨가 화창한 날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탔을 곤돌라를 회색빛 날인 오늘만큼은 전세 낸 것처럼 우리 일행 단 3명이서 탈 수 있었다. 아주 큰 대형 곤돌라였는데 엄마의 감상은 이랬다. “이 나라 사람들은 우째 이래 튼튼하게 만들어 놨노. 이 케이블 봐라. 한국에 있는거보다 훨씬 굵다. 내가 잘 모르지만 이것만 봐도 우리나라에 있는 거랑은 비교가 안된다. @@@에 새로 생긴 케이블카 처음에 만들고 고장나서 6개월 운행 안하다가 나중에 시작했잖아. 거기 가면 이것보다 더 비실한데 사람 50명씩 탄다.” 나는 웃음이 나왔다. 우리가 탄 대형 곤돌라 사이즈라면 정말로 한국인 50명 60명쯤은 서로 밀치고 탈 수 있을거 같았고 마치 단풍같이 화려할 고어텍스 잠바들의 풍경도 눈 앞에 있는 듯 그려졌다. 곤돌라값이 비싸지만 높은 산으로 빠르게 쑥쑥 올라가는 곤돌라 안에서 그것이 안전의 값이라면 충분히 지불할만 하단 생각을 했다. 곤돌라 아래로는 끝없는 초록이 펼쳐졌고 소들이 느릿느릿 움직이며 풀을 뜯어먹고 있었다. 곤돌라에서 내리자 공기가 싸늘했고 나는 미리 챙겨온 두터운 스웨터를 입고 산악기차에 올라탔다. 급한 경사를 올라가기 때문에 역방향으로 앉으면 몸이 쏟아질 것 같았다.
그 대단한 융프라우 정상은 미리 예상했듯이 보이는 것이 전혀 없었다. 전면 창으로 끝없이 하얀 빛만 눈이 부시게 쏟아졌다. 밖으로 나가 보니 그 하얀 안개인지 구름인지의 세상 속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수많은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정상이 보이지 않으니 그 곳이 융프라우라는 것을 증거할 수 있는 건 눈밭에 꽂혀 있는 스위스 국기가 전부였다. 우리도 눈을 밟고 나가 남들과 똑같이 깃발의 끝을 잡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셋이서 함께 셀카도 찍고, 사진을 찍어달라 부탁하는 다른 관광객의 요청에 따라 스마트폰을 가로와 세로로 현란하게 돌려가며 사진도 찍어주었다. 그리고 실내로 돌아와 신라면에 뜨거운 물을 받았다. 스위스 브랜드인 린트 초콜릿 샵도 있어서 나는 핫초콜렛을 먹을 수 있길 기대했지만 린트 초콜렛은 그램단위로 일반 초콜렛을 팔 뿐 핫초콜렛은 팔지 않았다. 도대체 왜 때문에 이 좋은 장사를 안하고 저에게 실망을 안겨주시나요? 여튼 신라면 맛은 좋았고 린트 초콜렛은 한국에서 더 싸게 살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스위스에서 살 필요는 없었다. 직장 동료들에게 돌릴 선물이 필요하다면 그냥 한국 도착하기 며칠 전에 인터넷으로 주문해놓으면 집 앞에 고이 잘 도착해있을거에요.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인상적이었던 건 산 정상에 명품시계를 판매하고 있었다. 몇몇 브랜드들 중 내가 아는 건 오메가 정도였는데, 인테리어가 너무 소박해서 오메가가 아니라 오메가 짝퉁 같았고 그건 세일즈 직원이 너무나 네이티브 중국인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사방팔방 어느 각도로 보아도 교포가 아니라 본토 중국인인 그 직원이 얼마 되지 않는 중국인 관광객에게 현란한 중국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런데 제가 잘 모르지만 시계도 스위스가 세계에서 제일 비싼 곳이라고 하니 시계도 굳이 여기서 사는 것보다는 현대백화점에서 사는 게 더 나은거 같습니다...!
그렇게 누구나 다 하는 일을 따라 하는 것 같았던 일정에 한 줄기 빛같이 재미가 찾아들었다. 그건 바로. 이 터널을 처음 지을 때의 사진이라던지, 그때 당시 죽은 사람들의 이름이라던지를 전시하는 코너가 실내에 있었는데 그 경로를 따라가다 보니 얼음으로 사방이 만들어진 공간이 나왔다. 겨울왕국에 나올법한 딱 그런 곳이었다. 아니, 왜 다들 융프라우에 신라면 있다는 소리는 하고 이런 멋진 얼음 궁전이 있다는 건 안 알려주신 거죠? 전혀 기대하지 않던 곳에 눈이 휘둥그래졌고 조금씩 미끄러지는 발걸음에 어릴 적 동심이 깨어나는 듯 했다. 신이 났다.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휴대폰을 꺼냈다. 인천 공항에서 출국할 때 로밍서비스를 처리해준 이동통신사 직원은이 “이 정도면 카톡 보내고 지도 찾는 정도는 하실 수 있으세요.”라고 해서 그 뒤로 정말로 카카오톡과 구글맵만 사용하고 SNS 같은 건 하지 않고 데이터를 아껴가며 사용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과감하게 유튜브 뮤직앱을 열어 겨울왕국 ost를 재생했다. 최대한의 볼륨으로.
우우우우~ 신비로운 얼음왕국의 메아리 같은 멜로디가 울려퍼지자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이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며 음악의 출처를 찾기 시작했다. 어리둥절하다가 이내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인투디언노운을 거쳐 레리꼬에 다다르자 얼음궁전 속 관광객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 내적흥분의 도가니 속에 하나가 되었다. 마음 속으론 모두 아이가 된 우리들은 허리를 숙이고 얼음 위에서 미끄러졌고 얼음상 옆에서 사진을 찍을 땐 부끄러운 포즈도 서슴치 않았다. 내가 꽃받침 포즈로 양손으로 뺨을 감싸고 깝치며 귀여운 척 사진을 찍었더니 그걸 보던 분홍피부 은발의 할아버지도 그대로 따라해서 귀욥기 그지 없었다 진짜...이 모든 것이 파워오브뮤직입니다...! 돌아다니다 보니 부모를 따라온 미국인 청소년이 나를 향해 다가왔다. “이즈 댓 유?” 나는 휴대폰이 들어 있는 소리나는 내 가방을 들어보였다. 한창 반항할 나이의 남자아이였지만 년도를 따져보면 겨울왕국과 함께 성장한 겨울왕국 키즈일테다. 그는 엄지를 척 세워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인생에서 융프라우를 본 것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는 일이고 굳이 의미를 두자면 ‘가족과 함께’ 봤다는 것에 방점을 찍어야 할테다. 하지만 레리꼬를 전세계 관광객들이 가장 듣고 싶어할 순간에 적시에 들려줬다는 점에서 나는 아주 큰 기쁨과 뿌듯함을 느꼈고 이건 인생의 추억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러니까, 이건 그냥 재미로 한 일을 넘어 거의 선행과 덕업 아닐까요? 죽어서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면 나는 신에게 분명 이 일을 이야기할 것이다. 제가요, 2022년에 스위스 융프라우 갔을 때 데이터를 아끼지 않고 얼음왕국ost를 펑펑 재생해서요, 그래서 정말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었고 좋은 추억을 남겨주었답니다. 생면부지 타인들에게 이렇게 귀여운 친절을 베푼 저를 천국으로 보내주지 않으시겠어요?
이 글을 보시는 분들께도 말씀드립니다. 융프라우 정상에서 인싸가 되려면 겨울왕국 ost를 재생하면 됩니다. 본인에게도 타인들에게도 너무나 기쁜 추억이 될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