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장강명 지음 / 유유히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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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 CEO가 과로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으면 우리는 혀를 끌끌 찬다. 뭣이 중한지 모른다며. 큰돈을 벌게 해주는 직업인지는 모르지만 몸을 해치면서까지 추구할 일은 아니라고 예리하게 알아차리는 것이다. 하지만 소방관의 희생을 우습게 여기는 이는 아무도 없다. 화재 현장이 아니라 훈련 중에 일어난 사고에 대해서도 그렇다. 우리는 슬퍼하면서도, 소방관이라는 직업에는 그럴 가치가 있다고 인정한다. 그 가치는 높은 연봉과는 다른 무엇이다. 종사자의 영혼을 충만하게 하는 것.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해주는 것. 퇴근 뒤에도, 심지어 퇴직 뒤에도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 P10

내가 우리 우주에 대해 이해하는 한 가지는, 인간이 그곳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 P62

무라카미 하루키는 우리 시대의 문호다. 의심할 바 없이 그렇다. 노벨문학상을 받건 못 받건 간에. 그리고 그런 대작가와 같은 시대를 살면서 그의 경로와 성취를 지켜본 것은 성장하려는 소설가로서 커다란 행운이다. - P142

자신의 욕망을 정확히 깨달으면 자신이 누구인지도 알 수 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덜 흔들린다. - P148

어떤 제목이 좋은 제목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사람이 공통적으로 하는 설명이 있다. 첫눈에 눈길을 끌되 소설 내용을 다 알듯한 느낌은 피해야 하고, 다 읽은 뒤에는 ‘아하, 이런 뜻이구나‘하고 무릎을 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 부르기 좋고 검색하기 쉬워야 한다는 것 등등. 내가 하나 더 보탠다면 본문과의 어울림을 들겠다. 소설 내용이 강건하고 씩씩하다면 문체도 제목도 그런 느낌인 게 좋다. - P209

작가에게 가장 바람직한 상황은 아마 작품이 곧 자기소개가 되는 경우이리라. 무슨무슨 소설을 쓴 사람으로 소개되는 것. 소설가에게 그보다 더한 성공이 있을까. 거기서 더 나아가면 작가와 작품이 동의어가 되기도 한다. "난 요즘 하루키를 읽고 있어."라는 말은 어색하지 않다. - P218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생각했죠. 한국 소설 독자들은 어떤 책을 읽을까. 재미있는 작품을 쓰면 되나.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까 사람들이 재미있는 작품을 읽는 게 아니더라고요. 우리나라 독자들은 유명한 작가가 쓴 작품을 읽어요. 일단 유명해져야 합니다. 상을 여러 개 받아서 유명해지자 싶더라고요. - P257

서울 길거리는 포털 사이트 첫 화면과 비슷하다. ‘여기 좀 봐주세요!;라고 호소하는 수많은 미남 미녀의 사진들이 걸려 있고 ‘이건 도저히 못 지나치겠지? 궁금하지?‘라고 외치는 간판도 있다. 단 몇 미터를 걸어도 그 사이에 무언의 메시지를 수십 가지는 받는다. 어떤 상품이 폭탄 세일 중이고 어떤 가게가 문을 닫았고 무엇이 유행이고 지금 시대정신은 이것이고...작품에 당대를 담으려는 소설가라면 그런 변화들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 걸까? 모르겠다. 유의미한 정보와 무의미한 소음을 구분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 방법은 나만 모르는게 아니라 아무도 모르는 것 같다. 내가 아는 분명한 사실은 간단하다. 그런 자극들이 이릉키는 일회적, 단속적 흥분 상태가 소설 쓰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긴 글을 쓰려면 긴 호흡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 - P282

나는 좋은 문학이란 고통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희미한 추정을 한다. 인간이라는 종은 행복보다는 고통에 더 마음 깊이 묶이게 되는 존재가 아닐까. 그리고 글자로 그 고통을 전하는 기술이 문학이 아닐까. 위대한 문학 작푸은 모두 행복이 아니라 고통을 다루었다. 문학이 위안을 줄 수는 있지만, 그 위안이라는 게 문학을 통해 타인의 고통을 체험한 뒤에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 P304

2000년 이후 어느 나라에서나 세계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됐습니다. 이 세계화는 여러 층위에서 동시에 이뤄진 단일화이기도 했습니다. 말하자면 정치와 경제는 각각 민주주의와 수정자본주의로, 생산과 소비는 기업적 합리성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맥도날드 방식‘으로, 문화는 ‘젊은, 풍요로움, 섹스‘를 중시하는 미국 대중문화를 닮아가는 방향으로 발전했어요. 그러다 보니 적어도 선진국들 사이에서는 사람들의 삶의 양식이 점점 비슷해져가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점점 더 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한 음식을 먹고 비슷한 음악을 들으며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시대에 진정으로 개인이 남들과 다른 삶을 산다는 게 가능할까? 우리는 다들 비슷비슷하게 규격화된 경로를 거쳐, 비슷비슷한 허무와 불행에 이르게 되구야 마는 것 아닐까? -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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