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품절


펑샤가 아이를 갖자 얼시는 그 애를 더 아껴줬다네. 여름이 되니 모기가 많아졌는데 그 애들 집엔 모기장이 없었어. 그래서 날이 저물면 얼시는 먼저 자기가 침대에 누워 모기들을 배불리 먹였지. 그동안 펑샤는 밖에서 시원하게 앉아 있으라 했고 말이야. 집 안의 모기들이 배가 불러 더 이상 물지 않게 되면, 그제야 제 처를 들어가 자게 했다네. 몇 번인가 펑샤가 들어가 보기도 했지만 그 때마다 얼시는 조바심을 내며 펑샤르 ㄹ밖으로 밀어냈다더군. 이런 이야기는 모두 얼시네 이웃집에서 들려준 거라네. 이웃집 여자들은 얼시한테 이렇게 말했대
"가서 모기장을 사오지 그래요?"
그러나 얼시는 아무 말 없이 웃기만 했다더라구. 한참 지난 뒤에야 나한테 조심스럽게 말했지
"아직 빚을 다 갚지 못해서 마음이 편치 않아요"
얼시는 모기한테 하도 듣겨서 몸 여기저기가 붉은 반점 투성이였지. 나도 마음이 아파 말했다네.
"그러지 말게나"
"저 혼자 몸이야 모기한테 몇 번 물려도 그리 불편할게 없지만 펑샤는 두 사람이잖아요."-247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즈행복 2007-10-23 0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명 저 부부는 결혼한 지 아직 얼마 되지 않았을게야, 장담하고 말고, 암~

LAYLA 2007-10-28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소설속에선 분명 신혼부부지만 ^^ 미즈행복님도 알콩달콩하시면서 뭘요ㅋㅋㅋ
 
사람아 아, 사람아!
다이허우잉 지음, 신영복 옮김 / 다섯수레 / 2011년 4월
구판절판


"내 결론은, 한마디로 살아야겠다는 것이었어. 그 이후로는 두 번 다시 죽음을 생각한 적이 없지. 인생은 우리들에게 공정하지 않을 때가 있지만 우리들은 자기에 대해서 공정하지 않으면 안 돼. 자기를 왜 그런 우두머리와 비교할 필요가 있단 말인가. 나와 그의 가치가 두 사람의 관계로 결정되어 버린다는 것처럼 멍청한 이야기는 없어. 설령 죽어서 뼈가 되더라도 내 뼈의 함유량이 그의 것보다 많아서, 귀신불도 그의 것보다 밝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지"-77쪽

"자네는 그다지 많은 경험을 쌓은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토록 여러 가지 문제를 생각할 수 있나?" 그의 답은 나를 놀라고 기쁘게 했다.
"자기 자신의 경험에서밖에 세계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동물뿐이죠. 저는 인간입니다. 그리고 우리 조국과 인민의 자식이죠. 조국과 인민의경험은 즉 제 경험이기도 합니다"-119쪽

우리들은 어쩌면 이렇게 비슷한가. 나도 곧잘 혼잣말을 한다. 그런 버릇이 언제생겼는지 모르겠지만 누구나 마음속의 '자기'는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자기'와 또 하나의 '자기'가 늘상 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고독한 사람일수록 마음속의 '자기'가 많다. 그것이 그 사람과 힘을 합해서 고독을 이겨나가는 것이다. -125쪽

"허 선생님의 개성은 말이지, 인생이나 사물에 대해 독자적인 견해를 갖고 독특한 태도를 취하는 것을 말하지. 자기가 옳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목표를 열심히 추구해 마지 않아. 허 선생님은 인간이란 것이 무언인지를 알고 계신다. 인간의 가치를 중요시하시지. 강렬한 자존심과 자애와 자신가을 갖고 계시는 거야."-180쪽

"모르겠어. 하지만 나는 동정이나 연민의 대상이 되고 싶지는 않아. 하물며 시혜를 받고 싶은 생각은 없어. 내가 걸어온 한 걸음 한 걸음은 모두 내가 선택해 온 거야. 그 선택이 나의 애정이나 의지를 그대로 표현하지 못하기도 했고, 때로는 나의 의사에 반하기도 했었지만 그것은 결국 내 인생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니까. 나는 나 자신의 발자국을 지우고 싶지도 않고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서 지우고 싶은 마음은 더구나 없어. 발자국은 나를 괴롭히고 부끄럽게 만들어.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소중하기도 해..."-190쪽

"제가 선생님이라면 '나를 사랑해 주겠느냐?'고 묻겠어요. 그리고'나만이 당신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 그리고 당신만이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고 하겠어요" 씨왕이 언젠가 그렇게 가르쳐 준 일이 있었다. 그는, 내가 사랑을 말할 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그의 '지도'에 대해서 나는 그저 웃기만 했다. 우리 나이의, 우리 같은 경력의 소유자들은 '사랑해 주겠느냐'따위의 문제에는 이미 흥미가 없다는 것을 그는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들은 말에 의한 고백이라든가 맹세는 필요로 하지 않으며 믿지도 않는다. 자기의 눈과 마음을 믿을 뿐이다. 애정은 느끼는 것이지 말하는 것이 아니다. -228쪽

그녀는 울기 시작했다. 그래, 우는 것이 좋아. 그녀에게 만일 경건하게 신봉하는 것이 없었더라면, 만일 열렬하게 추구하는 것이 없었더라면, 그리고 만일 진지하게 사색한 일이 없었더라면 울 리가 없는 것이다. 스이가 갖다주는 것이 기쁨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경박한 인간들뿐이다. 그래, 승리는 자주 고통까지도 갖다준다.-234쪽

"당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물론 당신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겠지. 내가 알 리가 있나. 그러나 자기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스스로도 모르겠다는 말은 난 믿지 않아. 자기의 필요에 의심을 갖는다든지, 두려워한다든지, 자신감이 없다든지 하는 것이라면 이해하겠지만"-239쪽

"그러나 역사의 무거운 짐은 도대체 누가 져야 하는 겁니까. 다음 세대인가요?"
"다음 세대가 지고 잇는 책임의 무게는 이미 충분해 역사의 수레바퀴는 자네들이 중심이 되어 움직여 가야지"
"그렇지만 현실은 우리세대에도 부모 세대의 고난을 나누어 갖게 하고 있어요. 우리들은 쭉 이런 말을 들어 왔습니다. 너희들은 앞 세대의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부모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야 한다고. 하지만 앞 세대는 다음 세대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주었나요? 부모는 자식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주었습니까?"
뭘 그렇게 흥분하지? 나를 자기와는 다른 세대에다 집어넣고서는. 이상한 사람! 하지만 말하고 있는 것은 옳다고 생각한다. 우리들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의 괴로움이 있는걸. "아직 어린 주제에!"엄마는 언제나 내게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엄마가 열다섯 살이었을 때를 생각해 봐요. 내가 부딪히고 있는 것과 같은 이런 복잡한 문제에 부딪혀본 일이 있어요? 책에는 오이씨를 뿌리면 오이가 나고 콩을 심으면 콩이 난다고 씌어있었다. 나는 무엇을 뿌렸지? 아무것도 뿌리지 않았어. 어른을 따라서 걸어온 것뿐이야. 그런데도 내 바구니에는 벌써 쓴 -344쪽

오이만 가득해. 너무 무거워서 들 수조차 없어. 모두 어른들이 심은 것인데. 역사란 무엇이지? 본적도 없고 사귀어 본 일도 없어. 그런데도 갑자기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우고 있는 거야. 마치 내가 역사에 대해 나쁜 짓이라도 한 것처럼, 이걸 공평하다고 할 수 있는 거야?-344쪽

나는 알고 있다. 고통은 다른 모든 감정과 마찬가지로 예술과 철학과 사상으로 승화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청춘과 애정을 잃었지만 무의미하게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나는 열정이 불타고 난 뒤의 숯불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나를 따뜻이 데워 주고 내가 나아갈 길을 비춰 주기에 충분하다. -368쪽

"얼굴 가죽이 두꺼운 것도 행복이야""
"커다란 행복이지. '행복 중의 행복'이란 거야. 인간의 자존심과 인격은 언제 상처받게 될는지 모르는 것이지만 그럴 때에 얼굴 가죽이 두꺼우면 자존심과 인격을 지킬 수 있잖아. 지식인의 얼굴 가죽 같은 것은 얇은 법이야. 체면 때문에 긍지를 버리는 일도 있어. 그러나 인간으로서는 긍지 쪽이 체면 쪽보다 중요한거야. 긍지가 인격과 존엄이라면 체면은 허영에 불과해. 특히 이번의 10년의 동란 덕택에 거의 모든 지식인이 냉혹한 시련을 견뎌 냈어. 그 시련의 성과 중의 하나가 얼굴 가죽이 두꺼워졌다는 거지. 덕택에, 비난을 당해서 체면을 엉망으로 만드는 일 같은 건 이제 하나도 무섭지 않아. 그리고 그럼으로써야말로 사람들이 진리를 지킬 용기와 의지를 강이낳게 할 수 있는 거지. 비판할 건가? 좋지요! 목에 표찰을 걸 거야? 뭐? 안건다고?급료도 공제하지 않고? 그거 참 한참 봐 주는군! 얼마나 행복해! 하하하!"-419쪽

인생이란 얻는 것과 잃는 것 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얻는 것을 좋아하고 잃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잃는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잃지 않으면 얻을 수도 없는 법이다"-467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즈행복 2007-10-11 0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도 좋았고, 신영복씨는 더 좋았던 책!
오랜만이예요. 이사하느라 오래 인터넷을 못했어요.
이제 자주 봐용~

LAYLA 2007-10-11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쩐지 뜸하시다 했어요 ^^ 반가워요! ^^
 
유럽장인들의 아틀리에
이지은 지음, 이동섭 사진 / 한길아트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의 전작인 '귀족들의 은밀한 사생활'을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었기에, 혹 다른 책도 있나 싶어 검색했더니 짠 하고 나온 책이다. 리뷰가 하나도 없기에 어떤 책일까 ^^ 기대하는 마음으로 두근거리며 읽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저자가 유럽의 장인들을 만나 며칠간 인터뷰한 내용을 엮은 책인데 인터뷰 내용과 함께 장인들이 만드는 물건들의 역사와 제작방법 등이 나오기 때문에 단순한 인터뷰집 정도로 보기엔 너무 아까운 책이다. 앤티크를 전공한 사람답게 전문적인 내용을 쉽게 술술 풀어내는 능력이 있다.

유럽장인들이기에 내가 이때껏 알고있던 장인들과는 다른 느낌의 장인들이 등장한다. 문화권이 다르기에 나로선 알지도 못했던 분야의 장인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도자기장인, 나전칠기 장인에 익숙하던 나에게 종 만드는 장인, 열쇠 장인, 안경 장인의 등장은 무척이나 신기하게 보였다 ^^

장인들이 어떻게 이 길에 들어섰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지금의 위치에 올랐는지 또 현대사회에서 장인은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등을 이야기해주는데 유럽에서 손 꼽히는 장인들이기에 그들의 삶 하나하나가 모두 영화고 드라마이다. 그런 마치 소설같은 부분과 풍속사적인 요소들이 더해져서 나에겐 더 좋았던 책이다. (내가 좋아하는 2가지를 한 권에 책에서 즐길수 있다니^^)

이 책에서 무척 재미있었던건 열쇠장인인 분. 생떽쥐베리의 후손이라 성에서 살며 작업을 하는데 ^^(귀족이니까) 자기가 만든 헬리콥터에 어린왕자 삽화를 프린트 해놓았다. 이거 정말 볼 만하다 ㅋㅋㅋㅋ

또 인쇄분야의 장인도 있는데 그 부분을 읽으며 책이 활자만으로도 말 할 수 있단 걸 알게 되었다. 활자를 배치하는 간격, 잉크의 농도, 활자판을 누르는 압력의 미묘한 차이가 만들어 내는 아름다움.

모든 장인들이 자기만의 프로정신을 보여주었지만...가장 가슴찡하게 봤던 건 상아조각을 만드는 장인의 손. 평생 동한 작업을 한 그의 손은 닳고 닳아 한 두 마디씩 짧고 뭉툭하다. 평생을 매진한다는 것, 인생을 바친다는 것, 무엇인가에 열정을 쏟고 손가락이 닳을 정도로 몰두한다는 것이 무척이나 경이롭고 아름답고 존경스러웠다.

지금은 아니지만 대학 새내기 때 의류학과에 속한 신분이었을 때. 경주였던가? 으리으리한 한옥의 고기집에서 식사를 하고 산책을 하는데 그 음식점의 사장이란 사람이랑 대화를 할 기회가 생겼다. 그 시절 난 고3때부터 진로를 바꾸라는(?) 주변의 압박에 무지하게 시달렸기에. 아..이런 사업 할 정도로 돈 많은 사람이면 역시나 나보고 돈버는 길로 가라고 그러겠군..하며 별 생각 없이 부모님 옆에 서있었는데 ...내 전공을 물은 그 사장의 반응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캬..의류학과..디자인...세상에 그것만큼 멋진 직업이 어디있니. 창조하는 일. 이건 아무리 시대가 발전하고 기술이 발전해도 기계가 할 수 없는 일이거든.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얼마나 좋니."

기대와 엇갈렸기에 더 충격(?)이 컸겠지만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당시엔 나에게 저렇게 창조의 경이로움을 말해준 이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그 사장 아저씨 앞에서 막 가슴이 두근거렸었더랬다. 이젠 그 창조의 길에서 한 발 물러났지만 아직도 맘 속엔 창조에 대한 선망이 자리잡고 있다. 그 사장 아저씨 맘과 똑같다. 세상에 창조보다 더 멋진 일이 어디 있을까! 그래서 이 책이 나에겐 무척이나 특별하다...

책 상태 좋고 편집도 이쁘고 내용 알차고 다 좋은데 딱 한가지 걸린다. 바로 사진. 분위기 살리려 그러는지 어린왕자 사진 빼고는 다 흑백인데 답답했다...보기 힘든 장인들의 작품을 흑백으로 봐야하는 답답함이란..ㅠ,ㅠ

그것 빼곤 다 좋았던 책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정다감 18 - 완결
박은아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7년 8월
절판


사람들과 사람들이 만나서 겪게 되는 변화들 중, 가장 긍정적인 혜택을 본 사람은 한결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결이, 넌 정말 많이 변했어. 네가 저녁거리 사는 걸 도와달라는 나링 올 줄 누가 알았겠어?"
"그러게 말야. 예전엔 상상도 못했어. 그런데 갈수록 생각 이상으로 내가 너한테 많이 기대고 있다는 걸 알게 돼. 새엄마가 쓰러지셨을 때는 너무나 확실하게 알았어. 다시 어릴 때로 거슬러 올라가서 생각해 봐도 역시 너하고 알게 된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 지금도 이렇게 옆에 있는게 마음이 놓이고...그리고 앞으로도 네가 어떤 형태든 자연스럽게 내 일상 속에 스며들어있었으면 좋겠어"

정말 한결이는 사람을 어쩌지도 못하게 묶어두는데 선수다. 그럼에도 미워할 수가 없다. 아마도 내 주변에 가장 가까이, 오래 머물러 있을 사람은 신새륜도 아니고 학교 선배도 아니고 앞으로 직장에서 만날 다른 누구도 아닌 한결일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한결이도 누군가를 만나 가정을 꾸리겠지. 나는 한결이의 주변 어딘가에서 이 녀석이 해달라는 건 다 들어주고 있을 거다. 안 봐도 그림이 된다. 그렇게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고 다들 변해갈텐데-129쪽

나만 변하지 못한 채-
'그 시간'에 머물러 있을까봐- 그런게 너무나 무섭다.-130쪽

"여자애가 아무데서나 자냐? 머리가 다시 짧아졌네"
-네가 머리 긴 걸 싫어했으니까
"사실 긴 머리가 더 좋았어.
-괜찮아 또 기르면 돼
"넌 고등학교 때하고 똑같구나. 이래서 여기에 오는게 싫어 . 내가 변하지 못하는 건 너 때문이야. 내 말 잘들어. 이번에 널 보러 온 건 아냐. 넌 너무 그대로라서 실망스러울 지경이야. 그러니까 내 탓하지 말고 실컷 변해버려. 그렇지 않으면 다음에 보게 될 때는 못 본 척 하고 지나가 버릴 거니까..."-172쪽

"사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기분이 너무 이상했어. 뭘 입어도 나한테 어울리지 않는 것 같고 초라하게만 느껴지는 거야. 사실 내가 입고 싶었던 건 민이 같은 웨딩드레스 였는지도 몰라. 이젠 나도 뭔가..달라져야 할 때가 정말로 와버린 것 같아."
",,,예전에도 얼핏 얘기했었지만-네가 괜찮다면 내가 입게 해줄게."
"푸핫"
"이상하다구?"
"응- 너무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이상해."-190쪽

"기대에 못 미쳐서 미안한데 난 이렇게 살래. 억지로 뭔가 바꾸는 건 너무 힘들어"-200쪽

실컷 변해버려. 지금하고만 다르면 돼.지금의 이런 네가 지나치게 좋으니까--200쪽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7-10-04 14: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정다감 18 - 완결
박은아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파라다이스 키스가 떠올라 초조한 심정이 되었다. 새드엔딩이라도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겠지만 이 만화만큼은 초기의 그 발랄함을 잊지 말고 (그냥) 해피엔딩이 되어주길 바랬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 감수성이 10대와 맞닿아 있는 시절에 보는 마지막 순정만화일지도 모르니까요. 제발. 근데, 해피엔딩인거 같은데 새드엔딩일때보다 더 아픈 내 마음은 뭘까요.

십대의 성장기와 연애담을 버무린 순정만화야 차고 넘친다. 이때까지 그런 류의 만화는 아주 많이 보아왔다. 그 중에 뛰어난 작품도 많았다. 근데 유독 다정다감만큼 슬프게 느껴지는 작품은 없었었다. 어리버리하고 외모도 평범한 여주인공이 잘생기고 돈 많은 남자 주인공 둘의 사랑을 받는다는, 이 진부하고도 비현실적인 스토리의 결말이 왜 그렇게도 내 이야기 같던지, 왜 슬프다 못해 서럽기까지 하던지.

십대에서 이십대로, 시간은 흐르고 모든 것은 변한다. 모든 것이 변하는 그 순간을 작가가 참 잘 그려내었다. 모든게 변해가는데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고, 알지 못하는 사이에 시간은 지나가고 언제나 함께 하던 누군가와는 멀어질수 밖에 없고 앞만 보고 달리던 날만 계속될 줄 알았는데 어느새 과거를 그리워하고 있다.

"넌, 미래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 있어? 직업 같은 건 둘째치고 앞날에 대한 풍경을 머릿속에 떠올려 본 적이 있냐구. 니 옆에 누가 있을지, 누구랑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예를 들어 5년 후의 생일날에. 일찍 결혼했을지도 모르지. 누군가와 맛있는 걸 먹고 수다를 떨고. 그렇게 보내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네가 생각하는 그 애들은 그 자리에 없는 거야. 모두 네가 앞으로 알아가야 할 사람들이라고 상상해본 적 있냐구. 그런 풍경을 구체적으로 생각하면 씁쓸해지지만-. 미래에도 어떻게든 연이란 걸 이어가겠지- 하는 생각은 들어."

성장만화에서 주인공들이 모두 각자의 꿈을 찾아 환하게 웃으며 희망을 얘기하는 바로 그 '공식'과 대조적으로 다정다감은 성장의 결과로 찾아오는 쓸쓸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젠 더 이상 하루종일 붙어었을 수 없는거야. 각자의 길을 향해 발걸음을 내 딛는다는 건 다른 한편으론 이별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과거에 아파하고, 과거의 사람을 잊지 못해 하루하루를 보내는 주인공. 변할 수 없어. 변할 수 없는 게 바로 내 모습이니까.

아이러니하게도 - 변할 수 없는 주인공이기에 변화에 슬퍼하느라 발랄하고 헤헤거리며 웃던 모습을 잃고 만다. 두 남자주인공 사이에서 조마조마해하고 눈물흘리고 애간장 태우던 그 여자아이가 이젠 어느정도 담담하고 차분한 사람이 되는구나.

하지만 해피엔딩이니까, 그 긴 방황의 끝에 행복을 만나는 주인공.

판타지일테다. 판타지래서 좋다.

 

 

이 책은 너무도 적나라하게 '우리의 십대가 얼마나 반짝거리고 아름다웠는지. 그리워서 미치겠습니다. 눈물이 나도록 그립습니다.'라고 말한다.

압니다. 알아요. 그런데 자꾸 후벼파주신다. 젠장. 친절하게 반짝이는 10대와 쓸쓸한 20대의 모습을 어쩜 그리 자연스럽게 연결해주시는지. 너무 아프잖아요.

99년부터 07년도까지 작가도 많이 변했겠지. 어색하던 펜선은 이제 간 곳이 없다.

이런 구질구질한 리뷰는 다 그냥 내 감정의 찌끄러기일 뿐이고. 혹 만약 바그너님이 이 리뷰를 보신다면 - 당신의 재능에 감사합니다. 당신의 바람대로 제 추억을 이야기 할 때 다정다감을 빼 놓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 되었지요. 지금처럼 열심히 좋은 작품 많이 해 주세요. 고마워요 정말.  

 


댓글(3)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뷰리풀말미잘 2007-09-24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완결이 나왔군요. ^^ 9권까지는 열심히 읽어주셨던것 같은데 말이죠. 완결도 나왔으니 재도전한번 해 봐야겠어요. 라일라님 평점도 좋고.

LAYLA 2007-09-26 21:44   좋아요 0 | URL
저도 한꺼번에 쭈욱 보고 싶네요. 그럼 또 느낌이 다를거 같아요. 이런식으로 끝낼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은근 바그너님은 새드엔딩, 이런 쪽을 좋아하는거 같아요 ^^

marryAlice 2009-08-19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점에서 주인공이 마지막에 행복을 찾았다고 여기시는지 궁금하네요.... ㅠㅠ 전 결말을 보고 완전 가슴 아파서요..... 물론 완전 새드앤딩인건 아니지만 결코 행복을 찾았다고;; 말하진 못하겠어요 ㅠㅠ 물론 훌훌 털어버리고 열심히 살아갈거라 믿지만요 ㅠㅠㅠ 아 ㅠㅠㅠ 신새륜의 결혼을 진짜 이해할 수가 -_-; 없어요;;; 진짜 말도 안된다는 생각만 드네요..... 아무리 할아버지 때문이라지만 그게 말이 되는지;;; 그렇게 둘이 절절매면서 이혼은 왜 안하는지;;; 부인에게도 실례인데....!!!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