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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으로의 여행 - 내 안의 수도원을 찾아
진동선 지음 / 문예중앙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침묵은 그 자체로 의사소통의 중요한 표현이다.
몇 년 전 나는 정독도서관 앞의 CineCode 선재에서 알프스에 있는 한 수도원의 일상을 찍은
다큐영화 <위대한 침묵>을 보았다.
두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영화에서는 마당의 눈을 쓸어내는 소리, 바람에 낙엽이 지는 소리, 의자를 당기는 소리 따위 외에는
아무런 음향도 없이 길게 길게 이어지던 장면을 간간히 기억한다.
그 외에도 수도사들의 기도소리가 들렸던 듯도 하지만 정확하게 기억 나지 않는다.
다만 기도 소리가 들렸더라도, 그것은 침묵의 하나로 받아들여질 만큼 어둠 깊숙히 침잠한 조용한 몸짓의 하나로 보여졌다.
수도사는 오랜 기도와 오랜 노동 끝에 문틀에 기대 앉아 마른 빵을 걸죽한 스프에 찍어먹었는데,
그 모습마저도 너무도 숭고해서 나는 숨쉬는 소리조차도 몹시 조심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이 책 <침묵으로의 여행>을 보면서, 영화 <위대한 침묵>을 떠올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순서였다.
무엇보다 수도원 기행이기에 그랬고, 작가가 쫓고자 한 것이 '침묵'이였기 때문에도 그랬다.
작가는 부족한 수도원 정보때문에 알프스를 끼고있는 주요 4개국의 수도원을 무작정
몸으로 부딪힐 각오로 덤벼들 수 밖에 없었다고 적었다.
결과적으로 '무작정'의 시도는 '운명적 발걸음'을 재촉했고, 무신론자인 작가에게 '깊은 영성'을 느끼게 했다.
그것이 이 책의 의미일 것이다.
만든이에게도 보는이에게도 은연중에 깃드는 마음의 평화, 안식, 그리고 신성.
아쉽게도 이 책에서는 <위대한 침묵>의 촬영장소인 카르투시오 수도원은 볼 수 없었다.
작가는 교회의 건축이나 조각, 그림보다는 오로지 수도원의 깊은 빛과 어둠에 집중해 사진에 담았다.
빛과 어둠은 침묵을 담보로 한다.
사진 속 수도원의 어둠을 보고있노라면 어디선가 수도사의 기도소리가 들릴 듯 하다.
책의 판형이 조금 더 컸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이유이다.
작가는 코모 호수에서 사진이라고 하는 것은 '아름다운 왜곡'이기 때문에 실제 눈으로 본 것보다 더 멋있게,
더 그럴듯하게 표현할 수 있다고 고백한다.
나는 실제로 작가 본 수도원과 알프스의 풍경을 볼 수 없기에 이 아름다운 장면들이
얼마만큼이나 왜곡된 것인지 알 지못하지만, 청량한 공기와 신록과 아찔한 매혹의 들판을 알프스에만 선물한
신의 편파적인 애정에 대한 작가의 질투를 지극한 마음으로 공감할 수 있었다.
<침묵으로의 여행>을 보면서, 침묵보다는 탄성을 쏟아내게 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을 보며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과,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도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