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열전 전 10권 완질
청화사 / 1983년 1월
평점 :


女人列傳


6

西宮에 지는 꽃

仁穆大妃

                                                                                  오 영


 여섯 명의 후궁과 열 세 명의 왕자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선조는 의인왕후가 세상을 떠난 뒤 새 왕후를 맞아들이기로 하였고, 나이 쉰한 살에 꽃 같은 열아홉의 김제남의 딸을 새 왕후로 맞아들였다. 그녀가 인목왕후였다.


 늙은 임금은 젊은 왕후에게 푹 빠져 지내더니 왕후는, 후궁들의 시샘을 받으면서도 드디어 잉태를 하였고 첫째 공주에 이어 둘째 왕자를 생산하게 되었다그러자, 정비였던 의인왕후가 소생이 없어 선조가 임란 중에 필요에 의하여 급하게 공빈 김씨의 둘째 아들 광해군을 세자에 책봉하였던 것이 문제가 되었다.


 임금은 광해군을 싫어하여 새로 태어난 영창대군을 후사로 내세우고 싶었으나 신하들의 눈치만 살피다 갑자기 승하하고 만다. 측근에서 임금을 모시면서 은밀하게 광해군과 정을 통해 오던 김상궁이 광해를 왕으로 만들기 위해 선조에게 비상을 먹였던 것이었다. 이 공로로 김상궁은 이후 광해를 치마폭에 싸고 국정을 농단하였다.


 광해군이 등극하였고 갑자기 세상이 바뀌었다. 영창대군을 지지하던 소북 패들이 철퇴를 맞았고 대북들이 조정을 장악했다. 나이 서른여섯인 광해군은 이제 겨우 스물다섯인 인목대비를 어른으로 모시지 않았고 인목대비는 홀로, 어린 남매를 거느리고 한숨과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조정을 장악한 대북 패들은 광해를 움직여 친형인 임해군을 강화에 귀양 보내더니 기어코 그를 살해 하였고, 다음으로 인목대비의 아버지 김제남을 죽이고 그의 부인을 제주로 귀양 보냈으며, 여덟 살 난 영창대군을 강화에 위리안치 시키더니 뜨거운 온돌방 속에 가두어 타 죽게 만들었다.


 『임진년으로부터 무술년에 이르기까지 칠년 동안 왜적의 침입을 받아 국토가 타고 궁궐이 타고, 선왕들의 능이 파헤쳐지고 백성들이 집을 잃고 욕을 당하고 뭇 생명을 죽인 난리를 겪었고, 마침내 나라가 멸망할 지경에 이르매 명나라에 구원을 청하여 굴욕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왜적이 바다를 건너게 한 후, 이번에는 다시 사경에서 구원을 받은 은혜로 명나라의 속국이 되어 버렸고, 아직도 타버린 궁궐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삼천리 천지에는 왜놈들의 발자욱이 그대로 남아 있거늘


 그래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간악한 도당들은 목전의 정권욕에만 눈이 어두워, 나라의 부흥과 치국의 경륜은 아랑곳이 없고 오로지 반대당파를 누르고 정권을 잡아 보려는 욕심에만 눈이 어두웠으니 그들이 일삼는 행패는 간악하기 짝이 없었으며, 반대당파를 모함과 무고로써 죽이기에만 골몰하였으니 어찌 오늘과 옛날이 다름이 있다고 하겠느냐.


 옳은 선비는 역적의 고랑을 씌워 죽이고 싸움에 능란하고 음흉한 욕심과 술책이 뛰어난 자들만이 활개를 치니, 그들의 대갈통에서 어찌 치국의 경륜이 나올 수 있으며 제민구국의 대도가 보일 까닭이 있겠느냐.


 오로지 불같은 욕심으로서 유능과 장지를 가장하고 우매한 능군들을 주물러 성인군자를 가장하고 정도의 깃발을 들고 호언장담을 늘어놓고 정사에 참례하여서는 상하의 눈치만 살피고 나라가 조각이 나도 꿀 먹은 벙어리 모양으로 말 한 마디 못하고 뒷구녁으로 살아날 구멍만 찾는 우졸들이 활개를 치고 날뛰고 있으니 어찌 국사가 난처하지 않으며 백성이 도탄에서 구원을 당할 수 있겠느냐―』


 광해군을 둘러싼 구데기 같은 대북파는 이어서 정원군의 아들 능창을 죽였고 인목대비를 유폐시킨 다음 결국 폐위시켰는데......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가 하루아침에 몰락한 대북파들은 상응하는 벌들을 받고 사라져 갔고 서인들이 권력을 잡았지만 그들 역시 반정공신임을 내세우며 국정을 농단하기 시작했다. 광해군의 세자는 사약을 받았고 광해는 여러 귀양지를 전전하다 제주에서 운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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