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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열전 전 10권 완질
청화사 / 1983년 1월
평점 :
女人列傳
4
恨의 女人
尹 妃
한용환
13살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 성종은 그 2년 전에 노재상, 한명회의 둘째 딸을 왕비로 맞아 들였다. 그런데 그 한비는 왕비가 된지 5년째 되는 해에 세상을 등지고말았다.
한명회는 큰 딸도 예종에게 시집보냈는데 예종이 왕위를 계승하기도 전에 까닭 모를 병을 앓다가 죽고 말았다. 그것이 한명회의 기구한 운명인지 아니면 집안 내력인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아무튼 흔한 경우는 아니었다.
왕비를 잃고 시름에 빠진 나날을 보내던 성종은 어느 날 마음에 드는 궁녀 윤씨를 취하게 되는데 그녀는 보잘 것 없는 가문의 출신이었다. 하지만 임금은 그녀를 숙의로 삼았고, 얼마 후 숙의는 원자를 생산하게 되었는데 그가 바로 연산이었다.
그러자 임금은 그 후 윤비를 왕비로 삼고 연산을 세자에 봉하였다. 그런데 임금은 그가 28명의 자식들을 둔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한 여자로는 만족할 수
없었든지, 여러 궁녀들을 후궁으로 삼았고 점차 왕비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때 임금은 후궁 정씨에게 빠져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 왕비는 정씨를 미워하게 되었다. 그런데 정씨는 자신이 임금의 총애를 받고 또 왕자까지 생산하다 보니 기고만장하여 오만방자한 행동들을 서슴지 않았다.
그런 중에 어느 봄날, 왕비가 춘잠회(春蠶會)를 개최하였는데 정씨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기회를 잡은 왕비는 그녀를 징치하였는데 그 일로 정씨를 감싸고돌던 대왕대비와 왕대비의 미움을 받게 되었는데......
성종이 갑자기 승하하자 제위에 오른 연산군. 자신의 내력을 알고 폐비의 묘를 옮기고 친히 제사를 지내려 하였으나 대비의 반대에 부딪치자 술로 세월을 보내며 방탕한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장녹수가 페비의 모, 신씨를 연산군에게 데리고 왔다. 신씨는 연산군에게, 보관하고 있던 폐비의 피가 묻은 금삼의 소매 조각을 보여 주고 모든 사실을 이실직고하였다. 사실을 모두 들은 연산군은 피눈물을 쏟았으며 복수의 칼을 빼 들었다.
우리가 익히 다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읽을수록 빨려드는 역사에 얽힌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