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주 열국지 6
김구용 옮김 / 민음사 / 1990년 8월
평점 :
절판


東周 列國志

                                                                   

[ 6 ]

패왕(霸王)의 길

 제령공은 태자 광을 폐하고 애첩 중자의 아들 공자 아를 태자로 삼았다. 그리고 후환이 없도록 아주 공자 광을 죽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진평공은 여러 나라 제후에게 군사를 일으켜 제나라를 치자 제령공은 뒤를 식작과 곽최 두 사람에게 맡기고 도망을 간다. 그런데 두 사람을 시기한 내시 숙사위가 석문산의 매우 좁고 험한 산길을 막아버리고 가버리자 두 장수는 진군에게 생포되고 말았다.

 

  진군에 붙들려가던 식작과 곽최는 쇠사슬을 끊고 탈출했다. 제령공이 병이 나자 공자 광은 공자 아를 태자로 세우게 한 서모 융자를 먼저 죽이고 태자로 선 아를 쳐죽였다. 병상에서 이를 보고 받은 제령공은 피를 두 말 가량 쏟고 침상 밑으로 굴러 떨어져 죽었다. 이리하여 공자 관이 즉위했다. 그가 제장공이었다. 지난날 태자 광을 몰아내는데 공적을 세웠던 내시 숙사위는 대항하다 참수 당하였고 제장공은 그의 시체를 칼로 썰어서 젓을 담아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제나라는 진나라와 동맹하고 오래도록 싸우지 않았다.

 

  진()나라 하군부장 난영은 난염의 아들이고 난염은 범개의 사위다. 난염에게 출가한 범개의 딸은 난기였는데 난염이 죽었을 때 그녀는 나이가 40세로 한참 사내 맛을 알 나이였다. 그녀는 난씨 부중에 자주 드나들던 주빈과 교정을 했다. 그러던 중 난영이 진평공과 제나라를 치러가자 두 사람은 공공연히 교정을 했다. 난영

은 전쟁에서 돌아와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난기는 친정아버지 범개에게 난영이 난을 일으키려한다고 모함했다. 난영은 성을 쌓도록 변방으로 쫓겨 가고 난씨 일문은 국외로 추방되었다. 범개는 자기 딸 난기가 서방질을 한다는 소문을 듣고 역사를 보내 주빈을 찔러 죽였다. 난영은 제나라로 달아났다. 제장공은 최저의 집에 드나들면서 그의 부인 당강과 사통했고 최저는 이 사실을 알고 제장공에 대한 원한을 품었다.

 

  제장공과 함께 거나라를 치러 갔다가 전사한 기량의 아내 맹강은 3일 동안 밤낮없이 통곡하다 눈물이 마르자 마침내 두 눈에서 붉은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그러자 제나라 성이 크게 진동하며 무너졌다. 제나라 사람들은 성이 무너진 것이 맹강

의 기막힌 슬픔과 정성과 한 때문이라고 말했다. 후세 사람들인 진()나라 사람 범기량이 진시황 때 만리장성을 쌓다가 죽었는데 그 아내 맹강이 남편을 찾아갔다가 그가 이미 죽은 것을 알고서 하도 슬피 울어서 성이 무너졌다고 전하는데 이 만리장성의 애화는 실은 제나라 장수 기량의 고사가 잘못 전해진 것이었다.

 

  최저가 거짓 병이 났다. 자나깨나 당강을 잊지 못한 제장공이 최저를 문병한다는 핑계로 당강을 만나러 왔다가 최저의 군사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왕하와 노포계는 훗날을 기약하며 거나라와 진()나라로 각각 달아나면서 동생 노포별에게 최저, 경봉에게 신임을 얻어 원수를 갚을 수 있도록 준비를 해 놓으라는 부탁을 하였다.

 

  최저는 태사 백에게 제장공이 학질로 죽었다고 실록에 기록하라고 강요하지만 태사 백이 이를 거부하자 그를 죽였고 동생 중과 숙까지 그렇게 죽였다. 막내 동생 계도 똑 같이 사실을 기록하였지만 차마 계까지는 죽이지 못했다.

 

  한편, 손림부와 함께 위헌공을 국외로 몰아낸 영식은 아들 영희에게 위헌공을 복위 시키라는 유언을 남겼다. 영희는, 위헌공으로부터 자신은 나라 일에 대해서 일체 간섭하지 않고 모든 결정을 영희에게 맡긴다는 조건으로, 위헌공을 도와 손씨 일족을 타도하였고 위상공을 태묘에 가두고 독주를 먹여 죽였으며 그의 궁속과 식구들을 모두 궁 밖으로 내쫓고 실권을 장악하였다권력을 전횡하던 영희는 공손 면여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마침내 진, 초 양 대국이 맹약을 하였고 이때부터 두 나라 간에는 싸움이 없어졌다. 한편, 제나라 우상 최저는 제장공을 죽이고 제경공을 군위에 세운 이후로 그 위세가 나날이 높아졌다. 그러자 후계 자리를 놓고 아들들 간에 싸움이 벌어졌다. 경봉이 이 기회를 이용하여 최저의 아들들을 죽이자 최저는 목을 매고 자살했다.

 

  어느 날 노포별의 집에 가서 술을 마시던 경봉은 노포별의 아내와 교정을 했다. 그 후로 나라 정사(政事)를 아들 경사에게 맡기고 자신은 처첩과 재물을 가지고 노포별의 집으로 아주 이사를 가서 밤마다 노포별의 아내와 동침했다. 그런가 하면 노포별도 아주 터놓고 경봉의 아내와 첩들과 예사로 교정했다. 그들은 한 집에 살면서 아내를 서로 바꾸어 데리고 잤다. 그래서 그들은 더욱 사이가 절친해졌다. 노포별은 노나라에 망명 중인 형님 노포계를 불러들였고 경사는 노포계와 딸을 결혼시켰다. 드디어 노포계가 거사를 하여 경사를 죽이자 경봉은 외국으로 달아났. 노포별 형제도 대부들에 의해 재산을 몰수당하고 외방으로 쫓겨났다.

 

  초왕 웅미가 병이 나자 공자 위가 관끈을 풀어 그를 목 졸라 살해하고 왕위에 올랐다. 그가 초령왕이었다. 초령왕은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하여 제후들의 회합을 주선하고 오나라를 쳐서 경봉을 잡아 참하였다. 그리고 크게 공사를 일으켜 장화궁은 건설하였다. 진평공이 또한 이를 본받아 사기궁을 건설하였다. 돌 무더기에서 여러 사람이 모여 앉아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는 소문이 있었고 진평공은 병이 재발하여 죽었다. 진평공은 일시적인 사치 때문에 백성들을 가난으로 몰아넣고 병들어 죽은 것이었다. 진소공이 뒤를 이었다.

 

  초령왕은 진나라에서 사기궁을 짓자 모든 나라의 제후들이 축하를 한 반면 자신이 지은 장화궁에 대해서는 반응이 없자 크게 분노하여 진()나라와 채나라를 치기로 했다. ()나라를 비롯한 여러 제후들이 의견을 규합하여 초나라에 침략을 하지 말도록 서신을 보냈으나 초나라는 이에 응하지 않았고 결국 두 나라는 멸망하고 말았다.

 

  진, 채 두나라를 초나라의 영토로 만든 초령왕은 주변의 허, , , , , 신 등 조그만 나라들의 임금들도 몰아내었다. 그런 초령왕도 서나라와의 전쟁을 하면서 오랫동안 궁성을 비우고 있다가 반란이 일어나 몰리게 되자 자결하고 말았다. 공자 간이 왕위에 올랐지만 공자 기질의 간계에 빠져 자살하고 기질이 왕위에 올랐다. 그가 초평왕이었다. 이후 초평왕은 빼앗았던 진, 채 두 나라와 주변 소국들을 모두 돌려주었다.

 

  진나라가 사기궁을 지은 후부터 모든 나라 제후들은 진나라의 속뜻이 그저 무사안일주의라는 것을 알게 되자 각기 딴 뜻을 품게 되었다. 진소공은 주나라의 왕신 한 사람을 초빙하고 제후들을 소집했다. 대회가 열렸지만 진나라는 모든 나라의

맹주가 되지는 못했다. 그래서 진나라는 더욱 신임을 잃었다.

 

  제경공은 어떻게든 옛 제환공의 패업을 다시 한 번 일으켜 보려고 결심하고 백성들에게 어진 정치를 베풀자 백성들은 그에게 큰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주변 나라들과 동맹을 맞고 하여 나날이 강대해져 마침내 진나라와 함께 천하 패권을 잡았

.

 

  그때 제나라 삼걸이라 자칭하는 공손첩, 전개강, 고야자 세 장수가 있었는데 결의형제를 맺은 세 사람은 그들의 공로와 용기만 믿고 시정과 여염 간을 횡행하며 못된 짓만 하고, 공경, 대부를 깔보고, 심지어 제경공 앞에서도 너, 내 하며 버릇없이 굴었다. 그러나 제경공은 그들의 용기를 사랑한 나머지 내버려 두었다.

 

  정승 안영은 근심 끝에 제경공이 내리는 복숭아 두 개로 세 사람을 자결하게 만들었다. 제나라 삼걸이 죽었다는 소문을 들은 진(), 연 두 나라가 쳐들어와서 제경공이 걱정하자 안영은 전양저를 추천하였고 그는 전쟁에서 두 나라 군사 목 만여 급을 참하고 개선하였으며 사마 벼슬을 받아 제나라 전 병권을 장악하였다. 이때부터 모든 나라의 제후들은 사마 양저의 소문만 듣고도 제나라를 두려워했다. 제경공은 국내 일은 안영에게 맡겼다. 이리하여 제나라는 날로 부강하고 사방이 무사했다.

 

  그래서 제경공은 날마다 사냥하고 술이나 마시면서, 마치 그 옛날에 제환공이 관중에게 모든 일을 쓸어 맡기고 놀 듯이 놀았다. 어느 날 밤 늦게 술 취한 제경공이 안영과 양저에게 차례로 술을 마시자고 청하지만 그들은 이를 긴급한 국사가 아니라며 거부하였다. 사신(史臣), 안영과 양저의 공로는 두 기둥이 하늘을 지탱한 것과 같았다고 시를 읊었다.

 

  초평왕은 태자를 진()애공의 여동생 무상공주 맹영과 혼인시키려다 맹영의 인물이 빼어난 것을 알고는 간신 비무극에게 꼬여 태자에게는 맹영의 시녀를 보내 혼인하게 하고 자신은 자부로 내정되었던 맹영을 첩으로 삼았다. 이 사실이 소문이 날것을 두려워 한 비무극은 태자 건을 변방으로 보냈고 후에 그가 반란을 도모한다고 모함했다.

 

  태자 건은 누명을 쓰고 송나라로 달아났다. 초평왕은 맹영의 소생인 진을 태자로 봉했다. 그 과정에서 초평왕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은 태자 건의 참모였던 태사 오사를 옥에 가두었고 후환이 두려워 그와 두 아들 오상과 오원을 함께 죽일 계획을 세워 오사에게 두 아들에게 보낼 편지를 쓰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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