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주 열국지 4
김구용 옮김 / 민음사 / 1991년 11월
평점 :
절판


東周 列國志

[ 4 ]

이기지 못하면 물러서지 않으리

  제효공은 제환공의 패업을 계승해서 패후가 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구원이 있는 노나라를 치려하자 노희공은 초성왕을 부추겨 제나라 를 공격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초성왕은 제나라보다 송나라에 대한 원한이 더 컸다. 그래서 제후를 규합하여 함께 송나라를 쳤다. 송성공은 급히 진문공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송나라를 도우려면 조, 위를 먼저 치고 초나라와 대항하여야 했다.

 

  초성왕은 본국으로 회군하기로 결정했지만 송득신은 자기 재주 만 믿고 송나라를 공격하면서, 진문공은 제와 진()나라를 교묘하게 이용하고 성득신은 완춘을 내세워 이를 역이용하는 치열한 외교전을 벌인다. 실로 제후들 간에 혼전에 혼전을 거듭하는 싸움이 계속되었다.

 

  진문공은 사로잡아 감금 중이던 조공공과 위성공도 풀어주면서 외교전에 활용하여 성득신을 고립시키는데 성공하고 망명 중에 약속했던 3(90)를 물러선 후에 초군을 포위 공격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성득신은 패전의 책임을 지고 칼로 스스

로 자기 목을 치고 쓰러졌다.

 

  진문공은 맹회를 소집하고 주양왕을 초청하여 천하의 패권을 잡고 모든 나라의 제후를 규탄할 수 있는 방백의 명칭을 하사 받고 이를 선포하였다.

 

  진문공은 진목공과 함께 정나라를 치러 갔으나 진목공이 정문공이 보낸 책무에게 설득당하여 귀국해 버리자 진문공은 진목공의 배반에 격노했다. 진문공이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세자 환이 군위에 올랐다. 그가 진양공이었다.

 

  진문공이 죽자 진목공은 정나라를 치기로 하였다 건숙과 백리해가 그를 말렸지만 그는 말을 듣지 않았다. 하여 건숙은 칭병하고 농촌으로 돌아갔다.

 

  맹명 등은 행군 도중에 정나라를 기습하고자 했던 계획이 누설되었다고 판단하고는 전리품을 챙겨 귀국하기 위해 조그만 활나라로 쳐들어가 노략질을 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그 소식을 들은 진양공은 효산에 군사들을 매복시키고 주력군은 진()군의 뒤를 따르게 했다. ()군은 효산에 도착하였고 점점 더 깊숙이 계곡 속으로 들어갔다. 드디어 매복해 있던 진()군의 공격이 시작되었고 후퇴하는 진()군 앞에는 진()나라의 주력군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군은 대패했고

 

()군 장수 포만자, 맹명, 백을병, 서걸출이 생포되었다

 

  진양공은 포만자는 죽였지만 나머지 장수들은 모부인 영씨의 말을 듣고 풀어주었다. 범을 놓아 산으로 돌려보낸 격이었다. 초성왕은 태자 상신의 모함으로 투발 장군을 자결하게 했는데 진상을 알게 된 후 태자 상신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자 상신은 아버지 초성왕을 목 졸라 살해하였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그가 초목왕이었다.

 

  초목왕이 등극하자 신하들 사이에 모함과 살육이 난무하였다. 그리고 몇 해 지나기 전에 초목왕은 군사를 일으켜 강나라, 육나라, 요나라, ()나라, 정나라를 쳤다. 때문에 중국에 혼란이 속출했었다. ()나라 맹명이 설욕을 위해 진()나라를 치러 갔다가 패하였다. 그 뒤 이번에는 진()나라가 진()나라를 침략하였다. 그때는 맹명은 전장에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맹명을 비겁자라고 비난했지만 진

목공만은 맹명을 믿었다. 언젠가 때가 올 것이라고.

 

  드디어 군사를 보충하고 병거를 수리하는 등 충분히 준비를 마친 맹명이 진목공과 함께 진()나라 정벌에 나섰다. 진목공이 재위 39년 만에 69세로 세상을 떠났고 태자 앵이 군위에 올랐다. 그가 진강공이었다. 진양공이 병이 나서 죽자 신하들 사이에 후계자를 두고 의견이 갈리고 다툼이 일어났다. 결국 어린 태자 이고가 자리를 물려받았다. 그가 진령공이었다. 그 과정에서 진()나라에 있던 공자 옹을 추대하다 다시 이고를 제위에 오르게 한 조돈은 진()나라와 마찰을 일으키기도 했다.

 

  한편, 아버지 초성왕을 죽이고 제후가 된 초목왕은 중국을 제패하려는 뜻을 늘 품고 있었다. 그래서 정나라와 진()나라를 치게 했다. 정목공은 급히 진()나라에 원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초군이 워낙 강하여 진나라 원군이 오기도 전에 정나라는 항복하고 말았으며 진()나라는 싸움에 이기고도 초나라가 무서워 항복했다. 채나라와 송나라가 굴복했고 제후와 노후도 초목왕에게 문안 인사를 드렸다. 초목왕은 중국을 제패한 백주(伯主)로서 자처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모든 나라의 맹주로 내려오는 진()나라만은 누르지 못했다.

 

  진강공이 진나라로 쳐들어갔다. 하지만 조돈에게 막히자 회군하였다. 조돈은 진()나라 책사 사회를 유인하여 데리고 가버렸고 고국에 돌아온 사회는 진(), () 두 나라의 평화를 간곡히 청했고 두 나라는 그 후로 수십 년 동안 각기 국경을 지키고 싸우지 않았다.

 

  주경왕이 승하하고 주광왕이 등극하였다. 초목왕도 죽었고 세자 여가 뒤를 이어 초장왕이 되었다. 조돈은 초나라의 국상을 이용하여 맹주의 지위를 다시 확고히 하기 위해서 제후들을 초빙하였고 제후들은 다시 진()나라를 섬기게 되었다. 제소공이 병으로 죽자 공자 상인이 세자 사를 찔러 죽이고 군위에 올랐다 그가 제의공이었다.

 

  그는 어린 임금인 사를 죽이고 국모인 소희마저 감금하였으며 주 왕실에서 보낸 사신 선백마저 감금해버리고 군사를 일으켜 소희의 친정인 노나라를 침공하기까지 하였다. 노나라가 진나라에 도움을 요청했고 진령군이 일곱 제후들을 모아 제나라를 칠 계획을 세우자 그때서야 제의공은 많은 뇌물을 진나라에 바치고 소희는 노나라에, 선백은 주나라로 돌려보냈다. 노나라는 후환이 두려워 제의공에게 많은 뇌물을 바치고 화해를 청했다.

 

  송양공의 부인 왕희는 송성공의 어머니이며 송소공의 할머니였다. 왕희는 늙었지만 음탕한 여자였다. 그녀는 송소공의 서동생 포를 사랑하여 정을 나누자고 덤벼들기도 하였는데 송소공이 국사는 돌보지 않고 사냥에만 열중하자 그를 내쫓고 포를 임금의 자리에 세우기로 결심했다. 포 또한 제의공을 본받아 제위를 노리기로 작정하고 흉년을 틈타 2년이나 창고를 열어 백성들을 구제하자 백성들이 모두 그를 칭송했다.

 

  그러자 기회를 잡은 왕희와 포가 반란을 일으켜 송소공을 죽였고 포가 제위에 올랐다. 그가 송문공이었다. 제나라 제의공은 천성이 간악하고 욕심이 많았다. 그는 공자 시절 마찰을 빚은 고관들에게 앙심을 품어 왔는데 제위에 오르자 그 앙갚음을 했다. 대부 병원의 묘를 파헤쳐 그 아들 병촉이 보는 앞에서 시체의 발목을 잘랐으며 날마다 음탕한 생활을 하면서 대부 염직의 아내를 가로채기까지 하여 원한을 샀다. 그런 일로 하여 그는 낮잠을 즐기다가 병촉과 염직에게 목이 달아났다. 제혜공이 뒤를 이었다.

 

  초장왕은 즉위한 지 3년이 지났으나 술과 사냥으로 세월을 보낼 뿐 국사를 돌보지 않았다. 그러자 죽음을 무릅쓴 충신들의 간언(諫言)이 있었고 다음 날부터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하여 세력이 날로 강성해졌다. 마침내 초장왕은 천히 패권을 잡아 백업(伯業)을 성취하기로 했다. 한편, 지금까지 미약하나마 천하 패권을 잡았던 진()나라는 초나라가 강성해지는 걸 보고 ()나라와 우호를 맺고 초나라의 진출을 견제하기로 했다.

 

  진령공은 장성하면서 음탕하고 포악해졌다. 간신 도안가와 어울리면서 탄궁으로 백성들을 쏘기도 하고 영오라는 사나운 개도 길렀으며 궁중 요리사를 토막 내어 죽이기도 했다. 백성들이 진령공을 원망하고 모든 나라들이 진()나라에서 이탈되어 갔다. 조돈과 사회가 잘못을 간해도 고쳐지지 않았고 자객을 보내는 등 조돈을 죽이려고까지 하자 조돈은 아들과 함께 수레를 몰고 서쪽으로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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