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발해여 발해여
황제의 탄일을 맞아 어화원에 푸짐한 연석이 차려졌다. 장복사가 썩 앞으로 나서 대건진을 포박하게 한다. 삽시에 대건진은 포박당하고 입에 재갈이 물렸다. 무혈반정을 일으켜 황위를 찬탈하려던 대건진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황후 양아림이 황제의 밀조를 위조하여 과감히 장복사와 임천중, 김진문을 설득한 게 이번 정변의 골간이었다.
황제 대현석이 중풍으로 쓰러지자 서둘러 장자 대위해를 태자로 책봉했다. 그러나 조정은 사분오열되었다. 적손과 방계손의 대립이 극에 달했고 황제의 근신과 태자를 받드는 신하들 간에 갈등이 첨예해졌다. 태풍을 예고한 것은 황후 양아림의 급서였다.
사도 오윤문, 우윤 나덕구, 황후의 시해를 주도한 태의 임선도가 전면에 나서고 태자 대위해는 가볍게 조정을 장악했다. 대위해는 아우 대봉예를 황제의 자리에 올리려던 황후를, 용상에 오르기 위해 기꺼이 독살했다. 갑인(894)년, 참으로 질긴 목숨, 병석에 누워 7년을 버틴 황제 대현석이 승하했고 대위해가 등극했다.
행궁으로 사냥 행차했던 대위해가 낙마하여 허리와 다리를 쓰지 못하고 병석에 누웠다. 그러자 운칠현이 황제의 병은 황음무치함을 징치하기 위해 하늘이 내린 벌이라고 상소를 올리자 황제는 대로하여 그들 모두를 변방으로 유배시켜버린다.
도사들의 정성어린 기도와 하늘의 명을 받아 만들었다는 단약을 복용한 대위해가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 몸을 일으켰다. 대위해는 그 동안 참았던 욕정을 풀기 위해 미소년들을 불러들이고 후궁들의 치마폭에 빠져들었다.
당나라에서는 주전충이 황제 이엽을 자객을 시켜 주살하고 아들 이축을 옹립했고 거란에서는 야율아보기가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당나라 한인들은 내란에 휩싸여 곤궁해지자 거란으로 피란했고 야율아보기는 이들을 흔쾌히 받아들여 농경에 힘쓰게 하고 물산을 장려했다.
탐음에 끝이 있을까마는 대위해의 음란은 한이 없었다. 그러자 차츰 정기가 쇠하였고 어린 진녀와 동침하면서 젊은 기운을 섭취한다는 재접술에 빠지기도 했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몸에 지니면 늙지 않고 천하장사처럼 힘이 넘친다는 오윤문의 말을 듣고 진신사리를 손에 넣기로 했다.
황명을 받든 오윤문은 법화사의 석탑을 헐고 사리를 탈취했다. 사리함을 침궁에 안치한 대위해는 대사령을 선포하고 조세와 부역을 감면하는 조서를 내렸다. 오윤문에게 작위를 내려 객국공으로 삼고 오미랑이 낳은 대한상을 태자로 책봉했다.
황자비 임경의 아버지 임좌진이 정궁인 황후 오승지가 낳은 대인선이 있는데도 후궁의 자손을 책봉함은 천륜을 어긴 것이라 주품하자 대위해는 임좌진을 삭탈하여 유배하고 황자비를 폐했다. 사가로 돌아간 임경은 자결하고 말았다.
유배지에서 돌아온 운칠현은 황음무도한 황제를 방벌하여 사직을 바로잡기로 결의한다. 행궁 행차가 있던 밤, 오윤문과 황제의 목이 달아났다. 대인선이 황위에 올랐다. 대인선은 고발규의 딸 고사은을 황후로 맞아들였다. 침궁에 있던 가짜 진신사리는 폐기했다.
정묘(907)년 4월, 주전충은 이축에게 황위 선양을 요구하고 황제를 폐했다. 그리고 스스로 황제를 칭하고 양나라를 개국했다. 안사의 난과 황소의 난을 겪으며 혼란에 빠졌던 당나라는 마침내 창업 276년 만에 멸망하고 말았다.
세력이 강성해진 거란의 야율아보기는 발해를 넘보게 되었고 이를 말리던 그의 외숙 야율할저가 유배지에서 탈출하여 두 아들과 함께 투항했다. 발해 조정에서는 그의 처우에 관해 의견이 분분했지만 대인선은 그들에게 벼슬을 제수했다.
대인선의 신임이 두터워진 야율할저는 군사 조련장을 찾아 훈련 과정을 보며 거란군과 대응할 수 있는 전술을 가르쳤다. 그리고 수군의 위용을 살펴보겠다며 홀한해로 향했다. 얼마 후 미사건이 군사를 재촉하여 야율할저를 뒤쫓았다.
추격군이 야율할저의 큰아들 야율무정의 목을 베자 야율할저는 도망쳤고 편전에 엎드려 내막을 대인선에게 소상히 아뢰었다. 호위 장수 이강국을 문초하여 전모가 밝혀졌다. 태복경 겸 보국대장군 양금당이 배후에 있고 재상 오소도와 대성악이 공모했단다.
양금당과 이강국을 즉시 참수하고 두 재상은 귀양을 보냈다. 그러자 여러 신하들이 황명의 부당함을 주청하자 대인선은 진노하여 유배된 오소도와 대성악을 참하고 배구를 비롯한 강직한 신하들을 모두 삭탈하여 하옥했다.
거란군들이 부여성으로 침공하자 야율할저를 피신시키기로 했다. 그런데 피신한다던 야율할저는 호위 군사들을 모두 죽이고 거란으로 달아나버리고 말았다. 발해의 동량지신들을 많이 죽이고 중요한 군사 정보까지 몽땅 빼내어 거란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대인선은 대노하였고 화를 달래기 위해 호계주를 너무 과하게 마셔 이틀 뒤 깨어났을 때는 사수(邪祟) 증세를 보였다. 총애하던 달시화를 목을 쳐 죽이고 말갈인들이 추앙하던 도사들을 주살했다. 신하들은 성정이 종잡을 수 없는 황제를 여색에 빠져들게 하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황제가 여색에 빠져있는 동안에는 궁궐이 조용했고 신하들이 평안했다.
대인선은 황자 대광현을 태자로 책봉하고 강역 순무에 나섰다. 그는 비사성에서 호족 왕계희의 딸 왕수량을 취하여 환락경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지난날 왕수량과 은밀히 정을 통했던 장시도가 그녀를 납치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대인선은 분노하여 왕수량과 장시도를 고문하여 죽이고 장시도의 아버지도 죽였으며 왕계희와 가솔들도 처형하여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와중에 왕계희의 세 아들은 도망쳤고 사돈 이한걸은 가솔들을 피신시키고 홀로 처형당했다.
대인선은 홀한성에 도착했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가기 전에 비사성에서 시작된 농민봉기는 들불처럼 번져갔고 크고 작은 봉기가 사방에서 일어났다. 대인선은 자신이 주관한 궁술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낸 황자 대광천의 후궁 고명회를 눈독을 들이고 있다가 술수를 써서 그녀를 취한다.
추위가 가실 즈음 황친 대진해와 대선덕이 황궁을 점령하고 도성을 장악했으며 거란 사신으로 북방을 향했던 황자 대광천이 급거 환궁해 별궁으로 진병하기 위해 군사를 점고한다는 소식이다. 대인선은 몽진을 결정하고 동경용원부로 향했고 대광현은 반란군 주역들에게 옹립되어 황위에 올랐다.
대진해가 장악한 홀한성과 황제가 파천한 동경성은 비슷한 시각에 각처의 반란군 진영에 밀사를 보내지만 그들을 쉽게 응대하지 않았다. 날이 풀리자 동경성의 고정웅이 군사를 이끌고 홀한성을 향해 진군했고 홀한성의 신주필이 응전했다. 지루한 공방전을 펼치던 가운데 야간 기습으로쫓겨 도성으로 들어온 오광찬이 대진해를 베고 황궁과 도성을 점령했고 신주필은 대광천의 수급을 대인선에게 바치고 항복했다. 하지만 처처에서 우후죽순처럼 반란이 일어 수습할 길이 묘연했다.
당나라를 멸망시켰던 주전충은 아들 주우규에게 살해되었고 주우규는 아우 주우정의 손에 죽었으며 주우정은 끝내 자살하고 말아 양나라도 무너졌다. 다시 당나라의 천지가 되었다.
고명지를 부러워한 고명회가 고명지처럼 몸을 만들기 위해 몸 안을 강하게 수축시킨다는 처방을 받아 노력한 결과 대인선은 밤마다 고명회의 치마폭에 묻혀서 고명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고명회가 고명지의 황자를 잠시 보고난 후 황자가 숨을 거두었고 고명회의 집에서 술사의 부적과 저주의 인형이 발견되자 고명회는 그날로 폐출되어 참수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그들의 아버지 고정균의 위세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집 곳간에 하도 많은 뇌물이 넘쳐나 도성 밖에 곳간을 크게 지었다. 그러면서 사검단(査檢團)을 만들어 백관을 감시하기까지 했다. 고정균은 사검단이 밝혀냈다는 역모 가담 관리들도 무수히 처단했다.
대인선은 고필진에게 부월을 주어 요주의 거란을 무찌르게 했다. 야율아보기는 드디어 군사를 일으켜 요동 땅을 시작으로 발해를 침공하기 시작했다. 대인선은 나라 안팎이 불안한데도 피한하기 위해 별궁으로 행차했다가 졸중풍으로 쓰러졌다. 며칠 후에 겨우 정신이 돌아섰고 소리도 알아들을 만큼 좋아졌다.
고정균의 모함으로 폐태자가 되어 별궁에 머물던 대광현은 호계주를 마시고 고명지와 어울렸다. 왕진경을 비롯한 반란군이 비사성을 탈취했다. 대인선이 금군을 보내 대광현을 체포하려 하지만 그는 이미 달아나고 없었다. 당나라와 연합을 위해 사신으로 파견되었던 배구는 소득없이 돌아왔다.
발해 조정에서는 결전의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았다. 당나라는 믿을 수 없고, 고려와 신라의 원군은 바랄 수도 없었다. 더욱이 발해 강역에 가뭄이 들어 백성들은 굶주리고 도처에 도적이 들끓었다. 민심이 흉흉해지자 대인선은 위무책으로 대사령을 내렸다.
대광현이 반란군의 주역들을 이끌고 도성에 들어왔고, 조정은 반란을 일으킨 말갈을 먼저 제압하자는 의견과 당나라와 연합하여 거란을 공격하자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대인선은 드디어 말갈의 토평을 결정하고 군사들을 보냈으나 그들은 처참하게 패배하였고 남은 군사들은 고려에 투항하고 말았다.
을유(925)년 섣달, 거란 황제 야율아보기는 발해 정복을 위해 출정했다. 대인선이 또 다시 쓰러졌고 부여성이 함락되었다. 노재상 장사진과 군사들이 사력을 다했지만 홀한성이 함락되었고 대인선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하얀 옷을 입고 새끼줄로 몸을 묶은 채 양 한 마리를 끌고 야율아보기에게 항복했다.
작가의 수년간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소설적인 측면에서 보면 지나치게 작위적인 기발한(?) 전투 장면의 설정이 거슬리기도 하고 드물게 앞뒤가 맞지 않는 인물의 등장이 당황스럽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