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트] 김홍신의 대발해 1~10 세트 - 전10권
김홍신 지음 / 아리샘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대발해(大渤海)
김홍신
5. 등주와 장성을 정벌하다
반란군의 저항은 오래 가지 못했다. 태부 신승이 탈출에 성공하고 반란군이 황제의 밀지를 가짜로 만들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군사들이 투항하기 시작했다. 대문예는 당나라로 도망쳤다. 당나라 황제 이융기는 기다렸다는 듯이 왕모중의 주청을 받아 들여 대문예에게 좌효위장군을 제수하고 그를 환대했다.
대무예는 국서를 보내 대문예의 참살을 요청했다. 이융기는 투항한 자를 죽일 수 없어 대문예를 왕모중의 집에 숨겨두고 변방인 영남으로 보냈다고 거짓 답신을 보낸다. 발해는 이 사실까지 언급하며 당나라를 압박하였고 후일 당나라를 침공하는 구실로 삼기도 했다.
대야발이 대조영의 명을 받아 집필을 시작했던 단기고사(檀奇古史)를 13년 만에 완성했고 7년 전 보내 온 사신에 대한 답빙으로 일본으로 사신단을 파견했다.
무진(728)년 4월, 당나라 장안에서 유학하던 대무예의 맏아들 대도리행이 죽었다는 부고가 발해 조정에 당도했다. 대문예와 왕모중이나 이융기가 꾸민 치밀한 흉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대무예는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지만 우선은 신중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당나라 군권을 장악하고 황실 재정을 뒷받침하는 왕모중은 명실상부한 당나라의 2인자였다. 고구려 출신 노예 신분으로 대국의 만인지상의 위치에 올랐으니 누군들 그를 부러워하지 않겠는가. 황제를 지근거리에서 보필하는 환관의 무리들이 그를 모함하기 시작했고 이융기 또한 그의 세력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왕모중을 우려한 상소가 있었고 그가 병부상서가 되어야 한다는 주청이 있자 위기의식을 느낀 이융기는 조서를 내려 왕모중과 그의 심복 장수들을 모조리 좌천시켜 버린다. 완모중에게는 귀양지 양주로 가는 도중 목을 매달아 죽이라는 교서가 다시 내려졌다. 중원을 경략하려던 한 고구려인의 꿈이 이렇게 일장춘몽으로 끝나 버렸다.
거란의 가돌가한이 발해와 연합하여 당나라를 공격하고 싶다는 간청이 있었다. 대무예는 겉으로는 이 제의를 반대하고 나서 은밀히 등주를 정벌할 계획에 착수한다. 등주의 수로와 강역도를 입수한 발해군은 임신(732)년 9월, 백암성과 비사성에서 동시에 군사를 일으켰다. 황제 대무예가 직접 이끄는 육로군은 요하를 건너 영주로 들이치고, 수군대장 장문휴의 해군은 비사성과 박작구에서 출병하여 등주로 짓쳐들기로 했다.
수군의 선봉장 양소화는 화공으로 당나라의 군선들을 여지없이 쳐부수었고 대장군 장문휴는 공격 한 나절 만에 등주성을 함락시켰다. 주력군을 이끌고 친정에 나섰던 대무예도 삽시간에 영주성을 점령하였다.
등주를 빼앗기고 영주성이 함락되었다는 급보에 당나라 조정은 발칵 뒤집혔다. 황제 이융기는 분노를 참지 못했고 토벌군을 편성한다. 왕모중 사건으로 좌천되었던 갈복순에게 군사를 주어 출정시키고 신라가 발해의 남쪽 국경을 공략토록 요청하는 한편, 대문예에게 유주 군사를 징발하여 발해를 공격하게 하였다.
하루가 다르게 겨울이 깊어가는 시기에 신라왕 김흥광은 김윤중과 그의 아우 김윤문을 시켜 발해를 공격하도록 했다. 북녘의 몰아치는 한파를 뚫고 나아가는 진군은 너무도 힘들었다.
발해는 당나라를 침공하기 전 이미 신라의 공격을 예측하고 이에 대한 방비를 철저히 하고 있었다. 지난 날 대문예를 쫓아 당나라로 망명한 역신 난일의 아우 난이와 난삼을 방어군 통수로 삼고 신라의 군사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신라군가 발해군이 조우했다. 발해군이 밀리는 척 퇴각하자 사기 충천한 신라군이 추격을 독려하며 뒤쫓았다. 그러나 그것은 발해의 유인책이었다.
폭설이 퍼붓기 시작했고 신라군은 눈에 파묻혀 사방을 분간할 수도 없이 고립되었다. 눈이 그치자 매서운 한파가 몰아쳐왔다. 추위는 갈수록 맹위를 떨쳤고 군사들은 얼어 죽어 갔다. 후회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몇날 며칠을 남쪽으로 내려 와 진을 쳤는데 돌연 발해군이 기습 공격을 해 왔다. 신라군들은 패배하여 경황없이 도주했다.
영주가 함락되고 평주마저 발해의 수중에 들어가자 당나라 조정은 대문예를 출병시켰다. 대문예는 역신 임청의 의견에 따라 발해군 깊숙이 정진대를 침투시켜 대무예를 살해하고 여세를 몰아 발해군을 깨뜨리고 천통성을 함락하면 황위에 오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정진대는 침투에 실패했고 대문예는 전투에 패하여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대무예는 천천히 군사를 몰아 당군이 방어선을 구축하고 장벽을 쌓고 있는 마도산에 도착했다. 그러나 전투는 일어나지 않았다. 연일 추위가 맹위를 떨쳐 얼어 죽는 군사들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전장에 나가는 것 자체가 무모했다.
당제 이융기가 화의를 원하는 사신을 보냈고 대무예는 이를 받아들여 회군을 명하였다. 발해로 보면 이번의 전쟁은 대승리였고 천하대국이라 고 큰소리치던 당나라로 보면 치욕의 전쟁이었다.
도성에 돌아 온 대무예는 거란의 가돌가한에게 은밀히 국서를 보내 날이 풀려 마도산 일대를 진격하면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군자금을 보내겠다고 했다.
대문예를 처단해야 한다는 조정공론을 거스르지 못한 대무예가 그들의 뜻을 가납하였고 역적을 주살하기 위한 계획이 비밀리에 진행되었다. 날이 풀리자 돌궐과 거란이 발해와의 밀약을 지켜 당나라 지경을 공격했다. 당제 이융기는 다급하게 발해에게 거란의 배후를 공격해 달라고 요청했고 대무예는 기다렸다는 듯이 군사들에게 요하를 건너게 했다.
그 틈에 섞인 세 명의 자객이 대문예가 은거하고 있는 낙양에 침투했다. 어느 날 거리에 나온 대문예를 자객들이 공격하지만 사살에 실패하였고 그를 따르던 호위병들에게 붙잡혔다. 그러자 그들은 모두 자결하였다. 대문예는 짐을 꾸려 거처를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
황자 대흠무는 열여덟이 되어 세상 순람에 나섰다가 돌아와 태자로 책립되었다. 대무예는 대흠무를 축성 중인 새 도읍지 중경으로 내려 보냈다. 중경의 축성이 마무리되자 대무예는 천도의 뜻을 천하에 알렸다.
대무예는 동방 경략을 위해 장문휴를 불러 의견을 묻자 그는 신라 공략을 주장한다. 하지만 대무예는 의견을 받아 들이지 않는다. 장문휴는 대장군 공진방의 딸 공사량과의 혼인을 약조했다. 그런데 사냥을 갔던 대흠무가 공사량을 발견하고 그녀를 취하고 만다.
황제 대무예의 병은 호전의 기미가 없이 깊어 갔고 그는 불사약을 찾기를 원했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었다. 발해 황제 대무예는 정축(737)년 진월(3월)에 기어이 붕어했다.
대흠무가 등극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동양 대해를 평정하러 갔던 북정군대총관 겸 보국대장군 장문휴가 신라를 정복하자는 상소문을 보내왔다. 대흠무는 황명을 따르지 않으려는 장문휴를 문죄하기 위하여 그를 입시케 했다.
그러나 그는 입시하지 않고 인편으로 사직상소를 올렸다. 불충하기 짝이 없는 기군망상이었다. 대흠무는 진노하여 그를 체포하여 참하고자 하였으나 태사 신승이 설득하여 이를 말렸다.
흑수를 제압하기 위해 양소화가 자진하여 나섰고 장문휴는 스승 법연스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흑수 지경으로 가서 의병을 초모하여 살신성인하기로 마음을 굳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