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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평점 :
7년의 밤
정유정
정유정(1966. 8. 15∼ ) 전남 함평 출생. 기독간호대학교 졸.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로 2007년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했고 ‘내 심장을 쏴라’로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을 받았다. 이후 일체의 작품 발표 없이 ‘7년의 밤’ 집필에만 몰두하여 2011년 출간하였다. ‘내 심장을 쏴라’와 ‘7년의 밤’은 영화로 개봉된 바 있다.
[ 프롤로그 ]
2004년 9월 12일, ‘세령호의 재앙’이라 기록된 날 밤. 어머니는 죽었고 아버지는 ‘미치광이 살인마’로 체포되었다. 나는 경찰서에서 나오면서 일제히 섬광을 뿜는 카메라 플래시에 노출되어 현기증을 느꼈다. 나는 아저씨가 준 휴대폰을 꼭 쥐고 있었고 울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때 나는 열두 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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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살짜리 여자 아이의 목을 비틀어 살해하고, 아이의 아버지를 몽치로 때려 죽이고, 자기 아내마저 죽여 강에 내던지고, 댐 수문을 열어 경찰 넷과 한 마을 주민 절반을 수장시켜버린 미치광이 살인마의 아들, 그 광란의 밤에 멀쩡하게 살아남은 아이, 그게 바로 나였다.
그 후 나는 작은아버지, 고모, 이모, 외삼촌댁을 석 달 정도의 간격으로 전전하였다. 그들은 내 유산인 엄마의 적금통장, 생명보험금, 일산의 새 아파트까지 나눠가졌지만 그것이 석 달 이상의 인내심은 사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결국 갈 곳이 없게 된 나는 아저씨를 찾았고 그의 둘째 형의 양자가 되어 함께 지내게 되었다.
친척집을 전전하면서 학교도 옮겨 다녔으나 아저씨를 만나고 중학생이 되어서는 공부도 열심히 하여 반 석차 1등, 전체 5등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세령호의 재앙이 실린 선데이매거진이라는 주간지가 반 학생들에게 날아들었고 나를 괴롭히던 친구와 싸워 보호관찰 2년을 받았고 이후 중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12번의 전학 끝에 자퇴해 검정고시로 고등학교에 갔다. 고등학교 네 학기 동안엔 아홉 번 전학했고 내 마지막으로 속초의 한 고등학교에서 1년 휴학하기로 결정했다.
나와 아저씨는 떠돌이가 됐고 주거지는 대개 항구도시였다. 아저씨는 내게 본격적으로 다이빙을 가르쳤고 바다는 내게 자유를 주었다. 약국 점원 일을 마치고 오니 아까 약국에서 등대마을 길을 물었던 라이방 일행 4명과 아저씨, 그리고 동네에서 하나뿐인 통통배 선주이면서 등대민박집 주인인 61세의 등대마을 청년회장이 승강이를 벌이고 있었다. 술을 마시고 야간 다이빙은 안 된다는 측과 하겠다는 측.
한밤에 사고를 당한 라이방들은 두 명이 죽고 두 명은 병원 신세를 졌다. 사고 소식을 듣고 구조 활동을 하고 시신을 인양까지 했지만 그들이 세가(勢家)의 아들들이었기 때문에 나와 아저씨, 그리고 청년회장은 오랫동안 경찰 조사로 시달림을 받고 풀려났다. 덕분에 나의 신원이 밝혀져 뉴스로 보도되었다. 약국을 그만두고 집에 오니 아저씨는 보이지 않았다. 청년회장이 배달 오토바이가 주고 간 상자를 전한다. 그 속에는 아저씨의 물건들이 들어 있었다. A4 용지 묶음에서 승환 아저씨가 쓴 글들을 읽을 수 있었다.
청년회장은 또 다시오토바이의 물건을 건네 준다. 그 속에는 선데이매거진 한 부와 내가 수학경시대회 입상 선물로 아버지께 받았던 누렇게 변색된 245 밀리미터짜리 나이키 농구화 한 짝이 들어 있었다. 머리털이 곤두섰다. 오영제, 세령의 아버지인 동시에 선데이매거진. 그러나 그는 7년 전에 아버지 손에 죽었었다. 기분 나쁜 혼란이 온몸에 번졌고 불길한 직감이 악취처럼 달려들었다.
오영세, 그는 치과 개업의였고 S시에 ‘메디컬센터’라는 빌딩도 가지고 있었다. 댐이 들어서기 전에는 세령강 백리 길을 쥐락펴락했다는 대지주의 외아들이자 저지대 주민들의 밥줄인 세령평야의 현재 주인이면서 사택의 주인이기도 했다. 그는 사택 101호에 살고 있었다. 나의 아버지 최현수는 전직 프로야구 선수였다가 은퇴하여 보안회사에 들어갔고 아파트 구입비용에 도움이 되고자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사택이 지원되는 시골 세령댐 신임보안팀장으로 발령받았었다.
그날 밤, 오영제는 잦은 가정폭력으로 부인이 제기한 이혼 소송에서 패소한데다 그의 딸 세령이 생일 파티를 한다며 집안을 어질러놓은 것에 흥분하여 세령에게 폭력을 가하자 세령은 달아난다. 현수는 102호에 같이 살아야 할 승환을 만나기로 하고 세령댐으로 오던 중 친구들과 만나 술을 한 잔 한 상태였다. 무면허 음주운전. 어두운 밤길에 그만 세령을 치이게 되고 아직 숨이 붙어있는 그녀의 입을 틀어막고 댐에 던져버린다. 마침 세령호에서 몰래 야간 다이빙을 즐기던 승환이 그녀의 시신을 확인하지만 전에 아버지에게 폭행당한 그녀를 구해주었다 성범죄자로 몰릴 뻔한 일이 기억나 못 본 척하기로 했다......
7년 전 일어났던 일을 발단으로 하여 사건을 극적으로 이끌려는 작가의 노력이 엿보이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