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조선총독부 (1~5묶음판매)
배영사 / 1993년 1월
평점 :


소설 조선총독부

                                                                                                         유주현

[제 5 권 ]

 

(---제4권에 이어---)

  1934. 4. 18 창경원이 요사쿠라(밤벚꽃놀이)로 훤하게 밤을 밝힌다. 지금의 총리대신 사이토가 총독으로 부임하여 방방곡곡에 야마도다마시(大和魂)의 상징인 사쿠라를 심은 것이 결실을 본 것이다. 그날 한상룡의 집에서 벌어진 가와지마 조선군 사령관 환영식 연회에서 일본의 색깔을 일본 군복 색깔인 국방색으로 명명한.

 

  김구는 장개석과 만나 낙양군관학교에 한국인 특별반을 설치해 주도록 요청했다. 만주의 한중연합부대가 일본군 1개 대대를 격파하고 양세봉의 조선혁명군이 일본군 2개 연대를 쳐부수었다. 이범석은 청산리 전투에서 이름을 날리고 이청천은 한중연합군을 지휘하기도 하였으나 만주가 이미 일본에게 먹혀버렸기 때문에 독립운동이 새로운 국면에 부딪치게 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신임 미나미 지로 총독의 부임 하루 전 날 동아일보는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의 가슴에 새겨진 일장기를 말소해 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동아일보에 대한 검거 선풍이 불어 닥쳤다. 미나미 총독과 미바시 경무국장은 독립운동자들에게 강압정책을 쓰기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그 즈음 일본 정국은 매우 불안정했다. 1936. 2. 26 발생한 대규모 쿠데타인 ‘2. 26’ 사건은 3일 천하로 종막을 고했으나 황도파의 과격한 장교단의 발언이 강화되는 등으로 일본 정국은 문자 그대로 살얼음판이었다. 우가키 내각이 유산되고 조선군 사령관으로 있었던 하야시 대장이 수상으로 임명되었다.

 

  장개석 총통의 국민당 정부는 외침세력인 일본과 정면 대결해야 했고 안으로는 모택동의 공산당을 박멸해야 하는 내환을 안고 있었다. 그래서 국론통일을 위해 공산당 소탕작업을 선행하기로 했다. 그러자 아버지 장작림을 죽인 일본에 대해 불구대천의 원한을 품고 만주에서 쫓겨 온 장학량이 쿠데타를 일으켜 장개석 총통을 체포, 감금해 버리는 사태가 발생한다. 그러자 공산당의 주은래가 거중 조정에 성공하여 며칠 만에 장개석은 석방된다. 조선의 독립 운동 단체에서도 민족주의자와 공산주의자 사이의 분열이 나타나 민족진영은 남경과 상해를 중심으로 모였고 공산진영은 연안과 시베리아 방면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백백교 사건이 일어났다. 교주 전해룡이 사교를 만들어 교도들의 재산을 수탈하고 부녀자들을 닥치는 대로 겁탈했으며 그 죄악을 은폐하기 위해 수많은 교도와 부녀자들을 죽여 암매장한 사건이었다. 일제는 이를 이용하여 조선의 수많은 지식인들을 또 한 차례 잡아들인다.

 

  노구교사건으로 일본의 중국 침략이 가시화 되면서 조선은 일제의 병참기지가 되었다. 그래서 더욱 압박을 가하기 시작한다. 우선 황민화 교육을 철저히 강행하고 조선을 반도로, 조선인을 반도인으로 부르게 하였다. ‘황국신민의 서사를 만들어 외우게 했다. 주로 초등학교 어린이에게 조석으로 외우게 하고 모든 예식에 앞서 제창시키라고 했다. 교육법을 개정하여 아예 조선어 과목을 빼어 버렸다. 일본어가 반도인의 일상 국어가 된 것이다.

 

  일본인 거류민 장정들이 소집영장을 받고 속속 군문으로 끌려 나갔다. 학생들을 동원해 출정 장병들을 열광적으로 환송하고, 각급학교에 군가를 적극 보급하여 군가의 물결, 일장기의 물결이 조선 반도에 꽉 찼다.

  12. 17 남경이 함락되었다. 일제는 만화까지 이용하여 어린이들에게 침략전쟁의 찬양과 배화사상을 주입한다. 신사참배를 강요하고 애국가요대회를 여는 등 모든 지식인, 예술인, 체육인, 종교인들을 황민화 운동에 동원시킨다.

 

  일본은 승승장구했다. 북쪽은 장가구로부터 남쪽은 광동, 해남도에 이르기까지 황해 바다에 연한 중국 전역의 중요 도시와 평야를 모조리 석권해 버렸다. 소비자 물가가 폭등하고 쌀과 생필품이 달리기 시작했으며 공출제도가 생겨 집안에 있는 쇠붙이들을 긁어 갔다. 창씨개명의 제령이 발표됐다. 전쟁이 더욱 치열해 지면서 비행기 헌납 운동도 벌어진다. ‘일한합방공로자 감사위령제가 열리고 황군위문단이 압록강을 건너갔다.

 

  1940년대가 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건국강령이 발표되고 광복군이 설립되었다. 유럽은 히틀러의 독무대가 되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폐간되었으며 사상범 예방구금령이 공포됐다. 그들은 또 황도사상을 고취하기 위하여 각급학교, 관공서, 종교단체, 공공단체들은 의무적으로 신사참배를 하도록 명령한다.

 

  독일군이 소련 영토를 침공하고 도조 히데키 내각이 출범한다. 일본은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한다. 드디어 전 세계가 사상 최대의 전쟁인 제2차 세계대전 속으로 휘말려 들어갔다. 조선에 징병제도가 실시되고 학병제가 공포되어 젊은 장정들과 학생들이 전장으로 끌려갔다. 유럽에서는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하여 최후의 공략전을 개시했으며 일제는 미드웨이 해전에서 결정적인 타격을 받고 카달카날, 솔로몬, 아츠섬, 유황도, 사이판 등에서 패하여 망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B29가 조선 상공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미국 공군은 도쿄와 규슈에 대대적인 폭격을 감행하기 시작했다. 이즈음 루즈벨트는 미국 사상 처음으로 4선 대통령이 되었다. 미 해군의 강습부대는 오키나와를 강습하였다. 310일 육군기념일 미국공군의 B29 150대가 두 시간 반 동안 도쿄를 공습하여 129천 명의 사상자를 낳게 하였다. 도쿄는 불의 지옥이었다. 이런 시기에 정변이 일어나 79세의 해군대장 스즈키 간타로가 들어 앉았다. 독일은 항복했다.

 

  망해가고 있는 중에서도 일제는 부민관에서 나 어린 젊은이들을 선동하여 죽음의 결전장으로 보내기 위해 웅변대회를 열었다. 그곳에 조선의 젊은이들이 던진 폭탄이 터졌다. 히로시마에 원자탄이 터지고 소련이 대일 선전포고를 한다. 이어 나가사키에도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일본은 항복하고 전국의 감옥의 문이 활짝 열렸다. 1945. 8. 15 조선총독부가 이 땅에 군림한지 36년 만에 해방을 맞이했던 것이다.

 

 읽는 내내 울분을 금할 수 없었다. 나라의 땅을 빼앗긴 민족은 물질도, 역사도, 문화도, 정신도 모두 빼앗기고 만다. 잊지 말자, 역사를 잊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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