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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초한지 1 - P
정비석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84년 9월
평점 :
절판
小說 楚漢誌
정비석
정비석(鄭飛石 1911∼1991) 본명은 서죽(瑞竹). 소설가. 평북 용천 출생. 니혼대학(日本大學) 중퇴. 1940년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기자로 입사. 해방 후 『중앙신문』 편집부장 겸 문화부장 역임. 1937 조선일보에 『성황당』 으로 등단. 대표적인 소설로 『자유부인』, 『명기열전』, 『소설 손자병법』, 『소설 초한지』, 『산유화』 등이 있다.
이 소설은 제목이 초한지로 되어 있지만 내용은 진시황의 통일천하와 한고조의 통일천하, 즉 두 개의 통일천하에 관한 소설이다.
나이 30의 체격이 우람한 조나라의 대부호 거상 여불위(呂不韋)는 장삿길에서 한 노인으로부터 ‘사람 장사’가 가장 좋은 장사라는 깨우침을 얻는다. 여불위는 정력이 절륜하여 세 명의 마누라가 있었는데 오히려 부족하여 몇 달 전 초(楚)나라에서 2백 냥을 주고 열여덟 살짜리 주희를 애첩으로 맞이 해 왔다. 주희는 얼굴부터 절세미인일 뿐 아니라 몸 또한 천하일품이었다. 여불위는 주희를 대장군 공손댁에서 감시를 당하고 있는 진나라 왕손 자초에게 보내 장사를 할 야심찬 계획을 세운다.
여불위는 진의 수도 함양으로 가서 자식이 없는 태자비 화양부인이 자초를 적사자(嫡嗣子)로 삼도록 공작한다. 그리고는 임신한 사실을 숨기고 주희를 자초와 혼인 시킨다. 주희는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정(政)이라 지었다. 정은 어려서부터 성품이 몹시 오만해지도록 교육 받고 자랐다.
여불위는 자초의 가족과 함께 조나라의 서울 한단에서 진나라 국경까지 5천여 리의 탈출 길에 오른다. 소양왕이 승하하고 태자 안국군(효문왕)이 왕위에 오르고 자초는 태자로 책립되었다. 그러나 왕위에 오른 효문왕이 사흘만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장양왕(자초)이 보위에 올랐다. 여불위는 승상이 되고 ‘여씨춘추’를 저술케 한다. 왕위에 오른 장양왕도 4년 만에 세상을 떠나고 나이 불과 13살 이었던 정이 등극하였다.
소년 정이 왕위에 오르자 승상 여불위가 국정을 전담하면서 태후인 주희와 다시 만나기 시작한다. 여불위는 왕의 중부가 되고 주희를 부담스러워 한다. 그래서 함양성 안에서 남근이 장대하기로 소문난 노애를 태후궁으로 들여 보낸다. 태후는 노애에게 푹 빠져 임신을 하게 되고 옹성으로 옮겨 아들을 낳는다.
여불위의 식객으로 있던 이사는 한비를 모함하고 독살시킨다. 그런 이사가 진왕에게 등용되어 중앙집권제의 법령을 제정하여 모든 권력을 진왕만이 행사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한편 노애는 지나친 욕심으로 진왕의 자리를 넘보다 적발되어 그의 자식과 추종세력들이 일망타진 되었으며 그를 천거했던 여불위는 일체의 관직과 작위를 박탈 당하고 유배를 가게 되었으나 그는 스스로 독약을 마시고 자결하였다. 여불위의 자리는 이사가 차지했다. 그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집병 제도를 실시하여 부국강병에 힘쓴다.
명장 번어기는 진왕이 조나라를 점령하고 나서 죄 없는 백성을 3만여 명이나 생매장 했다는 얘기를 듣고 크게 노하여 연나라로 망명해 버렸다. 이 소식을 들은 진왕은 번어기의 수급에 천만금의 현상금을 걸었다. 형가는 자결한 번어기의 수급을 가지고 진왕을 암살하려 갔으나 실패하고 만다. 이렇게 하여 연나라가 멸망하고 이어서 위, 초, 제나라가 멸망하여 천하는 진나라의 차지가 되었다.
진왕 정은 6국을 정벌하여 천하를 통일하고 자신을 진시황제라 부르게 하였다. 시황제는 군현제를 실시하여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하고 법률과 도량형을 통일하였으며 아방궁, 궁묘 등 거대한 토목공사를 수없이 많이 일으켰다. 이렇게 나라의 기틀을 확고하게 다져 놓은 다음 낮이면 사냥을 즐기고 밤이면 미녀들과 주연으로 밤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시황제는 동남 동녀 각각 5백 명과 금은보화를 많이 주어 방사 서시로 하여금 영생 불로초를 구하여 오게 하였으나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노생은 황제의 명으로 서시를 찾아 떠났으나 그를 발견하지 못하고 ‘천록비결’을 얻어 왔는데 그 책의 결론은 ‘망진자호야(亡秦者胡也)’였다. 황제는 이 글귀를 이유로 만리장성을 쌓기 시작했다.
황제는 지방을 순찰하면서 전국 각지에 별궁 열다섯 개를 지어 놓았는데 그곳에 미인 일천 명씩을 배치해 놓게 하였다. 만리장성 공사장에서 죽은 나을의 약혼녀인 명의 화룡노인의 딸 상아는 죽은 낭군의 원수를 갚기 위해 별궁 시녀가 된다. 황제는 이사의 건의를 받아 서적을 불태우고 이에 항거하는 선비들을 생매장 시키는 분서갱유(焚書坑儒)를 일으킨다. 태자 부소가 이를 듣고 간하자 그를 만리장성 공사 현장으로 유배를 보낸다. 진승과 오광이 반란을 일으킨다. 장량은 황석공을 만나 태공망의 ‘삼략(三略)’ 이라는 신서(神書)를 받고 공부에 열중한다.
황제는 암살 사건 이후로 신하들을 직접 만나지 않고 환관 조고를 통하여 정사를 처리 하였다. 조고의 농간으로 국사는 크게 잘못되어 가고 있었다. 부소가 상소문을 올렸으나 그것은 황제의 손에 들어가지 않고 조고의 손에 들어가 조고는 앙심을 품는다.
황제가 지방 순행 길에 올랐다. 조고는 온갖 방법으로 아첨을 하며 황제의 환심을 산다. 드디어 상아에게 기회가 왔다. 황제를 모신 상아는 아버지가 지어준 사약 세 봉지를 모두 황제에게 먹이지만 조고는 며칠 간 황제의 사랑을 독차지한 상아를 질투하여 그녀를 죽여 버린다. 약을 먹은 황제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고 순행을 중단하고 환궁의 길에 올랐으나 도중에 유언을 남기고 죽고 말았다.
조고는 둘째 황자 호해와 짜고 이사를 협박하여 부소와 몽염 장군을 죽여 없앨 공작에 착수한다. 가짜 조서를 받은 부소는 자결하였으나 조서가 가짜임을 안 몽염은 이사가 보낸 자객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조고는 이사의 지혜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대진제국의 실권을 사실상 한손에 장악하였다. 그들은 함양으로 돌아오고 호해는 이세 황제로 등극한다. 이사는 호해의 등극에 불만이 많은 세력들을 모조리 숙청하지만 자신은 조고에 의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그 무렵 패현에는 유방(劉邦)이라는 청년이 있었는데 어려서부터 무술에 능하였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술과 계집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성품이 활달하고 인자하여 모든 사람들을 너그럽게 포용하였으며 장대한 체구에 용과 같은 얼굴로 관상가들은 후일에 큰 인물이 될 사람으로 은근히 두려워 하고 있었다. 어느날 여문은 유방의 관상을 보고 혹하여 그의 딸 안량을 유방과 결혼하게 한다. 훗날 ‘여태후(呂太后)’로서 천하를 주름잡은 바로 그 여인이다. 번쾌가 유방을 찾아 와 부하가 되고 또 그들은 동서간이 된다. 그리고 부하들을 모아 패공(沛公)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항량과 항우는 초나라의 명장 항연의 후예들이다. 그들 숙질 또한 천하를 잡아 보려는 야망을 품고 있었다. 그들은 은통을 죽여 성을 차지하고 부하들을 늘려간다. 항우는 우일공의 딸 절세미인 우희를 배필로 얻는다. 많은 장수와 군사 범증을 거느린 그들은 초회왕을 모시고 국가의 진용을 갖추었다.
유방을 만난 범증은 주인을 잘 못 선택했다는 한탄을 하기도 한다. 한신이 항량을 찾아 왔으나 그의 재능을 알아보지 못한 항량이 범증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말단 벼슬을 준다. 항량은 진군과의 전투 중 사망하고 항우가 초군의 최고 사령관이 되었으며 진의 대장군 장한을 맞아 구전 구승의 전과를 올린다.
승상 조고는 황제에게 지록위마(指鹿爲馬), 즉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할 만큼 황제를 꼭두각시로 만들고 권세를 휘둘렀다. 함곡관을 지키던 장한은 자신을 제거하려는 조고의 음모를 간파하고 항우에게 항복한다.
항우와 유방은 먼저 함양을 점령하는 사람이 관중왕이 되기로 약조하고 의형제의 결의를 맺은 다음 장도에 올랐다. 유방은 진군하면서 민심을 회유하는 방법을 중시하여 약법삼장을 선포하고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을 강구한다. 도중에 여이기 노인을 만나 도움을 받아 한나라의 재상 장량을 군사로 빌려온다.
항우는 30만 대군을 거느리고 적을 만나기만 하면 무자비하게 싸우면서 성채를 연달아 점령해 가고 있었으나 반면에 유방은 싸우는 대신 회유책으로 무혈 점령하는 것을 상책으로 삼았다.
반군들이 함양 진군으로 사태가 급박해지자 조고는 이세 황제를 죽이고 임금의 칭호를 왕으로 바꾼 다음 부소의 아들인 자영 공자를 왕으로 옹립한다. 자영은 간신 조고를 죽이고 삼세 황제로 등극한다. 앞에서 언급되었던 ‘망진자호야(亡秦者胡也)’는 이세 황제를 이르는 말로 여겨졌다.
유방이 드디어 삼세 황제의 항복을 받고 함양에 입성한다. 대진제국이 멸망한 것이다. 함양에 먼저 입성한 사람이 관중왕이 되기로 약조하였으나 유방은 항우의 자만심 강한 성미를 생각하여 군사를 패상으로 이동 시키고 항우를 기다린다. 한편 항우는 가는 곳마다 싸움에서는 이기지만 전진 속도는 늦어진다. 그러던 중 진군에서 항복해 온 군사 10만 명을 생매장 해 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함양에 늦게 입성하였지만 관중왕이 되고싶은 항우는 유방과 장량을 살해할 계획을 세우지만 장량의 친구, 항우의 숙부인 항백의 도움으로 일시적이나마 위기를 모면한다. 그러나 항우는 또다시 그를 연회에 초대하여 죽일 계획을 세웠다. 그렇지만 장량의 기지로 무사히 위기를 넘기지만 장량은 항우 진영에 억류된다. 범증은 항우의 우둔함을 탄식한다.
항우는 자영과 많은 백성들을 죽이고 함양에 입성하여 회왕의 조명(詔命)을 받아 관중왕에 즉위하려 하였으나 회왕은 약속이 틀리다며 이를 거부하자 항우는 스스로 초패왕이 되었다. 장량은 항우의 진영에 있으면서도 패왕 칭호, 천도 문제, 진시황의 무덤을 파헤치고 보물 찾기 등 계략을 써서 유방을 도운다.
항우는 범증의 말을 듣고 유방을 한왕에 봉하여 파촉으로 쫓아 보낸다. 유방은 항우에게 모욕을 느껴 반발코자 하였으나 소하, 장량의 권고에 따라 파촉으로 떠나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그것도 유방을 기어코 없애 버릴려는 범증으로 인해 그렇게 쉽지만은 않아서 장량이 계교를 꾸민 끝에 떠날 수 있었다. 장량은 금우령 고개에서 유방과 헤어지고 파촉으로 통하는 잔교를 모조리 불태워 버린다.
항우에게 죽은 한왕의 국장을 치른 장량은 다시 항백을 찾아 그의 집에 머물면서 진시황의 명검 ‘청학보검’을 구하여 한신을 만나 파촉으로 길을 가르쳐 주어 유방에게 보낸다. 항우는 한왕에 이어 의제마저 시살하고 말았다.
한왕 유방은 단을 쌓고 한신을 대원수로 모시는 절차를 엄숙하게 거행한다. 한신은 대원수의 직책을 맡고서 군사들을 조련하기 시작하였으며 ‘전시군법’을 만들어 군령을 엄격히 하고 전쟁준비에 착수한다. 그리고 번쾌를 시켜 잔도를 보수하게 한다. 드디어 진격의 날이 왔다. 번쾌의 잔도 보수는 속임수고 진군로는 장량이 가르쳐 준 길이었다.
파초 대원수 한신은 태산준령을 넘어 대산관을 함락시켰고, 장한을 몰아내고 폐구성을 점령하였으며 사마흔과 동예마저 귀순시켰다. 도림에 후퇴해 있던 장한은 전투 중 자진한다. 한신은 함양을 점령하고 팽성으로 향할 즈음 장량은 항우에게 표문을 올려 제나라와 양나라를 정벌하도록 한다. 장량의 계교는 실로 뛰어나 여러 장수들을 한왕에게 귀순시킨다.
항우에게 억류되어 있던 가족을 구출한 한왕은 이제 안심하고 초나라를 칠 수 있게 되었다. 그 무렵 초나라는 항우의 학정으로 민심이 이반되어 많은 후백들이 그에게서 등을 돌리게 되었다.
파촉을 나올 때 10만에 불과하던 군사가 이제 40여만이 되었다. 이에 고무된 한왕은 고집을 부려 노부모와 여왕후까지 동반하고 동정(東征)의 길에 올랐다. 그러나 항우를 만나 대패하고 가족을 항우에게 내어주고 말았다. 장량은 영포 장군을 귀순시킨다. 장량은 대원수 직에서 해임되어 울적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한신을 불러내는데 성공한다. 한신이 항우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진다. 온갖 전략, 지략, 권모술수가 난무한다. 항우의 의심을 받던 군사 범증이 죽었다. 한왕은 승승장구하면서 커져가는 한신을 경계하기 시작한다. 제나라를 설득하여 귀순시킨 여이기 노인을 시기하여 죽게 만든 한신은 제나라를 무자비하게 공략한다. 한왕은 스스로 제나라의 왕이 되겠다는 한신이 괘심하기도 하지만 할 수 없이 그를 왕으로 봉한다. 항우는 광무산 대전에서 참패하고 한왕은 인질이었던 가족을 구한다.
가족을 구한 한왕은 약속을 저버리고 팽성을 향하여 진군을 준비하고 장량은 지략으로 한신, 영포, 팽월을 전투에 참여 시킨다. 한왕은 백만 대군을 이끌고 팽성으로 떠난다. 팽성이 함락되고 부하들이 모두 달아나고 우미인 마저 자결한다. 항우는 목숨을 걸고 좌충우돌 적병 수백 명을 쓰러뜨렸으나 중과부적, 스스로 목을 쳐 자살한다.
전쟁은 끝났다. 유방은 한신을 원수의 직에서 해임하고 초왕에 봉한다. 유방은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논공행상을 실시한다. 한신이 체포되어 탄식한다. “새 사냥이 끝나면 활은 자취를 감추고(高鳥盡良弓藏), 토끼를 다 잡고 나면 사냥개는 보신탕이 되어 버리고(狡兎死走狗烹), 적을 다 때려 부수고 나면 공신은 죽게 된다(敵國破謀臣亡)” 유방은 그를 회음후에 봉하고 함양에 머무르게 한다.
장량은 은퇴하고 황석공 선생을 찾아 나섰으나 천곡성의 누른 바위 하나를 발견할 수 밖에 없었다. 오랑캐 묵특의 문제도 해결되었다. 이제 태평성대가 왔는가 하였으나 그도 오래가지 못하고 진희가 반란을 일으켰다. 유방은 대군을 거느리고 이를 평정하러 가고 여황후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한신은 진희와 내통하여 밀서를 보낸다. 한신은 체포되고 여황후에 의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팽월과 반란을 일으켰던 영포도 죽었다. 소하가 모함으로 하옥되었다가 풀려났다. 이 소식을 들은 장량은 유방을 만난 후 종남산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한고조 유방은 63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유방이 죽자 여태후는 척씨 부인의 아들 조왕 여의를 독살하고 척씨 부인은 손목, 발목과 귀를 자르고 눈알을 뽑아 인저(人猪)로 만드는 한편 혜제가 정치에 무관심한 것을 기화로 여씨 일가들을 마구 등용하고 혜제가 죽자 아무 관련없는 아이를 천자의 자리에 올려놓고 대권을 장악한다. 그리고 인저를 사지에 수레를 매어 네 조각으로 찢어 죽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