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천하 - (상.중.하/전3권) 완결
범우사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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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천하

                                                                                                         박종화

  박종화(朴鍾和 1901 1981) 호는 월탄(月灘). 시인, 소설가, 비평가. 서울 출생. 성균관대학교 교수와 서울시예술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고 949년 발족한 한국문학가협회(韓國文學家協會)의 초대 회장이 됨. 서울신문사 사장, 서울시문화위원회 위원장 등을 거쳐 1955년 예술원 회장에 취임, 1회 예술원상을 수상하였다. 1966년 제15·16민족상을 수상한 상금으로 월탄문학상을 창설하였다. 대표적인 저서로 흑방비곡, 금삼의 피, 임진왜란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박종화 [朴鍾和]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여인천하는 1958년 한국일보에 연재되어 선풍적인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작품으로 자유당 정권 말기의 암적 사회 현상 중의 하나였던 소위 치맛바람을 고발하고 비판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한다. 이 소설은 중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후궁들의 음모와 암투를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의 뒤를 이은 중종은 거사 전 장인이었던 영의정 신수근을 죽인 반정공신 박원종으로부터 왕후의 폐비를 협박 받고 조강지처인 신비를 쫓아낸다. 그러자 공신들은 새 왕비를 들이라고 재촉하고 공신의 딸 7명을 후궁으로 들여 보낸다. 이렇게하여 전하는 경빈 박씨, 희빈 홍씨, 창빈 안씨, 숙의 이씨, 숙의 홍씨, 숙원 이씨, 숙원 김씨, 윤숙의의 팔선녀를 맞이하게 되었고 이때 사등공신 윤임도 누이를 후궁으로 들여보내 윤숙의가 되었다.

 

  전하는 덕이 있고 성정이 어진 정실의 딸 윤숙의를 정비로 골랐다. 새 왕비 윤씨는 딸 하나를 낳은 뒤에 몸이 허약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뒤 원자를 낳고는 세상을 떠나 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경빈 박씨, 희빈 홍씨, 창빈 안씨가 왕비의 물망에 올랐다. 그러자 유림들은 대의명분을 내세워 어린 원자를 보호하리라 결심했다. 그리하여 박상과 김정은 폐비 신씨의 복위를 상소한다. 비록 공신 박원종, 성희안이 죽었다고 하나 정권을 잡고 있는 그의 일파들이 이의 불가함을 공박한다. 결국 두사람은 귀양을 가고 만다.

 

 이때 사간원 간관 중에 새로이 정언(正言) 벼슬을 한 조광조가 박상과 정은을 편드는 상소를 올리고 홍문관 신하들과 성균관 선비들이 일제히 조광조를 지지하는 상소를 올려 여론이 물 끓듯 했다. 조정 여론은 완전히 두 갈래로 갈라지고 임금은 어찌 조치해야 좋을지 몰랐다. 김안로가 양쪽편의 말이 다 옳다는 양시론을 주장하여 임금의 마음을 사로잡아 홍문관 직제학에서 이조참의로 이튿날은 광주부윤에 이어 이조참판을 제수하여 벼락 출세를 하게 된다. 밤 낮으로 원자 보호에 노심초사하던 윤임은 김안로를 찾아갔고 그의 아들 김희와 공주의 혼인을 주선한다. 가례를 치른 며칠 뒤 김안로는 판서로 승진한다.

 

  판부사 대감 윤임은 김안로와 작당하여 파평 윤씨 윤지임의 딸을 왕후로 밀어 모시기로 한다. 결국 윤지임의 딸은 왕비가 되고 윤지임은 일약 부원군이 되었다. 이렇게 되자 경빈 박씨와 희빈 홍씨를 비롯한 팔선녀들은 누구누구를 가릴 것 없이 새 왕비를 질투하고 적이 되었다.

 

  서울 장안이 새 왕비의 일로 한참 수선거리고 호화로울 때 폐비 신씨는 아들, 딸 하나없이 죽동궁에 내처져 벌써 삼십일 세가 되었다. 왕비 윤씨의 국장을 접하고 한 때 희망에 부풀기도 했으나 이네는 조용히 불경을 읽으며 날을 보내게 되었다.

 

  새 비가 중전에 오른 뒤 조정은 후궁들을 배경으로 공신들의 뒤를 받치는 남곤과 심정의 한 물결, 왕도정치를 달성시키려는 조광조 등 선비들의 일파, 새로운 왕비를 모신 김안로와 윤임이 또 한 갈래의 흐름을 이루었다. 김안로는 윤임과 윤지임의 부자 윤원로, 윤원형과 은은히 한 덩어리로 엉켜 있었다.

 

  조광조는 갈수록 임금의 신임을 얻어가고 남곤과 심정은 초조해 한다. 조광조는 대사헌이 되고 세자우빈객(世子右賓客)을 겸하게 되었다. 남곤과 심정은 경빈 박씨와 희빈 홍씨를 이용하여 조광조를 해칠 음흉한 계교를 품고 희빈 홍씨의 아버지 홍경주를 찾아 마음을 통한다.

 

  조광조가 밝은 정치로 민간에 인심을 얻고 왕의 신임이 두터워지자 젊은 선비들은 반정공신들의 삭훈을 주장하고 조광조는 이를 상소한다. 그러자 홍경주는 희빈 홍씨를 이용하여 비원 안의 나무에 주초위왕(走肖爲王)이란 글자를 벌레들이 파먹게 하여 민심을 교란하고 전하의 마음을 움직이자 조광조는 대사헌을 사직하고 임금의 하회를 기다린다. 이렇게 되자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삼사뿐만 아니라 성균관 대사성까지 총사직하며 임금을 크게 노하게 하였다. 결국 공신을 깎게되니 임금이 완전히 조광조 일파 선비들에게 굴복한 것이 되었다.

 

  경빈 박씨와 희빈 홍씨를 통해 走肖爲王을 확인한 임금은 조광조를 역적으로 몰아 하옥하고 죽음을 내리기로 결정하였으나 성균관 유생들의 집단 상소와 민심 안정을 위하여 죽음만은 면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 일당은 형장을 받고 귀향길에 오르게 되었다. 조정은 반조광조와 친조광조파로 나뉘어 대립을 계속하는 등 한동안 혼란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조광조는 사약을 받았다.

 

  조정과 궁중가 온 나라 천지가 이런 수라장을 이루었을 때도 왕후 윤씨는 조용히 자신의 처신할 길을 살폈다. 오라버니 윤원로와 윤형원이 문안차 들릴 때에도 항상 몸조심하라고 타일렀다. 왕비는 회임을 계속했으나 딸만 넷을 낳았고 그러자 마침내 후궁들의 경쟁 대상에서 제외되고 말았다. 나라의 정치세력은 이제 남곤, 심정 일파와 원자를 보호한다는 윤임, 김안로의 세력으로 갈리게 되었다.

 

  어느듯 원자가 입학할 나이가 되자 임금은 그를 세자로 책봉한다. 윤원형은 정윤겸의 딸 난정을 첩으로 맞이했고 아이를 낳자 본집으로 불러 들였다. 난정은 그의 본처를 살해했다. 난정은 윤형원에게 권력을 잡으라고 부추기고 윤임편도 아니고 남곤, 심정의 편도 아닌 똑똑한 사람들을 미리미리 많이 사귀어 두라고 조언한다.난정은 외로운 왕비의 처소를 드나들면서 왕비의 마음을 사로잡고 남곤, 심정의 세력들을 경계하게 한다.

과거에 장원급제한 임백령은 기생 옥매향에게 빠져 자주 그를 만나곤 하였는데 윤임이 그녀를 첩실로 데려가 버리자 원한을 품고 복수를 다짐했다. 이런 풍문을 들은 난정은 윤원형을 시켜 그를 회유한다. 이렇게 하여 임백령의 벼슬은 한림학사에서 간관으로, 다시 대간이 되고, 승지가 되고, 승지에서 참판이 되었다.

 

  조광조의 세력을 꺾은 남곤, 심정은 김안로를 탄핵하고 경빈 박씨를 이용하여 그를 귀향 보냈다. 영의정 남곤이 중병으로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때 대궐에 들어 온 난정이 아무도 몰래 쥐를 잡아 태워서 세자궁 뒤 당살구나무 가지에 매달았다. 이것을 전해들은 대비는 크게 노하여 범인을 색출하라고 엄명을 내렸다. 동궁과 후궁의 시녀들에게 국문이 시작되었고 세자의 자리를 노리던 경빈 박씨는 허망하게 쫓겨났다. 남곤이 죽고 김안로가 복직되었다. 심정은 사약을 받고 죽고 경빈 박씨와 그의 아들 복성군이 죽음을 받고 박빈의 인아족척들은 몽땅 몰락되었다.

 

  왕후는 사내 왕자를 낳았다. 임금은 난정에게 정경부인의 첩지를 내린다. 그러자 김안로가 이에 반대하고 나섰다. 임금이 이에 강경하게 대응하자 윤임과 김안로는 삼사를 움직여 여러 차례 상소를 올렸지만 전하는 이를 수용치 않는다. 난정은 임백령에게 서찰을 얻은 다음 옥매향을 임백령과 만나게 주선하고 그 서찰은 윤임에게 전해져 정경부인 문제는 해결되었다.

 

  난정의 계략으로 왕후는 임금에게 고하여 윤임에 의해 김안로가 제거되도록 한다. 김안로는 사약을 받았다. 김안로가 제거되자 정치세력은 윤임과 윤원형으로 대립되게 되었다. 나라의 정치는 완전히 전실과 후실의 싸움, 적자와 계자를 중심으로 한 파당 싸움으로 갈려지고 말았다.

 

  윤임이 왕후가 낳은 경원대군을 없애버리려 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후마마는 초췌해 갔다. 까닭을 알게된 전하는 임금의 자리를 내놓기로 결심하였지만 삼일만에 결심을 철회하였다.

 

  어느날 동궁전에 방화로 인한 불이 났으나 세자와 세자빈은 무사하였다. 그러나 동궁에 불이 난 이후로 전하는 정신과 몸이 더욱 피곤하고 늙어 갔다. 결국 전하가 승하하고 세자가 그 뒤를 이어 용상에 올랐으나 이미 병이 골수에까지 미친 상태였다. 대비의 생트집에 착한 임금은 유월의 폭염 속에 석고대죄를 한다.

 

  난정의 집으로 명산대찰의 중들이 드나들고, 무당 판수가 길을 터서 몰려들었다. 절마다 대군과 상감의 위패를 모셔 앉히고 대군에게는 수명장수를 상감에게는 빨리 세상을 떠나라는 암축(暗祝)을 올렸고 무당들은 굿을 했다. 상감이 병이 나자 대비는 거처를 상감이 있는 경복궁으로 옮기고자 하였으나 윤임 등의 반대로 크게 노하였으나 임금이 경원대군에게 선위를 하는 전교를 내렸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풀어졌다. 난정과 젊은 대비는 즐거운 웃음이 거둬질 사이가 없었다.

 

  인종이 승하하고 대비는 섭정을 시작한다. 윤원형 일당은 의기양양 우쭐대는 모습이 가관이었다. 대비는 윤임과 죄의정 유관을 귀양보내고 옥매향을 문초하여 그들에게 사약을 내린다. 이조판서 유인숙은 귀양살이를 떠났다가 사약을 받고 자진해 버렸다. 마침내 을사사화가 터지고 말았다. 섭정마마의 세상이 되었다. 그것은 곧 난정과 윤원형의 세상이 된 것과 마찬가지였다. 문무백관들은 윤원형의 집으로 몰려들었고 곳간은 뇌물로 가득찼다. 삼천리 강산의 절반이 난정의 것이 되어 버렸다. 난정은 섭정마마를 부추겨 불교를 일으키고 요승 보우를 추천하니 그 또한 권세가 대단하였고 영의정 윤원형이 은근히 그를 도왔다. 윤원형과 난정과 보우의

세도는 이십 년을 뻗쳤다.

 

  명종은 이십이 넘고 섭정마마가 돌아기신 뒤 비로소 자신의 정치를 하게 되었다. 보우는 제주도로 귀양 갔다가 장살(杖殺)되고 난정은 독약을 마셨고 윤원형은 금부도사가 온다는 소리에 짐주(鴆酒)를 마셨다. 돌아간 섭정마마의 시호는 문정왕후(文定王后)였다.

 

  권력을 지향하는 음모와 암투, 권모술수, 여인이 등장하는 궁중비사는 항상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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