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카포네 - 암흑가의 대부
루치아노 이오리초 지음, 김영범 옮김 / 아라크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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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카포네

                                                                                       루치아노 이오리초

 뉴욕 주립대학(오스위고) 명예 교수 겸 명예 교수 협의회 부의장직 역임. 저자는 이 대학에서 최초로 조직범죄의 역사라는 강좌를 개설하기도 했다.

  하드 보일드 소설들을 탐색하다 잘못 선택된 책 중의 하나다. 그래도 읽었다.

 

  프롤로그에 공공의 적이자 대중의 영웅으로 죽은 후에도 여전히 전세계적인 관심을 모으고 있는 갱스터 알 카포네의 일대기가 연대 순으로 펼쳐진다.

 

  1) 마피아의 유래

마피아는 서부 시칠리아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이 지역 주민들은 약탈과 폭력을 휘두르는 강도단과 외지인들로부터 자신들과 가족을 보호하기 위하여 조직을 만들어 보호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징수했으며 오메르타(어떠한 일이있어도 조직의 비밀을 지킨다)를 맹세 했다. 처음부터 범죄조직은 아니었지만 미국으로 건너 온 이탈리아 범죄자들이 미국에서 알게 된 조직범죄의 틀 안으로 이탈리아 사람들을 끌어 들였다. 미국 정부조차도 한 때는 조직범죄와 마피아가 같다는 입장을 취했지만 그 입장을 철회 했다. 마피아와 조직범죄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2) 범죄 조직 간의 세력 싸움

1890년대 미국이 농업국가에서 근대화된 산업국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물질주위가 만연하고 지역공동체나 공무원들은 불법행위를 통해 부자가 될 기회를 노렸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공무원들은 부패와 연결되었고 특히 뉴욕이나 시카고에서 눈에 두드러졌다.

  존 모리시(John Morrissey)1834년 아일랜드에서 뉴욕으로 이주하고 18세에 지역 폭력배의 우두머리로 명성을 날렸고 이후 그는 하원의원, 상원의원으로 선출되기도 했으며 경찰관 베커는 허먼 로젠탈과의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이 되기도 했었다.

시카고는 경찰 부패의 대명사가 되었고 많은 이탈리아 이주민들이 들어 왔다.

 콜로시모는 그의 여러 불법사업에서 범죄조직을 이끈 최초의 이탈리아인이 되었고 신변 보호를 위해 브루클린 출신 이탈리아 이민자 조니 토리오(Johnny Torio)를 끌어 들인다. 콜로시모가 살해되고 토리오는 독자적으로 조직을 키워갔다. 1920년대 토리오는 엄청난 성공을 누렸고 알 카포네를 경호원으로 고용하면서 시카고에서 가장 무서운 범죄자로 꼽히는 디온 오배니언과 제휴하기도 한다.

  금주법이 시행되면서 토리오 지지세력과 반대세력 간의 갈등이 전쟁으로 비화 되었다. 토리오는 살티스와 매컬레인을 시켜 반대세력을 무수히 살해 했다. 토리오가 물러나고 카포네가 사업을 떠 맡으면서 사정은 바뀐다. 오배니언파와 철천지 원수가 된다. 그들은 툭하면 토리오 영업구역을 침범하고 조직원들을 공격했다. 그들 간에 죽고 죽이는 암투가 발생하고 오배니언도 총에 맞아 죽는다. 토리오도 기습을 받는다. 토리오는 자진해서 시카고를 떠난다.

 

  3) 갱단에 입단한 소년

알 카포네는 1899년 브루클린의 빈민가에서 가브리엘 카포네와 테레사 카포네 사이에서 태어났다. 문화적으로 동화하기 힘겨운 시절을 거치고 열 살 무렵부터 알 카포네는 거친 심성과 무모함을 보이기 시작했고 이런 성격은 어른이 되어서도 항상 따라 다녔다. 메리 커플린을 만나 191819 살 때 결혼했다. 그는 초등학교를 중퇴한 10대에 칼과 총 사용법을 배우고 폭력단체에 가입했다. 그 후 그는 순식간에 폭력을 사용해서 분쟁을 해결하는 요주의 인물이 되었고 몇 건의 살해 혐의를 받게되자 브루클린을 떠나 시카고로 향했다.

 

  4) 똑똑한 천재 악당 조니 토리오

1921년 카포네는 시카고에 입성했다. 토리오를 만난 카포네는 그로부터 매음, 도박, 주류밀매 등 효과적으로 돈을 버는 방법을 배운다. 그들은 선거에도 관여 해 불법을 저질렀고 아일랜드 조직들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5) 알 카포네, 시카고를 접수하다

오배니언이 죽고 세력이 커진 제나 파는 다른 세력들도 함께 노리고 있던 시칠리아 연합을 장악하기 위해 카포네를 암살하려다 역습을 받아 안젤로 제나가 사망한다. 그의 부하이자 무자비한 킬러인 사무엘 사무츠 애머튜너도 연합회 회장직을 인수 받겠다고 선언하고는 암살된다. 카포네는 그의 반대 세력을 하나 하나 무참하게 사살하고 시카고의 남서부를 완전히 장악하게 된다.

 

  6) 알 카포네 세력을 공고히 하다

19291월 암흑계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모런과 조셉 아이엘로는 제나의 잔당을 끌어 모아 카포네와의 전면전을 준비했다. 싸우는 동안 양쪽은 모두 상당수의 조직원을 잃었다. 카포네를 제거하기 위해 고용된 킬러들은 카포네에 의해 모두 제거되었고 모런 암살 명령을 시작으로 광포한 대량 학살이 시작되었다. 성 발렌타인데이 학살로 전세계에 악명을 떨치게 된 사건이 바로 이것이다. 그후 카포네는 배신자 3명을 야구 방망이로 처단했다. 그 후 조직원을 잃은 모런은 은행 강도 건으로 교도소에서 사망하고 아이엘로는 시카고를 떠났다가 시칠리아 연합회 회장직을 접수하기도 하였으나 임기 중 기관총에 난사 당했다. 마침내 카포네는 모든 경쟁 세력을 제거하였다.

 

  7) 암흑계 보스들의 비밀 회합

1920년대 폭력조직들은 비밀 회의를 열어 상호 관심사를 논의하였다. 시카고, 보스턴, 필라델피아, 클리블랜드, 디트로이트, 뉴욕 등지의 보스나 그 대리인이 참석했다. 그들은 전국적인 관할권을 가진 기구를 설하는데 합의했다. 이 기구에서는 절대적인 보스는 존재하지 않고 모든 구성원이 동등한 권한을 가지기로 했다. 카포네를 노린 정부 당국은 회의가 해산된지 16시간만에 그를 체포하고 비밀무기 소지죄로 1년형을 살게 했다. 그 후 그는 점점 힘을 잃어 갔다. 드디어 마란차노가 스스로 이탈리아 범죄 조직의 단일 보스임을 선언하고 그와 대립하던 루키 루치아노에게 지하세계 사업의 총괄권을 부여했다. 그러나 마란차노 역시 오래가지 못하고 암살 당하고 만다. 2차대전 후 시카고에서 회동한 여러 폭력조직들은 독립적인 조직을 한데 모아 전국적인 조직을 건설했다.

 

  8) 점점 더 거세지는 반대 세력

카포네가 토리오에 이어 조직을 장악했지만 다른 지역의 경찰에게는 추방을 당하기도 한다. 지역의 사람들과 단체들도 그를 기피했다. 그래서 그는 지방 정치가들의 비위를 맞추고 경제적으로 그들이 신세를 지도록 만들었다. 그리고는 플로리다의 마이애미에서의 생활을 즐기기도 했다. 그러나 카포네가 무기밀반입 혐의로 복역하고 나오자 마이애미의 상류층은 그가 자신들의 도시에 정착하지 못하도록 4례나 체포되게 했다.

 

  9) 지하세계의 인기 슈퍼스타

카포네는 야구, 권투, 경마, 개 경주 등의 경기장을 자주 찾았고 권투 경기를 굉장히 좋아했다. 극장에 가서 쇼를 보는 것도 좋아했고 연예인들과 친구 이상의 관계를 맺었다. 그는 또한 여가를 최대한 즐기며 살았고 존경과 관용으로 사람들을 대하면서 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들의 호감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10) 재판 1

카포네는 세상에 무시무시한 살인자로 악명을 떨쳤다. 그러나 법정은 그를 살인자로 기소할 수 없었다. 목격자들은 기억상실증에 걸리거나 행방이 묘연해졌다. 아무도 공개 석상에서 증언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31년 연방 대배심원은 그를 22개 조세포탈 항목과 이를 기록하지 않은 경범죄로 기소하고 또다시 그 일주일 후 금주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카포네는 유죄 답변 교섭에서 유죄 인정을 철회했고 세금 관련 소송에 대비했다.

 

  11) 재판 2

정부의 기소는 알 카포네가 소득세 환급을 정식으로 신청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국세청 증언으로 시작되었다. 도박 카지노가 그의 소유라는 증언도 있고 해서 모든 상황이 그에게 불리해졌다. 정부는 카포네를 기소하기 위해 여러 해 동안 수집한 자료를 제시했다. 윌커슨 판사는 징역 11년과 벌금 8만 달러를 부과했다. 카포네는 쿡 카운티 감옥에 수감되었다. 그러나 미국정부는 그곳에서의 형 집행 중지를 명령하고 그의 주거를 병동으로 정했다. 1932. 2. 17 항소가 기각되고 5월초 대법원의 항소도 기각되었다. 그는 애틀랜타 연방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12) 악마의 섬에 투옥된 보스

알 카포네의 영광은 끝이 났다. 그가 애틀랜타에 들어갔을 때는 겨우 33세였다. 그에게는 힘든 시간들이 시작됐다. 그는 매독을 앓고있었다. 1934. 8. 19 전혀 개선의 여지가 없는 죄수들을 가두는 앨커트래즈 감옥으로 이감되었다. 그곳에서 힘겹게 수감생활을 하던 1938. 2월초 아침식사를 하러 가던 중 방향감각을 잃고 쓰러졌다. 연방 교정 기관을 거쳐 쿡 카운티로 보내졌다가 1939. 11. 16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하지만 매독이 너무 진행돼 있어 아무리 치료해도 원상태로 되돌릴 수는 없었다.

 

  13) 석방 후 마지막 나날들

카포네는 마지막 8년을 팜아일의 별장에서 가족들과 함께 보냈다. 시카고의 화려한 시절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아주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1942년 페니실린으로 매독치료를 받기도 했다. 그리고 결국 1947. 1. 25 숨을 거두었다.

 

  14) 1920년대 미국사회와 조직범죄

카포네는 대중적인 인물로서 시카고, 금주법, 격동의 20세기 같은 단어들과 거의 동의어가 되어 버렸다. 그는 매혹적이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그는 많은 잔인한 범죄를 저질렀지만 사람들이 판단하고 예상했던 빈틈없고 교활한 살인자의 모습은 실제로 드러내지 않았다. 방송 매체는 그의 어두운 면들을 강조하고 헐리우드는 대중적인 시각으로 그를 다루고 있었다. 카포네는 전설이 됐고 대중의 영웅이었고 미국 범죄 역사의 중요 테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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