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당신들 베어타운 3부작 2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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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나를 위해서 싸우지 마! 

그냥 나를 믿어주기만 하면 돼.“

    

다산북스/프레드릭베크만/소설/유럽소설

 

최대한 스포일러를 배제한 서평입니다.

 

시작부터 마을의 아픔이 묻어난 이야기.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작은 마을의 인간관계, 도덕성, 가치관 등의 혼란이 묻어 나온다. 베어 타운 하키단의 몰락과 인근 도시에서 탄생한 헤드 하키단은 기존의 선수들을 흡수해 새로운 팀의 구축에 집중한다.

 

왕년의 NHL 선수이자 현재 몰락해가는 베어 타운 하키단의 페테르손 단장. 가족의 상처(딸의 상흔)와 더불어 일부 특권층의 이해관계 속 희생양으로 전락할 것인지...... 페이지의 층이 쌓여갈수록 이야기의 밀도가 짙어짐으로써 더 큰 궁금증과 흥미로움의 쓰나미가 밀려오는 소설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그림자와도 같은 낯선 인물, 한 남자의 등장은 베어 타운 하키팀의 빛과 그림자라는 갈림길의 문턱에서 어떠한 역할을 할지도 흥미로운 대목이자 흐름의 열쇠가 될 것인가?

정치인 테오와 하키단 단장 페테르의 대화. 모든 게 정치적이다. 란 말에 동감이 간다. 그리고 그들은 타협하고 각자 원하는 도약과 회생의 길로 접어든다. 그것은 성인이나 10대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어느 편에 서서 누군가를 옹호하거나 비방하는 것 모든 것들이 아쉽지만 이미 정치적인 색깔을 띠는 것이다. 페테르 단장은 그러한 계산 없이 모든 것들을 하키팀에 쏟아붓길 원하지만 그의 재신임 이후부터 그가 생각하고, 주변의 인물들이 원하는 색깔은 정치적인 물감으로 애초에 채색되어가고 있었다어른들과 십 대, 모두 각자의 입장과 이익을 위해 정치화 되는 경향. 저자는 이야기의 곳곳에 '정치는 정치이며, 하키는 그저 하키이자 스포츠'라는 의미로 이 둘이 뒤섞이지 말아야 함을 인물 간의 대사를 통해 이 소설의 주제처럼 강조하고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자 주변 인물들은 각자의 아픔을 가지고 있다. 스포츠에 빠져 가족과 자녀를 멀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 자신의 이익과 신념을 위해 모든 걸 투자하는 사람. 이인자이길 거부하고 그저 어느 한곳에 붙어 또 다른 희생양을 만들어내려는 비열함 가득한 인물들.

 

하지만 이들 모두 베어 타운과 헤드라는 두 지역의 상처받은 영혼의 일부일 뿐이다. '베어 타운 하키단 대 그 이외의 모든 것들' 이처럼 모든 것이 나와 그 외 모든 것과의 싸움이란 것이 인생이고, 고독이라는 것을 의미해주는 작품이다. 과연 해체 위기에 몰렸던 베어 타운 하키단의 운명은 헤드 하키단과의 첫 경기로 인해 어떠한 반전으로 그려질지......

스포츠의 열정 외에 그 무엇도 꿈꾸지 않던 페테르 하키단 단장의 정치적 제안의 수긍이 어떤 전개를 통해 원했던 결과로 마무리될지 궁금증이 커지는 작품이다.

  

또한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상황답게 각각의 캐릭터가 살아 숨 쉬듯 뿜어내는 흥미로움과 미묘함이 돋보이는 십 대의 성장 소설이자 다채로운 인간 군상의 면면을 경험해볼 수 있는 휴먼 소설이다. 이 책 '우리와 당신'을 읽고 나면 분명히 전 편인 '베어 타운' 또한 읽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길 것이라는 확신 속에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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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에게는 안동 하회마을의 기억이.
아이에겐 탈이라는 생소함을 이해시키는
그림 전래 동화였어요.
실사에 그려진 한국적인 삽화의 느낌이 좋았구요,
아이가 아직 잘 이해하기 힘들지만 탈들을
설명해가며 허도령의 정성을 이야기하다보니
흥미롭게 아이도 따라 읽더군요.


마을의 가뭄과 전염병으로 시름하던 허도령은 서낭나무에 정성스러 돌땁을 쌓으며 하늘에 소원을 빌었지요.
그러던 중 꿈에 각시가 나타나 그 해결책을 설명해준답니다. 그 후 허도령은 목욕재계하고, 탈들을 만들기 위해 준비하는데 단, 모든 탈이 완성될 때까지는 집에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각시의 말에 집중해서 식음을 전폐하며 탈을 만듭니다.


고을 할매의 모습, 팔자 걸음의 양반 어르신의 모습, 착한 각시의 얼굴을 떠올리며 마을의 모든
얼굴을 탈에 담으려고 정성스레 탈 조각에 나섭니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탈모양이 나오지 않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기도 합니다.


다행히 턱을 움직이게하면 좀 더 다양한 표정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 끝에 턱이 움직이게 턱과 탈을 따로 움직이게하여 완성시킵니다.
아이에게 탈의 모양을 설명하는데 무서운 캐릭터에는 움찔하고, 귀여운 표정에는 웃음을 참지 못하더라구요.


그 이후 선비탈, 중탈, 백정탈 등이 완성되고
허도령의 노력끝에 표정이 한층 돋보이는 작품이 완성됩니다. 이제 이 탈을 가지고 굿판을 벌일 날만 남았는데요......

하지만 전래동화의 교훈은 항상 슬픔과 아쉬움이 공존합니다.허도령을 짝사랑한 처녀가 그를 보기 위해 몰래 허도령의 집으로 찯아오게 됩니다. 결과는 예측 가능하실까요?

그래도 허도령의 숭고한 노력이 빛을 발하는 날이 왔겠지요. 아이에겐 이러한 덤을 중점적으로 이야기해주는게 좋을 것 같더라구요. 아직 책의 내용을 100%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 뉘앙스로 그림책의 흐름을 파악하게 하는 것, 그것이 이 책의 장점이며 사실적인 탈의 묘사와 잘 읽혀지는 이야기의 그림 전래동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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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잃어버린 자존감을 찾았습니다 - 온전한 나를 만드는 니체의 자존감 회복 수업
주현성 지음 / 더좋은책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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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더좋은책/주현성/인문/심리

       

고통마저 즐길 수 있는 자존감 찾기. 니체를 통해 어느 순간 '초인'이 되어있을 나를 꿈꿔 보자.》​

 

니체는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자신의 학문적 가치를 극대화했다고 한다. 유전병으로 인해 일찍 세상을 등 진 아버지의 피를 이어 받은 니체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말년 정신착란 증세까지 그를 괴롭히지만 고통을 통한 자존감의 틀이 세워지고, 철학적 가치가 만개한 그 만의 이론적 토대를 완성된 것이다. 물론 당시 각계의 질타와 혹평 어린 반응에도 불구하고, 현재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심리학자들의 스승이자 철학의 아버지인 니체, 그의 자존감의 원천이 어디서부터 발현된 것인지 찾아보는 재미와 호기심 어린 독서, 이 작품이 니체를 이해하고 느끼는 발판이 되리라 여긴다.

 

저자는 고통을 통해 자신의 성찰을 비롯해 자존감의 상승을 위한 수단이 됨을 강조한다. 니체는 위대한 철학자이기 전에 육체적인 고통으로 병을 앓고 있는 인물이었기에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며 자신의 학문을 갈고닦으며, 스스로의 자신감, 자존감 향상에 노력을 했을 것이다. 이 또한 쉽게 우리의 일상에 접목해보면 그(니체)의 삶 자체가 고통이라는 내적, 외적 아픔의 결과를 이겨 낸 원천이므로, 우리 독자들 또한 자신만의 고통 극복 처방전을 계발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자신이 기존에 걸어온 방향성과 가치관과는 조금 다른 새로운 변화의 시도가 될 것임을 저자의 해설과 설명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사람들은 마치 자기 안에서 무수한 다양성을 본 적 있는 사람처럼 변해버린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독자로써 요양 시설에서 힘겨운 말년을 보내시는 분들을 돌보며, 밥 한 톨 삼키기도 힘겨우신 분을 섬기며, 죽 한 사발에 목숨이 오락가락하시는 분들을 마주하며 고통이 얼마나 인간에게 큰 시련이 되는 것인지 깨닫고, 그것이 사람의 삶에 있어 큰 전화위복의 상황이 될 수 있음에도 감사를 느끼는 요즘이다. 힘들고 나약에 빠질수록 그 낮아짐을 이겨내는 방법이 인간이 가진 능력임을 또한 잊지 말자. 니체의 굳건한 마음과 온갖 수련을 통해 좌절과 고통을 이겨낸 수도승의 이야기처럼 우리에게도 자신을 변화시킬 시간은 충분히 존재한다.

 

'불공평을 수용하고 나의 것으로 만들 때, 우리는 모든 불행과 맞서 싸울 용기를 얻을 수 있다.'

 

대체로 위의 말처럼 행동하는 사람은 드물다. 두 명이 모이다가 세 명이 되면 그 불평불만의 풍선은 더욱 커져버리고 스스로 견디지 못해 감정의 폭탄이 터지고 만다. 이를 잘 이겨내는 것이야 말라 자존감 상승의 지름길인데 우리는 결국, 불평불만의 노예가 되어 스스로의 자존감을 잘라먹고 만다. 그것이 마치 자신의 존심을 지켜주는 것인 양 자존심만 높아가는 역효과를 일으키게 된다. 차라리 혼자 마음을 정리하고 긴 호흡으로 불평을 다스리는 자세, 이것이 생각의 전환이 되어 오히려 자존감을 높이는 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신은 죽었다...... 오히려 나의 행복은 나의 존재 자체를 정당화시켜주는 그 무엇이어야 한다.'

 

-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가 완성한 저작의 일부를 책을 통해 발췌해본다. 기독교인들에게 니체는 낙인찍힌 인물로 알고 있다.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신학을 공부했음에도 신을 거부한 남자. 그래서 독자인 나 또한 이 점에 있어 하나님을 거부한 그의 이론에 이 문장만을 통해 비판적 생각도 가진 적이 없지 않아 있었다. 신이 사라진 건 우리 인간의 잘못이란 의미로 이 말 뜻을 받아들이는 게 더 현명하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신이 주신 명분을 걷어차고 인간의 탐욕과 만용으로 전 세계를 통치하려는 위정자들, 인류의 역사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정의 내린 학자 등, 인간의 자체 해석적인 결론이 니체의 신에 대한 부정을 강조하여 낙인찍히게끔, 그의 이론과 철학을 결론지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신이 주신 인류, 이를 오용하고 자체 해석하는 종교 지도자들도 이런 비판을 달게 받아야 할 것이다.

 

'그동안 신을 중심으로 움직이던 세계가 갑자기 붕괴된 것이다. 카오스다.

태양을 떠난 지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것은 신이 사라진 세상에서 인간은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가를 묻는 것이다.'

 

나답게 사는 법. 인생의 주인공이 나임을 자처하고 내가 세상의 중심이 되는 것도 자존감을 찾는 방법의 일환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는 니제의 작품에서 표현하는 '초인'이란 의미를 뜻하기도 한다. 이 단어의 해석이 조금씩 다르게 다가올 수 있지만 니체의 핵심 사상인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정의하는 가장 현실적이고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이 '초인'임을 증명해주고 있다. 나답게 자존감을 지키고 상승시키는 방법, 그것이 나의 당당함을 타인 앞에서도 드러낼 수 있는 자신감이자 삶의 가치가 되어가는 것이다.

 

'초인'과 대비되는 인간을 '최후의 인간'이라고 뜻한다. 쉽게 표현하자면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다. 그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변하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명품에 좋은 옷에, 자존심만 들쭉날쭉한 허영심이 가득한 종족. 자존감은 찾아볼 수도 없고 자신의 물질적 가치만 풍족히 쌓아가려는 인간이라 말할 수 있다. 여기에 인격마저 무너진 비이성적인 사람, 저자를 비롯해 니체 또한 이런 인물에 대해 특정 부위만 과대하게 변형된 불구자라고 표현한다. 이는 실체를 비롯해 내면까지 비틀려버린 우리 생의 불편한 진실 중 하나의 군상이기도 하다.

 

과거의 선택에 집착해 자신의 자존감을 잃어가는 우리들. 저자는 과거의 선택, 그리고 실패에 대한 미련을 던져버리라고 한다. 실패란 오히려 득이 될 수 있음에도 우리는 이를 간과하고 스스로를 무너트리는 나락에 빠지고 만다. 그래서 저자는 지금 현재를 바꾸는데 집중하라고 격려산다. 어차피 깨진 독의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는 것처럼 새 독에 어떤 방법으로 물을 담고 이용해갈지 그 가치에 주목하는 것이 실패를 모르는 사람의 자존감 상승법일 것이다. 순간은 쉽지 않겠으나 노력해보자.

 

'이제 실천을 통해 니체의 초인 사상을 내 삶에 적용하고 또 내가 초인으로 거듭나야 한다. -중략-그것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변하는 것이다.'

 

행동과 생각이 함께 통일되어야지 주체가 하나로만 결정되고 이어져 나간다면 생각만이 앞서는 의미 없는 행동이 될 것이다.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자존감의 형성이 아니라 사유하며 그 문제를 해결하는 실천력, 그것이 니체가 말하는 초인이자 인간 자존감 상승의 이유이자 초인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이 책의 저자는 니체의 이러한 생각과 사상을 더해 니체를 연구한 랑크와 함게 또 이를 계승 발전시킨 칼 로저스를 언급한다. 자존감의 형성 과정과 뿌리를 더욱 견고히 할 증거를 제시하기 위한 차원의 첨가물이 더해진다.

 

'한 사람한테 옳은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옳다'라는 생각이 얼마나 부도덕한지를 깨닫게 해야 하는 것이다.'                       선악의 저편

 

위의 말은 사물을 바라보는 감정이나 결과가 다름에도 우리는 우월한 자나, 권력을 가진 자에 의해 그것이 당연하듯 여겼다는 의미일 수 있다. 흔히 말해 갑질의 희생양이 되는 을. 그래서 그들의 자존감이 무너지는 것이다. 니체에 이어 칼 로저스는 '섬사상'을 내세웠다고 한다. 인간 개개인은 하나의 섬이고 그것이 대륙을 이룰 수 없는 대신 교류 차원에서 각각의 다리를 통해 소통할 수 있다. 70억 분의 1이란 나의 존재. 그만큼 각자의 생각과 관념이 70억 개 이상 다를 수 있거나 어쩔 수 없이 자존감을 버리고 그에 순응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자신의 주장과 가치를 내세우는 것이 약자에게 힘겹겠지만, 이를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갑, 강자를 만나 소통하는 것도 잃은 자존감을 찾는 해답이 될 것이다. 칼 로저스의 '섬사상', 각자가 섬의 주인이자 존재감이란 것이 흥미롭다.

 

'섬사상'이란 너는 너, 나는 나를 존중해주는 의미로 다가온다. 서로를 존중하며 마음 ''을 확장해가는 과정. 그것이 경계를 허무는 것이라 저자는 말하고 있으며 이 또한 자신의 세계이자 독창성 넘치는 생각을 타인과 교류를 통해 넓혀가는 자존감 상승의 요인이 될 것이다. 서로를 비난하기보다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이 존중이며, 자존감이 바탕이 된 자기계발의 입장에서 의미 있는 사상이라는 결론을 가져본다.

 

진정한 자기 변화는 내 마음이 자유롭고 평안함으로 자아를 변혁시켜가는 과정이다. 니체의 사상과 이를 더 응용한 칼 로저스의 '섬 이론' 그곳 섬이란 곳에서 나만의 낙원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상호 존중, 쌍방향의 소통이 가능해지는 것이 완성되길 바란다.

 

저자는 마무리로 '내 몸의 소리를 들어라'라고 주장한다. 기존 이성을 중심으로 했던 삶이 강조되었다면 스스로의 몸을 중요한 삶의 가치와 자존감 완성의 도구로 표현하고 있다. 몸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솔직함으로 무장한 외면의 반응에 충실해야 함을 재차 언급한다. 여기에 '섬 사상'이 언급돼며 니체의 격언이 언급되 나의 삶, 그 자존감을 찾게 하는 발판이 되리라 확신한다

 

'오직 그대 자신을 믿도록 하라! 그대들과 그대들의 뱃속을! 자기 자신을 믿지 않는 자는 언제나 거짓말을 할 뿐이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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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탈한 오늘
문지안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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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북스/문지안/에세이/한국에세이

  

책의 제목만 보고 읽기 시작했다면 살아가는 일상의 무탈함을 주제로 한 에세이겠거니 한 생각으로 책장을 넘겼을 것이다. 물론 맞는 말이기도 하다. 저자인 문지안님은 암 투병을 극복해가며 안온한 삶을 그려가며 견 및 묘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고양이와 개의 가계도를 비롯해 사진을 통해 동물들의 캐릭터와 일상을 충분히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에세이집이다. 왠지 모르게 덤덤함보다는 뭉클함이 묻어났다.

 

 

독자의 입장에서 어린 시절 고양이나 개를 키워 본 경험과 함께 죽음이란 피할 수 없는 소멸의 법칙이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에게 존재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상 속에 묻어나는 저자와 반려묘, 반려견들의 시와 같은 이야기 속에 진정성이 묻어나 책 속의 문장들 속에 푹 빠지게 된다. 아쉬움, 안타까움이란 단어가 지속적으로 떠오르는 건 최근 반려견 단체 안에서 은밀히 진행된 안락사 문제가 충격적인 사건으로 보도 된 요인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우여곡절이 많은 삶 속에 무탈함은 오히려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린 저자가 바랬으며 뽑았을 책의 최종 네이밍 '무탈한 오늘'에 더욱 주목하게 된다.

 

책의 내용 중 그들(반려견, 반려묘)은 우리를 평생 사랑하고 헌신하다가 생을 마감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십여 년 만을 사랑하고 아끼며, 또 다른 친구를 만나 사랑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 내용이 기억난다.

 

우리는 무심코 외로움과 정서적 안정을 위한다는 핑계로 반려견, 반려묘 열풍에 무임승차하는 존재가 되기도 하지만 인간에게 사랑을 받는 동물의 입장에선 그 10년의 시간이 얼마나 고귀하고 다시 못 올 찰나가 될 수 있음에 그저 숙연한 마음이 들 뿐이다.

 

그냥 '키워보고 싶다' 란 말을 밖으로 표현했을 뿐, 생명에 대한 소중함, 함께라는 의미에 대한 깊이감 있는 동질성을 느끼지 못했던 게 아닐까? 책을 읽으며 스쳐 지나가듯 떠오르는 어린 시절 함께 했던 반려견, 반려묘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다시 한번 드는 시간이었다.

 

 

그 외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Part1의 에피소드들이 묵직한 감동과 여운으로 다가와 살짝 감흥이 덜하긴 하지만 저자가 느끼는 가족에 대한 애틋한 추억과 감정들, 청춘 시절 느꼈던 정서와 조금은 달라진 현재의 상황을 사색하듯 그려내는 잔잔함이 갓 볶아낸 커피향처럼 구스하면서도 은은하게 묻어난다. 그리고 저자의 전공이자 삶의 일부인 가구. 나무라는 생명체를 가공해 인간의 안온함을 위한 버팀목으로 제공되는 편의품이지만, 저자는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견고하고 튼튼한 가구를 만드는데 중점을 두는 것 같다. 이는 바로 나무라는 생명체의 가치성을 소중히 여김과 동시에 그 나무라는 존재의 영속성을 더 길게 이어가려는 의도가 아닐는지 생각을 해본다.

  

    

길 잃은 고양이와 개를 사랑하고 삶의 소중함을 깊이 있게 간직하고 살아가려는 저자. 병마와 싸우며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그였기에 하루라는 시간적 중요성을 마음에 새기며 오늘이 무탈하기를 바라왔을 것이다. 추억과 현실이 공존하며 내일을 살아가는 저자의 삶. 그 안온함이 지속되길 바라며, 시간, , 무탈함의 가치를 느끼고 싶어 하는 많은 이들이 이 작품과 만나길 바란다. 감성적인 사진과 글이 어우러진 이야기의 잔상이 잊히지 않을 에세이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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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하지 않을 권리 - 혼자서도 완벽한 행복을 위한 선택
엘리 지음 / 카시오페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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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자체가 도발적이며 유쾌함이 묻어난다. 드라마에서 선보이는 애증의 스토리, 막장 연애, 연상연하 커플의 황홀한 로맨스에 더해 아저씨와 소녀의 사랑 등 금기시되거나 있지도 않을 법한, 그러나 실제 일어날 수도 있을 사랑 이야기의 언어를 발랄하게 보여주고 있는 연애 에세이이다. 더불어 연구 결과 및 통계 분석치 등도 제시해가며 그저 단순한 일상의 연애 감정을 한 번 보고 넘어갈 작품 이상의 신뢰성도 담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연애란 목에 걸 목적이라는 결론 보다 굳이 같이 살거나 혼자 사는 것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물론 개인의 자유와 취향은 스스로 안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연애하지 않을 권리는 연애를 멀리하라는 의미보다는 으례껏 상대방을 평가하는 편협한 잣대에 던지는 작가의 유쾌한 독설이라는 생각을 더해본다. 독자인 나도 흔히 들은 이야기들!!!!!!

 

"장가가야지, 애인은 없고?, 부모님이 걱정하신다."

 

하지만 사실 우리 부모님은 스스로 택할 길 혹은 가야 할 길은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라 여기고 시간이 물 흐르듯 결혼도 시간에 맞게 다가오리라 생각하셨다. 그리고 결혼 후 찾아오는 말

 

"애는 몇?, 어서 늙기 전에 나아야지?, 하나 가지고 되겠어?"

 

이런 자신은 신경도 쓰지 않는 일에 시시콜콜하게 걱정을 더한다. 이런 비슷한 심정에서 혼자만의 생활에 대한 진리, 연애가 아니더라도 행복과 살아갈 남녀의 삶에 원칙을 제시해주기 위한 저자의 썰이 이 책을 쓴 계기가 아닐지 조심스레 추측해보고 응원한다

 

과거의 기록부터 현대의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사랑 앓이의 변화는 무엇일까? 여성이 그저 단순히 남자의 대를 잇는 수단처럼 비도덕적 비상식적 발판의 산물이 되었다는 과거의 사례는 지금 읽어보아도 인격 자체를 무시한 행위이다. 반면 고대 혹은 중세 시대 부를 창출한 중년 이후의 남성이 미소년, 미소녀와 펼쳐진 사랑이 더 사랑에 근접했다는 당시의 표현들. 그건이 천상의 로맨스로 받아들여졌다니, 사랑의 의미도 시대성에 따라 다르게 평가되는가 보다. 지금 시대라면언론의 폭격 속에 이미 어둡고 시린 감방의 주인이 되어 있겠지.

연애와 사랑을 하나의 말로 정의 내리기 힘들다. '내로남불', 가장 빈번히 회자되는 말이다. 어떠한 위치와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입장이 바뀔 수 있음을 의미할 예이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이름의 연애는 힘든 것이며, 저자의 글 이야기처럼 누가 참견하지 않고 관심 갖지 않아도 충분히 살아가고 극복 가능한 것이 연애일 수 있으며, 그것이 연애하지 않아도 될 권리이다.

 

연애의 기준은 남성과 여성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저자는 책에서 언급한다. 남성의 경우는 재력과 능력, 여성은 반대로 외적인 외모의 표출이 연애 능력자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이런 연결점은 여성이 동성을 만나러 가는 약쇠에까지 자신의 외모를 가꾸고 좀 더 돋보이게 하려 한다는 단편적인 예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여성의 입장에선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꾸밈일 수 있으나 세상이 바라보는 시선이란 게 그리 녹록지 않다. 다른 이야기들도 공감이 간다.

 

'남성 스타의 자고 일어나 푸석푸석한 모습에도 열광하는 대중', 반면 '생얼 여성 연예인을 두고 기본을 했느니, 생얼이니 별로'라거나 이런 자체가 연애 감정에서도 드러날 수 있는 여성의 외모를 일반화된 잣대로 내놓은 편견의 사례라고 말할 수 있겠다. 지나친 고정 관념에 빠진 대한민국 남성과 여성의 차별화, 이것이 결국은 연애전선과 결혼에까지 미치는 불필요한 영향력이 아닐지 생각해본다. 그래서 연애는 해도 그만 한 해도 그만인 20대 젊은 층이 느끼고 혼족, 혼숙이 넘쳐나는 지금의 현실이다.

 

자유로운 논조의 개성 넘치는 저자의 생각이 거침없이 표현되는 연애 정의서! 연애를 속 시원하게 평가하고 기존의 고리타분한 연애관의 잣대를 통렬히 망각하게끔 하는 저자의 솔직함에 한 번은 읽어봐도 될 만한 작품 같은 생각을 갖는다. 독자 개인으로서 경험 혹은 느껴보지 못한 자유분방한 저자의 필치에 격려를 보내며, 나 또한 이 책을 읽으며 인생 조언이란 의미의 불필요하고 꼰대스러운 동어반복은 하지 않기로 다짐하는 시간이라 여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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