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위대한 도시, 파리 - 파리를 사랑한 작가 로제 그르니에의 파리 산책
로제 그르니에 지음, 백선희 옮김 / 뮤진트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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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쳐왔던 주소로 삶을 정리하기

 

1950년 이전에 태어난 부모 세대는 한국전쟁으로 인한 피난 외에도 이사를 많이 다녔다. 어떤 이는 재산 형성을 위해 자발적으로 이사하기도 했을 것이고, 어떤 이는 전세값 상승이나 아파트 단지 조성 등을 위한 토지 수용 등에 의해 강제적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다. 물론 한 자리에서 계속 거주한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울에서 10년 이상 이사를 하지 않고 거주했다면 원주민(原住民)’이라는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한 곳에서만 산 이는 그리 많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오히려 여러 차례 주소를 바꾸는 일이 흔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삶을 설명하기 위해 그가 그 동안 거쳤던 주소들을 정리하고, 그 주소들에 자신의 기억을 더해 회고록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사실 <나의 위대한 도시, 파리>를 읽지 않았다면, 나는 그런 방식으로 멋진 회고록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어디 사람인가

 

낯선 이들과 만나면 서로간의 접점을 만들기 위해 소위 ‘호구조사’를 하게 된다. 그러다가 연결고리를 찾게 되면 갑자기 호감을 느끼고 친근하게 이야기를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출신지 혹은 ** 사람 또한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한국 사람만이 가진 저열한 특징인 것처럼 얘기하지만, 사실 세계 어디라도 그러한 지방색이 없는 곳은 자기 지역만의 문화가 없는 곳을 제외하고는 찾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삼국 시대의 장비(張飛)가 ‘연인(燕人)’임을 강조했던 것처럼, 자기 지역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이들이라면, 더욱 그렇지 않을까?

 

그래서 이 책의 첫머리는 의미심장하다.

 

내가 시골 사람인지 파리 사람인지 모르겠다. 어쩌다 보니 나는 노르망디에서 태어났다.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포(Pau)와 베아른(Bearn)이 내 책 대부분에 영감을 주었다. 그러나 나의 도시는 파리다. 내가 느끼기에 진짜 파리지엥들은 다른 곳에서 태어난 사람들이고, 그들에게는 파리에서 사는 것이 일종의 정복이다. 나는 센 강의 다리 위를 지나기만 해도 감탄한다. 한쪽에는 시테 섬과 노트르담 성당이 있고, 다른 쪽에는 그랑 팔레와 샤이요 언덕이 있다. 그리고 비할 데 없는 하늘이 있다! 꿈이 아닌데, 내가 파리에 있다니!” [p. 6]

 

파리’를 ‘서울’로, 프랑스의 지명을 한국의 지명으로 바꾸면, 지방에서 올라온 수많은 서울사람들의 얘기가 된다. 뿐만 아니라 해외교포나 화교(華僑) 등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적용할 수 있다.

 

 

파리의 거리들

 

런던, 파리, 교토(京都) 등 고도(古都)들은 그들이 품고 있는 오랜 역사처럼 옛 모습을 가능하면 많이 유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저자가 파리의 거리들을 지나며, 마주치는 거리, 건물, 공원 등을 바라보며 어떤 사건이나 만남을 회상하는 것이 가능하다.

 

예를 들면,

<좁은 문>으로 유명한 앙드레 지드(Andre Gide, 1869~1951)의 집인 [바노 길 1-2번지]에서는 그의 작품 낭송 녹음에 얽힌 기억을

지드의 아파트인 그 유명한 바노에 들어가는 특혜를 누렸다. 1947년 10월, <지상의 양식> 출간 50주년을 기념하는 날이었다. 지드의 오랜 친구인 마르크 베르나르와 함께 우리는 라디오 방송을 위해 지드에게 <지상의 양식> 도입부를 읽게 했다. 그렇게 나는 실내화 차림으로 조금 긴장한 지드의 모습을 보았다. 지드가 자신의 녹음 목소리를 듣고서 이런 놀라운 말을 했다.

“치음 발음을 연습해야겠군.” “ [p. 98]

 

소설가 겸 극작가인 앙리 드 몽테를랑(Henry de Montherlant, 1895~1972)의 집인 [볼테르 강변길 25번지]에서는 그의 증정본과 관련된 추억을

몽테를랑은 자기 책의 성공을 위한 모든 것에 세심히 마음을 썼다. 오랫동안 그는 언론용 증정본에 헌사를 쓸 때조차 초고를 작성했다. 생애 말엽에는 그런 습관이 피곤하다고 내게 말하기도 했다. 갈리마르 출판사 건물에는 도서관이라 불리는 방이 하나 있는데, 저자들이 그곳에서 증정본에 사인을 한다. 한 번은 몽테를랑이 점심식사를 하러 간 사이에 장 쥬네가 그곳에 들렀다. 그는 몽테를랑이 서명해놓은 책 더미를 발견하고는 헌사에 음란한 말을 덧붙였다.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책들은 그렇게 떠나갔다. 그 책들은 틀림없이 오늘날 값나가는 희귀본이 되었을 것이다.” [p. 119]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가 편집자로 있던 <콩바>가 위치한 [레오뮈르 길 100번지]에서는 그의 죽음과 얽힌 에피소드를

“1960년 1월 4일 월요일 오후, 내가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데 한 여비서가 나를 멈춰 세웠다.

-어디 계셨어요? 사방으로 찾아다녔어요!

왜요?

피아의 주소를 알고 싶어서요.

피아의 주소는 왜요?

뭐라고요? 모르세요? 카뮈가 죽었어요.

그때 나는 기이한 반응을 보였다. 인쇄소로 간 것이다. 마치 그곳으로 피신하려는 듯이. 그곳에 가면 15년 전에 카뮈와 함께 조판대에서 숱한 밤을 보냈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걸 나는 알았다. 그곳에는 모두가 베베르라고 불렀던 우리의 고참 식자실장 루아가 있었고, 카뮈와 <프랑스-수아르>에서 일했고 1940년 피난 때 클레르몽페랑에서 그와 방을 함께 썼던 늙은 편집자 다니엘 르니에프(Daniel Lenief)도 있었다. 우리는 할 말을 잃고 작업실 한쪽 구석에 모여 있었다. 나는 문 가까이에 있는 선반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카뮈는 자주 페이지 레이아웃을 검열하고, 마지막 교정쇄를 수정했다. 누군가 결국 내게 말했다.

“카뮈에 대해 기사를 쓰게 되면 우리가 그의 친구였다고 말해주게….”

얼마 지나지 않아 식자공들과 교정자들이 “책 친구들이 알베르 카뮈에게”라는 제목으로 공동저작을 펴냈다. 그들은 내게 그 책의 서문을 청하면서 함께할 영광을 누리게 해주었다.” [pp. 128~129]

 

이런 방식으로 <나의 위대한 도시, 파리> 내내 저자는 파리의 거리들을 거닐고 있다.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저자가 꼼꼼한 기억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파리지엥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알았고 사랑했으나 사라져버린 것을 찾는 데 일평생을 보낼 수 있다.” [p. 36]고 말할 수 있던 것이 아닐까?

 

저자가 평생 글과 책과 더불어 살아왔기에, 그 기억들의 대부분이 문학과 연관되고, 덕분에 파리는 문학적 자취가 가득한 도시로 그려진다. 그래서 이들을 번역한 백선희도 “이 글은 로제 그르니에라는 한 작가의 개인사이자 부침 많았던 한 세기에 대한 증언이며 문학적 자취를 가득 품은 파리에 대한 애정과 향수가 물씬 느껴지는 기행”[p. 166]이라고 한 것이 아닐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파리의 골목골목을 누비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다 보니, 파리 전도가 첨부되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옆에 지도를 펼쳐 저자가 이야기 하는 골목을 살피면서 읽으면 좀 더 실감나지 않을까?

 

만약 다시 파리를 가게 된다면, 저자의 기억을 좇아 파리의 골목을 한 번 걸어보고 싶다. 단순히 저자의 기억을 되새김하겠다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그 골목골목마다 배낭여행 때의 기억에 더해 나만의 기억을 새로 덧씌워보고 싶다는 얘기다. 언제 그 날이 올지 모르지만, 그런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힘들거나 지칠 때 잠시 숨 돌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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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장소들 - 기억과 풍경의 도시미학 정수복의 파리 연작 2
정수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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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와 非장소


프랑스의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는 그런 의미와 고유한 느낌이 있는 도시의 공간들을 ‘장소(lieu)’라고 정의했다. 장소라고 다 ‘장소’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그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주유소, 맥도날드, 24시간 편의점 등 획일적으로 디자인된 유용하지만 무의미한 공간을 장소’가 아닌 장소를 뜻하는 ()장소(non-lieu)’라고 이름 붙였다. 장소가 우리에게 말을 걸고 기억을 상기시키며 감정을 풍부하게 해주고 예술적 영감을 제공하는 공간이라면, 비장소는 우리의 필요와 요구를 충족시켜주는 생존과 일상의 공간이다. 오래된 역사를 잘 보존하고 있는 의미 있는 장소’들이 많은 기억의 도시일수록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런 도시의 장소들은 감동, 기쁨, 안식, 평안을 제공한다. 장소에서는 공간과의 대화가 이루어지지만, 비장소에서 공간은 그저 상투성과 단절감만 느끼게 한다. ‘장소’는 없고 오로지 필요에 의해 생긴 기능적 비장소’들만 즐비한 공간에서 살다 보면, 삶이 삭막해지고 각박해지고 알게 모르게 불안감을 느끼며 쫓기게 된다. 그러니까 어느 도시를 걸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말 속에는 세렌디퍼티’1)장소’의 화학적 결합이 쉽게 일어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도시의 공적인 장소’가 기억과 상상의 연금술을 통해 나만의 장소, 나의 삶에 의미 있는 장소가 되는 것이다.” [pp. 12~13]


이처럼 <파리의 장소들>24시간 편의점, 마트, 주유소, 스타벅스, 맥도날드 등을 기능성만 갖춘, ‘장소(place)’ 아닌 장소, ()장소’라고 말한다. 왜 그렇게 말한 것일까? ‘장소는 오래된 기억과 스토리(story)가 있는 공간인 반면 ()장소는 획일적으로 생산된, 생존을 위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 <파리에 장소들>에서 파리의 장소들을 얘기하고 있다. 잘 알고 있듯이 파리는 오래된 도시이고, 이에 따라 나름의 사연이 서려있는 수많은 장소들이 존재한다. 그래서 파리의 장소들을 걷다 보면 지금 여기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일상과 각각의 장소에 서려 있는 기억들이 서로 엮여 또 다른 이야기를 떠오르게 한다.


어떤 곳에 가면 특정한 기억이 떠오르고, 거꾸로 어떤 것을 기억하면 그것이 자연스럽게 특정 장소와 결부된다.

~ 중략 ~

장소는 이런 의미에서 기억이 사는 집이다.” [p. 16]

따라서 장소에 얽힌 기억은 꼭 공적(公的)인 것일 필요는 없다. 때로는 나에게만 의미 있는 사적(私的)인 것일지라도 그 자체로 의미 있고, 존중 받을 가치가 있는 것이다.


 

같은 공간 다른 기억


에펠탑은 바라보는 대상이면서 동시에 바라보는 주체 또는 바라보는 장소 된다. 에펠탑은 주체와 객체, 능동태와 수동태 양쪽 모두가 될 수 있는 기이한 물체다. 에펠탑은 노트르담 사원, 루브르 박물관, 퐁피두센터와 함께 파리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장소의 하나다. 그러나 다른 장소들과 달리 에펠탑은 비어 있는 박물관이다. 루브르나 퐁피두센터에는 엄청나게 많은 볼거리들이 전시되어 있다. 노트르담 사원도 미술관은 아니지만 꽤 많은 볼거리를 담고 있다. 철로 만든 에펠탑은 그 안에 보여줄 것이 거의 없으면서도, 다른 어떤 장소보다도 많은 것을 보여준다.” [p. 49]


오랫동안 에펠탑은 파리 시민들의 애증의 대상이었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1부 잘 알려진 장소다르게 보기]의 첫 번째 글 에펠탑 다르게 보고 오르기 30페이지 이상의 지면을 에펠탑에 할애하면서 ‘쓸모 없음의 쓸모 있음’이라는 역설을 이야기한다. 생각해보면 쓸모 없음과 쓸모 있음은 관점의 차이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모든 존재는 각자의 존재이유가 있을 테니까. 혹시 에펠탑과 이를 둘러싼 논란에 더 관심이 있다면 이 문제를 전적으로 다룬 정대인의 <논란의 건축 낭만의 건축>을 참고하는 것도 좋다.


피카소의 아틀리에가 있던 건물에서 라스파이 대로를 건너면 캉파뉴 프르미에르 거리가 시작된다. 처음에 ‘캉파뉴 프르미에르(campagne première)’ 거리의 이름을 듣고서 나는 ‘첫 번째 시골’이라는, 다소 낭만적 방식으로 해석했다. 그런데 파리 길 이름 사전을 찾아보니까 ‘첫 번째 전투’라는 다소 공격적 의미를 담고 있었다(캉파뉴(campagne)는 ‘시골’과 ‘전투’라는 두 가지 뜻을 다 담고 있다). 이 골목은 그냥 지나가면 특별한 것이라고는 없는 평범한 파리의 골목길이다.

~ 중략 ~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면 화려한 상점 하나 없고 어떻게 보면 건물들의 높이가 들쑥날쑥하고 형태와 소재에도 일관성이 없으며 가로수가 없어 메마른 느낌을 준다. 나에게도 이 골목길은 그저 뤽상부르 공원으로 가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골목길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자주 이 길을 오가게 되면서 이 길과 친해지게 되었고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기호들이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기호들과 들리는 소리들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 보잘것없는 평범한 골목길이 수많은 기호들로 가득 차 있는 의미의 창고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 길을 걷는 일은 숨은 기호를 찾아내 해석하는 기호학적 산책의 기회를 제공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새로울 것이 없는 평범해 보이는 거리가 두터운 의미의 지층으로 덮여 있었던 것이다.” [pp. 237~238]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3장소에 숨은 뜻 자세히 찾아 읽기]의 첫 번째 글 캉파뉴 프르미에르 거리의 기호학에서 그저 평범한 거리로 여겼던 캉파뉴 프르미에르 거리가 친숙해지면서 그 곳에 수많은 기호들이 숨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얘기를 한다. 그리고 그 후 그 길을 걷는 일은 숨어 있는 기호들을 해석하는 일이 되었다는 고백을 한다. 우리가 일상 속에 걷는 길도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기에 그저 에 불과했지만, 이름을 붙여주고 의미를 부여하면 단순한 이상이 되지 않을까? 문득 김춘수의 <>이 떠올랐다.


[2부 피하고 싶은 장소일부러 찾아다니기]의 첫 번째 글 파리 동북부의 ‘위험한’ 동네를 찾아서에서 언급한, 메닐몽탕 거리는 또 다른 생각을 자아내게 한다.

메닐몽탕 거리는 남쪽에서부터 북쪽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이라는 점에서 벨빌 거리와 같다. 그러나 벨빌 거리가 사람들의 왕래가 많고 상점들이 계속 이어지는 데 비해서 메닐몽탕 거리는 문을 닫은 상점들도 여기저기 눈에 띄고 비교적 차분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그런지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을 쓴 장-자크 루소가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기 20여 년 전에 메닐몽탕 언덕길을 즐겨 걸었다. 그 책의 두 번째 산책 편을 보면 1776 10 24일 목요일 루소는 벨빌과 메닐몽탕을 연결하는 오트-보른 부근을 걷고 있었다. 그날 루소는 엄청나게 큰 덴마크 개를 만나 봉변을 당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는 그때 정신이 희미했던 상태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누군가 나에게 어디에 사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 순간 입에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내가 어디에 있었나를 생각해보았다. 누군가가 내가 오트-보른에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이 나에게는 아틀라스 산에 있다는 말처럼 들렸다.


루소가 메닐몽탕 언덕길을 산책한 일은 잘 알려져 있지만, 그 이전에 몽테뉴도 메닐몽탕 언덕길을 걸었다는 사실은 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두 사람 다 메닐몽탕 언덕길을 걷다가 개에게 물리는 봉변을 당했다. 이런 일화가 사람들로 하여금 이 지역을 ‘위험한 지역’으로 인식시키는 데 기여했는지도 모른다.” [pp. 154~155]


이 얘기대로라면 메닐몽탕 거리는 진짜 위험한 지역이었을까, 아니면 위험한 지역이라고 인식된 지역이었을까? 한국으로 치면, 달동네에 해당되기에 선입견에 사로잡혀 위험한 지역이라고 여기고 싶은 상태였기에, 몽테뉴나 루소의 일화를 핑계로 그런 낙인을 찍은 것이 아닐까? 왠지 우리가 우범지대라고 여기는 곳에 대해 다시 한번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서울은 어떤 기억의 도시가 될까

                   

가볍게 여기는 산책길을 저자를 따라 걷다 보면, 공간이 그 자체로 존재하기 보다는 그 주변, 그리고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느낌이 든다. 따라서 이 책, <파리의 장소들>파리라는 공간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파리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셈이다.


이 책은 장소에 관한 책이지만,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그 장소와 얽혀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아가기 위해 만든 도시의 장소들에 어찌 사람 사는 이야기가 없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의 파리 연작은 파리라는 공간의 이야기이면서 그와 동시에 파리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사회학자이지만 이 책에서 문학적 글쓰기를 모색했다. 시인의 혼이 되어보기도 했고 소설가의 마음이 되어보기도 했다. 이 책은 시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다. 그러나 이 책에는 시적인 순간도 있고 소설적인 이야기들도 군데군데 박혀 있다. 시가 어느 순간에 밀려오는 영감의 응축된 언어적 표현이라면, 이 책에는 파리의 특정 장소들에서 느낀 고양된 감정과 미적 체험의 순간들이 군데군데 숨을 쉬고 있다. 소설은 특정 시기, 특정 장소에서 사람들이 서로 얽혀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내가 쓴 파리 이야기들이 소설은 아니지만 거기에는 소설 같은 이야기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p. 387]


(세계화의 영향으로) “캉파뉴 프로미에르 길에도 웰빙을 내세우며 마사지를 하는 미용실과 중국 발마사지 시술소가 생겼고 빨래방도 하나 생겼다. 막다른 골목 안에는 살을 빼고 날씬해지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둥근 회전판 위에서 운동하는 기계를 설치한 스포츠세터가 생겼다. ‘두 명의 앙드레라는 이름으로 실내장식 사무실도 생겼다. 마르크 오제가 말하는 이른바 비장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존심을 내세우는 미용사가 머리 조각가라는 이름을 내걸고 하는 전통적 미용실이 건재하고, 19세기 말에 쓰던 철제 다리미를 전시하고 있는 오래된 세탁소도 건재하며, 몽파르나스 대로 쪽 길이 끝나는 곳에 문방구를 겸한 오래된 잡화상도 그대로 있다.” [pp. 250~251]


그러면서 풍납토성(風納土城)의 해자(垓子)에 건축 폐기물 수천 톤을 매립하라고 지시했던 구청 직원2), 아파트 재건축이 늦어진다는 이유로 풍납토성 발굴 현장을 파괴하고 흙으로 덮어버린 재건축조합 관계자3)들을 떠올리며 갑자기 얼굴이 붉어진다. 우리는 언제까지 우리의 과거를, 우리의 기억을 파괴하는 행위를 정당화해야 할까? 물론 파리라고 해서 과거와 꼭 같은 모습을 영원히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최소한 그들의 뿌리를 남겨두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파리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파리를 기억의 도시라고도 하는 것이 아닐까?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한다. 아파트 숲에 둘러 쌓인 회색 도시가 우리 자손들이 기억하는 서울의 모습이 되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서울의 기억’을 관찰하고 남겨두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1) 세렌디퍼티(serendipity): 완전하게 우연히, 예상치 않게, 기분 좋은 발견을 하는 재능

2)송파구청 직원 풍납토성에 쓰레기 불법 매립”, <YTN> 2013.02.02

3)풍납토성 발굴현장 무단파괴”, <국민일보>, 2000.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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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 제국 15,000킬로미터를 가다 - 한 닢 동전의 제국 여행기 알베르토 안젤라의 고대 로마 3부작
알베르토 안젤라 지음, 김정하 옮김 / 까치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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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5 현제(賢帝) 시기를 로마제국의 전성기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 시대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저자는 이 물음에 대해 로마 제국의 화폐 가운데 하나인 세스테르티우스 동전을 통해 대답하고 있다. 아,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고려시대의 <공방전(孔方傳)>처럼 가전체 소설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시기 로마 제국에서 사용되던 세스테르티우스 동전을 매개로 로마 제국인의 삶을 스케치하듯이 살펴보는 역사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세스테르티우스 동전은 어떻게 유통되었을까? 현대의 주화처럼 이 동전도 로마의 조폐창에서 주조되어 30인으로 이루어진 기마대들에 의해 제국 각지로 수송된다.

 

매번 새로운 통화들이 주조될 때마다 제국의 동서남북 국경지대로 가능한 신속하게 전달하는 것은 당시의 관행이었다. 당시는 통화가 경제적 수단이었을 뿐만 아니라 정보 전달과 홍보를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pp. 323~33]

 

이 책에 소개된 동전의 경우, 로마의 조폐창에서 알프스를 넘고 갈리아를 거쳐 배를 타고 영국해협을 건너 제국의 서쪽, ‘론디니움(Londinium, 런던)’ 요새로 향했다. ‘룬디니움’은 지금의 런던을 생각하면 초라할지 모르지만 이 시기에도 이미 런던의 ‘City’에 해당하는 지역이 개발되어 있고 런던브리지의 원형이 되는 다리가 형성되었다니 흥미롭다.

 

이 세스테르티우스 동전의 본격적인 여행은 ‘론디니옴’ 요새에서 총독 마르쿠스 아피우스 브라두아(Marcus Appius Bradua)1)가 동전 한 닢을 동전을 수송한 기마대의 십부장에게 건네주면서 시작한다. 그 십부장이 제국의 서쪽 끝에 있는 빈돌란다(Vindolanda) 요새의 공중목욕탕에서 동전을 분실하고, 그 동전은 누군가의 손을 거쳐 포도주 상인의 돈주머니에 들어간다. 그리고 파리시(Parisii)족의 거주지에 세워진 ‘루테티아(Lutetia, 파리)’를 거쳐 신들의 음료라는 포도주를 만드는 ‘아우구스타 트레베로룸(트리어)’에 도착한다. 지금의 룩셈부르크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 도시는 독일의 대표적인 와인 산지로 ‘모젤 와인의 도시’라고 불릴 정도이다.

 

오랫동안 포도 재배를 허가받은 유일한 주체는 군단의 군인들이었다. 이들이 길게 펼쳐져 있는 국경선을 따라 주둔한 상황은 포도주 생산의 지역화에 기여했는데, 그 이유는 이들이 실질적으로 가장 큰 소비자였기 때문이다. 포도 재배는 종종 이 국경지역의 경작지를 정착의 대가로 제공받은 퇴역군인들에게 위임되었다.” [p. 86]

이로 인해 유럽 와인의 주산지와 고대 로마제국의 군대 주둔지가 겹치는 일이 많다.

 

모곤디아쿰[Mogontiacum, 마인츠]에서 호박(琥珀) 보석 상인은 안전을 위해 노예 상인과 동행하면서 고객이 있는 메디올라눔[Mediolanum, 밀라노]로 향한다. 여기서는 조선의 여성과 달리 로마의 여성은 시간이 흐르면서 좀더 많은 권리를 누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명품을 두르고 거리를 거니는 메디올라눔의 여성들


출처: <고대 로마 제국 15,000킬로미터를 가다>, p. 162

 

공화정 당시 로마의 결혼은 항상 남편에게만 유리했을 뿐, 부인에게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결혼에서 여성에 대한 보호권은 마치 물건처럼, 그리고 집안의 애완동물처럼 부친에게서 남편에게로 넘겨진다” [p. 165]

공화정 시대가 끝나면서, 여성은 경제적으로 독립했고 재산에서도 남편과 동일한 권리를 획득했다. 이혼하기 위해서는 당사자들 중 한 명이 증인들 앞에서 자신의 의사를 표명하면 그만이었으며, 그 순간 당사자들의 이혼이 결정되었다. ~ 중략 ~

이처럼 트라야누스 황제의 시대에 부유한 여성은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독립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법적으로 자신의 모든 재산을 관리하는 유일한 주체였다. 또한 특히 돈 때문에 결혼한 자신의 남편을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 [pp. 166~167]

어떻게 보면 고대 로마의 여성들이 중세나 근대 초기의 여성보다 더 권리를 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뇌수종 수술을 하는 아리미늄의 외과의사


출처: <고대 로마 제국 15,000킬로미터를 가다>, p. 229

 

다른 도시의 경우, 예를 들면 이탈리아 북부의 아리미늄[Arriminum, 리미니]에서는 외과 의사에게 충치 치료, 백내장 치료, 뇌수종(腦水腫) 치료 등을 받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로마의 관문 역할을 하는 오스티아[Ostia]는 제국의 모든 지역에서 온갖 사람과 물건들이 유입된다. 때문에 현실에 존재하는 ‘언어의 바벨탑’이라고 할 만큼 다양한 언어가 혼재(混在)한다. 이런 식으로 여러 도시들에서 살아가는 로마인의 삶을 그려낸다.

 

이렇게 소개되는 에피소드는 그냥 짧은 역사소설을 엮은 것처럼 보이지만, 세스테르티우스 동전의 여정(旅程)에서 묘사된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실제로 그 시대에 그리고 그 장소에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실존 인물이고 실제로도 그 직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p. 10]고 한다. 게다가 이 책에 실린 “로마인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도 그 대부분이 ‘진짜’이다. 왜냐하면, 마르티알리스, 오비디우스2), 유베날리스와 같은 고대의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에서 인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p. 11]

아마도 그래서 에피소드들이 생생하게 그려진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소실된 삼국시대 이전의 기록들을 생각하면, 수많은 전쟁과 자연재해 등을 거치면서도 이런 기록들이 남아있다는 것이 부럽다. 동시에 시공간을 뛰어넘어 다양한 신분의 사람으로 고대 로마제국을 여행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해 준 이 책을 쓴 저자가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고. 이런 것을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잡은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나 덧붙이자면 책 중간중간에 삽입된 삽화는 여행 에세이의 사진이나 삽화처럼 상상하던 것을 형상화해서 한 눈에 들어오게 해서 좋았다.

 

1) 마르쿠스 아피우스 브라두아는 적어도 111년부터 118년까지 브리튼 총독으로 재직했었다고 알려졌다.

2) 푸블리우스 오비디우스 나소(B.C. 43~A.D. 17)은  <사랑도 가지가지[Amores]>, <변신이야기(Metamorphoses)> 등의 작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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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로지 - 히어로 만화에서 인문학을 배우다
김세리 지음 / 하이픈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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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로지(Marvelogy)]


이 책은 4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만화계의 빅뱅과 마블의 탄생에서는 마블 코믹스 탄생의 배경과 역사를, 2마블학의 시작에서는 슈퍼 히어로의 존재론적 고찰과 슈퍼 히어로 만화의 새 장을 열었다는 그래픽 노블, <왓치맨><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에 대한 얘기를, 3마블과 신화에서는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그들의 특성 및 신화 적 기원을, 4마블이 일군 철학적 생태계에서는 슈퍼 히어로들이 어벤져스라는 이름으로 연대하여 겪게 되는 보다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히어로와 빌런


선천적으로 초자연적인 능력을 지닌 DC 영웅들과 달리 마블의 영웅들은 대부분 선천적 능력을 지녔다기보다는 불의의 사고로 초자연적 능력을 갖게 된 인간들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히어로가 되어버린인물들이다. [p. 36]

예를 들면,

스파이더맨은 우연히 방사능에 오염된 거미에 물렸고, 헐크는 우연히 감마선에 노출되었으며, 엑스맨의 선천적인 능력은 초자연적 힘이 아닌 돌연변이성 능력이었기에 주로 사춘기를 기점으로 드러났다. 아이언맨은 신체적 약점을 지닌 영웅이며, 캡틴 아메리카 역시 슈퍼 혈청을 주입하는 인위적인 방식으로 본디 허약했던 육체가 인간 병기화된 경우이다. 닥터 스트레인지 역시 우연한 사고를 계기로 초자연적 마법의 세계에 입문하게 된다. [p. 37]

따라서 마블 히어로들은 정체성의 혼란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마블 히어로들의 주 무대는 가상의 공간이 아닌 뉴욕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도시 속에서 벌어지는 히어로들의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언제든 그들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과 친숙함을 선사했다. 또한 다른 세계의 존재처럼 여겨지는 DC의 초월적 영웅들과 달리우리와 같은 공간에서 현실적 고민을 짊어진 채 고뇌하는 불완전한 마블의 영웅들에게 독자들은 강한 연민을 느낀다히어로들의 약점은 도리어 독자들의 공감을 자아냈고청소년은 물론 성인까지도 포섭할 수 있었다. [pp. 39~40]


빌런의 경우에도 단순히 처음부터 구제불능의 악()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타노스처럼 자신들이 정의를 구현한다고 믿기도 한다혹은 <베트맨> 시리즈에서 나오는 정의로운 지방 검사 하비 덴트가 빌런 투 페이스로 바뀐 것처럼 자신의 정의가 좌절된 후 선()에서 악()으로 변화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선()을 지키면 히어로, ()을 넘으면 빌런이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슈퍼 히어로에 대한 고민


우리 고전 소설을 보면 거의 천편일률적으로 권선징악(勸善懲惡)’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한국 서지>을 펴내고 유럽에서 처음으로 한국사 강의를 개설한 프랑스 외교관 모리스 쿠랑(Maurice Courant, 1865~1935)한국의 고전소설은 두세 권만 읽으면 전부 읽은 거나 다름없다. 그러하니 (…) 그러하니 우리네 아동용 우화 가운데 가장 졸작보다도 오히려 재미가 없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왓치맨><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 이전의 슈퍼 히어로 만화도 따지고 보면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 다양한 힘을 가지고 거침없이 불의를 행하는 이들에게 정의(正義)라는 잣대로 심판을 내린다.  우리는 만화나 영화라고 그냥 넘어가지만, 그 과정에서 애꿎은 민간인들이 피해를 받게 된다. 그렇다면 정의 실현과정에서의 피해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천재지변(天災地變)처럼 여길 수도 있고, 물질적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죽거나 돌이킬 수 없는 장애가 생겼다면……. 그때도 묵묵히 피해를 감수해야 할까?


그래서 누가 감시자들을 감시할 것인가? (Who watches the Watchmen?)’라는 말도 나온 것이고, <왓치맨>킨 법령 <시빌 워> 시리즈의 초인등록법같은 슈퍼 히어로 통제법안도 나온 것이 아닐까?



정의란 무엇인가


십대 히어로로 구성된 뉴워리어팀이 리얼리티 TV쇼에서 보다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고자 빌런 나이트로와 대결하다가 612명의 시민이 사망하는 스탬포드 참사가 발생한다. 이 사건으로 히어로를 규제하는 초인 등록법 문제가 대두된다. 이후 초인 등록법에 대한 찬반문제로 히어로 간의 내전이 벌어지는데, 이를 다룬 만화 <시빌 워> 시리즈는 히어로들이 내세우는 정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시빌 워>는 간단히 말해서, 초인 등록법을 둘러싸고 아이언맨을 대표로 하는 히어로와 캡틴 아메리카를 대표로 하는 히어로가 대립, 갈등을 다룬다. 문제는 그 갈등의 이면에는 정의(正義)에 대한 각자의 정의(定義)가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언맨 등의 정의(正義)는 최대 다수의 최대행복을 추구하는 것이고, 캡틴 아메리카 등의 정의(正義)는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기에 처음부터 타협이 어려운 일이었다.


벤담의 공리주의

칸트의 원칙주의

아이언맨 / 오지맨디아스

캡틴 아메리카 / 로어세크

초인등록법 찬성

초인등록법 반대

안보(안전한 통제)

자유 (자유에 기반한 정의 구현)

미국의 현실

미국의 이상


그런데, 아이언맨 등의 정의를 따라가다 보면, 빌런인 타노스의 정의와도 통한다. 그래서일까? 공리주의적 정의를 추구하는 아이언맨이 초인 등록법 반대파들을 척결하기 위해 빌런들로 구성된 썬더볼츠팀을 꾸리는 것은 뭔가 아이러니하면서도 그럴듯해 보인다. 영화에서의 아이언맨 이미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빌런이 된 히어로라는 느낌이 들 정도니까. 빌런을 흡수하지 않았다고 해도 사건의 본질을 잊은 것은 캡틴 아메리카 등 초인 등록법 반대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이런 의미에서 신선한 느낌을 주는 것이 <시빌 워: 울버린>이다조선시대 예송논쟁처럼 초인 등록법에 대한 찬반을 두고 히어로들이 다투는 상황에서 그 혼자 사건의 시발점인 스탬포드 폭발 사고를 추적하여 무엇이 히어로인지를 행동으로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처럼, 마블의 만화와 영화는 정의에 대해 고민하고 논의하게 만들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우리에게 인문학, 그 중에서는 철학(윤리학 포함)적 관점에서 마블의 만화와 영화를 해석해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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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건축을 걷다
이용민 지음 / 스페이스타임(시공문화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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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뉴욕 건축을 걷다>인가

 

나는 ‘뉴욕’이라고 하면 마천루(摩天樓), 뉴요커, 도시재생이 떠오른다.

 

누군가는 ‘뉴욕’이라고 하면 하늘을 찌르는 듯한 스카이라인을 과시하는 초고층 건물, 마천루(摩天樓)를 떠올릴 것이다. 그것은 1890년 이후 미국에서 세워진 거의 모든 최고층 건물이 모두 뉴욕시에 세워졌기 때문일 수도 있고, 세계 최초로 100층을 넘기고 39년 간 최고층 건물의 지위를 누렸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1931)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떤 이는 ‘뉴욕’이라고 하면 브로드웨이로 대표되는 예술과 맨해튼의 5번가로 상징되는 패션을 떠올릴 것이다. 아마 그래서 뉴욕에 살아가는 사람들, 뉴요커들은 세련되고 시크하다는 이미지가 강한 것일지도 모른다. 의료인 서수민과 영상팀 팀장 안대훈 커플의, “매력 터지는 여친을 영상감독 남친이 촬영하면 생기는 일”이라는 제목의 동영상(https://youtu.be/ufKxOlS3f50)처럼.

 

또 다른 이는 고(故) 박원순 시장이 남긴 ‘서울로 7017’의 모델이며, 이 책에서 5번째로 소개된 ‘하이 라인 공원(The High Line Park)’으로 대표되는 도시 재생을 떠올릴 것이다. <하이라인 스토리>라는 책에서 자세히 언급되어 있듯이 하이 라인 공원은 도시 재개발 과정에서 철거와 보존, 정부와 주민들 사이 많은 갈등이 존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시민 참여를 통해 비판을 극복하여 성공적인 도시 발전을 이룬 대표적인 사례이니까.

 

이 모든 것이 ‘뉴욕’이다. 그렇다면 이 ‘뉴욕’이라는 공간을 채우는 것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은 최고층 건물이다. 하지만 뉴욕에는 이런 최고층 건물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 건물들이 있을까? 그리고 그 건물들은 어떤 의도로 지어지고, 그 공간에서 생활하는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뉴욕 건축을 걷다>는

 

이 책, <뉴욕 건축을 걷다>는 일상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건축의 유형, 즉 문화, 주거, 상업, 교육 건축을 기준으로 4개의 Chapter로 나눠 소개하고 있다.

 

베슬

 

사진출처: <뉴욕 건축을 걷다>, p. 67, p. 71

 

‘Chapter 1. 문화 건축: 사람과 도시의 관계’에서는 솔로몬 구겐하임 뮤지엄(Solomon Guggenheim Museum), 뉴욕 클래식 문화를 상징하는 링컨 센터(Lincoln Center), 뉴욕 현대 미술관(Museum of Modern Art), 지형과 조경 등을 이용해 공간을 디자인한 프랭클린 루즈벨트 기념 공원(Franklin D. Roosevelt Four Freedom Park), 도시 재생을 상징하는 공중 공원인 하이 라인 공원(The High Line Park), 휘트니 뮤지엄(Whitney Museum), 뉴욕의 새로운 랜드마크인 베슬(The Vessel), 맨해튼의 뷰를 최대화한 퀸즈 헌터스 포인트 도서관(Queens Library at Hunters Point)를 소개하고 있다.

 

‘Chapter 2. 주거 건축: 공간과 라이프’에서는 2개의 빌딩으로 이루어진 아파트인 킵스 베이 타워(Kips Bay Towers), 판매를 위한 럭셔리 콘도미니엄인 100 11th Avenue,  ‘New York by Gehry’라고 불리는 비정형(非定型)의 초고층 아파트인 8 스프루스 스트리트(8 Spruce Street), 극단적으로 높고 얇게 디자인된 432 파크 에비뉴(432 Park Avenue), 피라미드를 연상시키는 비아 57 웨스트(VIA 57 West), 젠가 타워(Jenga Tower), 독특한 곡선형의 외관을 가진 520 West 28th Street, 럭셔리 레지텐셜 아파트인 685 First Avenue과 같은 럭셔리 주거 공간의 다양한 시도를 다루고 있다.

 

‘Chapter 3. 상업 건축: 사람이 머무르는 공간’에서는 레버 하우스(Lever House), 시그램 빌딩(Seagram Building), 메트 라이프 빌딩(MetLife Building), 포드 재단 빌딩(Ford Foundation Building), 프라다 플래그십 스토어(Prada Flagship Store), 월드 트레이드 센터 마스터 플랜(World Trade Center Master Plan), 오큘러스(Oculus), 애플 스토어 5th 에비뉴(Apple Store 5th Avenue)를 안내하고 있다.

 

41 쿠퍼 스퀘어

 

사진출처: <뉴욕 건축을 걷다>, p. 232, p. 237

 

사진출처: 위키백과

 

‘Chapter 4. 교육 건축: 배움의 공간에 대하여’에서는 뉴욕대학교 도서관(NYU Elmer Holmes Bobst Library), 명문 디자인 학교인 프랫 인스티튜트의 건축 대학이 자리잡고 있는 히긴스 홀(Pratt Institute Higgins Hall), 친환경 건물로도 유명한 쿠퍼 유니언 대학의 뉴아카데미 건물인 41 쿠퍼 스퀘어(41 Cooper Square), 바너드 칼리지의 건축학부와 회화과의 스튜디오, 전시실, 강의실 등이 있는 바너드 컬리지 다이애나 센터(The Diana Center at Barnard College) 컬럼비아 대학의 과학 관련 분야의 연구/강의살, 교수 오피스, 카페 등으로 구성된 노스웨스트 코너 빌딩(Columbia University Northwest Corner Building), 코넬 텍 캠퍼스 마스터 플랜(Cornell Tech Campus Master Plan) 등 다양한 형태의 대학 건물을 소개하고 있다.

 

                                   노스웨스트 코너 빌딩 라파엘 모네오        

사진출처: <뉴욕 건축을 걷다>, pp. 248~249

 

여기에 소개된 30개의 건축물 마다 해당 건축물과 건축가에 대한 간략한 소개, 해당 건축물에 대한 해석과 해설, 가능한 경우에 한국의 유사 건축물 혹은 해당 건축가가 관여한 건축물 순으로 서술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유형별로 뉴욕의 현대 건축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셈이다. 특히 한국과 비교하는 부분은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이라는 도시와 그 도시에 세워질 건축물, 그리고 이들이 이뤄나갈 도시 공간과 문화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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