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속의 정원, 정원 속의 교토 - 교토의 명원들 속에 숨어있는 이야기 산책
홍광표 지음 / 한숲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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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의 정원, 나라의 탑

 

교토[京都]와 나라[奈良]는 모두 ‘일본의 고도(古都)’에 속하지만, 교토의 사찰은 정원(庭園)이, 나라의 사찰은 탑(塔)이 중심이라고 한다. 아마도 교토의 사찰은 무로마치 시대 선종(禪宗)의 영향을 받아 간결하고 정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가레산스이[枯山水] 정원이 발달하고, 나라의 사찰은 국가가 보호하는 관사(官寺) 중심으로 발전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유홍준도 

 

‘교토의 명소’를 찾아가는 답사의 주체는 불상이나 건축이 아니라 정원이다. 정원에 대한 일본인들의 생각은 일찍부터 각별했다. 일본의 정원은 빈 마당을 꾸미는 조경(造景)이 아니라 정원을 만드는 작정(作庭)이었고, 정원을 설계, 시공하는 이를 작정가(作庭家)라 했다. 

~ 중략 ~

일본 정원사 연구의 권위 중 한 분인 시라하타 요자부로[白幡羊三郞] 교수는 일본 정원사를 큰 맥락에서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헤이안 시대는 귀족들의 침전조(寢殿造) 양식, 가마쿠라 시대는 선종 사찰의 마른 산수[枯山水, 가레산스이] 정원, 무로마치 시대는 무사들의 서원조(書院造) 정원, 에도 시대는 왕가와 지방 다이묘의 지천회유식(池泉回遊式) 정원이 창출되었다.

 

라고 말했나 보다. 

 

이 책에서는 교토의 정원 49곳을 소개하고 있는데, 작년에 내가 방문했던 텐류지[天龍寺], ‘금각사’로쿠온지[鹿苑寺], ‘은각사’지쇼지[慈照寺], 료안지[龍安寺], 니조죠[二城], 난젠지[南禪寺], 곤치인[金地院], 지온인[知恩院], 도후쿠지[東福寺]에 먼저 시선이 갔다. 이들 가운데 ‘교토의 정원’하면 떠오르는 곳이 ‘Zen garden'으로 알려진, 료안지[龍安寺] 방장(方丈)의 남정(南庭)인 석정(石庭) 혹은 방장정원(方丈庭園)이다.

 

에도 시대에 출판된 <도림천명승도회(都林泉名勝圖會)>를 보면, 이 정원을 “라쿠호쿠[洛北]의 이름난 정원 가운데서도 으뜸”이라고 적고 있다. 이것으로 볼 때, 료안지 석정은 에도 시대에도 그 격이 높이 평가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도 일본인들은 이 정원이 일본정원사에 있어, 찬연히 빛나는 정원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단순하면서도 명쾌하고 유현하면서도 심오한 이미지를 연출하는 이 정원은 선사상이 정원이라는 물리적 형태로 표현된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료안지 방장정원을 일본 고산수정원의 최고봉이라고 말하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 중략 ~

료안지에 가면 방장 마루에 많은 사람들이 석정을 내려다보면서 명상에 잠겨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 번쯤은 그들과 함께 마루에 앉아 자기를 들여다보는 선정(禪定)에 들기를 권해본다. 방장의 북측에도 세장한 공간에 정원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 정원에는 ‘오유지족(吾唯知足)’이라고 쓴 둥근 몸체에 네모난 구멍을 뚫어놓은 수조가 하나 있다. 이 수조에서 물을 받아 입을 헹구고, 손을 씻어보는 것도 료안지를 느끼는 방법이 된다. 오유지족이란 ‘욕심부리지 않고, 지금의 나 자신에 만족한다’라는 뜻이다. [p.108]

 

료안지 석정(石庭)

 

료안지 방장정원 실측도


사진 출처: <교토 속의 정원, 정원 속의 교토>, p.109

 

 

교토의 다양한 정원들

 

교토에는 이런 가레산스이 정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교토에서 볼 수 있는 정원은 한국정원의 영향을 받아서 조성된 지천정원(池泉庭園·치센정원)부터 대륙으로부터 선(禪)이라고 하는 불교문화가 유입되면서 만들어진 고산수정원(枯山水庭園·가레산스이정원)까지 총망라되어 있다. 지천정원도 회유식, 관상식, 주유식(舟遊式) 등 그 유형이 많고, 고산수정원 역시 축산고산수와 평정고산수로 분류되는데, 그 내용을 보면 돌만을 사용한 고산수, 돌과 모래를 사용한 고산수, 모래만을 사용한 고산수, 돌과 식물이 결합된 고산수, 돌은 하나도 쓰지 않고 식물만을 사용한 고산수 등 다양하여 마치 정원박람회장을 연상케 하는 장대한 스펙트럼을 가진다. [p.12]

 

대표적인 치센카이유[池泉回遊] 정원으로는 무로마치 시대의 작정가 무소 소세키[夢窓 疎石]가 설계했다는 텐류지[天龍寺]의 소겐치[曹源池] 정원이 있다.

 

소겐치는 동서 35m, 남북 50m 규모이며, 들쭉날쭉한 모래톱과 같은 형태[洲浜形]의 곡지를 기본 양식으로 삼아 조성되었다. 이러한 못에 보다 다양한 시각적 변화를 주기 위한 장치로 못의 중심을 향해 불쑥 튀어나온 여러 개의 출도(出島)를 만들었는데, 출도의 연장선상에 놓인 암도(池中立石, 지중입석)는 텐류지 정원에 원근감을 부여하는 매우 주요한 요소가 된다. [pp. 76~77]

 

소겐치[曹源池] 정원

 

못을 향해 불쑥 튀어나오도록 조성한 출도(出島)


사진 출처: <교토 속의 정원, 정원 속의 교토>, p. 75

 

 

텐류지 정원 평면도


사진 출처: <교토 속의 정원, 정원 속의 교토>, p. 81

 

그렇다고 모든 정원 한 가지 양식으로만 되어 있지는 않다. 우리에게 ‘긴카쿠지[銀閣寺]’로 알려진 지쇼지[慈照寺] 히가시야마도노[東山殿]의 정원은 가레산스이[枯山水] 양식의 상단과 치센[池泉] 양식의 하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천정원은 킨쿄치[錦鏡池]라고 이름 붙인 못에 중도(中島)인 하크즈루시마[白鶴島]를 두었으며, 언덕 아래 센게츠센[洗月泉]이라 이름 붙인 폭포(瀑布) 석조를 만들었는데, 이 폭포는 안쪽에 또 하나의 폭포 석조를 만들어 이중구조를 보이고 있다.

~ 중략 ~

센게츠센으로부터 북동쪽 산 위에 조성된 고산수정원은 쇼와[昭和] 6년에 발굴되어 그 전모를 알 수 있게 되었는데, 현재는 완전히 복원된 상태이다. 이 상부 정원은 사이호지에 무소 국사가 정성을 들여 만든 고인잔[洪隱山]의 고산수정원을 모방한 것이라 하나 두 정원의 석조작법은 형식적으로 차이가 있다. 즉, 사이호지의 석조는 큰 돌을 사용하여 웅건한 기상을 느낄 수 있으나, 히가시야마도노의 석조는 힘이 느껴지기보다는 우아한 아름다움이 나타난다. [p.93]

 

자쇼지 정원 평면도


사진 출처: <교토 속의 정원, 정원 속의 교토>, p. 97

 

이런 일본의 정원들이 가지는 가장 큰 특징은 한국의 정원과 달리 정원을 만든 작정가(作庭家)들이 알려져 있고 존중 받았다는 점이다. 이 책의 서문에 해당하는 ‘책을 펴내며’에서 저자는 사이호지[西芳寺]와 텐류지[天龍寺]의 정원을 만든 무소 소세키[夢窓 疎石, 1275~1351], 곤치인[金地院] 정원을 만든 고보리 엔슈[小堀 遠州, 1579~1647], 슈가쿠인리큐[修學院離宮]을 만든 고미즈노오 상황[後水尾 上皇, 1596~1680], 무린안[無鄰庵] 정원을 만든 오가와 지헤이[小川 治兵衛, 1860~1933], 도후쿠지[東福寺] 본방정원(本坊庭園)을 만든 시게모리 미레이[重森 三玲, 1896~1975] 등을 언급했다. 이 책에 실린 정원들의 사진과 평면도 등을 보면서, 이들 작정가들이 어떤 요소를 이용하여 자신만의 작정 기법을 발휘하였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교토의 정원은 유명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여러 곳의 정원들을 보면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으며 지루해지기 쉽다. 이 책을 읽어보고, 정원을 조성한 시기와 어떤 작정가가 나섰는지를 파악한 후라면, 좀 더 보이는 것이 많아지고 흥미도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유홍준의 말처럼, 다른 시각에서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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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거닐면 일본사가 보인다
박진한 지음 / 푸른역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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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거닐면 일본사가 보인다]는

[도시를 거닐면 일본사가 보인다]라는 제목을 보면서 먼저 떠올린 것은 예전에 읽은 [30개 도시로 읽는 일본사]였다. 도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은 동일하지만, 이 두 책은 살짝 결이 다르다. [30개 도시로 읽는 일본사]가 지리적 접근이라고 한다면, 이 책 [도시를 거닐면 일본사가 보인다]는 시대의 흐름에 따르는 역사적 접근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30개 도시로 읽는 일본사]는 서일본의 규수[九州], 시코쿠[四國], 주고쿠[中國], 간사이[關西]와 동일본의 주부[中部], 간토[關東], 도호쿠[東北], 후카이도[北海道], 그리고 1872년 1차 류큐 처분을 통해 일본에 편입된 오키나와[沖繩]까지 9개 지역의 30개 도시를 각 도시의 핵심적인 특징과 간략한 역사 등을 소개하고 있다. 반면 [도시를 거닐면 일본사가 보인다]는 고대는 도읍지였던 아스카[飛鳥], 후지와라경[藤原京], 헤이조경[平城京, 나라(奈良)], 헤이안경[平安京, 교토(京都)]를, 중세는 무인들의 근거지였던 가마쿠라 막부를 연, 미나모토[源] 가문의 근거지인 가마쿠라[鎌倉], 오다 노부나가의 거성(居城)인 아즈치[安土], 도요토미 가문의 오사카[大阪], 도쿠가와 가문의 도쿄[東京], 근대는 근대 도시에 해당하는 하기[萩], 가고시마[鹿兒島], 요코하마[橫濱], 기타큐슈[北九州], 히로시마[廣島]를 선택했다. 이 13개 도시를 중심으로 일본사를 소개한 셈이다. 이 13개 도시 중 약 38%에 해당하는 5개 도시가 [30개 도시로 읽는 일본사]에서 언급되지 않는 것은 두 책이 지향하는 바가 다름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일본 고대의 도읍들

역사에 등장하는 최초의 일본국가인 야마타이국[邪馬臺國]과의 관계는 불명확하지만, 우리는 일본 역사가 아스카 시대[飛鳥 時代, 592~710], 나라 시대[奈良 時代, 710~794],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794~1192] 순으로 이어진다고 알고 있다. 따라서 각 시대의 도읍지인 아스카쿄[飛鳥京, 592~694]인 현재의 나라현[奈良縣] 아스카무라[明日香村], 헤이조쿄[平城京, 710~740, 745~784]인 현재의 나라시[奈良市], 헤이안교[平安京, 794~1869]인 현재의 교토[京都]를 다루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 사이에 특이한 도시가 있다. 일본 최초로 격자형 도시계획인 조방제(條坊制)를 도입한 중국식 도성(都城)이었다는 후지와라쿄[藤原京, 694~710]다. 현재의 나라현 카시하라시[橿原市]에 해당하는 이 도시는 41대 지토[持統]에서 43대 겐메이[元明]까지 3명의 텐노가 16년간 머무른 ‘일본 최초의 도성’이지만, 711년에 불탄 후 재건되지 않아 잊혀진 도시였다. 후지와라교의 건설이 시작된 것은 지토 텐노의 남편인 40대 텐노[天皇] 텐무[天武]의 때였다. 그는 기존의 오오키미[おおきみ, 大王]를 대신해 스메라미코토[すめらこと, 天皇]이라는 호칭을 새로 제정해서 사용했다고 한다.

(오아마 왕자는) 천황의 계승을 둘러싸고 672년 ‘진신의 난’을 일으켜 조카인 오토모 왕자와 맞붙었다. 피비린내 나는 혈육 간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 이는 오야마 왕자였다.

그는 오토모 왕자 편에 섰던 이들을 제거한 다음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중앙집권 정책을 더욱 강하게 밀어붙였다. 먼저 전제군주로서 자신의 위치를 강력하게 보이기 위해 ‘대왕大王’, 즉 오오키미를 대신해 새로운 호칭을 제정했다. 새 군주 호는 한자로 ‘천황天皇’이라 적고 ‘스메라미코토’라고 읽었다. [p. 62]

아마도 저자가 이 도시를 아스카, 나라, 교토 사이에 포함시킨 것은 이 시기에 율령국가가 확립되고, 후지와라교라는 도성의 건립을 통해 텐노 중심의 중앙집권적 국가체제가 확립되었음을 과시했기 때문이 아닐까?

천황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왕궁 주변으로 호족의 저택과 사원이 무계획적으로 들어선 아스카와 달리 새 도읍인 후지와라경에는 천황의 궁성을 중심으로 위계와 서열에 따라 왕족과 관인의 거주 공간을 배치했다. 이 같은 공간 배치를 통해 도성은 천황이 지상세계의 주재자임을 과시하는 일종의 기념비적인 공간이 될 수 있었다. [p. 66]

사실 후지와라교 외에도 현재 교토부 나가오카교시, 무코시, 니시쿄구에 걸쳐 존재했던 나가오카교[長岡京, 784~794] 등의 단기간의 수도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추측도 지나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가(武家) 도시들의 흥망

일본의 중세라고 하면 가마쿠라[鎌倉] 막부(1185~1333), 무로마치[室町] 막부(1136~1573), 에도[江戶] 막부(1603~1868)로 이어지는 막부 시대를 떠올린다. 그 중 무로마치 막부는 교토에서 막부를 열었으니 제외하면 막부가 위치한 곳은 가마쿠라[鎌倉]와 에도[江戶], 즉 지금의 도쿄[東京]만 남는다.

비록 ‘** 막부(幕府)’라는 이름을 없지만, 무로마치 막부와 에도 막부의 사이에는 ‘아즈치 모모야마[安土桃山] 시대’(1573~1603)가 존재한다. 때문에 이 시기에 집권한 오다 노부나가의 거점인 아즈치 성[安土城, 1579~1582, 오늘날 시가현[滋賀縣]]과 도요토미 히토요시의 거점인 오사카 성[大阪城, 1583~1615]을 중세의 도시에 포함시키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다만, 후지와라교와 마찬가지로 아즈치 성도 폐허가 되었기에, ‘관광’의 측면에서는 선뜻 선택할곳은 아니다. 그러나 ‘역사’의 측면에서는 다르다. 왜냐하면, 아즈치 성은 센고쿠[戰國] 시대의 군사적 기능에 중심을 둔, 돌과 흙을 쌓아 만든 야마지로[山城]에서 벗어나 정치적 기능이 곁들여졌기 때문이다. 그 특징을 살펴보면, 거대한 석조 기단[武者返し, musha-gaeshi], 금박 기와[金箔瓦], 그리고 성주(城主)의 권위를 상징하는 요새화된 높은 망루인 텐슈[天守]를 들 수 있다.

노부나가는 군사 방어를 위해 편의적으로 쌓아 올린 센고쿠 다이묘의 산성과 달리 평지에 기단을 쌓고 그 위에 초석과 기와를 갖춘 건축물을 지어 성곽의 안전성과 영구성을 확보하려고 했다. 그리고 해자나 성벽 등의 인공구조물을 강화하여 방어력을 강화했다.

하지만 노부나가의 축성술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점을 여타 센고쿠 다이묘와 달리 성곽의 중심에 수직으로 높이 솟은 ‘텐슈’를 쌓았다는 것이다. [p.198]

이처럼

노부나가가 해발 198미터에 달하는 아즈치산 정상에 다시 큰 돌을 올려 축대를 쌓고 그 위에 약 34미터 높이의 7층 천수각을 지은 것은 이처럼 장대한 건축물을 건립할 수 있을 만큼의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과시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아즈치를 방문하는 상인이나 외부인들은 시가지에 들어서기 전부터 높이 솟은 덴슈를 바라보며 그곳에 거주하는 노부나가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인식했을 것이다. [p. 203]

노부나가가 지향했던 통일의 꿈과 무가 도시의 건설사업은 그의 후계자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이어졌다. 전국적인 상공업 도시로 발전하는 오사카와 인구 100만이 넘는 대도시로 성장한 에도는 히데요시와 이에야스가 앞선 아즈치의 축성 경험을 계승, 보완해 건설한 조카마치였다. 아즈치가 없었다면 오사카나 도쿄 역시 현재와 매우 다른 모습을 가진 도시가 되었을 것이다. [p. 192]

개항과 근대화를 상징하는 도시들

메이지 유신을 주도했던 양대 본산인 조슈 번[長州藩]의 번청(藩廳)이 있던 하기[萩], 사쓰마 번[薩摩藩]의 번청이 있던 가고시마[鹿兒島]는 어떤 의미에서는 메이지 유신의 시작과 끝을 상징하는 곳이다. 왜냐하면, 하기[萩]는 메이지 유신 주역들의 옛 스승으로 알려진 요시다 쇼인[吉田 松陰, 1830~1859]이 있고, 가고시마[鹿兒島]는 유신 3걸 중 하나로 세이난[西南] 전쟁(1877)을 이끈 사이고 다카모리[西鄕 隆盛, 1827~1877]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두 곳은 메이지 유신의 고향이자 일본 육군[조슈 번]과 해군[사쓰마 번]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조슈번이 존왕양이 운동과 도막 운동의 중심에 설 수 있던 것은 단지 재정 개혁을 통해 얻은 수익금 때문만이 아니다. 다카스기 신사쿠를 비롯해 기도 다카요시,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 등과 같이 메이지 유신에 앞장섰던 인사들은 모두 조슈번 출신이다. 그런데 이들은 요시다 쇼인의 쇼카손주쿠에서 함께 수학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p. 329]

하기[萩]나 가고시마[鹿兒島]와 달리 요코하마[橫濱]는 ‘개항’의 이미지가 강하다. 이는 ‘요코하마’ 자체가 1858년 미일수호통상조약에 따른 자유무역을 보장하기 위한 개항장에서 비롯된 도시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요코하마는 일본에서 가장 먼저 근대적인 도시계획이 시행된 도시가 될 수 있었다.

1960년대 고도 경제성장에 따른 급속한 도시화와 공업화로 인한 도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나토미라이21 사업’이 1983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 결과, 근대 건축물의 보전과 활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면서 2005년부터 일본에서 살고 싶은 도시 1위를 유지하고 있다.

기타큐슈[北九州]는 1963년 군사 요충지로 육군조병창이 있던 코쿠라[小倉], 간몬해협에 접한 특별 무역항 모지[門司], 일본 최초로 근대적인 제철소가 들어선 야하타[八幡], 제철 및 기계 산업이 번성한 공업도시 토바타[戶畑], 수출입 항구인 와카마츠[若松] 다섯 개의 시가 대등합병되어 만들어진 도시다. 아마도 이것은 규슈[九州] 북부의 여러 공업 도시들이 야하타 제철소 설립 이후 도카이만[洞海灣]을 끼고 철강업과 그 연관 산업을 중심으로 성장했다는 공통점때문이 아닐까?.

문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원재료 수입처가 다양화되고, 상품 수출의 입지적 장점이 사라지면서 야하타 제철소의 철강 생산이 쇠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제조업 중심의 지역경제가 활기를 잃고 인구마저 감소하기 시작하면서 환경오염 문제가 부각되었다.

현실에서 제철소의 매연과 분진이 일으키는 피해는 심각했다. 1960년대 야하타, 도바타, 와카마쓰로 둘러싸인 도카이만 일대는 제철소를 비롯해 각종 공장에서 내다 버린 폐수로 오염되어 대장균조차 살 수 없는 ‘죽음의 바다’가 되었다. 1961년 당시 야하타 제철소에 설치된 62개 굴뚝에서 하루에 내뿜는 분진의 양은 27톤에 달했다. [p. 421]

결국

환경공해의 개선을 바라는 시민사회의 움직임에 시 정부 또한 반응하기 시작했다. 기타큐슈시는 환경청이 중앙정부 부처로 만들어지기 전인 1971년에 ‘공해대책국’을 설치하고 공해 방지 활동에 나섰다.

시 정부와 시민사회의 꾸준한 환경 오염 방지 활동의 결과 기타큐슈는 1985년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간한 환경백서에서 ‘잿빛 도시에서 녹색 도시로 변모’한 곳으로 소개할 정도로 공해문제를 해결하며 친환경으로 전환하는데 성공했다. [p. 422]

이러한 노력과 더불어 규제 완화와 장기간에 걸친 민간 주도형 지역개발 사업으로 도시재생을 추진해 온 피츠버그의 사례를 참고한 도시재생계획인 ‘기타큐슈 르네상스 구상’도 한 몫했다. 그 결과 경기침쳬와 인구감소에도 불구하고 지속가능 도시재생을 통해 생활환경에 대한, 비교적 높은 수준의 만족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인해 지방 도시가 소멸 위기에 처했다는 현재의 ‘지방 소멸론’은 지역 주민의 공포심만 부추겨 수도권 집중과 부동산 투기를 더욱 부채질할 뿐이다. 이러한 점에서 도시재생의 성공 사례를 찾아 도입하는 데 급급하기보다 인구와 경제가 성장을 멈추고 정체 상태에 접어들었지만 나름대로 자족적인 주거환경을 유지하는 도시와 지역을 관심있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p. 426]

히로시마[廣島]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핵무기가 투하된 도시로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이곳은 메이지 정부가 주둔군 성격인 진다이[鎭臺]를 이곳에 추가로 신설하면서 군사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1888년 주고쿠[中國]와 시코쿠[四國] 일대를 관장하는 일본 제5사단의 사령부 등이 들어선 이후 일본 유수의 군사도시이자 6대 도시로 성장했다. 청일전쟁(1894~1895)때에는 일본군 최고 통수기관인 대본영(大本營)을 이곳에 옮겨 전쟁을 지휘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는 서일본 지역의 병력을 총괄하는 제2총군사령부가 설치될 정도였다.

청일전쟁 이후 히로시마는 러일전쟁, 제1차 세계대전, 만주사변,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일본이 벌인 대외 침략 전쟁의 출발점이자 마지막 종착지가 되었다. [p. 438]

이런 점을 고려하면 히로시마에 원폭이 떨어진 것은 히로시마가 군사도시로 성장해서 대외 침략 전쟁의 출발점이자 종착지가 된 업보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지금의 히로시마는 ‘평화의 도시’로 불린다. 다만 일본의 우경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어 ‘보통 국가화’를 외치는 이들이 늘어나도 여전히 ‘평화의 도시’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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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형태들의 노래 - 세계 각지에 꽃피운 건축 문명의 원류와 현재를 찾아서
김종진 지음 / 효형출판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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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와 영감

 

<빛나는 형태들의 노래>는 제목에서 보여주듯이 ‘형태’들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구체적으로는 수평, 수직, 경사, 곡면, 기둥, 그리드, 구, 원, 정육면체, 비정형의 10가지 형태를 기본 유형으로 삼고, 이를 각각 자연으로부터 시작하여 고대 문화, 인체와의 만남, 전통과 일상 사례, 근현대 건축 프로젝트, 현대 예술 작품 순으로 예시와 함께 서술하고 있다.

 

먼 옛날의 인류는 자연에서 고유한 형태의 특성을 발견하고 영감을 얻었다. 그리고 원시 언어와 개념이 형성되었다. 이를 토대로 고대 형태 문화가 나타났다. 이후 중세, 근대를 거치며 현재의 형태 문명으로 발현했다. 

연구를 이어가며 인류의 많은 형태는 몇 가지 기본 유형으로 수렴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는 실제 우리 환경과 도시에서 볼 수 있는 결과이기도 하다. 여러 건축가, 예술가, 이론가들도 공통으로 기본 형태유형을 언급하고, 작품으로 보여주었다. 유형 목록은 서로 일치하지는 않지만,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이를 정리한 것이 책에 나온 열 가지 유형이다. 물론 현실의 건축과 예술 프로젝트는 대부분 다양한 형태의 복합과 변형으로 이루어진다. [pp. 13~14]

 

 

Back to the Basic

 

흔히 기본(基本) 혹은 초심(初心)으로 돌아가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초심은 알기 쉽다. 하지만 여전히 애매모호한 것이 있다. 기본! 도대체 뭐가 기본일까? 이 책에서 말하는 10가지 유형일까? 아니면 그 형태들에 담긴 마음일까?

 

사람이 건물을 만들고, 건물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필요에 의해 무언가를 만든다. 나중에는 그 무언가에 의해 거꾸로 영향을 받는다. 가구도, 건축도, 도시도 그렇다. 결과물은 우리 생활과 정신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한옥은 대표적인 수평 공간이다. 먼 옛날 한반도에 살았던 조상들이 처음부터 수평 집을 지으려 하지는 않았다.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 대지와 산하의 환경,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 당대 기술이 한데 어우러져 나무로 만든 집이 우리의 주거 문화가 되었다. 나무와 흙으로 짓는 집은 수직으로 높게 올리기 힘들다. 굳이 무리해서 그렇게 만들 필요도 없었다. 수평 공간이 발달할 수 밖에 없다. 동양의 전통 정신문화도 역할을 했다. 자연에 순응하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세상의 관계를 중시하는 고전 문화와 종교는 수평 공간과 조화를 이루었다. [p. 27]

 

수평 공간이 발달할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 살아온 우리 조상들이 자연에 순응하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세상의 관계를 중시하는 문화를 만들었을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이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비슷한 얘기인 셈이다. 

 

저자는 형태라는 시각적 요소를 얘기하면서도 이에 얽매이지 않고, 그 안에 담긴 마음 즉 우리 ‘안’의 형태를 언급한다.

 

형태 자체는 가치중립적이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형태가 독립하여 존재하는 실체인지 알 수 없다. 혹자는 무슨 황당한 말이냐고 물을 수 있다. 이렇게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지고, 코로 냄새 맡고, 딱딱한 모서리에 부딪히면 아픈데, 어떻게 실체인지 모른다는 말인가.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금 말한 '보이고', '만지고', '냄새 맡고', '부딪히고'...는 모두 우리의 감각 경험이다. 우리는 세상 사물을, 아니 세상 자체를 감각으로 체험할 수 밖에 없다.

~ 중략 ~

이 책의 주제는 형태의 실재 여부를 밝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감각하고, 지각하고, 경험하는 바로 우리 '안'의 형태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pp. 316~317]

 

받아들이기에 따라서 무척 현학적(衒學的)인, 철학 교과서에 더 어울릴 듯한 말들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하면 저자의 말에 집착하여 그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몰두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것은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손가락 끝은 왜 보고 있냐’는 말처럼 달이 아닌 손가락 끝을 보고 있는 셈이니까.

 

하나의 기둥 자체가 핵심이 아니다. 자연현상 속에서 높이 치솟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위를 향한, 위가 주는 초월의 감정을 느끼고, 끝내 어떤 수직 형상을 세워 올리는 우리의 마음이 중요하다. [p. 317]

 

저자의 해석이 반드시 정답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형태라는 시각적 요소를 인간의 감정과 연결지어 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추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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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
천선란 지음 / 허블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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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란 어떤 존재일까

 

좀비. 부두교 신앙의 전설에서 비롯된, 움직이는 시체 형태의 존재를 일컫는 말이다. 중앙아메리카에서는 약물과 폭행을 이용해 부려먹는 노예노동자 같은 형태로 실존하기도 했다고 한다. 아니, 우리가 알고 있는 '신안 염전 노예'와 같은 모습이 '좀비'라고 불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영화 <매트릭스> 시리즈에서 주인공 네오가 '빨간 알약(red pill)'을 먹고 세계의 진실을 알게 된 것처럼, 소금을 먹고 정신을 되찾아 돌아오기도 한다.

물론 이 '좀비'이야기는 이후 여러 매체에서 다양한 형태로 변주(變奏)되고 있다. 천선란의 연작소설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에 등장하는 좀비도 그런 변주에 속한다. 

 

 

떠나는 자들

 

'1부 제 목소리가 들리십니까'에서 동면에서 깨어난 기계 엔지니어 황옥주가 겪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그녀는 좀비 바이러스를 피해 지구를 떠나 에르사(Ersa) 행성으로 향한 이주선에서 냉동수면 상태로 있었다. 그녀가 깨어났을 때, 이미 이주선은 잠복기에 있던 좀비 바이러스가 깨어난 리더 타일러 조에 의해 그녀를 제외한 모든 승무원이 살해된 상태였다. 비록 그녀의 남사친이었던 묵호는 좀비가 되는 과정에서 그녀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녀가 깨어났을 때는 그도 움직이는 시체가 된 상태였다. 신기하게도 그런 상태에서도 묵호는 옥주를 인식하고 그녀를 물지 않을 뿐 아니라 끝까지 그녀를 지키려고 한다. 사랑하는 이를 지키려는 마음이 좀비 바이러스마저 억누른 것일까? 

 

좀비로 인한 세상의 종말이 다른 종말보다 더 끔찍한 이유가 뭔 줄 알아? 

~ 중략~

모든 종말의 순간에도 인물은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뛰어. 서로를 살리기 위해. 죽어가는 순간에도 애틋하게 눈을 맞추고, 입을 맞추고, 사랑을 속삭여. 슬프지만 아름답고 극적인 이별을 맞이할 수 있어. 하지만 좀비는 아니거든. 사랑하는 사람을 잊고,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기 위해 달려들고,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을 향해 총을 쏴야 해아름다운 마지막 모습이 아니라 시체가 되어버린 처참한 몰골을 봐야만 해. 이게 가장 끔찍한 종말이야. [p.52]

 

그래서였을까? 옥주는 묵호를 버리고 원래 목적지였던 에르사 행성으로 향하는 대신 묵호와 함께 대기 부적합으로 이주가 보류된 카르노(Carnot)으로 향한다. 

 

죽음과 삶의 경계를 오가던 묵호를 볼 때조차 나오지 않던 눈물이, 그때도 나오지 않던 눈물이 지금은 참으려 애를 써도 비집고 흘러나온다는 사실이 또 억울해서, 억울함의 억울함을 더해 내가 감당할 수 없게끔 흐른다. 죽어가는 묵호는 괜찮았는데 왜 이미 죽어버린 묵호는 포기가 안 될까. 죽음은 끝이고, 내가 닿을 수 없는 불가능의 영역 같았는데, 죽은 채 곁에 있는 묵호는 닿을 수 있어서일까. 끝을 넘었으니 영원도 가능할 것만 같다. [p. 94]

 

 

이성적으로는 잘못되었다고 생각되는 옥주의 선택아 최악이 아니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이주선으로부터의 메시지였다.

 

에르사… 부적합… 항로 변경이 필요합니다. 갈 곳… 잃었습니다…. 키사… 도착한 그곳은… 어떱니까? [p. 115]

 

어쩌면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 해결하려는 대신 회피하려던 인간의 대응이 결국 갈 곳을 잃게 했는지도 모른다.

 

 

남는 자들

 

1부와 달리 2부와 3부는 지구에 남은 이들의 이야기다.

'2부 제 숨소리를 기억하십니까'는 대부분 인간이 다른 행성으로 떠나거나 좀비가 된 지구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다. 어떻게 보면 남겨진 자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은 사랑하는 이가 좀비로 변한 것은 아니지만 아니 좀비로 변하지 않았기에 더 사랑하는 존재를 놓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스스로 족쇄를 차는 일일지도 모른다. 식물인간이 된 엄마, 카카포를 지키는 제비나 자폐아인 딸, 노윤을 지키는 은미는 그런 삶을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제비는 밤이라서 못 본 것인지, 자신들을 태우지 않고 떠나가는, 어쩌면 마지막 구조 헬리콥터를 향해 총을 쏜다. 마치 여기 생존자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처럼.

 

죽음이 들이닥친 순간에 네 존재를 알리는 데 써야지세상한테. 내가 여기에 있다고. 아무도 듣지 않는데, 제비가 살아야만 하는 그 순간에. 그럴 때 총을 사용하는 거야[p. 139]

 

'3부 우리를 아십니까'에서는 2부와 달리 이미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존재를 이야기한다.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지만, 뇌종양 때문인지 기억과 의식을 지닌 화자가 좀비가 된 아내를 리넨 카트에 싣고 그들이 돌보던 거북이 ‘장풍’을 고향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바다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부부는 고목으로 변해간다.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존재의 마지막치고는 평온하면서도 이상한 결말인 셈이다. 

 

내가 그간 열심히 기도하고 헌금한 걸 기특하게 여겨서 신이 우리 둘을 저승에서 만나게 해주면 좋으련만. 우리는 욕심이 없잖아. 많은 걸 바란 적이 없잖아. 천국은 바라지도 않아. 어디든 저승의 남은 땅에 같이 있게만 해줬으면 좋겠다. 그럼 우리가 그곳을 천국으로 만들 수 있는데. [p. 248]

 

부부의 마지막은 신이 두 사람의 소망을 들어준 것일까 아니면 인간을 배제한, 지구의 자정(自淨)이 시작된 것일까? 

모르겠다. 하지만 지구에 남는 것을 선택한, 혹은 선택당한 이들도 지구를 탈출한 이들도 마찬가지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도 형태는 다르지만, 미련을 떨치지 못한, 또 다른 형태의 회피자이기 때문이다.

 

이상 3편의 소설에서 천선란이 보여준 '좀비'는 이성이 없는 살아있는 시체가 아니다. 오직 사랑하는 이 혹은 집착하는 존재가 남아있는 한, 이성(理性)이 살아있지만, 신체가 변형되었거나 일부가 결여된 존재에 가까워 보인다. 그랬기에 '모든' 존비가 아닌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있는 묵호와 같은 '일부' 좀비가 그런 모습을 보여준 것 같다.

 

 

 

옥의 티

 

p. 52

모든 종말의 순간에도 인물은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뛰어. ⇒ 모든 종말의 순간에도 인간은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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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멸종 - 거꾸로 읽는 유쾌한 지구의 역사
이정모 지음 / 다산북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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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는 지구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보면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어떻게 보면 새로운 탄생을 위해 구세계가 멸망해야 한다는 얘기로도 들린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지구가 46억년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겪은 다섯 차례의 멸종은 새로운 탄생을 위해 기존의 세계를 깨뜨리는 행위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저자도 

 

멸종이란 다음 세대의 생명체를 위해 자리를 비켜주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p. 23]

 

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그 멸종이 내가 속한 종(種)의 멸종이 아니라면 우리는 기꺼이 그 주장에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그러니까 인류가 멸종의 대상이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지구온난화 혹은 기후 변화를 지구를 멸망시키는 위기인 것처럼 말하고, 우리가 그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 무언가 해야 한다고 여긴다. 그런데 그것이 진실일까?

 

지구는 수천 년, 수만 년, 수십만 년 전부터 어느 정도 온실효과를 겪어왔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출현하기도 전의 먼 옛날부터 지구는 온실효과의 영향을 받는 온실 속 같은 곳이었다. 지금 온실효과와 기후변화가 문제인 것은 그 효과의 정도가 갑자기 너무 빠른 속도로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기후 위기라는 것은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0.03%에서 0.04%로 짙어짐에 따라 부가적으로 발생한 현상을 가리킨다.

 

사람들은 0.03퍼센트이던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 양을 0.04퍼센트 정도 올린 것 때문에 걱정하고 있는데, 광합성을 하는 세균들은 긴 세월에 걸쳐 0퍼센트에 가깝던 산소 기체 농도를 20퍼센트 이상으로 높여버렸다. 지구의 생명체들과 자연은 이런 일을 벌였다. 그 모습만 놓고 보면 46억 년 지구 역사 전체에서 요즘의 기후변화는 미세한 변화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결국 기후 위기로 촉발된 인류의 멸종은 지구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의 문제에 불과하다.

 

 

다양한 생명체의 눈으로 본 지구의 역사

 

자, 그렇다면 누가 이 ‘지구’의 역사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가장 적합한 화자(話者)일까? 흔히 역사에서 1차 사료(史料)는 사건이 발생한 당시 또는 그 시기에 만들어진 자료를 얘기한다. 그렇다면 멸종(滅種)의 역사를 소개하는데 있어서, 그 당사자가 설명하는 것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행위가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저자는 인류가 멸망한 것으로 가정한 2150년부터 지구가 탄생한 46억 년 전까지 거꾸로 거슬러 오르며, 지구에 놀라운 변화를 일으킨 생명체의 시선에서 17개의 주요 장면을 소개한다. 물론 여기서 설명해주는 화자(話者)들이 실제 화자가 아니라 저자가 선택한 20여 종의 존재가 직접 자신의 사연을 들려주는 형식으로 꾸민 것에 불과하다. 특히 6600만년 전[중생대 백악기] 티라노사우루스(Tyrannosaurus)가 들려주는 다섯 번째 대멸종, 2억 1000만년 전[중생대 트라이아스기] 포스토수쿠스(Postosuchus)가 들려주는 네 번째 대멸종, 2억 5100만년 전[고생대 폐름기 말기] 디메트로돈(Dimetrodon)가 들려주는 세 번째 대멸종처럼 각 시대 최고의 포식자가 들려주는 ‘멸종’에 대한 얘기는 ‘여섯 번째 대멸종’의 대상이 될 우리 인류의 입장에서는 남의 얘기로 들리지 않는다. 또한 이런 다양한 존재가 화자(話者)가 되는 방식은, 독자에게 마치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 얘기처럼 흥미로우면서도 ‘인간’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지구의 역사가 아니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게다가 이런 방식으로 지구의 역사를 서술하는 방식은 마치 자기가 각 글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감정 이입하기도 쉽다.

 

이렇게 지구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저자가 단순히 그것만 바랬다면, 이 책의 제목은 <지구사> 정도가 아니었을까? 저자는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혹은 겪을 ‘여섯 번째 대멸종’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도 함께하고 있다. 

 

2150년에는 과연 인류가 살고 있을까요? 물론 저는 그때도 인류가 살아남았기를 기대합니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데 필요한 대부분의 기술은 지금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가 바뀌지 않고 지금처럼 산다면, 그래서 지구가 꾸준히 더워진다면 2150년 지구에는 인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여섯 번째 대멸종은 이미 진행 중입니다. [pp. 7~8]

 

 

멸종에 순응해야 하나 저항해야 하나

 

지금까지 지구의 역사를 살펴보면, ‘대멸종’ 당시의 최고 포식자는 반드시 멸종하고, 생물량이 가장 많은 생물도 반드시 멸종한다. 문제는 이 두 가지 조건을 달성한 유일한, 그리고 최초의 존재가 바로 ‘인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는 ‘여섯 번째 대멸종’의 대상으로 당당하게 올라가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인류는 당장의 이득에 눈이 어두워 이 대멸종을 막기는커녕 진행을 재촉하고 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을 무려 95%나 지니고 있으면서 말이다. 결국 ‘의지’와 ‘실천’의 문제인 셈이다. 

 

호모 사피엔스에게는 충분한 기술이 있었다. 그들이 멸종하기 130년 전에도 기후변화를 막는 데 필요한 기술의 95퍼센트가 있었으며 이 기술을 사회에 적용하는 데 충분한 돈도 있었다. 또 많은 사람이 에너지 전환을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절실하지는 않았다. 누군가가 해결하리라 믿었다. [p. 37]

 

‘공유지의 비극’처럼 개별 주체의 합리성과 자유가 빚은 미래인 셈이다. 아니, 정확하게는 미래가 될 가능성이 높은 예측이다. 이 예측이 현실화되지 않으려면 서둘러야 한다. 인류에게는 더 이상 지구를 걱정하거나 다음 세대의 생명체를 위해 기꺼이 자리를 비켜주겠다는 이타적인 마음가짐으로 보낼 시간이 없다. 인류의 멸종을 막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기후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인류는 여섯 번째 대멸종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당신은 그것을 바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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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재식, 2023,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 어크로스, p. 32

 곽재식, 앞의 책, p.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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