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속의 정원, 정원 속의 교토 - 교토의 명원들 속에 숨어있는 이야기 산책
홍광표 지음 / 한숲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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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의 정원, 나라의 탑

 

교토[京都]와 나라[奈良]는 모두 ‘일본의 고도(古都)’에 속하지만, 교토의 사찰은 정원(庭園)이, 나라의 사찰은 탑(塔)이 중심이라고 한다. 아마도 교토의 사찰은 무로마치 시대 선종(禪宗)의 영향을 받아 간결하고 정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가레산스이[枯山水] 정원이 발달하고, 나라의 사찰은 국가가 보호하는 관사(官寺) 중심으로 발전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유홍준도 

 

‘교토의 명소’를 찾아가는 답사의 주체는 불상이나 건축이 아니라 정원이다. 정원에 대한 일본인들의 생각은 일찍부터 각별했다. 일본의 정원은 빈 마당을 꾸미는 조경(造景)이 아니라 정원을 만드는 작정(作庭)이었고, 정원을 설계, 시공하는 이를 작정가(作庭家)라 했다. 

~ 중략 ~

일본 정원사 연구의 권위 중 한 분인 시라하타 요자부로[白幡羊三郞] 교수는 일본 정원사를 큰 맥락에서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헤이안 시대는 귀족들의 침전조(寢殿造) 양식, 가마쿠라 시대는 선종 사찰의 마른 산수[枯山水, 가레산스이] 정원, 무로마치 시대는 무사들의 서원조(書院造) 정원, 에도 시대는 왕가와 지방 다이묘의 지천회유식(池泉回遊式) 정원이 창출되었다.

 

라고 말했나 보다. 

 

이 책에서는 교토의 정원 49곳을 소개하고 있는데, 작년에 내가 방문했던 텐류지[天龍寺], ‘금각사’로쿠온지[鹿苑寺], ‘은각사’지쇼지[慈照寺], 료안지[龍安寺], 니조죠[二城], 난젠지[南禪寺], 곤치인[金地院], 지온인[知恩院], 도후쿠지[東福寺]에 먼저 시선이 갔다. 이들 가운데 ‘교토의 정원’하면 떠오르는 곳이 ‘Zen garden'으로 알려진, 료안지[龍安寺] 방장(方丈)의 남정(南庭)인 석정(石庭) 혹은 방장정원(方丈庭園)이다.

 

에도 시대에 출판된 <도림천명승도회(都林泉名勝圖會)>를 보면, 이 정원을 “라쿠호쿠[洛北]의 이름난 정원 가운데서도 으뜸”이라고 적고 있다. 이것으로 볼 때, 료안지 석정은 에도 시대에도 그 격이 높이 평가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도 일본인들은 이 정원이 일본정원사에 있어, 찬연히 빛나는 정원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단순하면서도 명쾌하고 유현하면서도 심오한 이미지를 연출하는 이 정원은 선사상이 정원이라는 물리적 형태로 표현된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료안지 방장정원을 일본 고산수정원의 최고봉이라고 말하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 중략 ~

료안지에 가면 방장 마루에 많은 사람들이 석정을 내려다보면서 명상에 잠겨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 번쯤은 그들과 함께 마루에 앉아 자기를 들여다보는 선정(禪定)에 들기를 권해본다. 방장의 북측에도 세장한 공간에 정원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 정원에는 ‘오유지족(吾唯知足)’이라고 쓴 둥근 몸체에 네모난 구멍을 뚫어놓은 수조가 하나 있다. 이 수조에서 물을 받아 입을 헹구고, 손을 씻어보는 것도 료안지를 느끼는 방법이 된다. 오유지족이란 ‘욕심부리지 않고, 지금의 나 자신에 만족한다’라는 뜻이다. [p.108]

 

료안지 석정(石庭)

 

료안지 방장정원 실측도


사진 출처: <교토 속의 정원, 정원 속의 교토>, p.109

 

 

교토의 다양한 정원들

 

교토에는 이런 가레산스이 정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교토에서 볼 수 있는 정원은 한국정원의 영향을 받아서 조성된 지천정원(池泉庭園·치센정원)부터 대륙으로부터 선(禪)이라고 하는 불교문화가 유입되면서 만들어진 고산수정원(枯山水庭園·가레산스이정원)까지 총망라되어 있다. 지천정원도 회유식, 관상식, 주유식(舟遊式) 등 그 유형이 많고, 고산수정원 역시 축산고산수와 평정고산수로 분류되는데, 그 내용을 보면 돌만을 사용한 고산수, 돌과 모래를 사용한 고산수, 모래만을 사용한 고산수, 돌과 식물이 결합된 고산수, 돌은 하나도 쓰지 않고 식물만을 사용한 고산수 등 다양하여 마치 정원박람회장을 연상케 하는 장대한 스펙트럼을 가진다. [p.12]

 

대표적인 치센카이유[池泉回遊] 정원으로는 무로마치 시대의 작정가 무소 소세키[夢窓 疎石]가 설계했다는 텐류지[天龍寺]의 소겐치[曹源池] 정원이 있다.

 

소겐치는 동서 35m, 남북 50m 규모이며, 들쭉날쭉한 모래톱과 같은 형태[洲浜形]의 곡지를 기본 양식으로 삼아 조성되었다. 이러한 못에 보다 다양한 시각적 변화를 주기 위한 장치로 못의 중심을 향해 불쑥 튀어나온 여러 개의 출도(出島)를 만들었는데, 출도의 연장선상에 놓인 암도(池中立石, 지중입석)는 텐류지 정원에 원근감을 부여하는 매우 주요한 요소가 된다. [pp. 76~77]

 

소겐치[曹源池] 정원

 

못을 향해 불쑥 튀어나오도록 조성한 출도(出島)


사진 출처: <교토 속의 정원, 정원 속의 교토>, p. 75

 

 

텐류지 정원 평면도


사진 출처: <교토 속의 정원, 정원 속의 교토>, p. 81

 

그렇다고 모든 정원 한 가지 양식으로만 되어 있지는 않다. 우리에게 ‘긴카쿠지[銀閣寺]’로 알려진 지쇼지[慈照寺] 히가시야마도노[東山殿]의 정원은 가레산스이[枯山水] 양식의 상단과 치센[池泉] 양식의 하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천정원은 킨쿄치[錦鏡池]라고 이름 붙인 못에 중도(中島)인 하크즈루시마[白鶴島]를 두었으며, 언덕 아래 센게츠센[洗月泉]이라 이름 붙인 폭포(瀑布) 석조를 만들었는데, 이 폭포는 안쪽에 또 하나의 폭포 석조를 만들어 이중구조를 보이고 있다.

~ 중략 ~

센게츠센으로부터 북동쪽 산 위에 조성된 고산수정원은 쇼와[昭和] 6년에 발굴되어 그 전모를 알 수 있게 되었는데, 현재는 완전히 복원된 상태이다. 이 상부 정원은 사이호지에 무소 국사가 정성을 들여 만든 고인잔[洪隱山]의 고산수정원을 모방한 것이라 하나 두 정원의 석조작법은 형식적으로 차이가 있다. 즉, 사이호지의 석조는 큰 돌을 사용하여 웅건한 기상을 느낄 수 있으나, 히가시야마도노의 석조는 힘이 느껴지기보다는 우아한 아름다움이 나타난다. [p.93]

 

자쇼지 정원 평면도


사진 출처: <교토 속의 정원, 정원 속의 교토>, p. 97

 

이런 일본의 정원들이 가지는 가장 큰 특징은 한국의 정원과 달리 정원을 만든 작정가(作庭家)들이 알려져 있고 존중 받았다는 점이다. 이 책의 서문에 해당하는 ‘책을 펴내며’에서 저자는 사이호지[西芳寺]와 텐류지[天龍寺]의 정원을 만든 무소 소세키[夢窓 疎石, 1275~1351], 곤치인[金地院] 정원을 만든 고보리 엔슈[小堀 遠州, 1579~1647], 슈가쿠인리큐[修學院離宮]을 만든 고미즈노오 상황[後水尾 上皇, 1596~1680], 무린안[無鄰庵] 정원을 만든 오가와 지헤이[小川 治兵衛, 1860~1933], 도후쿠지[東福寺] 본방정원(本坊庭園)을 만든 시게모리 미레이[重森 三玲, 1896~1975] 등을 언급했다. 이 책에 실린 정원들의 사진과 평면도 등을 보면서, 이들 작정가들이 어떤 요소를 이용하여 자신만의 작정 기법을 발휘하였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교토의 정원은 유명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여러 곳의 정원들을 보면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으며 지루해지기 쉽다. 이 책을 읽어보고, 정원을 조성한 시기와 어떤 작정가가 나섰는지를 파악한 후라면, 좀 더 보이는 것이 많아지고 흥미도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유홍준의 말처럼, 다른 시각에서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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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형태들의 노래 - 세계 각지에 꽃피운 건축 문명의 원류와 현재를 찾아서
김종진 지음 / 효형출판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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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와 영감

 

<빛나는 형태들의 노래>는 제목에서 보여주듯이 ‘형태’들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구체적으로는 수평, 수직, 경사, 곡면, 기둥, 그리드, 구, 원, 정육면체, 비정형의 10가지 형태를 기본 유형으로 삼고, 이를 각각 자연으로부터 시작하여 고대 문화, 인체와의 만남, 전통과 일상 사례, 근현대 건축 프로젝트, 현대 예술 작품 순으로 예시와 함께 서술하고 있다.

 

먼 옛날의 인류는 자연에서 고유한 형태의 특성을 발견하고 영감을 얻었다. 그리고 원시 언어와 개념이 형성되었다. 이를 토대로 고대 형태 문화가 나타났다. 이후 중세, 근대를 거치며 현재의 형태 문명으로 발현했다. 

연구를 이어가며 인류의 많은 형태는 몇 가지 기본 유형으로 수렴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는 실제 우리 환경과 도시에서 볼 수 있는 결과이기도 하다. 여러 건축가, 예술가, 이론가들도 공통으로 기본 형태유형을 언급하고, 작품으로 보여주었다. 유형 목록은 서로 일치하지는 않지만,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이를 정리한 것이 책에 나온 열 가지 유형이다. 물론 현실의 건축과 예술 프로젝트는 대부분 다양한 형태의 복합과 변형으로 이루어진다. [pp. 13~14]

 

 

Back to the Basic

 

흔히 기본(基本) 혹은 초심(初心)으로 돌아가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초심은 알기 쉽다. 하지만 여전히 애매모호한 것이 있다. 기본! 도대체 뭐가 기본일까? 이 책에서 말하는 10가지 유형일까? 아니면 그 형태들에 담긴 마음일까?

 

사람이 건물을 만들고, 건물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필요에 의해 무언가를 만든다. 나중에는 그 무언가에 의해 거꾸로 영향을 받는다. 가구도, 건축도, 도시도 그렇다. 결과물은 우리 생활과 정신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한옥은 대표적인 수평 공간이다. 먼 옛날 한반도에 살았던 조상들이 처음부터 수평 집을 지으려 하지는 않았다.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 대지와 산하의 환경,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 당대 기술이 한데 어우러져 나무로 만든 집이 우리의 주거 문화가 되었다. 나무와 흙으로 짓는 집은 수직으로 높게 올리기 힘들다. 굳이 무리해서 그렇게 만들 필요도 없었다. 수평 공간이 발달할 수 밖에 없다. 동양의 전통 정신문화도 역할을 했다. 자연에 순응하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세상의 관계를 중시하는 고전 문화와 종교는 수평 공간과 조화를 이루었다. [p. 27]

 

수평 공간이 발달할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 살아온 우리 조상들이 자연에 순응하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세상의 관계를 중시하는 문화를 만들었을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이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비슷한 얘기인 셈이다. 

 

저자는 형태라는 시각적 요소를 얘기하면서도 이에 얽매이지 않고, 그 안에 담긴 마음 즉 우리 ‘안’의 형태를 언급한다.

 

형태 자체는 가치중립적이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형태가 독립하여 존재하는 실체인지 알 수 없다. 혹자는 무슨 황당한 말이냐고 물을 수 있다. 이렇게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지고, 코로 냄새 맡고, 딱딱한 모서리에 부딪히면 아픈데, 어떻게 실체인지 모른다는 말인가.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금 말한 '보이고', '만지고', '냄새 맡고', '부딪히고'...는 모두 우리의 감각 경험이다. 우리는 세상 사물을, 아니 세상 자체를 감각으로 체험할 수 밖에 없다.

~ 중략 ~

이 책의 주제는 형태의 실재 여부를 밝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감각하고, 지각하고, 경험하는 바로 우리 '안'의 형태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pp. 316~317]

 

받아들이기에 따라서 무척 현학적(衒學的)인, 철학 교과서에 더 어울릴 듯한 말들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하면 저자의 말에 집착하여 그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몰두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것은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손가락 끝은 왜 보고 있냐’는 말처럼 달이 아닌 손가락 끝을 보고 있는 셈이니까.

 

하나의 기둥 자체가 핵심이 아니다. 자연현상 속에서 높이 치솟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위를 향한, 위가 주는 초월의 감정을 느끼고, 끝내 어떤 수직 형상을 세워 올리는 우리의 마음이 중요하다. [p. 317]

 

저자의 해석이 반드시 정답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형태라는 시각적 요소를 인간의 감정과 연결지어 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추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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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골목마다 백년 가게
쑨이멍 지음, 박지민 옮김 / 빅허그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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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스토리가 있는 장소, 백년 가게


프랑스의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는 그런 의미와 고유한 느낌이 있는 도시의 공간들을 ‘장소(lieu)’라고 정의했다. 장소라고 다 ‘장소’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그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주유소, 맥도날드, 24시간 편의점 등 획일적으로 디자인된 유용하지만 무의미한 공간을 ‘장소’가 아닌 장소를 뜻하는 ‘비(非)장소(non-lieu)’라고 이름 붙였다. 장소가 우리에게 말을 걸고 기억을 상기시키며 감정을 풍부하게 해주고 예술적 영감을 제공하는 공간이라면, 비장소는 우리의 필요와 요구를 충족시켜주는 생존과 일상의 공간이다. 오래된 역사를 잘 보존하고 있는 의미 있는 ‘장소’들이 많은 기억의 도시일수록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런 도시의 장소들은 감동, 기쁨, 안식, 평안을 제공한다. 장소에서는 공간과의 대화가 이루어지지만, 비장소에서 공간은 그저 상투성과 단절감만 느끼게 한다. ‘장소’는 없고 오로지 필요에 의해 생긴 기능적 ‘비장소’들만 즐비한 공간에서 살다 보면, 삶이 삭막해지고 각박해지고 알게 모르게 불안감을 느끼며 쫓기게 된다. 그러니까 어느 도시를 걸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말 속에는 ‘세렌디퍼티’1)와 ‘장소’의 화학적 결합이 쉽게 일어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도시의 공적인 ‘장소’가 기억과 상상의 연금술을 통해 나만의 장소, 나의 삶에 의미 있는 장소가 되는 것이다.2)


이처럼 사회학자 정수복의 <파리의 장소들>은 오래된 기억과 스토리(story)가 있는 공간을 ‘장소(place)’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노포(老鋪)라고 부르는 백 년 가게들도 누군가의 장소일 것이다.

그렇기에 파리고등응용예술대학 학생이었던 쑨이멍[孫藝萌]이 일러스트레이션 과제로 그렸던, 파리 백 년 가게들에 대한 책인 <파리 골목마다 백년 가게>에 손이 갔다. 그녀는 가게들을 찾아 다니며 가게의 역사, 가게 사람들의 이야기, 상품에 대해 취재하고 이를 일러스트와 함께 짧은 글로 옮겼다. 다만 50곳이라는 많은 장소를 한정된 지면에 소개하려고 하다 보니 정보의 양이 아쉽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백년 가게’라는 이름의, 추억과 이야기가 얽힌 장소들


노포(老鋪) 혹은 백년 가게라고 하면 흔히 대(代)를 이어 운영되는 오래된 식당을 떠올린다. 여기에는 대장간처럼 산업혁명 이후 급격한 사회변동 속에서 사라진 수공업 가게들도 한 몫하고 있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오래된 식당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이었을 테니까. 그렇기에 이 책에서 요식업이 아닌 다른 업종의 백년 가게들도 소개하고 있는 것이 기껍다.
요식업에 해당하는 ‘아름다운 맛을 파는 가게’ 17곳을 제외하며 ‘특별한 기념품이 필요할 때 갈만한 가게’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파리 시민이 아닌 이상, 우리는 파리에 출장처럼 업무상으로 방문하거나 관광하기 위해 방문하게 된다. 어느 쪽이든 기념품 혹은 선물 생각이 날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향초(트루등), 향수(불리오리자 엘 로그랑, 화장품(데따이유), 파이프(아 라 피프 뒤 노르), 자수(아니 부케) 등에 시선이 가게 된다.
기념품에 관심이 없는, 자타공인의 ‘책벌레’라면 ‘문화가 가득한 가게’에서 소개하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단골 가게이자 문학에 대한 토론의 장이 펼쳐졌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17세기 이후 문헌자료의 벼룩시장이라는 라 갈캉트, 고전 만화책과 잡지가 가득한 뤼테스, 희귀 중고서적을 사고파는 리브레리 주솜 등에 군침이 흐를 것이다.

라 갈캉트(La Galcante)

출처: <파리 골목마다 백년 가게>, pp. 76~77


혹시 현지인의 일상이 궁금한 이라면, ‘파리 시민의 일상이 있는 가게’에서 소개하는 꽃집(라숌), 약국(파르마시 생토노레오루즈), 주방용품 가게(E. 드일르랑), 공구점(게냐르 미용), 담배 가게(아 라 시베트) 등에 관심이 갈 수도 있다.

파르마시 생토노레(Pharmacie Saint-Honore)

출처: <파리 골목마다 백년 가게>, pp. 106~107


어쩌면 이런 백년 가게들이야말로, 흔히 ‘파리’라고 하면 떠올리는, 예술과 문화의 1번지에 걸맞은 관광명소가 아니라 오래된 기억과 스토리(story)가 있는, 진정한 파리의 장소들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해당 장소를 방문한 적이 있는 이에게는 추억을 되새겨줄 좋은 매개체가 될 듯하다. 또 파리를 방문하지 않았더라도 파리만의 감성을 느
껴보고 싶은 이에게도 괜찮은 선택이 될 것 같다. 다만, 2%부족한 정보 때문인지, 파리 관광을 위해서라면 이 책 이외에 여행가이드북과 같은 다른 책도 필요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1) 세렌디퍼티(serendipity): 완전하게 우연히, 예상치 않게, 기분 좋은 발견을 하는 재능


2) 정수복, <파리의 장소들>, (문학과지성사, 2010) , pp.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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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Second Hometown 마이 세컨드 홈타운
오지윤 지음 / 카멜북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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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Second Hometown]의 목차를 펼치면,

살아 보기
| 베를린, 프랑크푸르트, 밀라노
관찰하기
| 시즈오카, 오사카, 교토, 도쿄
춤추기
| 다딩베시, 카트만두, 히말라야, 포카라, 치트완
기억하기
| 빈, 파리, 두브로브니크, 니스, 로마, 상트페테르부르크, 포틀랜드

라고 되어 있다. 이것만 보면, 이 책이 열거된 19개의 장소에 대한 소개 혹은 경험을 살아보기, 관찰하기, 춤추기, 기억하기라는 카테고리로 분류하여 얘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소 언급된 장소가 많다는 느낌은 있지만, 여행지에서 일정기간 머물며 살아보고, 여행지를 관찰하고, 여행지를 기억하는 것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춤추기’라니. 뭔가 생뚱맞은 카테고리가 하나 끼어있는 느낌이 들었다. 설마 다딩 베시(Dhading Besi), 카트만두(Kathmandu, 네팔의 수도), 히말라야, 포카라(Pokhara), 치트완(Chitwan) 국립공원에서 전통 춤을 배웠다는 것은 아닐 테고. 그래서 ‘춤추기’ 파트를 제일 먼저 펼쳐봤다.

의외였다. 춤추기 파트에 언급된, 네팔의 지명들에 대한 소개는 거의 없고, 그곳에서 만난 이들과의 대화, 그리고 에피소드만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저자가 한국어 교사로 머문 디딩 베시 인근의 고아원에서의 경험과 히말라야 등반의 경험 등을 소개한다. 그러면서 한국에 일하러 온 네팔 젊은이들의 허망한 죽음과 자신의 한국어 제자가 한국에 오지 않아 그런 일을 겪지 않게 된 것에 대한 안도가 덧붙여진다.

우리가 지낼 고아원은 다딩베시라는 도시의 중심지로부터 40분 정도 떨어진 산속에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한 달 동안 먹고 자며 한국어 선생님으로 일하기로 했고, 동네에 사는 청년들이 고아원으로 와서 한국어 강의를 듣기로 했다. 모두 한국에서 일하는 데 관심 있는 청년들이었다. [p. 148]

나는 어쩌면 살인자가 될 수도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허망하게 죽음을 맞이한 그 젊은이들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똥통에 빠져 죽을 수도, 스스로를 죽일 수도 있을 만큼 대한민국에서의 노동은 힘들 거란 것을. 레건이 자문자답한 것처럼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희망을 품고 이 나라에 왔다. 그리고 또 다른 젊은이들이 오늘도 의욕 넘치는 눈빛으로 한국어를 배우고 있겠지.
나의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결국 단 한 명도 한국에 오지 못했다.
나는 그것이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한다. [p. 159]

그래서일까? 해당 부분을 다 읽을 때까지 왜 ‘춤추기’라는 파트 제목을 정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굳이 따지자면, 히말라야를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쉬어가는 마을이자 네팔 제2의 도시인 포카라의 결혼식장에서 춤을 춘 경험이 그나마 ‘춤추기’와 연관되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보였다. 나중에 한번 더 읽더라도 ‘춤추기’라는 파트 제목 설정에 대한 의문을 풀리지 않을 것 같다.

어쨌든 의문은 마음 한 구석에 몰아놓고, 책장을 다시 펼쳐 처음 파트인 ‘살아보기’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이 파트는 퇴사 후 친구 집에서 한 달을 얹혀살며 경험한 베를린(Berlin)에서의 에피소드가 중심이었다. 음? 또 한 달? 혹시 이 책의 파트들이 특정 지역에서 한달 살기였나?
베를린에서의 에피소드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사회를 보는 듯 했다.

- 베를린 살면서 좋은 게 뭐야. 자랑 좀 해 봐.
침대에 앉아 책을 읽던 그에게 물었다. 그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느릿느릿 조심스럽게 말했다.
- 지금 창밖에 보이는 풍경이 서울에서는 사치였어. 
창 밖으로 나무를 볼 수 있다는 게 왜 그렇게 힘든 일일까. 서울에서는 벽이나 다른 아파트가 보이는 경우가 많잖아. 돈이 별로 없어도 나무가 있는 풍경을 보며 살 수 있어서 좋아. 그것만으로도 여기가 좋아. 그리고 한국에서는 스트레스가 너무 많았어. 삼십 대 중반이 되니까 친구들을 만나면 나누는 이야기가 부동산이며 주식이며 하는 것들로 정해졌던 것 같아.
 - 그건 사람의 문제라기보다 사회적인 문제일 것 같아.
나는 왠지 방어적으로 답했다.
- 맞아. 여기는 
평생 세입자로 살아도 주거 안정성이 보장돼. 죽을 때까지 집을 소유하지 않는 사람도 많아. 비교하고 걱정하는 대화는 거의 나누지 않지. 삶의 스펙트럼도 넓고 친구들의 스펙트럼도 넓어. 플리마켓에서 그림을 그리며 사는 친구도 있고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친구도 있어. 어떤 나이에 어느 만큼 경제력을 갖춰야 한다는 기준이 없어. 다들 격 없이 대화하고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달까. 사람 대 사람으로 존중하는 느낌이 들어서 좋아. [pp. 23~26]

하지만, 그건 상대적이었다. 이를 보여주는 것이 프랑크푸르트(Frankfurt)에서 만난 나우엘과의 에피소드였다. 세계 어디서든 엄마의 삶은 밖에서 보는 것만큼 쉽지 않음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해주었다.

- 그래도 독일은 엄마들이 살지 좋이 않아? 육아휴직도 엄청 길 것 같은데.
- 육아휴직이야 몇 개월 주긴 하지. 그럼 뭐 해? 복직한 후가 문제야. 독일은 어린이집이 3시면 문을 닫아. 그럼 우리는 어쩌지? 3시에 퇴근해서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지. 결국에는 
아이를 가지면 일을 그만둬야 하나 고민하는 여자들이 생기는 거야. 사회가 여자들의 경력 단절을 조장하고 있어. [p. 76]

피천득의 <인연>을 떠오르게 하는, ‘우리는 또 어떻게 변해 갈까’라는 에피소드도 흥미로웠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의 교환학생 시절 만난 라트비아인 친구 ‘우나’와 10년째 인연을 이어 가며 세 차례 만남을 가지면서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여준다. 10년 사이에 우나는 흡연도, 맥도날드도, 클럽도, 술도. 탄산음료도, 카페인도 끊고 채식주의자의 삶을 살고 있었다. 피천득과 아사꼬의 만남과는 달리 저자와 우나의 만남은 더 이어질 것 같아 흥미로웠다. 다음 만남에서 우나는 또 어떻게 변해있을까?

세 번째로 펼친 ‘관찰하기’ 파트는 부모님의 효도여행, 그리고 일본에 거주하는 인스타그램 친구이자 브런치북 대상 동기인 이예은 작가와의 만남 얘기를 두 축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펼친 ‘기억하기’ 파트는 조금 의외였다. 각각 다른 신문에 실린, 오늘 날짜의 4컷 만화들을 모은 듯한 느낌이랄까?
예를 들면, 잘츠부르크 유학시절 친구인 리사를 만나기 위해 탄, 빈(Wien)에 가는 열차의 옆자리에 앉은 ‘파독(派獨) 간호사’가 언급한  ‘두 번째 고향’이야기나

여기가 두 번째 고향이네. 
작은 지구에 살면서 고향을 하나 더 만드는 건 너무 좋은 일 같아요. 그리워할 수 있고 언제나 돌아갈 곳이 생기는 거잖아요. 그건 행운이에요. [p. 227]

국문학을 전공했지만 로마(Roma)에서 관광 가이드를 거쳐 개발자로 일하는 대학 동기 보연과의 만남을 얘기하기도 하며 포틀랜드(Portland)의 카페 코아바의 비효율적인 아니 돈에 구애 받지 않는 널찍한 공간 구성과 어느 호프집의 넉넉한 커피 인심도 부러운 듯이 말한다.

크게 독일 여행, 일본 여행, 네팔 여행에서의 경험과 생각을 이야기하는 살아보기, 관찰하기, 춤추기 파트와는 달리 서로 다른 장소의 다양한 이야기를 그저 엮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학창시절 동아리 방에 놓여 있는 ‘날적이’처럼 통일성이 약한 글을 읽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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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감각 - 아트 디렉터가 큐레이팅한 도시의 공간과 문화, 라이프 스타일
박주희 지음 / 다산북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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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브랜드가 되다


건축가 서현은


“건축이 사람을 담는 그릇이라고 표현되는 것처럼 공간은 단지 바라 보기 위한 대상이 아니다. 구체적인 인간의 모습과 생활 그리고 그 사회의 부대낌, 사회가 바라보는 미래의 모습을 담는 그릇이 된다. 이리하여 건축은 건축가가 공간으로 표현하는 시대정신이 되는 것1)


이라고 했다. 이를 도시 단위로 확장해보면, 그 도시에서 생활하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각 같은 것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장소와 건축의 분리를 통해 이루어진, ‘상품으로서의 건축’에 길들여진 사람들이라면 그 도시만의 고유한 감각을 얘기하기 어렵겠지만.


사람이 모여 ‘도시’라는 장소를 만들면, 그 도시는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변화시키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노래하게 된다. 사람으로 치면, ‘개성’을 갖게 된 셈이다. 이렇게 개성을 가진 도시는 ‘뉴요커’처럼 그 도시의 거주하는 사람들의 이미지도 만들어낸다. 즉, 도시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



뉴욕이라는 도시


이 책은 수 많은 도시 가운데 ‘뉴욕’이라는 도시를 선택했다. 그것은 아마 저자가 여행객이 아닌, 뉴욕에서 10년간을 보낸 ‘뉴요커’였기 때문이 아닐까?


어쨌든 <뉴욕의 감각>이라는 책은 공간, 예술, 문화, 맛을 테마로 뉴욕이라는 도시의 분위기를 소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장 공간, 사람을 끌어당기는 중력’에서는 ‘뉴욕’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를 만드는 장소들과 브랜드를 소개한다.


가장 먼저 소개된 하이라인 파크[2009]는 도시재생의 대표적인 사례로 유명하다.


하이라인 파크는 오래된 기찻길 위에 자연적으로 자라난 풀과 꽃을 인공적으로 덮지 않고 남겨둬 길과 어우러지게 설계했다. 그래서 보도가 반듯하지 않고 좁거나 길거나 넓은 자유로운 형태로 이어지며 풀이 무성한 곳도 있다. 그래서 하이라인 파크는 직선으로 걸을 수 없다. 곳곳에서 나타나는 풀과 꽃이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만든다. 하지만 보도와 높이가 비슷하기 때문에 시야를 방해하지 도 않는다. 자연스럽게 녹이 슨 갈색의 철길에 뿌리를 내린 꽃과 풀, 양쪽에 늘어선 개성 있는 건축물, 달리는 차를 바라보며 내 속도로 걸어갈 뿐이다. [p. 23]


‘뉴욕’하면 떠올리는 화려함을 만끽하고 싶다면, 2주에 한 번씩 바뀌는 쇼윈도를 통해 뉴욕 거리의 표정을 바꾼다는 버그도프 굿맨 백화점[1901]을 방문하면 된다.


이곳은 마치 잘 차려진 편집숍 같다. 품목별로 나눠진 공간에서는 브랜드에 상관 없이 맘에 드는 제품을 집어 비교해 볼 수 있다. 다른 백화점에서 이브닝 드레스를 사기 위해 온갖 브랜드 매장을 다 들어가 봐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면, 이곳에서는 이브닝 드레스가 큐레이팅된 공간에서 오직 이브닝 드레스만 여러 브랜드별로 비교해서 보고 구입할 수 있다.

쇼핑은 즐거운 일이지만, 물건 하나를 구입하기 위해 취향에 맞지 않는 곳까지 일일이 둘러보는 것은 피곤한 일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버그도프 굿맨은 고객에게 합리적인 동선으로 편리함을 주고, 섬세한 큐레이팅으로 취향을 찾을 수 있게 돕는다.

~ 중략 ~

편집숍이라는 방식은 고객이 좀 더 주체적으로 제품을 찾고 구매하는 기쁨을 준다. 그것은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고 욕망을 실현하는 것과도 직결된다. 소비하는 인간의 본질적 욕구를 건드린 버그도프 굿맨의 전략은 결국 뉴요커를 매료시키는 데 완벽하게 맞아 들었다. 시간이 흘러도 누군가 계속 찾는 곳이 되기 위해서는 정체되기보다 끊임없이 연구하고 발전하며 자신만의 색깔을 찾는 것이 중요하단 사실을 이곳을 보며 다시 한번 깨닫는다. [pp. 29~32]


미국의 전설적인 금융 황제 존 피어폰트 모건(John Pierpont Morgan, 1837~1913)이 모은 수집품을 전시한 모건 라이브러리 앤 뮤지엄[1906]은 어떤 의미에서는 돈 냄새가 물씬 풍기는 뉴욕을 보여준다


어쩌면 모건의 부와 명예는 미국이라서 지켜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의 과오는 티끌이 되고, 그의 돈으로 수집한 물건이 업적으로 기억되는 건 미국이 자본주의의 첨단을 걷는 나라여서 가능한 것은 아닌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p. 43]


뮤지컬의 성지(聖地) 브로드웨이도 유명하지만, 최초의 흑인 수석 무용수 지명(2015)으로 다문화국가인 미국을 상징하는 듯한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1939]의 존재감도 뚜렷하다.


아메리칸 걸[1986]이라는 인형 가게는 찰스 슐츠(Charles Schulz, 1922~2000)의 만화  <피너츠(Peanuts)>을 떠올리게 한다. 평범한 흑인 아이 프랭클린 암스트롱(Franklin Armstrong)을 만화에 등장시켜 자연스럽게 편견을 깼던 것처럼, 다양한 인형을 통해 자연스럽게 다름을 존중하는 문화를 경험하게 하기 때문이다.


아메리칸 걸에는 드레스를 입은 우아한 인형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형이 있다. 휠체어를 탄 인형, 목발을 든 인형, 안내견과 함께 있는 인형도 있다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나와 다른 것에 어떠한 편견도 가지지 않도록 도와주는 데 한몫하고 있는 것이다. 역시 ‘아메리칸’ 걸이라는 이름을 쓸 만한 자격이 있는 곳이다. 그러고 보면 미국은 이렇게 인형 가게에서도 ‘다름을 존중’하는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 이런 사소하지만 자연스럽게 스며 있는 평등의 문화가 다양성의 나라 미국을 만든 게 아닐까. [p. 92]



‘2장 예술, 시간이 흘러도 퇴색되지 않는 아름다움’에서는 뉴욕이라는 도시가 단순히 졸부(猝富)처럼 돈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님을 드러낸다. 뉴욕을 대표하는 근현대미술의 메카인 ‘뉴욕 현대미술관’, 200만 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소장품을 가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중세 건축물 잔해를 조합해 만든 ‘클로이스터스 박물관’, 분리파(Secession)2)의 미술에 집중한 미술관인 ‘노이에 갤러리’, 오직 미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작품만 취급하는 ‘휘트니 미술관’, 타이타닉의 비극이 낳은 ‘구겐하임 미술관’, 뉴욕의 3대 갤러리라는 가고시안, 페이스, 데이비드 즈위너 등 곳곳에 예술 공간이 가득한 이 도시는 뉴요커들이 그림을 쉽게 접하고 감각과 안목을 키우는 데 도움을 주며, 파리만 예술의 도시가 아님을 상기시켜 준다.



‘3장 ‘문화, 다채로운 이야기 가득한 뉴요커의 일상’에서는 뉴욕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뉴요커의, 아니 뉴요커가 추구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보여준다.


‘미국’하면 떠올리는 록펠러(Rockefeller) 가문은 뉴욕시의 수도세를 부담하는 등 사회 환원 사업으로 더 각광받고 있다. 석유왕 존 D. 록펠러(John D. Rockefeller, 1839~1937)의 며느리 애비 록펠러(Abby Rockefeller, 1874~1948)와 그녀의 두 친구에 의해 뉴욕 현대미술관이, 그의 손자 넬슨 록펠러(Nelson Rockefeller, 1908~1979)가 기증한 3,000여 점의 작품을 토대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각각 시작되었다. 뿐만 아니라 존 D. 록펠러 본인도 시카고 대학(1890)과 록펠러 대학(1901)을 세우고, 세계 최대 규모의 자선 단체인 록펠러 재단(1913)을 설립했다.


부자만 기부하는 것은 아니다. ‘뉴욕의 허파’라는 센트럴 파크는 공공 공원이지만 개인의 기부와 기업의 후원을 통해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특이한 것은 개인의 기부를 장려하기 위해 1만 달러를 기부하면 기부자가 원하는 문구를 동판에 새겨 벤치에 붙여주는 ‘어답트 벤치(Adopt A Bench)’라는 제도다. 이런 방식을 사용하기에 센트럴 파크는 산소를 공급하는 물리적인 ‘뉴욕의 허파’일 뿐 아니라, 다름이 차별로 변질되지 않고 ‘우리는 모두 뉴요커’라는 인식을 공유하게 만드는 정신적인 ‘뉴욕의 허파’가 된 것이 아닐까?


록펠러가 싹 틔운 기부 문화는 오늘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지금도 미국에서는 어느 정도 부를 쌓으면 사회에 기부하는 것을 고소득자의 의무이자 명예라고 생각한다.

~ 중략 ~

일반 시민에게도 소액이나마 동네 체육관이나 학교에 기부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혀 있다. 모든 이들에게 생활화된 미국의 기부 문화는 그 자체가 나라의 가치를 높이는 브랜딩 전략이란 생각이 든다. 뉴욕에 사는 동안 도시 곳곳에 보이는 기부의 흔적들, 이를테면 시민들이 세운 미술관이나 박물관 같은 곳을 보면서 높은 시민 의식이 어떻게 도시의 문화를 꽃피우는지 볼 수 있었다.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도, 현대미술관도 다 미국 시민들의 기부로 인해 만들어진 문화 공간이다. 어쩌면 기부와 나눔 문화는 세계적 찬사를 받는 글로벌 메가시티의 필수 요건이 아닐까. [p. 211]


뉴욕의 또 다른 특징은 보행자를 배려하는, 걷기 좋은 도시라는 점이다. 이런 특징은 심지어 범죄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로스앤젤레스 같은 경우, 은행 강도들이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고속도로 출구 또는 입구 가까이에 위치한 은행을 털고 바로 고속도로로 진입해서 경찰 헬기가 현장에 도착하기 전에 사라진다고 한다. 반면, 뉴욕의 은행 강도들은 자동차를 타고 움직이지 않는다고 한다.


코튼 요원은 교통 체계가 다르고, 보행자 친화적인 뉴욕의 도로에서는 다른 종류의 은행털이가 벌어진다고 지적했다. 뉴욕의 범죄자는 뛰거나 지하철을 타고 도망간다는 것이다.3)


뉴요커의 또 다른 라이프 스타일을 보여주는 것이 특정 요일에만 형성되는, 농산물 직거래 장터인 유니언스퀘어 파크의 ‘파머스 마켓(Farmer’s Market)’이다.


뉴욕시는 뉴욕으로부터 321킬로미터 이내에 있는 곳에서 생산된 농산물만 거래하도록 규정을 만들어놓았다. 반하는 과정에서 농작물들이 스트레스 받지 않고 올 수 있는 최대 거리가 321킬로미터이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농산물들은 주로 뉴저지나 롱아일랜드, 메인 등 뉴욕 근교의 주에서 오며 무척 신선하다. 농부들은 중간 마진을 떼지 않은 채 농산물을 판매할 수 있어서 좋고, 구매자들은 원산지가 정확하고 건강한 채소나 과일을 눈으로 보고 사 갈 수 있으니 모두가 윈윈이다. 게다가 이동 거리를 제한함으로써 자연스레 탄소 배출도 줄일 수 있으니 이곳을 주로 찾는, 오가닉한 삶을 추구하며 자연 보호에 앞장서는 사람들에게도 뜻이 맞는 곳인 셈이다. [pp. 247~249]



‘4장 맛, 마음까지 열고 닫는 음식의 힘’에서는 네덜란드 사람들의 거주지 ‘뉴암스테르담’에서 출발한 뉴욕의 다양한 맛을 보여준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이탈리아 음식을 즐길 수 있는 ‘밥보(Babbo)’,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굴[Oyster]의 도시였던 뉴욕의 흔적이 담긴 그랜드 센트럴 역의 ‘오이스터 바(Grand Central Oyster Bar)’, 샤오롱바오[小籠包]로 유명한 홍콩요리 전문점 ‘조스 상하이(Joe’s shanghai)’, 클래식한 스테이크의 정수를 보여주는 ‘피터 루거(Peter Luger Steak House)’, ‘뉴욕의 디저트’하면 떠오르는 치즈케이크를 파는 대표적인 가게인 ‘주니어스(Junior’s Restaurant & Bakery)’, 이탈리아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분위기의 이탈리아 식재료와 음식을 함께 파는 오픈 마켓인 ‘이틀리(Eataly NYC Flatiron)’ 등을 소개하고 있다.



 

1) 서현,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개정판), (효형출판, 2004), p. 248


2) 빈 분리파(Wiener Secession)로도 불린다. 1897년 빈(Wien)의 전시관인 퀸스틀러하우스(Kunstlerhaus)의 보수주의 성향에 불만을 가진 예술가들이 탈퇴하여 결성했다. 분리파의 주요인물로는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 에곤 실레(Egon Schiele, 1890~1918), 오스카르 코코슈카(Oskar Kokoschka, 1886~1980) 등이 있다.


3) 제프 마노, <도둑의 도시 가이드>, 김주양 옮김, (열림원, 2018), p.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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