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로지 - 히어로 만화에서 인문학을 배우다
김세리 지음 / 하이픈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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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로지(Marvelogy)]


이 책은 4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만화계의 빅뱅과 마블의 탄생에서는 마블 코믹스 탄생의 배경과 역사를, 2마블학의 시작에서는 슈퍼 히어로의 존재론적 고찰과 슈퍼 히어로 만화의 새 장을 열었다는 그래픽 노블, <왓치맨><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에 대한 얘기를, 3마블과 신화에서는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그들의 특성 및 신화 적 기원을, 4마블이 일군 철학적 생태계에서는 슈퍼 히어로들이 어벤져스라는 이름으로 연대하여 겪게 되는 보다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히어로와 빌런


선천적으로 초자연적인 능력을 지닌 DC 영웅들과 달리 마블의 영웅들은 대부분 선천적 능력을 지녔다기보다는 불의의 사고로 초자연적 능력을 갖게 된 인간들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히어로가 되어버린인물들이다. [p. 36]

예를 들면,

스파이더맨은 우연히 방사능에 오염된 거미에 물렸고, 헐크는 우연히 감마선에 노출되었으며, 엑스맨의 선천적인 능력은 초자연적 힘이 아닌 돌연변이성 능력이었기에 주로 사춘기를 기점으로 드러났다. 아이언맨은 신체적 약점을 지닌 영웅이며, 캡틴 아메리카 역시 슈퍼 혈청을 주입하는 인위적인 방식으로 본디 허약했던 육체가 인간 병기화된 경우이다. 닥터 스트레인지 역시 우연한 사고를 계기로 초자연적 마법의 세계에 입문하게 된다. [p. 37]

따라서 마블 히어로들은 정체성의 혼란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마블 히어로들의 주 무대는 가상의 공간이 아닌 뉴욕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도시 속에서 벌어지는 히어로들의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언제든 그들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과 친숙함을 선사했다. 또한 다른 세계의 존재처럼 여겨지는 DC의 초월적 영웅들과 달리우리와 같은 공간에서 현실적 고민을 짊어진 채 고뇌하는 불완전한 마블의 영웅들에게 독자들은 강한 연민을 느낀다히어로들의 약점은 도리어 독자들의 공감을 자아냈고청소년은 물론 성인까지도 포섭할 수 있었다. [pp. 39~40]


빌런의 경우에도 단순히 처음부터 구제불능의 악()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타노스처럼 자신들이 정의를 구현한다고 믿기도 한다혹은 <베트맨> 시리즈에서 나오는 정의로운 지방 검사 하비 덴트가 빌런 투 페이스로 바뀐 것처럼 자신의 정의가 좌절된 후 선()에서 악()으로 변화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선()을 지키면 히어로, ()을 넘으면 빌런이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슈퍼 히어로에 대한 고민


우리 고전 소설을 보면 거의 천편일률적으로 권선징악(勸善懲惡)’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한국 서지>을 펴내고 유럽에서 처음으로 한국사 강의를 개설한 프랑스 외교관 모리스 쿠랑(Maurice Courant, 1865~1935)한국의 고전소설은 두세 권만 읽으면 전부 읽은 거나 다름없다. 그러하니 (…) 그러하니 우리네 아동용 우화 가운데 가장 졸작보다도 오히려 재미가 없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왓치맨><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 이전의 슈퍼 히어로 만화도 따지고 보면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 다양한 힘을 가지고 거침없이 불의를 행하는 이들에게 정의(正義)라는 잣대로 심판을 내린다.  우리는 만화나 영화라고 그냥 넘어가지만, 그 과정에서 애꿎은 민간인들이 피해를 받게 된다. 그렇다면 정의 실현과정에서의 피해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천재지변(天災地變)처럼 여길 수도 있고, 물질적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죽거나 돌이킬 수 없는 장애가 생겼다면……. 그때도 묵묵히 피해를 감수해야 할까?


그래서 누가 감시자들을 감시할 것인가? (Who watches the Watchmen?)’라는 말도 나온 것이고, <왓치맨>킨 법령 <시빌 워> 시리즈의 초인등록법같은 슈퍼 히어로 통제법안도 나온 것이 아닐까?



정의란 무엇인가


십대 히어로로 구성된 뉴워리어팀이 리얼리티 TV쇼에서 보다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고자 빌런 나이트로와 대결하다가 612명의 시민이 사망하는 스탬포드 참사가 발생한다. 이 사건으로 히어로를 규제하는 초인 등록법 문제가 대두된다. 이후 초인 등록법에 대한 찬반문제로 히어로 간의 내전이 벌어지는데, 이를 다룬 만화 <시빌 워> 시리즈는 히어로들이 내세우는 정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시빌 워>는 간단히 말해서, 초인 등록법을 둘러싸고 아이언맨을 대표로 하는 히어로와 캡틴 아메리카를 대표로 하는 히어로가 대립, 갈등을 다룬다. 문제는 그 갈등의 이면에는 정의(正義)에 대한 각자의 정의(定義)가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언맨 등의 정의(正義)는 최대 다수의 최대행복을 추구하는 것이고, 캡틴 아메리카 등의 정의(正義)는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기에 처음부터 타협이 어려운 일이었다.


벤담의 공리주의

칸트의 원칙주의

아이언맨 / 오지맨디아스

캡틴 아메리카 / 로어세크

초인등록법 찬성

초인등록법 반대

안보(안전한 통제)

자유 (자유에 기반한 정의 구현)

미국의 현실

미국의 이상


그런데, 아이언맨 등의 정의를 따라가다 보면, 빌런인 타노스의 정의와도 통한다. 그래서일까? 공리주의적 정의를 추구하는 아이언맨이 초인 등록법 반대파들을 척결하기 위해 빌런들로 구성된 썬더볼츠팀을 꾸리는 것은 뭔가 아이러니하면서도 그럴듯해 보인다. 영화에서의 아이언맨 이미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빌런이 된 히어로라는 느낌이 들 정도니까. 빌런을 흡수하지 않았다고 해도 사건의 본질을 잊은 것은 캡틴 아메리카 등 초인 등록법 반대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이런 의미에서 신선한 느낌을 주는 것이 <시빌 워: 울버린>이다조선시대 예송논쟁처럼 초인 등록법에 대한 찬반을 두고 히어로들이 다투는 상황에서 그 혼자 사건의 시발점인 스탬포드 폭발 사고를 추적하여 무엇이 히어로인지를 행동으로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처럼, 마블의 만화와 영화는 정의에 대해 고민하고 논의하게 만들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우리에게 인문학, 그 중에서는 철학(윤리학 포함)적 관점에서 마블의 만화와 영화를 해석해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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