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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 - 곽재식의 기후 시민 수업
곽재식 지음 / 어크로스 / 2022년 2월
평점 :
기후위기, 사회의 약자를 괴롭히다
사람들은 기후변화를 지구를 멸망시키는 위기인 것처럼 말하고, 우리가 그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 여 무언가 해야 한다고 여긴다. 그 결과 무의식적으로 기후변화 문제를 대홍수 전설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데 그것이 진실일까?
지구는 수천 년, 수만 년, 수십만 년 전부터 어느 정도 온실효과를 겪어왔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출현하기도 전의 먼 옛날부터 지구는 온실효과의 영향을 받는 온실 속 같은 곳이었다. 지금 온실효과와 기후변화가 문제인 것은 그 효과의 정도가 갑자기 너무 빠른 속도로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p. 32]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기후 위기라는 것은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0.03%에서 0.04%로 짙어짐에 따라 부가적으로 발생한 현상을 가리킨다. 이렇게
사람들은 0.03퍼센트이던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 양을 0.04퍼센트 정도 올린 것 때문에 걱정하고 있는데, 광합성을 하는 세균들은 긴 세월에 걸쳐 0퍼센트에 가깝던 산소 기체 농도를 20퍼센트 이상으로 높여버렸다. 지구의 생명체들과 자연은 이런 일을 벌였다. 그 모습만 놓고 보면 46억 년 지구 역사 전체에서 요즘의 기후변화는 미세한 변화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p. 76]
결국 기후 위기는 지구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다. 그래서 저자도 이 책의 제목을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라고 정한 것이 아닐까? 다시 말해 지구 온난화의 원인으로 꼽는 사람이 만들어내는 이산화탄소로는 고작 사람, 그것도 사회적 약자의 삶을 힘겹게 만들 뿐이다.
사람이 뿜어내는 온실 기체가 지구를 통째로 금성처럼 바꾸어놓기는 부족하겠지만, 당장 지구에 사는 사람 자신의 삶을 괴롭히기에는 충분하다. [p. 37]
‘기후 위기’ 혹은 ‘지구온난화’라는 슬로건
지구온난화로 대표되는 기후위기를 해소하는 방법으로 ‘기후변화로 인한 비극을 피하기 위해, 서로 힘을 합치자’와 같은 당연한 얘기는 큰 의미가 없다. 우리가 도덕 교과서가 없어서, 도덕 교육을 받지 않아서 도덕적이지 않는 사람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알면서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기에 ‘공유지의 비극’이 발생하는 것이다.
게다가 아이러니한 것은 지금의 기후위기를 만드는 데 큰 공헌을 한, 유럽의 선진국은 인구가 줄어들기 때문에 예전보다 더 풍족하게 생활하면서도 저절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반대로 기후위기로 타격을 받는 개발도상국은 인구가 늘어나기 때문에 더 적은 연료와 전기를 사용하면서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더 나은 삶을 포기하도록 강요당한다.
심지어 글로벌 기업은 본사 사무실은 선진국에, 생산공장은 개발도상국에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당연히 생산공장이 있는 개발도상국의 이산화탄소 발생량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단순히 이산화탄소 발생량만 따져 규제를 하면, 지구온난화 극복을 위해 더 가난한 사람들이 더 희생하게 된다. 이렇게 보면, 기후위기나 지구온난화는 개발도상국에서 돈을 걷어 선진국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수단처럼 보인다.
기후 위기를 벗어나려면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로 이산화탄소를 뿜어내지 않고 전기를 만들어내는 것을 떠올릴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수력, 태양광과 풍력, 지열(地熱)과 조류(潮流) 같은 재생에너지의 사용이 필요하다.
그 다음으로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전기화(電氣化)가 있다. 만약 모든 것이 전기화되어 있다면,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를 개선하는 것만으로 이산화탄소 배출을 쉽게 줄일 수 있다.
보다 공격적인 방법으로는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탄소 흡수 혹은 탄소 포집(捕執)도 있다. 문제는 아직까지는 이산화탄소를 모으더라도 그 비용이 많이 들고, 수집된 이산화탄소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그나마 현실적인 것이 식목사업이다. 비록 많은 공간과 오랜 시간이 요구되지만, 식목사업은 배출된 이산화탄소를 도로 빨아들일 수 있다.
지구온난화를 극복하기 위한 실질적인 방안
지금까지 기후변화라고 하면, 대체로 미래를 내다보는 공공기관이 개인과 사기업을 이끌고 통제하는 일을 중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부가 엄격한 단속반을 만들어 기후변화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물건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지하거나, 공장에 어떤 시설을 설치하라는 규정을 만들고 엄한 처벌 조치를 통해 그것을 따르도록 시키거나, 혹은 기후변화와 관련 있는 어떤 일에 세금을 매겨 돈을 걷는 등의 일이 정부의 일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면 정부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국민을 통제하는 권한이 강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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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기후변화 적응 기술에 무게를 실으면 정부가 국민들에게 무엇을 시키는 것만큼이나 국민을 구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점이 중요해진다. [pp. 384~385]
최근 유엔환경계획(UNEP) 주도로 개최된 ‘국제 플라스틱 협약 제2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INC2)는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회의에서 노르웨이와 르완다 등은 플라스틱 생산 제한과 플라스틱 제조에 쓰이는 화학물질의 규제에,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중국 등은 플라스틱 폐기물과 플라스틱 재활용에 각각 초점을 두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나프타를 원재료로 하는 플라스틱은 개발 초창기에는 기후변화를 줄이는 방향으로 기여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플라스틱이 개발되지 않았다면 나프타도 휘발유처럼 태워 연료로 사용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문제는 플라스틱을 만든 제품은 가치가 낮고 가짜라는 생각 때문에 사람들이 아끼지 않고 쉽게 버린다는 점이다.
비닐봉지 대신에 종이봉투를 사용한다면, 그 종이를 만들기 위해 종이의 원료가 되는 나무를 숲에서 잘라내야 한다. <애틀랜틱>의 2014년 10월 17일 보도에 따르면, 비닐봉지를 사용해서 장을 보면 1년간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는 7.52킬로그램 가량이지만, 종이봉투를 사용하면 훨씬 많은 44.74킬로그램 가량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고 한다. 비닐봉지보다 종이봉투가 자연적인 것 같아도 이산화탄소를 뿜어내는 양은 오히려 여섯 배 가까이 많다는 이야기다. [p. 418]
여러 번 재사용할 수 있는 면으로 만든 장바구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비닐봉지는 워낙 만드는 데 이산화탄소 배출이 적기 때문에, 면으로 만든 가방을 하나 만들 정도면 비닐봉지 131개 만들 수 있다. 이 계산은 영국환경청의 2011년 발표인데, 뒤집어 생각해보면, 면 가방을 131번 정도는 꾸준히 장바구니로 활용해야만 비닐봉지를 한 번 사용하고 버리는 것보다 환경에 이로울 수 있다는 뜻이다. [pp. 418~419]
다시 말해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플라스틱 빨대 금지’로 대표되는 플라스틱 규제 정책으로 도리어 기후위기가 가속화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조건 플라스틱의 사용을 규제하는 것보다 저렴하다는 이유만으로 방치되고 버려지는 플라스틱을 재활용할 수 있는 것이 오히려 기후변화에 긍정적인 효과를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이를 위해서는 플라스틱에 대한 인식 변화가 필요하고, 2022년 전체 플라스틱 생산량의 9%만 재활용되었다는 유엔환경계획(UNEP)의 발표처럼 아직까지는 미흡한 플라스틱 재활용 비율 상승을 위한 노력도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