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탄 소녀를 위한 동화는 없다 - 이야기를 통해 보는 장애에 대한 편견들
어맨다 레덕 지음, 김소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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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으로만 당위로만 아는 일들이 있다. 실제의 삶에서는 떼어 놓고 생각하는 판단들이 있다. 안다고 착각하는 것들이 있다. 오늘 또 한 책을 만나면서 몰랐다는 것을 인정하고야 만다. 오늘도 좋은 책을 만났다. 다행이다.


*동화의 중요성을 몰랐다.

성장기에 접하는 많은 것들은 무의식을 형성하는 재료들이 된다. 조기교육이라는 사교육의 한 흐름 저변에는 이런 생각이 표표히 흐르고 있을 터이다. 동화 역시 유아동기에 접하는 이야기이므로 주의깊게 검토해봐야 한다고 책은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듣는 이야기는 그렇다고 말한다. 우리가 말하는 이야기도 계속 그렇게 말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진짜가 된다." 214p

"우리가 인정하건 인정하지 않건 간에 우리가 어렸을 때 우리 자신에게 들려준 이야기들은 우리가 만나는 세계를 형성한다." 335p


*'정상'이라는 폭력을 몰랐다.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책을 보니 정말 동화에서 장애를 그리는 방식은 정해져 있다. 대부분의 주인공은 선한 존재로 정상에 가까우며, 못난 외모나 장애를 가진 쪽은 악이다. 주인공이 장애를 가진 경우가 있기도 한데, 이때 장애는 극복되어야 할 것이다. 비장애는 선하고 좋은 것, 장애는 악하고 나쁜 것이라는 구조가 기본틀이다. 

동화의 이야기 구조를 두고 뻔한 설정이라고 비웃는 일은 잘했지만, 제시된 '정상성' 때문에 소외가 발생한다는 것은 생각할 줄 몰랐다.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장애가 악으로 규정되는 이야기가 어떤 상처를 줄 지 생각해보지 못했다. 이야기 속에서는 극복되어야 하고 극복되기 마련인 장애, 실제 인생에서는 삶에서 분리되지 않는 장애, 작가가 두 간극에서 혼란해하는 모습을 따라가다보면 보이지 않던 세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내가 아는 모든 공주는 우아했고 아름다웠으며 마치 꿈결처럼 춤을 추었다. ...[중략]... 더 중요하게는 그렇게 아름다운 공주는 한 번도 되어 본 적이 없는 나의 자아가 어떻게 동화 속 공주들에게 저항할 수 있을까?"


*변해야 하는 것이 어느 쪽인지 몰랐다.

신데렐라는 왕자를 만나서야 결혼식의 주인공이 된다. 미운오리새끼는 아름답게 성장하고 나서야 백조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다. 인어공주는 두 다리로 걷기 위해 목소리를 넘긴다. 주인공의 약점이나 결핍은 고쳐져야 하고, 그것이 극복되었을 때만 사회는 그들을 받아들인다. 사회가 장애까지 포용하는 정책을 만들지 않는다. 책에서 지적하고 나서야 알게 된다.


"하지만 많은 반인반수의 주인공이, 재투성이 하녀가 세상으로 나가 자신에게도 차지해야 할 정당한 위치가 있음을 아무리 주장해도 사회는 결코 바뀌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바뀌어야 하는 것은 사회가 아니라 이야기 속 주인공이다." 61p


"나는 세상에 증명할 것이 하나도 없다. 오히려 세상이 나에게 증명해 보여야 한다. 내 몸을 위한, 내 말을 위한, 기울어진 내 걸음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 줄 책임이 세상에는 있다." 313p


KOSIS 보건복지부 2021년 통계에 따르면 등록된 장애인 인구는 260만명. 그러나 길에서, 직장에서, 편의시설이나 공공기관에서 우리가 스쳐지나가는 사람들 중에 장애인은 얼마나 있는지 생각해보면 어딘가 이상하다.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잠재적 장애인이다. 순간의 사고로도 혹은 노화로도 우리는 신체 기능의 저하를 경험할 사람들이다. 약자를 위한 일이 곧 나를 위한 일임을 염두에 두고 주위를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무언가를 감지하지 못했다는 것은, 무딘 쪽이었다는 것은, 나는 약자가 아니었다는 뜻이었음을 알아차린다. 어떤 불편은 누군가에게는 작은 거스러미 같은 정도고, 누구에게는 태산같은 벽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머리로 알던 것을 진짜로 보게 된다.

 책을 덮었다고 이런 생각들도 같이 덮어버리지 않게 되기를. 휠체어 탄 소녀를 위한 동화가 없으면 세상에서 휠체어의 자리가 없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나는 바다로 뛰어들어야 하는 결말을 원하지는 않지만 모든 어려움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완벽해지는 결말도 원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그런 결말을 원할 수는 없다. 내가 원하는 이야기는 왕자가-사실은 그 누구라도-목소리를 잃은 여자와 소통하는 방법을 찾는 이야기다. 우리가 서로 이해하고 서로의 손을 잡으며 함께 인생의 열린 운명에 맞서는 이야기를 원한다.

 내 생각에는 그런 이야기야말로 말해져야 할 가치가 있는 동화다."358p

내가 원하는 이야기는 왕자가-사실은 그 누구라도-목소리를 잃은 여자와 소통하는 방법을 찾는 이야기다. 우리가 서로 이해하고 서로의 손을 잡으며 함께 인생의 열린 운명에 맞서는 이야기를 원한다. - P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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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18 2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4-18 2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이버 2022-04-19 22: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제가 가지고 있던 시혜적인 시각을 많이 깨달았습니다. 마지막 인용하신 문장도 오랜만에 보니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어 뜻깊네요

호두파이 2022-04-19 23:06   좋아요 3 | URL
저 역시 읽으면서 많이 부끄러웠어요ㅜ 부끄러운 줄을 이제라도 알게되서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ㅎ;; 이렇게 글 남겨주셔서 감사해요~

새파랑 2022-05-07 08: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호두파이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저도 몰랐던 일들을 알아야 할거 같아요 ㅜㅜ 즐거운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호두파이 2022-05-07 08:16   좋아요 1 | URL
와 감사합니다~ 다른분들 리뷰보던 페이지였는데 제 글이 올라가다니...들러주신 모든분들 감사해요☺

이하라 2022-05-07 08: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호두파이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즐겁고 행복한 주말되세요~~

호두파이 2022-05-07 13:1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오늘 날씨만큼 화창한 오월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2-05-07 17: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파이버 2022-05-07 17: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호두파이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즐거운 5월의 주말 되세요~

호두파이 2022-05-07 18:27   좋아요 1 | URL
감사해요 파이버님도 당선되셨더라구요 축하드려요🎉

러블리땡 2022-05-08 09: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호두파이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

호두파이 2022-05-08 09:51   좋아요 0 | URL
러블리땡님 감사합니다😊 부족한 글 봐주시고 좋아요도 꾹꾹 눌러주셔서 힘이 됩니당~ 멋진 휴일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