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안 마이어 : 나는 카메라다 비비안 마이어 시리즈
비비안 마이어 지음, 박여진 옮김 / 윌북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래 전에 흑백사진 찍고 현상과 인화하는 법을 배웠다. 아주 오래 전부터 배우고 싶던 거라 그런지 그 과정이 너무 재밌었다. 그런데 그 시절은 이제 막 디지털 카메라가 도입되어 기존의 습식 현상기법과 이제 곧 세상을 바꿀 건식 현상기법의 대결이 막 시작된 터였다. 그리고 후자의 완벽한 승리로 귀결된 것이 오늘의 모습이다. 예전 사진 현상 인화의 단점 중의 하나는 많은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사진의 기초 재료인 필름은 가격이 비쌌고, 암실을 갖추지 못했다면 현상과 인화는 하는 수 없이 DP점에 맡겨야 했다. 그러니 돈이 많을 들 수밖에. 암실이 있는 학교를 찾아다니며 눈칫밥을 먹어가며 어렵게 찍은 필름을 현상하던 시절이 비비안 마이어의 책을 보며 오롯하게 피어올랐다.

 

전혀 알지 못했던 미국 출신의 사진작가 비비안 마이어의 이름은 엉뚱하게도 영화를 통해 처음 알게 됐다. 우리나라에 아직 개봉은 하지 않았지만, 외신을 통해 무명의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를 다룬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 호기심은 이 책에까지 도달하게 됐다. 모름지기 시대는 앞서 나가는 존재를 알아주지 않는 법이다. 비비안 마이어는 생전에 보모로 일했으며 자신의 아티스트 삶에 대해서는 비밀에 부쳤다고 한다. 다른 무명의 아티스트들처럼 그녀 역시 사후에 이름을 날리게 되었으니 그 또한 기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비비안 마이어는 죽으면서 현상도 안한 어마어마한 양의 필름 네거티브를 남겼다고 하는데, 죽을 즈음엔 거의 노숙자나 다름없었다고 했던가. 사진첩을 보니, 심지어 현금으로 바꾸지 않은 체크(수표)도 있었다고 한다. 할 말이 없었다.

 

그녀의 사진들을 보면서 미국이라는 나라 특히 뉴욕과 시카고[Chicagoland]이라는 도시와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가 있었다. 사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그저 그런 일상이겠지만, 그것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가 반세기 정도 지난 다음에 보게 되면 지금은 사라지고 없어진 것들에 대한 회상과 여러 가지 요소들이 복합적인 융합작용을 일으키면서 기묘한 감상을 자아내는 게 아닌가 싶다. 그녀가 주로 다룬 뉴욕에도 몇 번 가봤지만, 그녀가 사진을 찍던 시절의 그것과는 너무 다른 모습에 조금은 놀랐다. 모름지기 사람의 모습이 세월의 풍상에 따라 바뀌듯 그 사람이 사는 도시의 모습 역시 변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비비안 마이어가 사진을 찍던 시절은 1950년대, 1960년대는 이미 칼라사진이 일반화된 시절이었는데 우리의 주인공은 롤라이플렉스 카메라를 목에 걸고 흑백사진을 고집했다. 그런데 흑백사진을 찍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흑백사진 고유의 콘트라스트가 주는 아우라는 칼라사진의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니며, 하물며 요즘 디지털 사진의 그것과도 격이 다르다. 사진이라 하면 모름지기 빛이 창조해내는 예술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 앞에 살던 선구자였던 비비안 마이어는 그 점에 주목했으리라. 그녀 사진의 특징 중의 하나는 셀프 포트레이트가 의외로 많다는 점이다. 아마 피사계 심도 조작에 정통했는지 요즘처럼 자동초점도 아닌 수동카메라를 조작해서 흐트러지지 않는 멋진 셀프 포트레이트 사진을 찍었다는 점이 놀랍기만 하다.

 

초반에 프랑스에서 찍었다는 사진도 있지만, 비비안 마이어 카메라의 대상은 미국과 미국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이었다. 아이들의 워나비 캐릭터인 미키마우스 모자를 쓰고 천진하게 웃는 흑인 꼬마의 얼굴, 뉴욕의 마천루에서 철근을 나르는 인부의 고단한 모습, 플로리다 해변가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일상의 모습, 삶에 고단함 혹은 실연에 지친 어느 아가씨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삶의 매순간 벌어지는 각양각색의 모습을 비비안 마이어는 카메라에 담았다. 물론 오드리 헵번이 등장하는 극장의 프리미어 사진도 있지만, 너무 급하게 찍어서 그런지 많이 흔들렸다. 사진이 갖는 기록성이라는 점에서 감안한다면 그 정도의 실수는 눈감아 줄 수 있지 않을까.

 

<비비안 마이어: 나는 카메라다>에 실린 사진들을 보면 대부분 장소와 시간이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진도 많이 실려 있다. 그런 사진들은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도대체 이 사진은 어디에서 찍었을까? 보통 사진을 찍을 때, 스냅샷이라고 하더라도 피사체 특히 사람이 카메라 렌즈를 의식하지 않게 하라고 들었는데 그녀가 찍은 많은 사진들을 보면 사진 속의 인물들은 대놓고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탤런트 릴리스(Talent release)라는 서류도 사전에 받으라고 했는데, 그 시절에는 아마 그런 게 없었던 모양이다. 초상권과 저작권 혹은 퍼블리시티권이라는 개념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았던 그야말로 사진가에게는 엘도라도 같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 오는 4월 30일, 그녀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가 개봉한다고 한다. 뉴욕타임즈 보도에 따르면 비비안 마이어가 남긴 필름을 두고, 2007년 처음으로 그녀의 작품을 세상에 알린 부동산 중개업자이자 길거리 사진가인 존 말루프(경매에서380달러에 필름들을 사들였다고 한다,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의 연출가이기도 하다)와 마이어 연구가라는 데이비드 딜이 수백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비비안 마이어 사진의 소유권 분쟁 중이라고 한다. 2009년 비비안 마이어가 죽고 나서 그녀의 사진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뒤에야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선 모습이 석연치 않지만, 이 소송 역시 베일에 감춰진 작가의 신화를 알리는데 단단히 한 몫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녀가 남긴 15만 장이나 되는 사진 중에 엄선했다고 하지만 235점의 사진만으로 한 사람의 삶을 평가하기는 부족한 점이 없지 않지만, 세상에서 잊힐 뻔한 사진작가의 발견이라는 차원에서 충분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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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중경삼림 - Wong Kar Wai Collection Vol.2
왕가위 감독, 임청하 외 출연 / 이오스엔터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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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늦은 시간에 웃음을 찾는 사람들과 개콘을 차례로 보고 나서 막 텔레비전을 끄려던 차에 왕정문이 나오는 영화 <중경삼림>을 보게 됐다. 정말 오래전 영화였었지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아마 극장에 가서만 세 번이나 영화를 봤던 기억이 난다. 같이 사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하던데. 이 영화가 왜 좋냐고 묻는데, 난 크리스토퍼 도일의 핸드헬드 카메라 기법을 운운하고 있었다. 왜 좋냐고? 글쎄.

 

아마 첫 번째 에피소드가 임청하와 금성무가 나오는 이야기였고, 두 번째가 젊은 날의 양조위와 왕정문(혹은 왕비)이 나오는 에피소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끝까지 다 보지는 못했고, 두 번째 에피소드 중에서 왕정문이 일하는 샐러드바에 매일 같이 찾아와 스튜어디스 애인에게 줄 샐러드를 사가는 경찰 663(양조위 분)의 이야기부터 본 것 같다.

 

모름지기 영화에 로맨스가 빠져서는 될 이야기도 안될 법. 친척 집에 와서 일을 거들어 주고 있다는 페이(왕정문 분)는 경찰 663에 대한 호감을 몰래 키워가고 있다. 조연으로 등장한 663의 애인이 누군가 해서 찾아 보니 주가령이라고 한다. 역시 조연도 그냥 쓰지 않은 모양이다. 페이는 매일 같이 마마스 앤 파파스의 <캘리포니아 드리밍>을 그야말로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큰 소리로 틀어 놓고 산다. 아마 언젠가는 캘리포니아에 갈 꿈을 꾸는 모양이다.

 

샐러드바 주인장의 권유로 경찰 663은 생선튀김과 샐러드를 사서 애인에게 주었다가, 아니 음식도 이렇게 골라 선택의 여지가 많은데 하물며 남자친구는 하는 말을 남기고 가차없이 663의 곁을 떠난다. 그리고 떠나는 길에 그가 자주 들르는 샐러드바에 들러 이별의 편지와 아파트 열쇠를 맡기고 떠나는데, 이게 바로 페이가 663의 집을 드나들게 되는 결정적 계기 혹은 비밀연애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이 된다. 페이는 빈 시간을 이용해서 663의 집을 찾아 전여친의 흔적을 세세하게 지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대신 자신을 채워 넣기 시작한다. 어제 난 여기까지 보고 어쩔 수 없이 텔레비전을 꺼야했다.

 

그전에 리뷰를 쓰면서는 홍콩 반환을 앞둔 브리티시 홍콩 시절의 불안감을 중점적으로 쓰곤 했던 기억인데, 이제 시니카 홍콩이 된지도 한참 시간이 흘렀다. 난 그 영화를 보고, 처음으로 홍콩에 갔을 때 부러 영화의 배경이 되었다는 퀄룽의 청킹맨션을 찾기도 했는데 그냥 그랬던 것 같다. 주인공 왕정문이 부른 <몽중인>을 참 좋아해서 홍콩에 갔을 적에 싱글 CD를 사기도 했다. 참 사연 많은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예전엔 미처 몰랐던 무더운 여름날에 하이네켄 맥주를 쉴 새 없이 들이키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뭔 놈의 방송 규제가 그리도 많은지 경찰 663이 노점에서 마시는 코카콜라에도 솜방망이가 따라 다니고, 페이가 663의 집에서 몰래 바꾸어 놓는 정어리통조림/파인애플 통조림도 흐릿하게 처리가 되고 있었다. PPL이 언제부터 방송가를 슬금슬금 점령해 왔는데 고작 영화에서 몇 컷 보여주는 게 그렇게 큰 문제인가.

 

시간이 되면 다시 한 번 처음부터 다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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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돈이 내린다면 - 2004년 카네기 메달 수상작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41
프랭크 코트렐 보이스 지음, 이재경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5년 3월
평점 :
품절


 

 

매주 로또를 산다. 예전에는 잘 살지 않았는데, 몇 번 꼴등에 당첨되다 보니 한 주간 기다리는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고나 할까. 물론 은근한 기대감도 없다고 할 수는 없으리라. 그런데 막상 로또에 당첨이 되면 그 돈을 가지고 뭘 할까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정말 그런 로또에 맞은 친구들의 이야기라면 어떨까. 시나리오 작가 프랭크 코트렐 보이스가 쓴 <하늘에서 돈이 내린다면>은 우리 나이로 10살짜리 꼬마 데미안과 그의 형 안소니 커닝엄의 돈벼락 맞은 이야기다.

 

요즘 아이들이 커닝엄 형제처럼 다 영악한지는 모르겠지만, 그 중에서도 부동산에 많은 괌심을 가지고 있는 안소니는 특별하다. 아니, 사실상의 주인공이 데미안도 만만치 않다. 수많은 가톨릭 성인 열전을 꿰고 있다는 점에 특히 그렇다. 거의 모든 방면에 수호성인이 떡하니 버티고 서서, 우리 사바세계를 관장하고 있다는 것을 꼬마 데미안의 구구절절한 설명을 통해 알게 됐다. 물론 성녀 카타리나의 죽음처럼 비극적인 이야기를 수업시간에 들려 줘서 아이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면 또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 말이다.

 

유럽의 실질적인 경제통합을 앞두고 영국과 몇몇 나라를 제외한 전유럽에서 유로통화 출범을 앞둔 시대적 상황이 전개된다. 영국은 실제로는 유로 대신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자국 통화 파운드를 고집하고 있지만 소설에서는 영국도 파운드화를 유로로 대치하기로 했다는 가정 하에 이야기가 진행된다. 자신의 은둔처에서 하나님에게 기도하던 데미안에게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돈벼락이 떨어진다. 자그마치 22만 9,370파운드(대략 우리 돈으로 4억 원 정도라고 생각하면 되겠다)의 돈뭉치가 데미안에게 그야말로 굴러 떨어졌다. 소설을 계속해서 읽으면 알게 되겠지만, 이 돈은 폐기하기 위해 모은 구권을 탈취한 강도 일행이 실수로 떨어뜨린 돈으로 우연하게 데미안과 안소니가 습득하게 된 돈이다.

 

어머니의 죽음 덕분에 알게 된 수많은 성인들과 환시를 통해 직접 대화를 하기도 하는 데미안은 횡재하게 된 이 많은 돈으로 불쌍한 사람들을 돕기 원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선한 의미의 도움도 색안경을 쓰고 보는 어른들의 시선에 대한 작가의 비판이라고나 할까. 게다가 시간이 없다. 언제까지 습득한 파운드를 보관하고 있을 수는 없다. 정해진 날짜까지 파운드를 유로로 바꿔야 한다. 물론 이런 거금을 들고 은행에 간다면 바로 의심을 살 것이다. 이 돈이 어디서 났는지 은행직원에게 설명하지 못한다면 유로로 환전은 불가능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금융실명제가 엄격하게 시행되고 있는 서구 사회 금융권의 선진적 단면을 볼 수가 있다. 이미 꽤 오래 전의 일인데도 영국에서는 그랬구나. 여전히 차명계좌와 불법자금 거래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우리나라의 그것과는 많은 차이를 보여준다.

 

예상하지 못했던 거액의 돈을 갖게 된 데미안과 안소니 형제는 그야말로 돈을 물쓰듯 펑펑 써댄다. 아이들의 세계지만, 돈이 보여주는 위력은 놀랍다. 자전거를 사지 않고 대신 빌려 주는 대가로 10파운드를 친구들에게 뿌리고, 미술 과제를 대신해주는 대가로 100파운드는 우습다. 그렇게 많은 돈이 풀린 결과, 아이들 사이에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기에 이른다. 프랭크 코트렐 보이스 작가는 어른 세계에 빗대 통화팽창으로 인한 경제상황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낸다.

 

그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좋겠지만, 언제나 그렇듯 커닝엄 형제에게도 문제가 찾아온다. 바로 돈을 탈취한 대열차강도들이 흘린 돈 22만 파운드를 찾아 나선 것이다. 바로 여기서 인지수사가 동원된다. 최근에 느닷없이 생긴 돈으로(데미안이 기부한 돈이다) 식기세척기에 텔레비전 같은 최신 전자제품을 사는데 돈을 쓴 모르몬교 이웃들이 타깃이 된 것이다. 용의주도한 안소니 덕분에 꼬리가 잡히지 않았지만, 열 살짜리 꼬마의 기부 행동이 화를 불러오기에 이르렀다. 게다가 아빠의 새로운 여자친구로 등극한 도로시 아줌마까지 가세해서 도대체 아무도 믿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파운드를 유로로 바꿀 시간마저 턱없이 부족하다. 더 큰 문제는 막대한 돈이 생겼다고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점이다. 바로 이 지점이야말로 프랭크 코트렐 보이스가 이 소설을 통해 다루고 싶었던 주제가 아닐까.

 

우리는 막연하게 로또에 당첨된다면 마냥 행복할 거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인생역전에 성공한 이들이 자산관리에 실패해서 추락한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나는 <하늘에서 돈이 내린다면>을 읽는 동안, 나의 행복 매니지먼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평범한 현실주의자를 자처하면서도 가끔 허무맹랑한 꿈을 꾸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지금의 상황에 만족하는 편이다. 요즘 들어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많이 부족해서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지 못하긴 하지만, 그것 또한 삶의 일부분이 아닌가. No pain, no gain 란 말처럼 고통 없이 얻어지는 건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로또는 예외겠지만.

 

단박에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대니 보일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는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대개의 경우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영화가 만들어지는데, 이번에는 순서가 역전된 느낌이다. 네이버 영화에서는 영화 <밀리언즈>를 코미디로 분류했던데, 개인적으로 코미디보다는 휴먼 드라마에 가깝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지금 막 영화예고편을 찾아봤는데 판타지에 가까운 감동 드라마였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처럼 새들을 사서 들판에서 풀어주는 장면과 남은 돈을 가져다 기찻길에서 태우다 하늘나라로 간 엄마와 만나는 장면은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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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의 비용
유종일 외 지음,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엮음 / 알마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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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공교롭게도 <MB의 비용>을 읽기 시작한 2015년 3월 13일, 각종 부정부패에 대한 정부는 무관용 원칙에 입각한 선전포고를 했다. 중심에는 이 책에서도 다룬 바 있는 포스코건설 동남아사업단 100억대 비자금 의혹으로 검찰이 포스코건설 본사 압수수색이라는 초강수를 두었다는 뉴스를 들었다. MB정권 5년 동안의 실정에 대해 그동안 수많은 의혹과 무수한 고발들이 오래전부터 이어졌었는데, 왜 지금까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가 이제야 비로소 수사가 시작되었는지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 어쨌든 잊지 말아야 할 기억투쟁의 서막이라는 점에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MB의 비용>은 아무래도 최근에 나온 전직 대통령의 자화자찬과 왜곡된 수치로 점철된 <대통령의 시간>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났다. 앞으로도 후자를 읽어볼 생각이 없지만, 왜 똑같은 사안에 대해 이렇게 다른 시각이 존재할 수 있는지 나 같은 일반 독자로서는 도저히 가늠할 수조차 없을 것 같다. 전직 대통령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22조라는 엄청난 국민의 혈세가 투입된 4대강을 필두로 해서, 자원 확보와 자주개발률이라는 구호 아래 진행된 자원외교 42조라는 천문학적 비용, 원전마피아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진 원전비리, 한식의 세계화라는 미명 아래 영부인이 직접 나서서 주도했던 한식세계화 사업 등 우리가 과거에 치렀거나 앞으로 치러야할 MB의 비용은 들으면 들을수록 혈압이 치솟는다.

 

MB 대통령 당선 직후 세상에 떠들썩하게 선전했던 쿠르드 유전 개발로부터 그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자원외교는 그 자체가 부실 덩어리였다.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위해 자원 확보를 하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자원외교는 전 정권의 실세 영일대군 이상득 의원과 온갖 비리에 연루되어 결국 실형을 살게 된 박영준 왕차관(미스터 아프리카)의 지휘 아래 진행되었다. 규정에 따른 절차와 원칙을 무시하고 오로지 정권의 홍보와 실적을 위해 속도전으로 전개된 자원외교 사업은 묻지마 투자의 전형이었고, 그에 따른 후폭풍은 엄청났다. 최근에 방송된 KBS 다큐멘터리를 통해 볼리비아 리튬 광산 국유화 선언으로 인해 우리가 수입할 수 있는 리튬 자원은 전무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페루의 사비아페루 유전개발은 전직 페루 대통령이 나서서 말릴 정도였지만, 석유공사가 7,161억원이나 투자해서 성사시킨 계약은 개발허가와 판매권이 아닌 서비스계약으로 석유를 뽑아낼 수만 있지 정작 판매는 페루 정부로 귀속되는 엉터리계약이었다. 광물공사가 주축이 되어 진행된 멕시코 볼레오 광산 개발사업 역시 엄청난 손실을 보았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손실이 그야말로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3대 에너지 공기업인 석유공사, 가스공사 그리고 광물공사가 나선 MB 집권 5년 동안의 에너지 자원 외교의 실적은 초라하다 못해 처참할 지경이다.

 

MB 집권 시기 의욕적으로 진행한 4대강 역시 책의 1부에서 다루고 있는 국고의 <탕진>이라는 주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애당초 그의 대선 공약 중의 하나였던 대운하 건설이 국민적 저항으로 무산되자, 다른 이름으로 포장해서 내놓은 것이 바로 4대강의 시초였다. 자그마치 22조에 달하는 천문학적 비용을 어떻게 충당할 것이냐는 질문에 4대강에서 준설한 모래를 팔아 비용을 마련하겠다는 엉뚱한 대답이 들려오기도 했지만, 결국 이 사업 역시 국민의 혈세가 소용된 사업이었다. 홍수대비효과와 많은 수의 일자리 창출효과 등 온갖 장및빛 청사진으로 도배가 되었지만, 이 역시 감사원 감사 결과 실패한 사업이었고 4대강 곳곳에 설치된 수많은 보들은 수질오염과 녹조라떼 같은 환경재앙의 원인이 되었다. 지금까지 들어간 비용만도 국민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판인데, 강이 다시 흐르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존의 12개 보 철거를 위해서는 2천억 정도의 비용이 그리고 현상유지만을 위해서도 지속적인 비용이 청구될 전망이라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게다가 4대강 사업에 참가한 건설사들의 계획적인 담합으로 탕진된 비용은 보상받을 길이 없다고 한다. 그들이 이미 받아 챙긴 1조 6천억 원에 비해 비용에 비해 재판과정에서 11개 업체들에게 물린 벌금은 고작 업체당 5,000만 원에서 7,500만 원 정도라고 한다.

 

그 외에도 최악의 국가적 재앙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었던 원전 케이블 납품비리, 국가안보를 볼모로 잡아 대기업 롯데에 몰아준 특혜의혹, 낙하산 인사가 회장이 된 KT의 무궁화 위성 헐값매각, 현재 검찰의 수사망에 걸린 포스코 정준양 전 회장의 비자금 의혹 등 수많은 이슈들이 바로 탕진의 주범이라는 것이 <MB의 비용>에서 다루고 있는 주장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화가 나는 점 중의 하나는 성과도 보이지 않는 영부인 한식세계화 사업의 디너파티 예산은 아끼지 않으면서, 당시 영유아들에게 제공하는 백신 비용 등의 예산을 가차 없이 깎아낸 정부의 행태다.

 

한편 후반부를 장식하는 <실정>에서는 지난 정권에서 파탄난 대북한정책, 부적격인사, 내곡동 사저에 관한 비리문제, 부자감세 그리고 미디어법 등에 대해 전문가들과의 대담을 통해 접근하다. 북한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을 하면서 북한의 핵포기와 내부붕괴를 압박했지만, 아무런 성과도 없이 그렇게 집권 5년기를 허송세월했다. 5·24선언으로 남북경협와 금강산 관광 등이 모두 중단되면서 남북관계는 경색되었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되었다. 경협을 통한 지원이 북한에게 일방적인 퍼주기가 아니라 평화통일을 위한 선불이라는 개념에 공감할 수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왜 검찰이 권력형 비리에 무력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한 분석과 감사원이 제 기능만 제대로 하더라도 정권마다 되풀이되는 형사처벌로 가기 전에 시정하고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MB의 비용>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대척점에 서 있는 <대통령의 시간>을 읽을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니, 시간이 된다면 비교 대조를 위해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비용이다. 문득 어느 개그 프로그램에서 이 책의 정가가 자그마치 28,000원이라는 말을 듣고 한참을 웃은 기억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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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 - 2015년 제1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김근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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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한 남자와 여자 그리고 꼬마의 이야기다.

 

제목을 보는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고양이가 오리를 잡아먹은 게 아니라, 오리가 고양이를 잡아먹었다구? 뭐라구? 어디선가 SF 적 장르소설의 혐의가 스멀스멀 피어나는 것을 감지할 수가 있었다. 부리나케 작가의 경력을 뒤져 보았다. 오래전, 피씨 통신 시절에 장르 소설을 썼었던 열혈청년이었구나. 바로 감이 왔다. 그런데 차근차근 소설을 읽어 보니 그런 SF 스타일의 소설이 아니라, 청년실업과 희망이 보이지 않는 저성장 시대의 한 풍경처럼 그렇게 소설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는 내게 다가왔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불광천이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봤다. 역시 봄이 오는 불광천 풍경은 소설에서 묘사된 것처럼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다만, 소설의 키워드로 작용하고 있는 오리를 볼 수가 없어 좀 아쉬웠다. 대신 비둘기 부대는 많이 볼 수가 있었다. 아마 불광천을 지배하고 있는 조류는 소설에 나오는 오리가 아니라 비둘기인 모양이다.

 

누가 봐도 분명 김근우 소설가의 페르소나로 보이는 화자 내가 등장한다. 삼류소설가를 자칭하며 출판사에서 원고를 빠꾸먹은 나는 생존의 위기에 내몰린다. 진부하지만 통장 잔고에 돈이 남아 있을 리가 없다. 이제 도대체 누가 소설을 읽는가라는 질문을 자주 듣는 시대에, 책보다 커피에 투자하는 비용이 더 많은 시대에 소설가는 기피직종이 된 느낌이다. 어쨌든 나는 생존하기 위해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를 찾는다는 기묘한 전단지에 이끌려 어느 노인 앞에 서게 된다. 초반에도 이야기했지만,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오리가 노인이 자식보다 더 애지중지하는 세 살짜리 암코양이 호순이(이름 한 번 호방하다)를 잡아먹었단다. 그래서 그와 그의 동료 여자에게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들려 불광천을 누비며 범인, 아니 범압(犯鴨)을 찾으라는 특명을 내린다.

 

동료 여자는 한 때 잘 나가는 증권사 직원이었지만, 그놈의 한탕주의 때문에 나와 비슷한 처지에 몰린 상황이다. 그래도 남자와 여자는 그나마 일말의 양심이 있다. 범압 사냥에 나서 노인에게 일당 5만원에 고용된 처지지만, 시간이 갈수록 자신들의 고용주인 노인의 상황에 안쓰러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렇다, 바로 그런 측은지심이야말로 인간관계 형성의 기본이 아니었던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노인의 손자 꼬마까지 등장해서 구성된 범압 3인조는 오늘도 오리 추적에 나선다.

 

이 꼬마는 능청스럽게 성공보수를 노리고 노인을 위해 호순이를 잡아먹은 가짜 오리를 만들자는 아주 발칙한 제안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무리 처지가 궁색해서 노인의 터무니없어 보이는 제안을 받아들인 남자와 여자지만 그건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남자는 꼬마가 배달한 김치통이 나뒹굴고 있는 노인의 아파트 청소를 하고, 여자는 노인에게 가정식 백반을 만들어주면서 그들의 신뢰를 점점 쌓여 가기 시작한다. 과연 그들은 범압 사냥에 성공할 수 있을까.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를 읽는 독자라면 알겠지만, 남자와 여자 그리고 꼬마가 과연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를 잡았는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황당해 보이는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듣게 되는 그들 삶의 이야기야말로 김근우 소설가가 이 소설을 통해 하고 싶었던 주제가 아닐까 하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물론 은근슬쩍 집어넣은 소설가의 내력도 주목할 만하다.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스토리텔링의 장인이라는 직업이 과연 존재한다면,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묵묵하게 그 과업을 해낼 자신이 있을까. 팔리지 않는 소설, 다시 말해 사람들이 궁금해 하지 않는 그런 이야기에 목매고 오늘도 컴퓨터 자판을 부서지게 두들겨 대는 군상이 있다는 사실이 낯설게 다가왔다.

 

그런 점에서 소설 속의 화자가 내세운 허먼 멜빌의 <모비딕>(그 엄청난 두께 때문에 앞으로도 읽을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든다)에 나오는 에이해브 선장의 복수, 오리를 찾는 노인의 허망한 노력 그리고 소설가의 소설쓰기는 삼위일체다. 우리는 한 배를 탄 운명공동체로 뭉뚱그리고, 노인의 집념이 어이없다는 점을 잘 알면서 현실의 경제적 궁핍에서 탈출하기 위한 방편으로 삼고 있는 자신들의 노력 혹은 노동을 정당화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는 그야말로 삼중고에 시달리는 진실에 김근우 소설가는 무의식의 뜰채를 들이민다. 어쩔 수 없이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 속에 피어나는 연민과 동정 같은 감정의 파노라마 역시 빠질 수 없는 요소다. 그렇게 세상을 담은 이야기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김근우 소설가가 이번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을 계기로 다시 잘 팔리는 작가가 돼서 그의 로망대로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 여행에 나서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해 마지않는다.

 

[리딩데이트] 2014년 3월 1일 ~ 13일 오전 7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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