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 - 2015년 제1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김근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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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한 남자와 여자 그리고 꼬마의 이야기다.

 

제목을 보는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고양이가 오리를 잡아먹은 게 아니라, 오리가 고양이를 잡아먹었다구? 뭐라구? 어디선가 SF 적 장르소설의 혐의가 스멀스멀 피어나는 것을 감지할 수가 있었다. 부리나케 작가의 경력을 뒤져 보았다. 오래전, 피씨 통신 시절에 장르 소설을 썼었던 열혈청년이었구나. 바로 감이 왔다. 그런데 차근차근 소설을 읽어 보니 그런 SF 스타일의 소설이 아니라, 청년실업과 희망이 보이지 않는 저성장 시대의 한 풍경처럼 그렇게 소설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는 내게 다가왔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불광천이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봤다. 역시 봄이 오는 불광천 풍경은 소설에서 묘사된 것처럼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다만, 소설의 키워드로 작용하고 있는 오리를 볼 수가 없어 좀 아쉬웠다. 대신 비둘기 부대는 많이 볼 수가 있었다. 아마 불광천을 지배하고 있는 조류는 소설에 나오는 오리가 아니라 비둘기인 모양이다.

 

누가 봐도 분명 김근우 소설가의 페르소나로 보이는 화자 내가 등장한다. 삼류소설가를 자칭하며 출판사에서 원고를 빠꾸먹은 나는 생존의 위기에 내몰린다. 진부하지만 통장 잔고에 돈이 남아 있을 리가 없다. 이제 도대체 누가 소설을 읽는가라는 질문을 자주 듣는 시대에, 책보다 커피에 투자하는 비용이 더 많은 시대에 소설가는 기피직종이 된 느낌이다. 어쨌든 나는 생존하기 위해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를 찾는다는 기묘한 전단지에 이끌려 어느 노인 앞에 서게 된다. 초반에도 이야기했지만,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오리가 노인이 자식보다 더 애지중지하는 세 살짜리 암코양이 호순이(이름 한 번 호방하다)를 잡아먹었단다. 그래서 그와 그의 동료 여자에게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들려 불광천을 누비며 범인, 아니 범압(犯鴨)을 찾으라는 특명을 내린다.

 

동료 여자는 한 때 잘 나가는 증권사 직원이었지만, 그놈의 한탕주의 때문에 나와 비슷한 처지에 몰린 상황이다. 그래도 남자와 여자는 그나마 일말의 양심이 있다. 범압 사냥에 나서 노인에게 일당 5만원에 고용된 처지지만, 시간이 갈수록 자신들의 고용주인 노인의 상황에 안쓰러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렇다, 바로 그런 측은지심이야말로 인간관계 형성의 기본이 아니었던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노인의 손자 꼬마까지 등장해서 구성된 범압 3인조는 오늘도 오리 추적에 나선다.

 

이 꼬마는 능청스럽게 성공보수를 노리고 노인을 위해 호순이를 잡아먹은 가짜 오리를 만들자는 아주 발칙한 제안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무리 처지가 궁색해서 노인의 터무니없어 보이는 제안을 받아들인 남자와 여자지만 그건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남자는 꼬마가 배달한 김치통이 나뒹굴고 있는 노인의 아파트 청소를 하고, 여자는 노인에게 가정식 백반을 만들어주면서 그들의 신뢰를 점점 쌓여 가기 시작한다. 과연 그들은 범압 사냥에 성공할 수 있을까.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를 읽는 독자라면 알겠지만, 남자와 여자 그리고 꼬마가 과연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를 잡았는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황당해 보이는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듣게 되는 그들 삶의 이야기야말로 김근우 소설가가 이 소설을 통해 하고 싶었던 주제가 아닐까 하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물론 은근슬쩍 집어넣은 소설가의 내력도 주목할 만하다.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스토리텔링의 장인이라는 직업이 과연 존재한다면,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묵묵하게 그 과업을 해낼 자신이 있을까. 팔리지 않는 소설, 다시 말해 사람들이 궁금해 하지 않는 그런 이야기에 목매고 오늘도 컴퓨터 자판을 부서지게 두들겨 대는 군상이 있다는 사실이 낯설게 다가왔다.

 

그런 점에서 소설 속의 화자가 내세운 허먼 멜빌의 <모비딕>(그 엄청난 두께 때문에 앞으로도 읽을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든다)에 나오는 에이해브 선장의 복수, 오리를 찾는 노인의 허망한 노력 그리고 소설가의 소설쓰기는 삼위일체다. 우리는 한 배를 탄 운명공동체로 뭉뚱그리고, 노인의 집념이 어이없다는 점을 잘 알면서 현실의 경제적 궁핍에서 탈출하기 위한 방편으로 삼고 있는 자신들의 노력 혹은 노동을 정당화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는 그야말로 삼중고에 시달리는 진실에 김근우 소설가는 무의식의 뜰채를 들이민다. 어쩔 수 없이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 속에 피어나는 연민과 동정 같은 감정의 파노라마 역시 빠질 수 없는 요소다. 그렇게 세상을 담은 이야기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김근우 소설가가 이번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을 계기로 다시 잘 팔리는 작가가 돼서 그의 로망대로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 여행에 나서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해 마지않는다.

 

[리딩데이트] 2014년 3월 1일 ~ 13일 오전 7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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