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조자 1
비엣 타인 응우옌 지음, 김희용 옮김 / 민음사 / 201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책쟁이로서 퓰리처상이니 맨부커상,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라는 아우라로부터 탈출할 방법은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내가 처음 들어보는 미국작가인 비엣 타인 응우옌의 책 <동조자>를 선택해서 읽게된 첫 번째 이유는 아마 그것일 테고, 두 번째 이유는 지난달에 읽은 베트남 참전 용사가 기술한 <전쟁의 슬픔>과 비교해 보고 싶은 이유였다. 하나 더 추가해 보자면 베트남전쟁에 대한 관심 정도.

 

소설 <동조자>의 시간적 배경은 1975년 4월이다. 그러니까 적군 18개 사단에 포위된 사이공 함락을 눈앞에 두고, 프랑스 가톨릭 사제 아버지와 베트남 하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스스로를 “잡종 새끼”라고 부르는 베트남군 병참 장교(실제로는 비밀경찰)의 자술로 시작된다. 화자는 확실히 문제적 인간이다. 베트남전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디엔비엔푸 전투 후, 월남으로 도생한 나는 CIA 요원인 클로드의 도움으로 미국 유학을 다녀온다. 하지만 십대 시절에 이미 그는 지기 만과 민족해방에 자신을 희생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니까 그는 스파이이자, 고정간첩 그리고 CIA 요원이기도 했다. 일단 응우옌 작가는 그의 혈통만큼이나 복잡한 캐릭터를 ‘나’에 심는데 성공했다. 베트남전쟁에서 승리한 베트남 사람들이 스스로를 대변할 수 없다는 <더 햄릿> 영화판에서의 고민처럼, 나의 일생 자체가 복잡다단했다.

 

나는 비밀경찰을 지휘하는 장군 휘하에 들어가 부관으로 뛰어난 실력으로 장군의 신임을 얻고, 숱한 정보들을 북쪽의 자신의 동지들에게 넘긴다. 투철한 마르크스주의로 무장한 친구 만이 있다면, 또 한편에는 공산주의자에게 아버지를 살해당한 친구 본이 있다. 우정과 이데올로기를 가로지르는 주인공의 정체성이야말로 소설에서 정확하게 타격하고 있는 지점이 아닐까. 베트남전쟁에 참가한 수많은 선수들이 자신이 믿는 조국을 위해 싸웠다. 사이공 함락의 날, 탄손누트 공항에서 악착같이 저항하는 베트남 공수부대를 상대로 거의 전멸하다시피 하면서 기록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바오 닌의 경우를 생각해 보라. 문득 제목 <동조자>가 주는 어감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무엇에 대해 동조한 사람을 가르키는 말일까하고.

 

다시 사이공 마지막 날로 돌아가 보자. 철저한 마르크스주의자였던 만은 현지에 남기로 하고, 나(혁명가답게 독신이다)와 본의 가족 그리고 장군 가족은 미군 수송기 허큘리스를 타고 사이공 탈출에 나선다. 사이공 탈출이라는 극적인 장면을 주인공에게 부여한 설정도 놀랍다. 전후 사정이야 어찌 되었건, M-16을 든 거구의 양키들에게 처참한 패배의 모습을 보여 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잡종 새끼인 내가 그 임무를 맡은 것은 정말 탁월했다. 동시에 패배까지도 껴안을 수 있는 미국 문학의 힘을 보았다고나 할까. 저자 응우옌 역시 베트남 출신이긴 하지만 미국에서 교육을 받고 자란 포스트워 세대가 아닌가. 거의 전 세계이 모든 문화적 용광로라고 할 수 있는 미국 문학판의 위력을 소설 <동조자>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할 수가 있었다.

 

좋았던 시절인 사이공 함락에 있어 비극이 빠질 수 없지 않은가. 그래서 저자는 본의 아내 린과 아들 덕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오랜 경구답게 어디서 날아온 총탄인지 모를 그런 총탄을 죽은 아내와 아들의 시신을 껴안고 거의 울부짖으며 허큘리스 비행기에 간발의 차이로 매달리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다. 이 소설은 거의 반드시 영화화된다고 해도 좋을 듯 싶다. 주인공 나의 캐스팅은 대니얼 헤니 정도가 좋지 않을까 추정해 본다.

 

이제 무대는 괌을 거쳐 미국 캘리포니아의 임시수용소로 이동한다. 미국 학위를 가진 나는 재빠른 속도로 미국 사회에 안착한다. 렌탈 숙소, 자동차 그리고 일자리의 삼위일체로 무장한 나는 미국 사회에 융합하기 시작한 베트남 난민들보다 우월한 지위에서 반동적이고 불온한 움직임을 탐지하는 역할을 지속하게 된다. 베트남에서의 전쟁은 끝났지만, 시퀄은 끝나지 않았다는 진단이다. 내가 대학으로 돌아가 보니, 그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맹렬하던 베트남전쟁 반대를 하던 세대들은 모두 대학을 졸업해서 떠나 버렸고 새로 입학한 학생들에게 베트남전쟁은 태평양을 가로 지르는 거리만큼이나 멀게 느껴진다는 것을 듣는 순간,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구나, 시간은 모든 것을 망각의 샘으로 인도하는구나.

 

<동조자> 첫 번째 권의 내러티브는 사이공 함락, 미국 사회에 재적응하기 그리고 <더 햄릿> 영화촬영으로 이어진다. 사이공 함락 후, 구 월남정권에 부역한 이들을 재교육이라는 가혹한 형벌이 기다리고 있었다면 미국에서 임시수용소라는 신병교육대가 난민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장군이나 나같은 이들에게는 재교육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를 의미했다. 뒤늦게 자신의 주변에 북베트남 스파이가 없었는지 의심하게 된 장군에게 나와 본은 무절제한 소령을 미끼로 던져주기에 이른다. 무고한 사람을 죽여야 하는 임무에 잠시 고민하기도 하지만, 조국에서 민족해방이라는 대의 앞에 죽은 무고한 사람들이 어디 한 둘이었던가. 이른 나이게 미국 생활을 통해 이종교배된 장군의 딸 라나의 등장도 주목할 만하다. 사고와 의식은 완전하게 미국적이지만 여전히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나 할까.

 

마지막 에피소드는 내가 기술 컨설턴트로 참가하게된 작가주의 영화 <더 햄릿>의 촬영장이다. 촬영현장에서 나는 인종주의 전쟁이었던 베트남전쟁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한 작가주의 감독과 열전을 벌인다. 이 과정은 서구인들의 베트남전쟁에 대한 피상적 이해를 예리하게 타격한다. 어쩌면 작가주의 감독이 카메라워크를 통해 구사하는 모든 것들이 프로파간다일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씨퀀스들은 어쩔 수 없이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걸작 <지옥의 묵시록>을 연상시켰다. 부랴부랴 영화를 구해서 바그너의 <발퀴리의 비행>이 나오는 미군 헬리콥터 부대가 베트남 사람들을 학살하는 장면을 골라봤다. 하늘에서 그러니까 신의 시선에서, 이제 막 징병되어 전선에 투입된 어리숙해 보이는 미군들이 민간인들에게 기총 소사하는 장면은 비극의 재현일 수밖에 없었다. 진격 나팔 소리와 함께 건국의 아버지들이 인디언들을 향해 기병대를 출동시켰던 것처럼, 말을 대신할 헬리콥터로 가상의 적을 소탕하는 장면이라.

 

영화 촬영장에서 단역에 동원된 베트남 사람들이 베트남전쟁에서 궁극적 승리자였던 자신들을 대변하지 못하고 고작 일단 1달러에 자신을 팔아야 하는 현실은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그것은 전쟁에서 승리한 베트남 인민들에 대한 왜곡과 명백한 승리의 훼손이었다. 카메라 렌즈로 필터링된 이미지가 어떻게 리얼리티를 담보할 수 있단 말인가? 절대 인정할 수 없다. 그리고 소설에 어딘가에 작가가 기술한 대로, 군산복합체의 일원인 할리우드가 제작한 영화는 베트남전쟁의 시퀄이자,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전쟁에 대한 프리퀄이었다는 진단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또 한편으로는 베트남 현지에서 그들이 쟁취한 승리는 완벽한 것이 아니었다. 미국과 자유세계로 후퇴한 반동세력에 대한 우려는 나의 존재로 설명되지 않던가. 패배한 이들도 그리고 승리한 이들도 모두 전쟁의 후유증인 극심한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숨가쁘게 첫 번째 <동조자> 1권을 읽었다. 원래 같으면 바로 2권을 사서 읽어야겠지만 다음달부터 산 책부터 소득세공제를 해준다고 하니 앞으로 책 사기는 모두 일주일 뒤로 미룰 생각이다. 나머지 부분에서는 사이공 탈출 때는 목숨은 건 친구이자 전우였지만, 알고 보면 불구대천의 원수인 본과 나의 관계는 과연 어떻게 풀어 나갈 것인지, 베트남에서 출발해서 미국을 거쳐 과연 최종 종착지는 어디인지 그리고 자술하는 대상은 누구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기대해 본다.

 

[뱀다리] 어제 읽은 신문 인터뷰에 의하면 응우옌 작가의 <동조자>의 후속편을 기획 중에 있다고 한다. 아버지의 뿌리인 프랑스 파리를 찾은 나의 1980년대가 시공간적 배경이라고 한다. 그전에 올해 발표된 응우옌 작가의 소설집 <난민들>도 빨리 국내에 소개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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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2

 

- 비엣 타인 응우옌 - 동조자(The Sympathizer)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비엣 타인 응우옌의 첫 소설이다. 퓰리처상 수상작이라고. 월남 출신 작가로 역시나 월남 패망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인공 나는 월남군 병참 대위 출신으로, 사실은 공산주의자 스파이였다. 고정간첩으로 어린 시절 친구인 만과 더불어 민족해방전선의 일원으로 비밀경찰을 지휘한 장군 휘하에서 참모로 활약했다. 아 게다가 가톨릭 사제인 외국인 아버지와 하녀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한 혼혈로 어디에서고 환영받지 못하는 이방인이었다. 미국에서 공부한 것도 그의 성공의 비밀이었다.

 

다시 한 번 처참한 패전까지도 자기네 문학의 일부분으로 소화시켜 버리는 미국 문학의 힘을 엿볼 수가 있었다. M-16을 거머쥔 양키가 허큘리스 수송기를 타고 사이공에서 탈출하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을까? 비참한 패배의 연장선이었을 것이다. 월남 출신 작가가 서술한 이방인 혼혈 스파이야말로 그 역할에 제격이지 않은가. 놀라운 배치가 아닐 수 없다.

 

괌을 거쳐 캘리포니아에 정착한 나에 대한 이야기까지 읽었다. 자신의 모교에서 일자리를 얻고, 후원금을 바탕으로 임대거처를 구하고 중고차를 구하는 과정이 낯설지 않은 이국땅에서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는 난민들에 대한 대략적인 스케치로 받아 들여졌다. 그전에 임시로 거처하는 난민수용소는 미국 사회에 이질적인 난민들을 위한 신병수용소라고 콕 짚은 점도 마음에 들었다. 우리도 지금 난민문제와 직면하게 되지 않았는가. 숱한 혐오와 차별을 뚫고 모두 같은 인간이라는 점에서 그네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력을 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난 달에 읽은 <전쟁의 슬픔>의 작가 바오닌은 최후까지 발악하는 월남 공수부대를 상대로 탄손누트 공항에서 마지막 전투를 치르면서 거의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는데, <동조자>의 주인공 나는 비록 절친 본의 아내 린과 대자 덕을 잃긴 했지만 미국에 안착하는데 성공했다. 남은 부분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등장할 지 기대해 본다.

 

 

그리고 여담으로 영화화되기에 아주 좋은 요소들을 갖추고 있어서 아마도 곧 영화화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주인공 나를 캐스팅한다면? 아마도 다니엘 헤니가 어떨까 싶다. 혼혈이라는 강점도 있고... 아 베트남어 실력이 문젠가.

 

 

올해 초에 8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소설집 <난민들>(Refugees>도 나왔다고 하는데 <동조자>가 국내에서 인기를 끌게 되면 아마 소설집도 곧 나오지 않을까. 분량도 적고 해서 지금 원서로 주문을 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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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 카스 2006 / 존 라세터

 

요즘 꼬맹이에게 보여줄 애니메이션 구하기에 바쁘다. 그 중에 제법 연식이 된 영화 픽사의 <카스>(2006)를 감상했다. 예전에는 무조건 영어자막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더빙판으로 보게 되었다는 건 안 비밀이다.

 

줄거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픽사는 피스톤컵 처녀 출전에서 우승을 노리는 잘난 레이싱카 라이트닝 맥퀸의 흥망성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벌써 12년이나 되었는데, 픽사의 애니메이션 기술은 완성에 이른 듯하다. 이야기면 이야기, 캐릭터면 캐릭터 무엇 하나 빠지지 않고 그렇게 잘 만들어내니 전세계 팬들의 열광을 받을 수밖에. 다만, 후속편은 좀 엉망이었다고 하는데 1편만으로도 충분하다면 굳이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피스톤컵 레이스에서 공동 3위를 하는 바람에 66번 도로를 달려 캘리포니아에 가서 재경기를 치르게 된 라이트닝 맥퀸. 이동 트레일러 카가 깜빡깜빡 조는 바람에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떨어진 라이트닝 맥퀸. 래디에이터 스프링스라는 쇠락한 마을에서, 경찰과 판사 그리고 변호사의 작당으로 과속에 신호위반이라는 죄목에 잡혀 도로포장이라는 노역형을 치르게 된다. 물론 당장 캘리포니아로 가서 피스톤컵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에 도주도 감행해 보지만, 아무리 시골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법. 맥퀸의 도주를 예상하고 미리 기름을 빼둔 덕분에 얼마 가지 못해 다시 잡혀오게 된다.

 

서사는 치기 어린 선수가 숨은 고수를 만나 비전을 전수받게 된다는 중국 스타일의 이야기를 그대로 따른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고수는 너 혼자가 아니란다 꼬맹아. 왕년에 피스톤컵 3연패에 빛나는 닥 허드슨(폴 뉴먼 목소리 연기)과 경주를 벌이기도 하지만 패기만 가지고 왕년의 레이싱 챔피언을 이길 수는 없는 법. 게다가 캘리포니아에서 잘 나가던 변호사로 활약하던 포르쉐 샐리와의 만남도 점점 미래의 챔피언 맥퀸이 마을에 정을 붙이게 만드는 결정적 요소로 작동한다. 아, 그리고 사이드킥으로는 고물 뻐드렁니 견인차 메이터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인간 아니 자동차라면 누구나 친구가 필요하지 않은가. 외딴 마을에서 군소리하지 않고 묵묵하게 도로 까는 일을 하는 맥퀸에게 메이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친구가 되어준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성공의 단맛에 취할 수도 있었던 맥퀸이 심성 좋은 자동차들이 사는 래디에이터 스프링스에서의 유배생활을 통해 비로소 실력만 갖춘 레이싱 챔피언이 아니라 인성까지 갖춘 진정한 챔피언으로 태어나게 되는 과정을 픽사/디즈니는 그려내고 있었다. 뭐 항상 현실세계에서 그런 정공법이 통하는 건 아니지만, 그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미디엄이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을 고려해 볼 때 불가능한 것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보여준다는 점에서 역시 평가할 만하지 않은가 싶다.

 

마지막 레이스에서 우승을 앞두고, 피스톤컵 우승을 라이벌에게 양보하는 점이 시사하는 건 과연 무엇일까. 한 번 실패하던 다시 일어설 수 없는 한국 사회에서 볼 수 없는 그런 점이 아니었을까. 물론 기본 조건은 라이트닝 맥퀸이 이번 기회를 놓치더라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공정한 기회의 부여 그리고 누구 못지 않은 실력이었으리라. 물론 맥퀸이 그런 걸 노리고 한 것은 아니겠지만, 이런 감동적인 스토리야말로 감성에 메말라 버린 시절에 뉴스와 대중이 환호할 수 있는 기가 막힌 기회를 제공해 주지 않았던가. 이렇게 축적된 자산을 지니게 된 맥퀸은 자신에게 훨씬 더 좋은 기회와 부를 선사해줄 다이노코 사와의 후원 계약 대신 어려운 시절 자신을 후원해온 러스티 사와의 계약을 유지할 거라는 선언을 한다.

 

디즈니 사의 창업주 월트 디즈니의 탐욕스러운 비즈니스 정책과는 사뭇 다른 맥퀸의 선택이 낯설기도 하다. 아이들에게 꿈을 그리고 어른들에게 동심으로의 회귀라는 전략을 유효적절하게 이용해서, 박스오피스에서 어마어마한 실적을 내고 있는 거대 영화사로 거듭난 디즈니의 전통 서사가 보여주는 보수적 가치야말로 우리가 지켜야할 훌륭한 유산이라는 식의 감동 섞인 지도가 나는 탐탁지 않게 느껴진다. 엄청난 시간이 걸리는 렌더링 작업을 어떻게 했을까, 실사 같은 감정이 묻어나는 캐릭터들의 표정 설계를 어떻게 했을까 같은 기술적 질문들보다 전통서사에 입각한 낡은 가부장 질서야말로 21세기에는 맞지 않는 생각들일 터인데 그것을 고집하는 디즈니 경영진의 고집에 두 손 들어 버렸다. 그러고 보면 좋은 게, 모두에게 다 좋은 건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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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8-06-21 16: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회가 새롭네요~^^
이 영화를 무려 극장에 가서 아들과 함께 낄낄거리고 봤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때 자동차라면 꿈뻑 넘어가신다는 삼성 이건희 회장님도 겹쳐지고 그랬었어요.

추억을 떠올릴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꾸벅~(__)

레삭매냐 2018-06-22 10:36   좋아요 2 | URL
예전에는 픽사 애니 모두 챙겨 보았는데
언제부터인가 영화는 뒷전으로 밀리게
되었네요...

자유롭게 영화 볼 날을 꿈꿔 봅니다.

취미는 취미일 뿐, 절대 사업으로 하면
안된다는 걸 배우게 되었습니다...
 
빙평선
사쿠라기 시노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4년 전, 소설리스트를 통해 <호텔 로열>의 작가 사쿠라기 시노를 알게 됐다. 이제 소설리스트는 가고, 사쿠라기 시노는 남았다. 그동안 작가의 다른 책들도 볼 기회가 있었겠지만 그렇게 강렬한 인상을 주지 못한 것 같다. 나의 블로그 독후감 기록장에서 그 시절 내가 쓴 리뷰를 찾아봤다. 관능소설 작가라... 작가의 부친이 직접 <호텔 로열>이라는 상호의 숙박업소를 운영하셨다고.

 

점점 쇠락해 가는 지방 홋카이도의 구시로를 배경으로 한 소설들을 꾸준하게 발표하고 있다는 사쿠라기 시노 작가의 문학적 시원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첫 소설집 <빙평선>에는 모두 6개의 단편들이 실려 있다. 첫 번째 작품, <설충>에서는 도회로 부나방처럼 성공을 쫓아 나갔다가 가진 것을 모두 탕진하고 귀농해서 낙농업에 전념하고 있는 남자 다쓰로와 그의 불륜상대 시키코 그리고 필리핀에서 인신매매에 가까운 방식으로 시집온 마리가 차례로 등장한다. 가업인 젖소를 키우기 위해서는 남자가 절대로 필요하다는 생각에, 다쓰로에게 반강제로 외국인 신붓감을 안겨주는 그의 부모들의 심정이 어땠을까. 다쓰로가 도시에서 실패하지 않았다면 과연 고향으로 돌아왔을까? 옛친구 시키코와 사일로에서 밀회를 가지며 자신의 욕정을 채우는 파렴치해 보이는 다쓰로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문득 일본의 농촌도 우리네 사정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그런 생각이 불쑥 들었다. 선대의 유지를 받들어야 하는 부모 세대의 모습과 자신들의 자식만큼은 도시에 나가 보란듯이 성공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들의 충돌이라고나 할까.

 

다음 작품 <안개 고치>에는 오랫동안 스승의 밑에서 도제 생활을 해온 마키 씨가 스승에게 독립을 인정받고 어엿한 바느질쟁이로 거듭나게 되는 과정이 담겨 있다. 어쩔 수 없니 김숨 작가의 <바느질하는 여자>가 바로 연상됐다. 김숨 작가가 긴 호흡으로 진짜 장편을 구사해냈다면, 사쿠라기 시노는 조금 빠른 템포로 달려간다. 지난주에 이른 여름휴가로 강릉 동양자수박물관에 갔었는데 전시실을 안내해 주시는 분에게 소설에 등장하는 시침질과 겹봉 같은 바느질 용어에 대해 질문을 하기도 했다. 역시나 책의 위력이란! 하나의 어엿한 직인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스케치해낸 작가의 저력을 엿볼 수 있었다. 동시에 우리나라에서는 엿볼 수 있는 장인-도제 시스템이 조금은 신기하기도 했다.

 

시골로 시집온 도쿄 며느리는 가부장 시스템의 영속을 위해 아들을 낳아 주기를 바라는 시어머니의 성화에 시달려야 하고, 옆집 숟가락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는 이웃들이 넘실대는 시골에서의 삶으로부터 탈출을 꿈꾼다. 젊고 변죽 좋은 초등학교 교사와 불장난으로 실화에 이를 뻔하기도 하지만 아슬아슬하게 빗겨 나가는 균형감을 보여주기도 한다. 결국 주인공 교코는 딸아이를 데리고 지긋지긋해 보이는 시집을 떠나게 되는데,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살아야 하는 게 정답이라는 걸 강조하고 싶었던 것일까. 문득 내가 얽매여 있는 일상이 얼마나 공고하고 루틴을 깨는 게 쉽지 않은지 다시 한 번 깨닫기도 했다.

 

이른바 관능소설 작가로서 사쿠라기 시노의 실력은 <바다로 돌아가다>에서 폭발한다. 이제 막 지난 10년간의 엄격한 도제 생활을 마치고 이발사로 독립한 게이스케는 25살이다. 혹독한 홋카이도의 계절들이 차례로 바뀌면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 자영업자는 스승이 물려 준 손님과 새로운 손님들에 대한 걱정으로 이만저만이 아니다. 조실부모하고 오로지 이발 기술 하나로 세상에 맞서온 청년 앞에 어느 날 기네코라는 이름처럼 비단결 같고, 매혹적인 팜므 파탈이 등장한다. 옷차림하며 범상치 않은 외모로 그저 오가는 평범한 손님인지 아니면 미래의 연인인지 모를 그런 위치가 주는 긴장감 속으로 독자는 내몰린다. 아니 이렇게 격정적일 수가 있을까 싶다. 그래서 더더욱 고혹적이었을까? 게이스케 청년과 팜므 파탈 기네코의 격정적 아니 관능적 로맨스는 기정사실이 되어 버렸다.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안타까움이 솟아오른다고나 할까. 그런 애증의 쌍곡선은 맨 마지막에 배치된 표제작 <빙평선>에서 그야말로 바다 위로 솟구치는 범고래의 점프처럼 튀어 오른다.

 

아 그전에 5번째 <물의 관>이 있었지. 이제 병치료도 서비스업이 된 지 오래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매끄러운 실력으로 과잉진료로 서슴지 않고 권하는 니시데 원장과 그의 도제(?)이자 애인인 료코의 관계로부터 소설은 출발한다. 15살 연상이라는 나이차도, 특별수당이라는 주변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둘의 욕망은 사위를 가리자 않고 분출한다. 하지만 료코는 자신이 관계를 중단하지 않으면, 이도저도 아닌 관계가 지속되리라는 것을 깨닫고 시골 치과의사가 필요하다는 공문을 보고 과감하게 니시데와의 관계를 정리한다. 한적한 시골에서 비로소 독립적인 판단을 하는 전문의로 거듭나게 된 료코는 여전히 니시데를 그리워한다. 그리고 어느날 자신을 찾아온 니시데, 병색이 완연하다는 점 말고는 별 다른 이야기 없이 떠난 그가 얼마 뒤 뇌경색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치과의사에게 치명적인 반신불수 증상을 그는 감당할 수 없었다. 게다가 니시데의 장끼인 과잉진료가 이슈가 되면서 잘 나가던 그의 클리닉은 파산으로 내몰린다. 이에 구원투수로 나선 료코가 옛 연인을 건사하기에 이른다. 뭐랄까 글로 표현하기에는 오묘한 그런 맛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고나 할까. 더 나가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 지은 점도 마음에 들었다. 그 뒤에 그들이 잘 먹고 잘 살았는지 아니면 새로운 파국에 직면하게 되었는지는 사실 중요한 게 아니니까.

 

긴 여정을 거쳐 마지막 표제작인 <빙평선>에 도달했다. 기본적으로 <빙평선>은 어부 출신 아버지로부터 막말에 가까운 학대를 받으며 성장해서 자력으로 도쿄대와 재무성을 거친 엘리트 도고 세이치로와 마을 사람들에게 변소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천대를 받은 도모에의 러브 스토리다. 세이치로 아버지의 학대는 아들 성공의 원동력이었다. 아버지와 격하게 한판 붙은 날, 세이치로는 5천엔을 들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가 도모에를 찾아 가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어지는 역시나 격정적 러브 씬. 사쿠라기 작가 양반은 역시나 관능소설 작가다운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그리고 성공해서 고향으로 돌아온 세이치로는 다시 도모에를 찾는다. 둘에게 행복한 시간들이 펼쳐졌을까 과연? 아마 아닐 것이다. 편견에 사로잡힌 주변의 시선과 연이어 벌어진 방화사건은 관계의 파국의 전조처럼 슬며시 다가온다. 엔딩으로 치닫는 가운데, 빙평선 너머 바닷가 위를 위태롭게 걷는 두 남녀의 모습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홋카이도 구시로를 배경으로 해서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는 사쿠라기 시노 작가의 글을 보다 보니 문득 태화강이 흐르는 울산을 배경으로 지역색 강한 작품을 발표하는 우리나라의 정정화 작가 생각이 났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야말로 세계적인 것이 아닌가. 그리고 나오키상 수상 작가라는 아우라가 있긴 하겠지만, 과연 어느 작가가 첫 작품에서부터 이런 애잔한 에로티시즘을 구사할 수 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거침없고 대범한 에로티시즘을 마치 무슨 공깃돌 놀리듯 관계의 핵심에 배치하고 애증의 서사를 풀어나가는 사쿠라기 시노 작가의 실력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참으로 농밀한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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낢이 사는 이야기 시즌4 1 - 결혼이란 달면서도 씁쓸하구나 낢이 사는 이야기
서나래 글.그림 / 북치고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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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싸이월드가 대세였다면 요즘은 인스타그램이 대세인 모양이다. 인스타를 통해 수많은 예비 웹투니스트들이 피고지고를 반복하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낢 씨 같은 기존 작가들에게도 인스타는 기회다. 비용을 많이 들이지 않고(아니 거의 들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충분히 홍보를 하고, 콘텐츠를 전파할 수 있으니 말이다.

 

보다말다를 거듭하던 <낢이 사는 이야기>와 다시 만나게 됐다. 이번에는 무려 이과장과의 레알 신혼 이야기란다. 작가의 어머님처럼 올빼미과인 낢 씨와 바른생활 싸나이라 불리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건축설계사 이과장 씨의 딴따따딴~ 딴따따딴으로 생활밀착형 웹툰은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요 작가의 웹툰에는 기똥찬 그런 이야기들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아마 거창한 것을 싫어하는 그런 스탈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모든 에피소드들이 하나같이 우리네 일상 어디에서고 걷어올릴 수 있는 그런 소재들이다. 그래서 더더욱 마음에 든다. 현실 같지 않은 현실을 보고 싶다면, 인스타의 또다른 페이지들을 찾으면 되니깐. 그런 인스타들은 주변에 차고 넘치지 않던가.

 

아무래도 집안의 청소를 맡고 있다 보니 바른생활 싸나이 이과장의 습성에 자꾸만 눈길이 간다. 물론 그처럼 열심히 그리고 잘하지도 못하는 청소지만 청결 유지와 음식물 쓰레기 처분에 힘쓰는 그의 모습에서 아 짝지들은 다 저렇게 사는구나 싶기도 했다. 그리고 야근을 밥먹듯이 하다 보니 자기가 하는 일에 회의를 품게 되는 장면에서도 찡했다네 동지.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었지만, 그렇게 빡시게 돌아간다면 누구라고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되지 않을까. 물론 하고 싶은 일도 아니고 오로지 호구지책으로 하는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지 않을까나... 역시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레알리즘이 엄습해 오는 순간이었다.

 

세 마리의 고양이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장면들이 재밌었다. 물론 동물을 어려서는 좋아했지만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바쁜 마당에, 다른 생명을 책임지는 일은 하나만으로도 벅차기에 그저 낢 씨를 존경할 따름이다. 뮬론 녀석들을 통해 퍼올리는 소재사냥도 쏠쏠할테니 서로 윈윈 시츄에이션일까나. 고양이 삼총사 뿐만 아니라 주변의 조카 불패를 비롯해서 모두가 소재일세. , 그리고 결혼한 뒤에 따라붙은 가족계획에 대해서도 정중하게 사양한다고 밝히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그러니까 우리 일은 우리가 알아서 잘할 터이니 걱정일랑 붙들어 두시라는. 그러니까 일종의 경계선 긋기라고나 할까. 아무래도 프라이버시 이슈 때문에라도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없는 생활만화가의 고뇌일까, 뭐 충분히 이해가능한 일이다. 웹투니스트로서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건, 관심을 가져 주시는 건 여까지라는 선언.

 

웹툰을 신나게 읽을 적에는 무언가 이것저것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는데 막상 타이핑을 하다 보니 기운이 다 빠져 버렸다. 나는 오늘도 음식물 쓰레기를 밖에 버려야 하며, 먹고 남은 설거지들을 처리해야 한다. 엊그제 먹은 오징어 볶음의 잔재들 때문에 일차 설거지에서 진을 뺐더니 영혼을 털린 듯한 느낌이다. 격렬하게, 진심으로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저녁이다. 뭐 그래도 이렇게 리뷰도 쓰고, 6개의 단편소설 가운데 딱 절반 정도 남은 사쿠라기 시노의 <빙평선>도 마저 읽어야 한다. 낮보다 선선해 지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날이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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