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상] 카스 2006 / 존 라세터

 

요즘 꼬맹이에게 보여줄 애니메이션 구하기에 바쁘다. 그 중에 제법 연식이 된 영화 픽사의 <카스>(2006)를 감상했다. 예전에는 무조건 영어자막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더빙판으로 보게 되었다는 건 안 비밀이다.

 

줄거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픽사는 피스톤컵 처녀 출전에서 우승을 노리는 잘난 레이싱카 라이트닝 맥퀸의 흥망성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벌써 12년이나 되었는데, 픽사의 애니메이션 기술은 완성에 이른 듯하다. 이야기면 이야기, 캐릭터면 캐릭터 무엇 하나 빠지지 않고 그렇게 잘 만들어내니 전세계 팬들의 열광을 받을 수밖에. 다만, 후속편은 좀 엉망이었다고 하는데 1편만으로도 충분하다면 굳이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피스톤컵 레이스에서 공동 3위를 하는 바람에 66번 도로를 달려 캘리포니아에 가서 재경기를 치르게 된 라이트닝 맥퀸. 이동 트레일러 카가 깜빡깜빡 조는 바람에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떨어진 라이트닝 맥퀸. 래디에이터 스프링스라는 쇠락한 마을에서, 경찰과 판사 그리고 변호사의 작당으로 과속에 신호위반이라는 죄목에 잡혀 도로포장이라는 노역형을 치르게 된다. 물론 당장 캘리포니아로 가서 피스톤컵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에 도주도 감행해 보지만, 아무리 시골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법. 맥퀸의 도주를 예상하고 미리 기름을 빼둔 덕분에 얼마 가지 못해 다시 잡혀오게 된다.

 

서사는 치기 어린 선수가 숨은 고수를 만나 비전을 전수받게 된다는 중국 스타일의 이야기를 그대로 따른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고수는 너 혼자가 아니란다 꼬맹아. 왕년에 피스톤컵 3연패에 빛나는 닥 허드슨(폴 뉴먼 목소리 연기)과 경주를 벌이기도 하지만 패기만 가지고 왕년의 레이싱 챔피언을 이길 수는 없는 법. 게다가 캘리포니아에서 잘 나가던 변호사로 활약하던 포르쉐 샐리와의 만남도 점점 미래의 챔피언 맥퀸이 마을에 정을 붙이게 만드는 결정적 요소로 작동한다. 아, 그리고 사이드킥으로는 고물 뻐드렁니 견인차 메이터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인간 아니 자동차라면 누구나 친구가 필요하지 않은가. 외딴 마을에서 군소리하지 않고 묵묵하게 도로 까는 일을 하는 맥퀸에게 메이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친구가 되어준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성공의 단맛에 취할 수도 있었던 맥퀸이 심성 좋은 자동차들이 사는 래디에이터 스프링스에서의 유배생활을 통해 비로소 실력만 갖춘 레이싱 챔피언이 아니라 인성까지 갖춘 진정한 챔피언으로 태어나게 되는 과정을 픽사/디즈니는 그려내고 있었다. 뭐 항상 현실세계에서 그런 정공법이 통하는 건 아니지만, 그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미디엄이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을 고려해 볼 때 불가능한 것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보여준다는 점에서 역시 평가할 만하지 않은가 싶다.

 

마지막 레이스에서 우승을 앞두고, 피스톤컵 우승을 라이벌에게 양보하는 점이 시사하는 건 과연 무엇일까. 한 번 실패하던 다시 일어설 수 없는 한국 사회에서 볼 수 없는 그런 점이 아니었을까. 물론 기본 조건은 라이트닝 맥퀸이 이번 기회를 놓치더라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공정한 기회의 부여 그리고 누구 못지 않은 실력이었으리라. 물론 맥퀸이 그런 걸 노리고 한 것은 아니겠지만, 이런 감동적인 스토리야말로 감성에 메말라 버린 시절에 뉴스와 대중이 환호할 수 있는 기가 막힌 기회를 제공해 주지 않았던가. 이렇게 축적된 자산을 지니게 된 맥퀸은 자신에게 훨씬 더 좋은 기회와 부를 선사해줄 다이노코 사와의 후원 계약 대신 어려운 시절 자신을 후원해온 러스티 사와의 계약을 유지할 거라는 선언을 한다.

 

디즈니 사의 창업주 월트 디즈니의 탐욕스러운 비즈니스 정책과는 사뭇 다른 맥퀸의 선택이 낯설기도 하다. 아이들에게 꿈을 그리고 어른들에게 동심으로의 회귀라는 전략을 유효적절하게 이용해서, 박스오피스에서 어마어마한 실적을 내고 있는 거대 영화사로 거듭난 디즈니의 전통 서사가 보여주는 보수적 가치야말로 우리가 지켜야할 훌륭한 유산이라는 식의 감동 섞인 지도가 나는 탐탁지 않게 느껴진다. 엄청난 시간이 걸리는 렌더링 작업을 어떻게 했을까, 실사 같은 감정이 묻어나는 캐릭터들의 표정 설계를 어떻게 했을까 같은 기술적 질문들보다 전통서사에 입각한 낡은 가부장 질서야말로 21세기에는 맞지 않는 생각들일 터인데 그것을 고집하는 디즈니 경영진의 고집에 두 손 들어 버렸다. 그러고 보면 좋은 게, 모두에게 다 좋은 건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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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8-06-21 16: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회가 새롭네요~^^
이 영화를 무려 극장에 가서 아들과 함께 낄낄거리고 봤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때 자동차라면 꿈뻑 넘어가신다는 삼성 이건희 회장님도 겹쳐지고 그랬었어요.

추억을 떠올릴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꾸벅~(__)

레삭매냐 2018-06-22 10:36   좋아요 2 | URL
예전에는 픽사 애니 모두 챙겨 보았는데
언제부터인가 영화는 뒷전으로 밀리게
되었네요...

자유롭게 영화 볼 날을 꿈꿔 봅니다.

취미는 취미일 뿐, 절대 사업으로 하면
안된다는 걸 배우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