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스 - 박찬욱 감독 영화 <어쩔수가없다> 원작소설 버티고 시리즈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지음, 최필원 옮김 / 오픈하우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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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책을 읽었던 적이 있었던가? 있었다. 블로그의 리뷰를 검색해 보니 15년 전, <뉴욕을 털어라>라는 책으로 작가와 처음 만났다. 나에게는 생소한 작가지만 위키피디아로 검색해 보니 1959년부터 작고한 2008년까지 49년 동안 모두 108편의 소설을 발표했고, 사후에도 4편의 소설이 더 발표됐다. 1년에 2.2편 꼴로 마치 소설 찍어내는 기계처럼 그렇게 소설을 쓴 모양이다. 정말 대단한 작가로구나.

 

이번에 썰을 풀 <액스>는 작가가 1997년에 발표한 92번째 작품에 해당하는 소설이다. 1997년이 당신에게는 어떻게 기억되는가? 바로 IMF가 터진 그해다. 언제까지나 성장할 것만 같았던 세계가 빵하는 소리와 함께 신자유주의 시절의 붕괴를 예고한 그런 시기였다. 우리에게는 IMF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소설의 배경이 되는 베이비 부머 세대의 미국인들에게는 사무자동화라는 이름으로 미국 중산층을 대변하는 중간관리자들의 수효가 필요 없게 됐다. 자본의 무한한 증식은 사무자동화로 필요가 없어진 노동력을 제공하는 인간을 대량 해고하고, 최대 이윤의 확장이라는 고유의 임무에 충실했다.

 

그 순간 우리의 주인공 51세의 버크 데보레가 등장한다. 그린 밸리의 세일즈맨으로 출발한 베이비 부머 세대의 이 남자는 할시온 밀스의 벨리알 밀에서 23년간 특수 산업 용지 제작에 자신의 영혼을 태웠다. 그의 헌신적인 노동의 대가로 회사에서는 안정적인 직장과 급여 그리고 건강보험을 제공했고, 고용인과 피고용인은 만족스러운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할시온 밀스가 이웃 캐나다의 제지 공장과 합병 결정이 나면서 괴로운 이별의 순간이 도래했다. 2,100명에서 1,575명으로 대대적인 인원 감축의 여파는 버크를 빗겨 나가지 않았다. 16개월을 옛 직장에서 버텼지만 결과는 정리해고였다. 전직을 위한 카운슬링 역시 아무런 의미 없는 일이었다. 중년의 남자가 자신보다 훨씬 더 나은 기술을 가지고 있는 젊은이들과 취업전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제로였다.

 

버크 데보레에게 유일한 선택은 비슷한 특수 제지 업계로 전직하는 것 뿐이었다. ,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다른 곳에서도 중년의 중간관리자 급에 대한 대대적인 정리해고 있지 않았나? 그렇다면 잡마켓에는 버크와 비슷한 경력을 가진 구직자들이 넘쳐 나고 있다는 말 아닌가? 만약 당신이 이런 상황이라면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한국에서라면 얼마 되지 않는 밑천을 가지고 닭을 튀기는 레드오션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하지 않았을까? 자영업자들의 무덤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 버크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을 선택한다. 그것은 바로 경쟁자들을 클린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방식으로?

 

소설 <액스>의 초반에서 경쟁자들을 목록에서 지우기 위한 소품으로 아버지가 2차 세계대전에서 획득한 전리품 루거 권총이 등장한다. 지난 반세기 동안 북미 대륙의 어디에서도 사용된 적이 없는 그래서 추적이 전혀 불가능한 그 권총 말이다. 국가폭력을 기반으로 건국된 미국의 유산인 폭력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총기다. 불나방처럼 어떤 위험이 있는 지도 모르고, 버크가 제지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즐겨보는 주간지에 올린 구인란을 보고 연락을 취한 첫 번째 희생자 허버트 에벌리 씨를 찾아간 버크는 손쉽게 경쟁자를 처리한다. 물론 그전에 루거를 사용하기 위해 연구도 하고 직접 사격연습을 하는 정성도 보였다. 첫 번째 클리닝 작업이 힘들었다면 아마 이어지는 버크의 연쇄살인은 다른 방향으로 틀어졌을 지도 모르겠지만, 너무나 손쉽게 성공하게 되자 자신감이 붙은 연쇄살인범의 액션에 가속이 붙기 시작한다.

 

냉혹한 자본주의식 경쟁에서 도태된 실업자 버크는 역설적으로 자신을 해고한 고용주들의 입장을 수용한다. 그리고 그는 분노의 화살을 구조적 모순에 돌리지 않고 자신과 같은 처지의 다른 실업자 그리고 잠정적 경쟁자인 구직자들에게 돌린다. 그것은 마치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노노갈등을 부추기는 기득권층의 사악한 전략이 유효하다는 방증이라고나 할까. 가장이 경제활동으로 가정의 유지를 위한 소득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한때 윤택했던 중산층 가정생활은 붕괴되기 시작한다. 우선 아내 마저리가 파트타임 일자리를 얻어 생활전선에 투입된다. 아내에게 알리지 않고 경쟁자들을 죽이러 다니는 와중에, 아내 마저리와의 결혼생활은 백척간두의 위기에 서게 된다. 불행은 언제나 홀로 오지 않는 법, 집에 돈 나올 구멍이 없다는 걸 잘 아는 아들은 소프트웨어 절도에 나섰다가 경찰에게 체포된다.

 

이렇게 겹겹으로 누적된 불행이 버크의 주변을 강타하지만, 신념에 불타는 연쇄살인범은 목표를 수정하지 않는다. 그가 목표로 삼은 경쟁자들 역시 자신과 같은 처지의 평범한 가장이고, 일자리를 절실하게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동지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가. 차례차례 사람을 죽이는 과정에서, 버크가 자신만의 논리를 앞세워 냉혹한 사회에 맞게 자신을 변형시켜 과정은 비극의 재현이다. 뉴욕 주의 제지 공장 매니저로 근무 중인 업튼 랠프 팰런의 자리야말로 자신에게 필요하다고 결정한 버크는 모든 장애물들을 처리하기 시작한다.

 

버크의 살인 행각은 그가 계획한 대로 매끄럽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었다. 대학생 딸과 불륜에 빠진 교수로 착각한 두 번째 희생자 부인의 예상치 못한 닦달에 그만 희생자는 3명으로 불어난다. 전화위복이라고나 할까, 모든 정황이 해당 교수를 진범으로 지목하면서 버크는 혐의에서 벗어난다. 다만, 희생자의 직업과 총의 발사 탄도 추적으로 경찰의 의심을 사게 되면서 버크는 편리하고 간편한 총기 대신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희생자와 말을 섞게 되었다가 일종의 관계가 성립되면서 잠시 회의에 빠지기도 하지만 곧바로 자신의 임무를 자각하게 된 냉철한 킬러는 자동차를 이용해서 희생자를 죽이고, 알리바이를 만드는 기민함도 잊지 않는다. 이런 계획을 세울 정도로 뛰어난 브레인과 결단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충분히 다른 일자리를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전통적인 스토리텔링이라면 버크 같은 악당은 마땅히 자신의 악행에 어울리는 결말을 맞아야 한다는 클리셰이를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작가는 간단하게 날려 버린다. 일련의 범죄를 통해 자신감이 붙은 버크는 초범이 아니라 상습범으로 중형을 구형받을 수 있었던 아들의 범죄행위를 완벽하게 무마시키는데 성공한다. 버크의 클리닝 작업은 계속되고, 마침내 업튼 팰런마저 해치우고, 가스폭발로 위장한 사고로 팰런의 집마저 날려 버린 버크는 마침내 팰런이 맡고 있던 매니저 자리를 얻고야 만다. 다른 희생자에게 자신의 악행을 덤탱이 씌워 면죄부를 부여 받게된 버크 데보레는 자신이 가진 기술을 이용해서 사회의 정당한 구성원으로 살아가겠다는 원래의 목적을 달성한다.

 

도대체 무엇이 평범한 가장을 이런 악의 화신으로 돌변하게 만든 걸까? 자신이 오래 몸담아 온 조직에서 더 이상 필요 없다는 말과 함께 냉혹하게 내쳐진 버크의 내적 분노는 영민한 머리로 수립한 계획과 철저한 자기방어 기제를 가동시켜 만든 논리로 세상에서 용서 받을 수 없는 살인이라는 행위를 정당화시킨다. 오로지 자신이 하는 행위들은 모두 사랑하는 가족을 위한 것이라며 합리화한다. 실업으로 사회에서 유리되었을 때, 개인의 재교육과 재정착을 지원하는 복지시스템의 부재가 어떤 식으로 사회 구성원들을 파멸로 몰아넣을 수 있는지 도널드 웨스트레이크는 냉혹하게 짚어냈다. 이것을 마냥 소설에나 등장할 법한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당장 버크 데보레와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됐다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한편 도널드 웨스트레이크는 버크의 가정 문제에도 상당한 내공을 들였는데, 정리해고와 실업이 만들어낸 이슈가 단순하게 개인에게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상당히 유의미한 설정이었다. 마저리는 버크의 정리해고 소식을 듣자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면서, 앞으로 다가올 냉혹한 시절을 대비한다. 아들 빌리가 절도죄로 체포되었을 때, 같은 범죄자 특유의 감각을 동원해서 빌리가 숨겨둔 장물들을 가택수색에 대비해서 모조리 치워 버린다. 어쩌면 이렇게 믿음직한 가장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면서, 다른 남자에게 향하려던 떠나려던 마저리의 마음을 돌리는데 성공했는지도 모르겠다. 뭐 그렇게 가는 거지.

 

결말에서 범죄자가 누리게 되는 해피엔딩은 역시 불편하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웃의 평범한 가장을 그런 끔찍한 범죄자로 내몬 버크의 주변상황도 못지않게 불편했다. 소재의 설정에서부터 시작해서, 전개 그리고 얼치기 킬러에서 출발해서 모든 상황을 컨트롤할 수 있는 냉혹한 연쇄살인범이 되어 가는 과정에 대한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정교한 저술은 탁월했다. 단선적이고 평면적이지 않은 결말에 이르기까지 28년 전에 쓰인 작품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작품이다. 코스타 가브라스가 2005년에 연출했다는 프랑스 영화도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뱀다리] 다음 달 개봉예정인 박찬욱 감독 연출 이병헌/손예진 주연의 영화 <어쩔 수가 없다>의 원작으로 대목을 맞아 재개정판이 나온 모양이다. 지금 트레일러를 찾아보니, 원작보다 부인 마저리의 역할이 강화된 느낌이다. 지원자는 네 명, 자리는 하나라는 말이 의미하듯 경쟁자들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에 초점을 맞춘 것 같다. 2005년 코스타 카브라스 감독의 영화가 보다 원작에 충실했다면,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감독 자신의 해석이 한국식으로 추가되지 않았나 추정해 본다. 총기 규제가 엄격한 한국에서 어떻게 주인공이 총을 수중에 넣게 되었는지 그게 제일 궁금하다.

 

[뱀다리2] 새로 나온 재개정판의 표지는 왠지 몇 가지 키워드로 AI가 만들어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자주 사용하는 레오나르도로 한 번 시도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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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8-28 1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도끼는 추리소설 명작중의 하나이지만 오래전에 절판된 책이지요.역시나 재간되는 이유는 영화의 원작으로 영화 흥행을 기대하면서 다시 출간하는 것이 었군요^^;;;

레삭매냐 2025-08-28 12:46   좋아요 0 | URL
네 다음 달에 이 소설을 모티프로
한 영화가 개봉한다고 해서 또
부랴부랴 책이 나온 것 같습니다 :>

세상만사에는 다 이유가 있죠.
 
비 내리는 그리스에서 불볕천지 튀르키예까지 - 무라카미 하루키 여행 에세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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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37년 전, 19889월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저 유명한 춘수 씨는 이웃나라 한국 대신 인류문명의 시원지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와 과거 오스만 제국의 영광이 흐르는 땅 튀르키예를 찾았다. 우리 춘수 씨의 서정적이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글 솜씨야 다 아는 사실이고, 그가 과연 비오는 그리스와 불타는 튀르키예에서 무얼 보고, 느끼고 기록으로 남겼을지 궁금했다.

 

그의 그리스-튀르키예행은 아마 출판사에서 책을 내기 위한 기획이었는지 사진작가와 편집자까지 동반한 그런 여행이었다. <비 내리는 그리스에서 불볕천지 튀르키예까지>는 그리스와 튀르키예 기행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먼저 그리스 정교의 성지로 알려진 아토스 반도 기행으로부터 시작을 한다. 우라노폴리스에서 뱃길로 아토스 반도와 외부를 연결하는 다프니라는 곳으로 향한다.

 

다프니 항구의 여권보관소에 여권을 맡기고, 아토스 반도에서 통행할 수 있는 체류허가증을 받는다고 한다. 역시 일반 관광지가 아닌 신들의 정원이라는 별칭답게 조건이 까다로운 모양이다. , 그리고 수도사들이 기도와 수도에 정진하는 곳이어서 그런 진 몰라도 여자들의 출입은 금지되어 있다.

 

아토스 반도의 수도라고 할 수 있는 카리에까지는 버스를 타고 이동하고, 그 다음부터는 본격적인 도보 여행길이다. 마라톤광, 달리기광으로 알려진 춘수 씨에게 그 정도 걷기는 누워서 떡먹기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동료들에게는 곤욕의 시간들이었나 보다. 스타브로니키타, 이비론 같이 정말 이국적인 이름인 수도원들을 춘수 씨 일행들은 순례한다. 아토스 반도에서 숙식을 모두 수도원의 호의에 의지해야하는 이방인들의 처지가 왠지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 와중에서도 춘수 씨는 먹을거리가 풍족해 보이지 않는 수도원에 둥지를 튼 고양이 가족들을 걱정해 주는 센티멘털리즘을 보여준다.

 

그리고 사진 찍기를 한사코 거부하는 수도사들 때문에 그들의 풍채를 볼 수 없지만, 빈약한 먹거리에도 불구하고 뚱뚱하다는 그들의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심지어 그들은 수도사들이 춘수 씨들을 따돌리고 자기들끼리만 맛난 것을 먹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에 젖기도 한다. 그런 깜찍한 발상이 재밌다. 순간, 역시 춘수 씨구나 싶더라.

 

그 외에도 필로세우, 카라칼르 그리고 그란데 라브라 등의 수도원을 일주한 춘수 씨네는 안나 아기아라는 곳에서 체류기간을 넘어 지내다가 결국 배를 세내어 다프니 항구로 그리고 다시 문명세계로 점프를 한다. 다시 속세로 돌아온 그들은 식당에서 푸짐하게 한상 차리고, 실컷 맥주를 퍼마신다. 역시 신들의 정원을 찾았던 이들조차 속세의 즐거움은 잊을 수가 없었나 보다. 성은 찰나지만, 속은 영원하다는 역설일 지도 모르겠다.

 

짧은 그리스 여행을 마치고 다음은 춘수 씨와 같은 나라 출신인 후지와라 신야가 자신의 책 <동양기행>에서 광물의 세계로 표현한 튀르키예로 춘수 씨들은 이동한다. 2부 타이틀에 적어 놓았듯이 튀르키예에 대한 하루키의 직접적인 인상은 차이, 군인 그리고 양이다. 차이는 튀르키예식 홍차로 어딜 가든 차이하네(차이를 파는 튀르키예식 카페)에서 차이를 마시며 수다를 떨거나, 카드게임을 하고 있는 튀르키예 남정네들에 대한 묘사가 등장한다.

 

유럽 땅에는 이스탄불과 주변의 조각 땅을 걸치고 있으면서도 유럽국가 행세를 하며 군사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되어 있는 튀르키예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입증이라도 하듯, 사방에서 경찰과 군인들이 눈에 띈다고 한다. 이란과의 국경 근처에서 만난 군인들과의 사진촬영에 얽힌 에피소드 역시 흥미로웠다. 아마 나라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군사시설은 물론이고, 휴가 중인 군인의 사진을 찍는 것도 제재를 가하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튀르키예 사람들의 주식이라고 할 수 있는 양과는 도대체 친해질 수 없는 하루키의 말에서는 문화상대주의가 떠오르기도 했다. 어쨌든 모든 여행자들은 이방인이 아니던가. 각자의 취향과 입맛을 존중해 주자고.

 

춘수 씨는 일본인 특유의 상대방이 구사하는 지나친 친절함에 당혹스럽기만 하다. 루스 베네딕트가 여사가 <국화와 칼>에서 언급한 온[]이 문득 떠올랐다. 상대방에게 그런 온을 받으면, 되갚아야 한다는 그네들의 생각 때문일까. 이방인들에게 친절한 무슬림들의 속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다 보니, 무에진이 외치는 모스크의 기도시간 알림 정도 외에 춘수 씨는 철저하게 종교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비껴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잡한 것은 슬쩍 회피하는 작가 특유의 성향이려나.

 

춘수 씨들의 일정은 어느 순간 끝난다. 그는 철저하게 이방인으로서의 자세를 고수한다. 그들과 함께 어울리려고 하지 않고, 항상 차이하네에서 외롭게 글을 쓰며 맥주타령을 한다. 이 책 이전에 <먼 북소리>라는 유럽기행 에세이가 있다고 하는데 그 책은 어떨까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주 오래 전부터 그의 이름을 들어왔지만, 그의 대표작들과는 여전히 거리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쨌거나 이렇게 그리스와 튀르키예를 누빌 수 있었던 춘수 씨가 마냥 부러워지는 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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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8-26 2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채출간 된거 보고 읽을까 말까 했는데 딱히 안 끌려버리네요. ㅎㅎ 사진작가를 대동하는 여행에 이방인으로서의 자세.... 그냥 흔한 여행기일것같은 느낌이 드는걸요

레삭매냐 2025-08-26 22:19   좋아요 1 | URL
아무래도 너무 오래 전에 나온 책이라,
지금과는 다른 느낌이지 않을까 싶습
니다.

패트릭 리 퍼머의 <그리스의 끝, 마니>
라는 책이 있는데 참 좋습니다.
지금 검색해 보니 품절되었네요...

카스피 2025-08-26 22: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네요.하루키가 사진작가를 대동하고 여행했던 88년은 일본경제의 최전성기로 당시 한국은 겨우 여행자유화가 되있던 시기로 특히 남성들은 군대를 안갔다왔으면 아예 여귄발급이 안되던 시기라고 하더군요.이제 세월이 흘러 한국의 경제가 발전하고 한일간 해외여행도 역전되었으니 아마 당시를 살았던 분들은 설마 이런날이 올까 상상도 못하셨을것 같습니다.아마 이제 일본에선 이런 기항문이 나오기 힘들것 같아요

레삭매냐 2025-08-27 07:17   좋아요 0 | URL
그렇네요. 당시만 하더라도 일본 경제
가 마치 미국을 와그작 씹어 먹을 거
라는 공포가 있을 때였죠.
물론 플라자 합의로 모든 게 물거품
이 되었지만요.

요즘에는 너튜브가 대세이다 보니
기행문 대신, 화려하게 편집된 동영
상이 대체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stella.K 2025-08-27 1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먼 북소리 유명하긴 하죠. 저는 안 읽었지만. 근데 이 책이 그저 그렇다면 먼 북소리도 별로가 아닐까 싶기도하네요. 이젠 춘수 씨도 예전만큼 책을 내는 것은 아니니 이렇게 과거를 울거 먹는 거겠죠. 춘수 씨는 그래도 되잖아요. 근데 하루키를 춘수 씨라니까 좀 촌스럽긴 하네요. ㅎㅎ

레삭매냐 2025-08-27 10:22   좋아요 1 | URL
아마 그 시절에 읽었다면 좀 더
트렌디했겠지만, 2025년에는...

궁금해서 <먼 북소리> 책을 찾
아보니 표지가 참 그렇네요.

완전 한글로 풀어서 봄나무 씨
로 하려다가 참았습니다.

춘수 씨는 그래도 되는 레벨이
니깐요 ㅋㅋ
 
과거로의 여행 페이지터너스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원당희 옮김 / 빛소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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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소굴 출판사에서 나온 <과거로의 여행>에는 두 편의 노벨레가 실려 있다. 어떻게 츠바이크의 책들은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는 걸까. 아마 여러 출판사에서 중복되어 출판이 되어 그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2013년 츠바이크에 대한 저작권이 소멸되었다고 하는데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다.

 

도서관에 들렀다가 빛소굴 출판사에서 나온 <과거로의 여행>을 빌려다 읽기 시작했다. 그 날 바로 <과거로의 여행>을 읽었지. 그리고 오늘 <어느 여인의 삶에서 24시간>을 순식간에 다 읽어 버렸다. 아무래도 후자에 더 방점을 찍게 되지 않을까 싶다. 순전히 기억의 문제일 지도 모르겠다.

 

<어느 여인의 삶에서 24시간>1927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화자는 리비에라 바닷가 휴양지의 어느 펜션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한 자세한 기술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시대는 대전쟁이 벌어지기 10년 전인 1904년이었다. 문제의 발단은 잘 생기고,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잘 형성하는 이십대 청년의 등장으로 비롯됐다. 화자가 머물던 펜션에 있던 리옹 출신 뚱보 공장주의 아내 앙리에트와 야반도주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아니 그렇게 첫눈에 반해서 자신의 아이들과 부유한 공장주 남편을 내팽쳐 버리고 갑자기 등장한 연인과 도망가 버렸다. 한가하고, 타인의 삶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던 이들은 모두 이 사건을 두고 열띤 토론을 시작했다. 독일인, 이탈리아인 부부와 달리 화자는 도망간 앙리에트가 시도한 사랑의 모험을 지지하면서 토론은 곧 상호비방전으로 격화됐다. 여러 가설들을 부정하면서, 완벽한 진실만이 가치가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문제는 그 완벽한 진실을 당사자들 말고는 누구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영국 출신 67세의 C부인이 등장해서, 토론을 멈추고 팽팽하게 맞선 두 진영을 중재한다. 품위가 있고 나이가 지긋한 C부인은 무려 24년 전에 자신이 경험했던 비슷한 사건을 재구성해서 화자에게 들려준다. 어린 나이에 군인 남편과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 C부인은 나이 마흔에 남편을 열대지방에서 걸린 질병으로 잃었다. 배우자의 상실에서 오는 자신의 삶에 대한 무의미함과 가치 없음의 감정은 바로 어제 읽었던 폴 오스터의 <바움가트너>에서도 등장하지 않았던가.

 

우연히 찾게 된 몬테카를로의 녹색 카지노 테이블에서 작고한 남편이 알려준 손들의 관찰법 대로 손들을 보던 C부인은 아름답고 열정으로 가득한 한 쌍의 손들과 만나게 된다. 그 손의 주인공은 탐욕과 광기로 가득한 도박에 미친 어느 인간(24세 정도)이었다. 승리의 감정과 실망을 오가는 그의 모습에서 발현된 "강력한 어떤 것"에 홀린 C부인은 도박판에서 가진 것을 모두 잃고 무일푼이자 자포자기 상태가 된 청년을 구원하기에 이른다.

 

심연에 빠진 낯선 청년을 구원했다는 사실도 잠깐, 싸구려 호텔에서 깨어난 C부인은 수치심과 두려움에 빠져 도주를 시도한다. 하지만 자신이 맡게 된 구원이라는 과제를 끝내기 위해 청년과 짧은 여행을 하며 사악한 도박을 끓으라는 맹세까지 이끌어 내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사십대의 C부인은 세상을 너무 만만하게 봤던 게 아니었을까? 청년에 대한 자신의 행동이 마술적 자기기만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광기에 가까운 열정에 휩싸인 C부인의 헌신적인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구제불능의 청년이 다시 도박판으로 돌아간다. 그가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되었다는 설정은 클리셰이처럼 그렇게 다가온다. C부인이 한 때 도박에 미친 남자에게 품었던 비정상적이고 광적인 열정은 결국 망각이라는 이름의 시간의 위력이 해결해 주었다. 과거에 대한 강박과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기억의 잔재들을 화자에게 고해성사처럼 풀어 놓은 C부인은 과연 구원을 얻었을지 궁금하다.

 

1929년에 발표된 <과거로의 여행>에서는 주인공 루트비히가 절대 선을 넘지 않는 그야말로 독일식 에로티시즘의 정수를 보여준다. 도덕과 윤리 그리고 자신을 키워준 사장을 배신할 수 없는 그런 족쇄에 묶인 루트비히는 사장의 부인을 만나는 순간부터 그녀를 사랑하게 됐다. 야속한 시간들은 두 연인을 무려 9년 동안이나 갈라놓았고, 다시 만난 그들은 하이델베르크로 무작정 떠난다.

 

시간이란 마법은 관계를 더욱 더 공고하게 만들기도 또 반대로 모든 걸 부수기도 한다는 자명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9년이란 시간은 루트비히와 사장 부인 모두에게 각자가 가지고 있던 감정들을 변모하게 만들기에 넘치게 충분했다. 사랑하지만 다가갈 수 없던 존재와 함께 있지만 주변의 모든 상황들이 그 때와 달라져 버렸다. 바로 그 순간에 존재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열정이라는 이름의 욕망에 굴복할 것인가 아니면 현재의 진실과 타협할 것인가. 어떤 선택이든 불만족스러울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왜냐면 시간이 모든 것들을 바꾸어 놓았기 때문에.

 

왠지 슈테판 츠바이크는 바로 그 뜨거운 광기에 가까운 열정을 찬양하는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그 결과가 초래할 눈앞의 현실도 냉정하게 보라고 주문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지? 경계에 선 우리 인간의 고민과 갈등이야말로 우리의 숙명이라는 말을 이 책을 통해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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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25-08-25 16: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부분 코멘트를 제가 최근에 “카사노바, 스탕달, 톨스토이”를 읽으면서 느꼈습니다. 뜨거운 광기에 가까운 열정과 성자와도 같은 자기 성찰 사이에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모습을 작가들의 모습을 투영해서 계속 서술하더라구요.

레삭매냐 2025-08-25 20:05   좋아요 0 | URL
그러셨군요. 고 책도 한 번 수배
해서 읽어봐야겠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츠바이크 책을 읽
으면서 느낀 건데, 한 출판사에서
츠바이크 전집 같은 걸 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습니다.
의외로 중복되는 책들이 많아서
헷갈릴 지경이네요.

Forgettable. 2025-08-25 22:28   좋아요 1 | URL
크리스티네.. 와 우체국 아가씨인가 그것도 완전 제목 다르게 해서 여럿 낚였었죠.. 아쉬운 부분이긴 합니다. 전집 혹하네요 ㅋㅋ
 
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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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 달궁모임까지 21일 남기고 폴 오스터의 마지막 소설 <바움가트너>를 이틀 만에 다 읽었다. 사실 지난 6월에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다가 10쪽 정도 읽고 나서 결국 읽지 못하고 반납했었다. 그런데 지난 금요일 마르틴 하이데거의 현상학 강의를 들으러 책방연두에 출동했다가 <바움가트너>를 빌려서 어제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이틀만에 다 읽었네. 이런 걸 보면 책과의 시절인연이 존재하는가 보다.

 

소설 <바움가트너>의 주인공은 20184월 현재 70세 노인이 된 시모어 티컴세 바움가트너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미스터 바움가트너가 사는 뉴저지의 프린스턴이다. 그리고 흙수저 출신의 바움가트너는 무려 프린스턴 대학교의 철학교수님이시다. 그는 10년 전에 사랑하는 아내 애나 블룸을 케이프코드에서 사고로 잃은 홀아비이기도 하다. 이런 점들이 주인공에 대한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준다. 그리고 그는 필연적으로 상실에 따른 소외 그리고 외로움을 느끼는 중이다.

 

그런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필요하지도 않은 책들을 온라인 주문하고 그 책들을 배달하는 UPS기사 몰리와 스몰토크를 즐기기도 한다. 주문해서 읽지 않은 책들은 공공기관에 기증한다나. 그렇다면 읽지도 않은 책들을 책방 가득 쌓아 두고서 항상 고민 중인 나와도 어떤 면에서 비슷하지 않나 하는 동질감이 형성되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대학에서 메를로퐁티를 전공하고, 읽기의 현상학에 대한 연구와 강의를 했다고 했던가. 때마침 며칠 전에 들은 하이데거의 현상학 이야기를 책 읽기에 적용시켜 봐야 하는 생각에 염통이 조금 쫄깃해져 오는 그런 느낌이다. 배울 걸 바로 써먹을 수 있다는 건 어떤 점에서 하나의 즐거움이 아니던가. 타인(작가)이 직조한 이야기에 삶의 이미지를 투영하는 내적 지향성이야말로 현상학의 핵심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내가 그 분야에 대해 전문가가 아니니 이 정도 적용만으로 충분하지 않나 싶다.

 

죽은 아내 애나에게 걸려온 전화에 대한 부분에서는 조금은 스릴러의 기운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것은 미스터 바움가트너의 환상 혹은 착각이 아니었을까. 번역가이자 편집자였던 아내 애나가 남긴 시들과 여러 글들에서 폴 오스터는 과거를 소환해낸다. 애나의 첫사랑이었던 프랭키 보일의 죽음에 대한 서사는 충격이었다. 어쩌면 애나의 죽음에 앞선 대과거 같은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안치오 전투에 참전한 애국자 베테랑 프랭키의 아버지는, 아들이 베트남 전쟁 참전을 거부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게다가 당시는 아무런 명분 없는 전쟁에 대한 반전운동이 격렬해지던 그런 시절이 아니었던가. 결국 프랭키는 아버지의 뜻을 거스를 수가 없어 징병에 응했지만, 베트남의 정글도 밟아 보지 못하고 훈련소의 폭발 사고로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한다. 폴 오스터 작가는 그런 식으로 말도 안되는 전쟁이었던 베트남 전쟁에 대한 우화적 진실을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우크라이나에서 미국으로 이민온 유대계 재단사의 아들로 자란 바움가트너는 철이 들면서 자기가 나고 자란 뉴어크를 탈출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징하게 깨닫는다. 흙수저 청년은 자신이 원하는 학업을 마치기 위해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학업 성적을 유지해야 했고, 석사와 박사 과정까지 마치기 위해서는 허드렛일도 마다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와 달리 그가 사랑한 애나는 전혀 다른 삶의 경로를 걸어왔다.

 

우연한 만남은 바움가트너와 애나를 연결지어 주었다. 소위 말하는 사랑의 쌍곡선은 그렇게 완성되기 마련인가 보다.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부모로부터 독립을 원하던 애나는 작은 출판사의 신출내기 편집자/비서로 자신의 경력을 출발한다. 그리고 영혼의 단짝이라고 할 수 있는 바움가트너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던 어느 날, 강도를 당하고 나서 바움가트너와의 결혼에 골인한다.

 

바움가트너는 애나가 죽고 나서, 재능 넘치는 애나가 남긴 유고 가운데 시들을 발굴해서 시집을 발표한다. 이것은 마치 죽은 이들의 유작에 대해 애착을 보이는 미국 문학 소비자들에 대한 하나의 오마주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보니 <바움가트너> 역시 폴 오스터의 유작이 아니던가. 물론 로베르토 볼라뇨처럼 사후에 더 유명해진 작가라면 더 좋겠지만 말이다.

 

나라는 존재를 규정하는 시간 속에서 폴 오스터는 또다른 이야기들을 퍼올리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가족의 친구였던 영화평론가 주디스다. 서로 다른 점이라면, 바움가트너가 사별한 홀아비라면, 주디스는 결혼생활을 정리한 이혼녀다. , 그리고 바움가트너와 애나는 불임부부로 아이가 없다. 이것은 애나가 사고로 죽은 뒤, 노년으로 접어드는 바움가트너에게 그의 아버지 야코프(제이컵)와 달리 가족 부양의 의무를 제거하는 하나의 장치였다고나 할까.

 

우리의 홀아비 바움가트너는 주디스와의 관계를 발전시키고 싶어한다. 언제나 그렇듯 문제는 상대방의 생각이 나와는 결이 다르다는 점이다. 오랜 고민 끝에, 주디스에게 청혼하기 위해 장미 꽃다발을 준비하고 그녀를 찾아가지만 그녀의 대답은 완곡한 거절이었다. 대신 일주일에 두 번 만나는 대신, 만남의 횟수를 늘이자고 하지만 그것은 공허한 제안일 뿐이었다. 그들의 관계는 주디스가 다른 대학의 영화학과 학과장 자리를 맡으면서 캘리포니아로 떠나면서 아주 깔끔하게 정리된다. 주디스와 바움가트너의 인연 역시 서로의 필요에 따른 시절인연이었다고 말한다면 너무 냉정한 분석일까.

 

그 다음에는 우크라이나의 슈타니슬라프에서 시작된 바움가트너 집안의 이야기로 흘러간다. 기억의 재조립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미션이 아닌가 싶다. 역사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집안 사정 때문에 할 수 없이 가업인 재단사 일을 해야 했던 아버지 야코프.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마저 사라진 뒤 외삼촌에게 위탁되었다가 야코프의 가게에서 일하게 된 바움가트너의 어머니 루스 오스터 여사. 우크라이나 슈타니슬라프 방문에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잔혹했던 나치 독일의 슈타니슬라프 유대인 학살극이라는 냉혹한 현실에 어안이 벙벙해지기도 한다. 아니 이 순간에 바로 여기서!

 

그리고 다시 2019년 현재로 돌아와 자신의 저서 <운전대의 신비>를 마무리 지으면서 당분간 모든 것이 멈추었노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옛 동료로부터 자신의 제자 베브(비어트릭스) 코언이 애나의 유고를 위해 바움가트너와 연락을 원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종신 교수직 은퇴를 고민하고, 바지 지퍼 닫기에 고민하던 바움가트너에게 무언가 새로운 삶의 기폭제가 될 하나의 전환점의 등장하는 순간이다. 아까 낮에 이 책을 읽으면서 연세가 지긋하신 할머니가 커다란 돋보기를 드시고, 글을 읽고 쓰시는 모습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 시간에 연동된 우리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언가에 대한 어떤 노력이 필요하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베브 코언을 위해 자신의 집에 머물 장소를 마련해 주기 위해 첫 장에 등장했다가 사라진 실패한 마이너리거 투수 에드 파파도풀로스를 소환하는 폴 오스터. 그리고 보니 안톤 체홉은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이 각각의 임무를 지니고 있다고 했던가. 애써 등판한 선수를 한 번만 쓰고 그렇게 내버릴 수는 없었나 보다. 베브에게 심지어 자신의 차까지 제공하겠다는 바움가트너의 적극적 호의가 오히려 베브에게는 부담스럽지 않았을까.

 

청년 학자 베브 코언과의 교류는 다시 한 번 미스터 바움가트너를 오래 전 애나와 서신교환하던 시절의 추억을 소환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자아 구성이론에 빗대, 현대 기계문명에 대한 이야기를 설교하는 장면 그리고 은근 슬쩍 MAGA에 대한 비판을 끼워 넣는 장면들은 과연 폴 오스터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 무한한 불가해성 그리고 예측불허한 가능성은 소설의 마지막 순간에 변화구를 던진다. 그리고 작가가 소설에서 구사한 문장대로 어떤 것이든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방식으로 멋진 작품의 항해를 마무리한다.

 

사는 순간, 왜 정말 중요한 것들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못하는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반대로 덧없는 순간들에 대한 기억은 자세하고 끈질기게 다가온다. 폴 오스터 같은 소설가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사는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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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8-24 2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폴 오스터의 기존의 책들과는 좀 많이 다른 느낌이네요. 전 달의 궁전같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흐릿해지던 폴 오스터 작품을 좋아하거든요. 나이 들면서 원래의 뉴욕3부작 스타일로 돌아간 느낌이에요

레삭매냐 2025-08-25 09:49   좋아요 1 | URL
아무래도 인생의 황혼이다
보니, 수구초심의 마음으로
돌아간 게 아닌가 싶네요...

잔잔바리로 시작해서 과거
시간의 바다로 항해해 간다
는 느낌이랄까요.

가속이 붙으니 책이 휙휙
넘어 갔습니다.
 
로마의 테라스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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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서가 정리 중이다. 왜 이렇게 사기만 하고 읽지 않은 책들이 많은 건지. 하긴 그전에 읽었다고 하더라도 또 시간이 지나면서 읽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책들이 있다. 그래서 기억을 위해서라도 리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으로부터 딱 25년 전에 나온 파스칼 키냐르의 <로마의 테라스>를 읽었다. 오래 전부터 내 책장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왜 지금까지 읽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 때가 바로 그 책을 읽을 시간이 아닌가하고 생각해 본다.

 

파스칼 키냐르에 반해서 한동안 그의 책들을 사 모으지 않았나 싶다. 아마 <로마의 테라스>도 그렇게 해서 사지 않았을까. 주인공은 1617년 파리에서 태어난 조프루아 몸므라는 에칭 판화가다. 유럽의 각지를 떠돌며 도제로 판화 기술을 배웠다. 그리고 사랑해서는 안될 여인 나니 베트 야콥스를 사랑한 죄로, 그녀의 약혼자 방라크르에게 질산 테러를 당해 흉측한 얼굴이 되어 버렸다.

 

그런 일련의 사건들이 그의 예술혼마저 빼앗아 가진 못했던 것 같다. 역설적으로 그런 고난이야말로 예술가에는 어떤 무언가를 창조해낼 수 있는 배경이 되지 않을까. 물론 그런 이들의 내적 갈등이나 스스로를 외부로부터 분리하려는 심정의 근원까지 도달하지는 못하는 그런 겉돌기식 이해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연적에 의해 얼굴이 망가진 몸므는 일탈을 경험하기도 하고, 그 이후에는 도주하는 삶을 살게 됐다. 그런 와중에서도 몸므는 판화가라는 자신의 직업을 포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불안정한 일상은 그로 하여금 더더욱 판화가라는 직업에 열중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된 나니에 대한 사랑과 미련은 몸므에게 예술적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하게 된다. 어쩌면 이런 부분들은 소설적 클리셰이스러운 장치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조플루아 몸므가 보다 뛰어난 예술가 혹은 장인이 되고 싶었다면, 이런 혹독한 시련을 뛰어 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물론 그 또한 너무 지나치게 작동한다면, 작위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점에서 파스칼 키냐르 작가는 적당한 선에서 그리고 마리 에델이라는 또다른 몸므의 뮤즈를 등장시켜 타협한 게 아닌가 싶다.

 

소설의 클라이막스는 자신의 아들 방라크르의 칼에 목숨을 잃을 뻔했다는 극적 사건이다. 그리스 비극의 오이디푸스의 아버지 버전이라고 해야 할까. 이미 한 번 아버지 방라크르에게 데인 적이 있던 몸므는 이번에는 그의 자식으로 성장한 아들 방라크르에게 피습을 받아 황천길에 오를 뻔하는 위기를 맞는다.

 

그렇게 부유하던 이야기는 독자를 니힐리즘의 끝으로 인도한다. “언젠가 풍경이 나를 통과하겠지라는 몸므의 독백 같은 문장은 죽음이라는 운명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에 대한 메타포로 읽힌다. 주인공 몸므 뿐 아니라, 인간으로 태어난 존재들의 필연적 운명이 아니던가.

 

짙은 허무의 안개 속에서 무언가 새로운 나만의 해석을 해보려는 시도 자체가 무슨 의미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독서는 파스칼 키냐르의 책 중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었지라는 정도로 마무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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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8-17 17: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마 전에 책장 정리를 했어요. 더 이상 꽂을데가 없어서였는데 결과적으로는 제 책은 거의 다두고 애들 학교 때 읽던책만 방출했네요. 읽는 속도보다 사는 속도가 더 빠른건 평생 고쳐지지 않는 버릇인데 우리 모두 비슷하죠? ㅎㅎ 저는 파스칼 키냐르라는 작가를 오늘 처음 들었는데 알라딘 검색하니 번역된 책이 굉장히 많네요. 세상의 모든 아침이 대표작이라니 고 책을 살짝 보관함에 넣어봅니다.

레삭매냐 2025-08-17 21:40   좋아요 1 | URL
아니 어찌 이리 저와 상황이
비슷하신지요. 저도 꼬맹이
책들만... 그랬다고 합니다.

열심히 추려내고 있는데,
역부족입니다 ㅠㅠ
사고 읽고 팔고의 무한반복
책쟁이의 숙명인가 봅니다.

그레이스 2025-08-19 2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로마의 테라스 언젠간 읽어야지 하고 쟁여논 책인데,,, 별3개, 빨리 읽고 정리할지 말지 결정해야 할까요?**
저도 무한반복!

레삭매냐 2025-08-20 07:22   좋아요 0 | URL
저도 수년 동안 쟁여 두었다가
드디어 읽은 책이랍니다 ^^

저 같이 우매한 독자가 고매한
저자가 추구하는 깊은 뜻까지
도달하지 못하야 별 세 개를...
쿨럭~ 그리하였다고 합니다.

무한반복, 고저 빠이팅입니다.